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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락 팔괘 (1)
"사암도인침구요결원서" 보기로 하겠습니다.
^3456,1,3456,124^ ^3456,12,3456,1245^ ^3456,14,3456,125^ ^3456,145,3456,24^란 수가 나와 있는데 이것을 상생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구궁수라는 것이 있는데 가운데에 5자를 집어 넣고 ^3456,1,3456,124^
^3456,12,3456,1245^ ^3456,14,3456,125^ ^3456,145,3456,24^를 좌회전해서 가만히 돌아가보면 ^3456,1,3456,124^은 수, ^3456,12,3456,1245^은 수극화니까 화, ^3456,14,3456,125^는 화극금에서 금, ^3456,145,3456,24^은 금극목에서 목이 됩니다.
5가 가운데 들어가서 1과 6이 어째서
외수가 되느냐 하는 것을 천천히 깊이 연구해 보아야 합니다.
하여간 ^3456,1,3456,124^ ^3456,12,3456,1245^ ^3456,14,3456,125^ ^3456,145,3456,24^가 거꾸로 돌아가면, 모두 합해서 15가 되는 희한한 모양이 생기게 되지요.
그림2에서 우측으로 돌아갈 때는 화생토, 화와 금사이는 우상방 허하게 되고, 낙서의 그림(그림4)은 수, 화, 금, 목, 토니까 좌하방이 허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림을 그려보면 바퀴가 ^3456,145,34,3456,1^정도 잘려진 것처럼 됩니다.
아무튼 이 상생도, 상극도 안에 천지의 이치가 다 들어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저의 짧은 견해와 짧은 지혜로 이것을 다 설명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좌회전, 우회전하는 의미를 깊이 음미하셔서 어떻게 회전을 하는 것인지 눈에 잘 익혀두시기 바랍니다. 일단은 보지 않고 그릴 수 있을 만큼 하도, 낙서, 구궁수를 익혀 놓으면 큰 이득이 있을 것입니다. (64페이지 그림참조)
여러분들이나 저에게 필요한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주역" 64괘를 다 공부하는 '궁리법'과 저에게 주역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의 말씀대로 하도, 낙서나 팔괘도 하나만 걸어 놓고 명상을 하는 '진성법'이 그것입니다. 지구의를 갖고 음양을 설명하는 것보다는 덜 입체적일지라도 이러한 도표 그림은 어떤 이론을 약간 입체화시킨 것입니다.
진성법이란 참선법과 유사한 방법(몰록 깨닫는 방법)이며, 궁리법이란 수학적으로 공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의학입문", "상한론", "본초학", "내경" 이런 걸 열심히 보며 공부하는 것이 궁리법입니다. 저는 어느 방법이 옳다고 주장하지는 않으나 궁리법을 일반적으로 많이 하고 있으니까 궁리법도 다소 얘기는 하지만, 진성법 쪽을 본체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삼습니다.
이상의 도표에 대해서 제가 설명을 잘 하지 않습니다. 제가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안다고 하더라도 설명할 수 없고, 여러분 또한 의미를 깨달았더라도 그 깨달음이 말로 되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가피하게 이렇게 도표화시켜 놓은 것이겠지요. 황제의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황제가 그의 제자와 대신을 모아 놓고, "나는 알았고 얻었는데 너희에게 이야기 해 줄 수가 없구나"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야기를 할 수가 없지요. 말로 할 수 있다면 그건 도가 아닙니다. 성인이 형상으로 표현한 것은 말로 나타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도표는 엄청난 창조력에 의해서 그려진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이것을 가지고 명상자료로 삼으세요.
여러분들이 명상을 할 수 있는 복팔괘방위도를 하나 더 소개해 드립니다.
일건천, 이태택, 삼이화, 사진뢰, 오손풍, 육감수, 칠간산, 팔곤지를 우에서 좌로 나가는 평면적 관찰보다 이 복의팔괘도에서는 다소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좌로 일건천, 이태택, 삼이화, 사진뇌까지 반원을 그리고, 우로
오손풍, 육감수, 칠간산, 팔곤지를 그리면 태극마크 비슷하게 되는데 8자를
그리면서 돌아가지 않습니까? 옛날에 제갈공명이 적들로 하여금 밤새도록 미로를 헤매게 한 것도 팔괘진법에 해당하며 요즘 쿵후에도 팔괘진법이 있습니다.
이 팔괘가 무엇을 뜻하는지 명상해 보세요.
그림 6은 제가 만든 그림입니다. 여기에 남자니 여자니 하는 것은 아주 쉬운
얘기일 뿐아니라 원이나 입체적으로 된 그림은 여러분들의 좋은 명상재료라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이 그림을 무조건 외우시고 때때로 그 의미를 곰곰이
새겨보십시오. 눈앞에 선하게 떠올려 놓고, 버스를 타든, 기차를 타든, 자꾸 명상을 하십시오.
일부 주역 수행자 중 갑자기 깨달았다는 성인은 바로 이'진성법'으로 공부한 것입니다. 갑자기 깨달을 수 있지만 그만큼 큰 고통이 수반되는 방법입니다.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이지요. 만해 한용운선생이 처음 참선을 할 때 머리에서 고름이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약 석달 동안 화기가 오르고 상기되어서 그랬던 것이지요.
(66페이지 그림참조)
옛날 한 선승이 공부를 하는데 아침이면 까치소리, 낮에는 농부들의 밭 가는 소리 등으로 시끄러워 공부가 되지 않는다고 산 속으로 들어 갔으나, 그곳 역시 짐승들의 울음소리와 바람소리 때문에 공부가 되지 않습니다. 못난 놈이 환경 탓 한다고 세속과 산을 오르내리기 30여년, 공부는 한 것이 없고 마음에 불만만 가득, 너무도 한심하여 징검다리에 앉아 흐르는 냇물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자라 한 마리가 머리를 쑥 내밀더니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물가로 올라왔습니다.
이 때 저만치서 개가 한 마리 달려와 자라를 덥썩 물었는데 목을 쏙 집어넣은 자라를 먹을 수가 없어서 한 참 실랑이를 벌이다가는 포기하고 어디론가 가 버렸습니다. 그것을 재미있게 쳐다보던 선승이 내가 만약 '개'라면 어떻게 했을까 곰곰이 생각하는데, 주위가 조용해 진 것을 알고 자라가 고개를 쏙 내밀어 좌우를 살펴보더니 물속으로 퐁당 들어가더래요. '옳거니 그거다' 그리고는 그 길로 산 속으로 들어간 선승, 3년 용맹정진 끝에 대오각성했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개라면 어떻게 해서 자라를 잡아 먹을 수 있을까요. 이런 것이 공안 즉 화두입니다.
원래 공안은 파설하는 것이 아닌데(파설하면 파설한 자나 들은 자 다 지옥간다고 함) 이건 화두같지 않은 거니까 가르쳐 드리지요. 자라 옆에서 조용히 기다렸다가 자라가 목이 나올 때 얼른 나꿔채면 되지요. 그것은 '가만히 정관'하라는 깨달음이었지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자라목과 같은 번뇌와 습관이 슬그머니 일어날 때 그 때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은 조금 있으면 뭐하고, 그 다음엔 저것하고, 또 이것도 해야하고 등 수 많은 계획들로 마음이 어두워져 있으므로 내 무의식 속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깨닫지를 못합니다. 가령 여러분들이 인생의 길을 잃었을 때 스승과 선배를 찾고,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하면 더욱 어렵고 외로와집니다.
그러나 사흘이고 나흘이고 가만히 있어 보세요. 그러면 묘안이 떠오릅니다.
산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에도 큰일났다고 당황하여 이리저리 설치게 되면 설령
나중에 길을 찾는다 해도 힘이 빠져서 죽기가 쉽지만, 현명한 사람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있어 보면 별을 본다거나 달의 기울어짐을 보고 길의 방향을
찾게 됩니다. 집안에 들어온 새가 조금만 진정하면 들어온 구멍을 찾을텐데 당황하여 여기 부딪치고 저기 부딪치고 살려주려고 해도 도망을 치다가 죽어 버립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정좌하고 묵상하고 참선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나는 전혀 나쁜 생각을 품지 않았는데, 문득 내 속에 내가 모르는 나쁜 생각의 촉수가 무럭무럭 자라오름을 느낍니다. 이런 마음을 느끼고 들여다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이런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마음을 '무의심'이라 합니다.
간과 이미 끝(파)나니, 득실 또한 공이라.
초자의 시골노래를 부르며, 아동의 야곡을 불(취)며,
몸을 소 등에 올려놓고 하늘(운소)을 쳐다보며,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끌어내도 서지 않는다.
자성을 탐구하고 마음을 닦는 과정을 열단계로 나누어 해설한 십우도 중의 이
기오귀가(십우도중 여섯번째로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내용. 십우도는
우리의 본래면목을 소에 비유하여, 소를 찾고 얻는 순서와 이미 얻은 뒤에 주의
할 점을 설명한 것이다)는 무의심의 극치랄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 구조에는 1, 2, 3차 욕망이 있습니다. 또한 일정한 리듬도 있습니다. 1차적인 욕망은 의 식 주에 관한 것이고, 2차적인 욕망은 성적, 미학적, 예술적 충동을 말하며, 3차적인 욕망은 명예욕, 권력욕, 지식욕 등을 말합니다. "의학입문"서문에 '분을 징계하고 욕망을 다스려서...'라고 되어 있는데 내 마음에 맞다고 여기는 것이 욕망의 원인이고, 마음에 맞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 분노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욕, 권력욕, 사치욕 등 여러 욕심과 욕망으로 나를
내세웁니다. 어느 순간 내 속의 그런 욕망의 내재됨을 알고 깜짝 놀랍니다. "나는 깨끗한 줄 알았는데 음담패설 책 따위를 보면 왜 마음이 이상해지고 흥분이 될까?"하고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누르려고 합니다. 욕망을 억제하거나 욕구를 갈구하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욕망이 갖고 있는 긍정성과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부정성, 즉 욕망과
분노는 항상 서로 쫓아다닙니다. 예를 들어보면, 어느 날 미팅에서 굉장히 아름다운 여학생을 보았습니다. 그 여학생도 잘 생긴 나를 쳐다 보았습니다. 아주 순식간에 둘의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부처님! 저 여학생이 내 파트너가 되게 하소서...'추첨 결과 그 여학생은 친구 파트너가 되어 버렸고, 나는 뚱뚱한 여학생과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와 친밀하게 얘기하면서 내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아! 그러자 가슴 밑바닥에서 무엇이 치받혀 올라오면서 그 친구와의 우정이고 뭐고 가슴이 덜컹거리기 시작합니다.
'나는 그렇지 않겠지'하고 착각마세요. 아닌 척 하는 사람일수록 더 안절부절
못합니다. 젊었을 때 강압적으로 공부에 눌려 살던 지식인이 40--60대 쯤 되어서, '아유-- .나도 부룩 실즈 같은 여성과 교제를 해 보면 여한이 없겠는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이란 이상한 것입니다. 술을 오래 두면 식초가 되듯이 지식욕이 해묵어 성욕으로 변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애착이 가면 증오가 생기고 좋아하면 싫어하는 마음도 아울러 생기게 됩니다. 한때는 퉁퉁한 스타일의 사람이 믿음직스럽고 좋았는데 이번에는 마른 스타일의 사람이 센티하고 절개가 있어 보여 좋다고 하다가, 마른 사람은 너무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라 다시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애착을 탓하지 않고 그 대상만을 평가합니다. 욕망의 변화란 참으로 다양합니다. 공자께서는 '20대는 색을 조심하고, 40대는 싸움을 조심하고, 늙어서는 물욕을 경계하라'했습니다. 그런데 재물욕, 성욕, 명예욕 등 이런 것들 전부가 이해되어져야 그것들의 반작용으로 일어나는, 예를 들면 돈을 떼었을 때 일어나는 초조감, 애인을 잃었을 때 오는 시기심과 질투심, 낙선되었을 때 오는 패배감 등의 다양한 형태의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그때 그때 발생하는 열도 양명열, 소양열, 태양열이 각각 다릅니다. 그러므로 감정의 상태를 예민하게 주시하면 꼭 결론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공부의 실마리를 잡을지도 모릅니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 보면 앞으로는 정치, 경제,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는 개인 각자에게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가 벌인 운동의 내용은 지금까지 산업사회 위주, 집단 위주로서 집단 전달 체제의 발전은 이룩했지만, 너무 개인의 창조능력을 제한시켜버렸다는 것입니다. '제3의 물결 운동'의 핵심은 개인 창조능력의 개발에 있습니다.
저는 많은 분들을 모시고 강의하는 기회가 자주 있습니다. 약 130여명이
한 집단으로 모여 있지만 집단적 의미로서의 전체보다 각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오늘날의 대학도 단체, 그룹, 가풍 등을 중요시 여길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개개인의 특성과 장점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자유스런 영적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교육체제가 필요합니다.
몇 백명씩 모아 놓고 적당히 시험이나 쳐서 순위를 가리는 이런 제도는 인간의
창조능력향상에는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창조적인 선각자들은 절대로 이런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 중에 학교에서 열등생이었지만 졸업 후 월등한 우등생이 되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학교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외우는데 능하고 정리하고 분석하는데 능합니다. 그러나 '깨닫는'데는 늦습니다.
심리학에도 이런 테스트가 있습니다. 큰 쇠구슬을 묶은 실 끝에 못이 달려
있습니다. "이 못을 이 벽에 좀 박아다오"하면 얼른 망치를 찾습니다. 그 쇠구슬로 바로 박으면 될 것을 '못은 망치로...'하는 틀 속에 갇혀서 눈 앞의 현장을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한 가난뱅이가 사또를 찾아왔습니다. 온 가족이 굶어 죽게 되었으니 좀 살려달라고 간청하자 사또가 말하기를, "좋다, 따라 오너라" 사또는 가난뱅이가 늘 다니는 다리 건너편에 가난뱅이를 세우고 다리를 건너오게 했습니다. 가난뱅이는 순식간에 다리를 건너왔습니다. "아니! 너는 다리를 건너오면서 다리 중간에 놓아둔 황금보따리를 못 보았는고?" "제가 늘 건너다니면서 한번도 보지 못했던 황금보따리가 오늘이라고 있을 턱이 없지 않습니까요?"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오늘에, 현장에 답이 있는 줄 모르고 사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깨어있음이란, '현장의 답'을 찾아 내는 열린 눈을 말합니다. 앨빈 토플러의 자유스런 영적 분위기란 곧 '깨어있는 현장 분위기'를 일컫는 것입니다.
강요되어진 규율에서 오는 공포나 위축감은 오히려 역효과를 연출시킵니다.
활달하고 명랑하게 깨어 있는 분위기는 의외로 폭발적인 창조효과가 있지요.
집단적 의식이나 행사에서는 미묘한 안락감과 의지성의 쾌감이 있습니다. 또한
마음이 깨어있지 못하고 우둔하게 반복되는 언어는 다소의 안락함, 편안함을 줍니다.
술 먹으면 정신이 없고 깨어나면 현실로 돌아오는 것처럼 종교의 잘못된 측면은
술이나 마약처럼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가 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고
확실하게 깨어 있는 정신 즉 현장정신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식이나 예배나
몇 가지의 주문을 통해서 마음이 평안해진다면 좋은 경치를 찾아가서 마음을
편안히 함과 다를바 없지요.
이것은 일종의 심리적인 미묘한 쾌락일 뿐 종교가 추구하는 경지가 아니지요.
안락감이나 의지성은 그저 공포나 불안으로부터 도피된 것일 따름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정의에 의하면, 진실한 교육은, 인간 개개인의 심리적인 속성과 그것의 진행과정을 이해하게 하여 주는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여러분들은 바로 이런 것을 배워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통로는 예로부터 신비한 '제3의 순환체계'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고대의 명철한 성인이 개발해 놓은 이 경락의 생리 체계는 실제로
동양의학에서 모든 진단과 치료에 응용됩니다. 경락의 순환체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인간 심리의 진행상황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제3의 순환체계는 크게 몇 개의 레일과 같은 통로로 되어 있는데 그곳에는 수백 개의 주요한 역이 있습니다.
이 역을 경혈이라고 하는데 흔히 침술 치료나 진단상 병의 반응점으로 쓰이지요. 이 14개의 통로 가운데 임맥과 독맥을 뺀 12경은 아주 중요한 기혈 또는 반응의 통로여서 일반적으로 12경락이라고 부릅니다. 이 레일들은 모두 서로 상대적으로 짝을 이루고 있는데 심리적 긍정과 부정의 상반된 에너지의 흐름을 나타냅니다.
인간의 욕망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1차, 2차, 3차 욕망으로
나뉘어지는데, 1차와 2차적인 욕망을 유애라고 합니다. 있는 것, 즉 눈에 보이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고, 3차적인 욕망은 무유애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크게 셋으로 나뉘는 이 욕망들을 충분히 이해했다가 여러분들 마음 속의 끊임없는 욕망을 잘 관찰하라는 것입니다.
12경락이 우리 마음 속 에너지의 통로라면 인간이 가지게 되는 마음의 구조는
만족과 불만족의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욕망이 갖는
특징으로써 우리 인체 내의 경락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포를 느끼면 등골이 오싹해진다거나 추위를 느끼는데, 이 공포라는 감정과 차다고 하는 감촉은 각기 물질과 마음이지만 결국은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면 공포는 어디서 생기는가? 이런 것을 조사해보면 어떤 욕망의 반작용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유추가 생소할지 몰라도, 여러분들이 심리적인 진행상황을 관찰하는데 분명히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심리적인 속성과 진행과정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오운육기법을 공부하러 모여서, 인간이 가진 1차, 2차, 3차 욕망을 조사하게 되고 나아가서 심리적인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면, 설령 경락학적인 지식이 좀 모자란다고 하더라도 이미 자기가 가지는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했으므로 도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오류는 너무도 다양하고 처참합니다. 설령 그 오류가
개인적, 주관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건이라 하더라도 물욕에 수반되는 빈곤감, 정욕에 따르는 배신감, 명예욕에 따르는 패배감과 수치심, 이런 것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그 자신 스스로 패배의식에 물드는 이 지구촌은 결국 엄청난 과보를 치르고야 말 것입니다.
순진하게 자라야 할 어린이가 반장선거에서 떨어졌다고 자살을 하는 세상입니다. "엄마는 무슨 협회장, 동창회장 하다못해 꽃꽂이 회장이라도 하는데 너는
그 모양이냐? 엄마, 아빠를 좀 보아라. 이 멍청한 놈 어쩌고 저쩌고..." 훌륭한
부모형제를 가진 아이는 불행합니다. 비교를 당하기도 하거니와 자기 스스로도
그 비교의식의 울타리 속에 갇히기 쉽습니다. 비교감이 낳는 부작용은 망상,
파괴의식의 실천 등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일은 지식인들이 비교를 더 많이 한다는 사실입니다.
불만족이나 고통과 같은 마음의 부정적인면과 만족과 기쁨에 따르는 마음의
긍정적인 면이 인체 내에서 작용하는 현상을 바이오리듬 학설에서는 신체리듬
(Physical Rhythm), 감성리듬(Emotional R.), 지성리듬(Intellectual R.)으로
분류합니다. 서양에서 100년 가량 연구된 이 바이오리듬을 오늘날은 기업에서도 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양의 경락체계는 이것을 좀 더 세밀하게 분류할 뿐 아니라 그 에너지의 통로까지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면, 태음 양명경락은 신체리듬, 소음 태양경락은 감성리듬, 궐음 소양경락은 지성리듬으로 결부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근래에 와서야 겨우, 그것도 그저 3가지 특성만을 다루고 있는데 5천년간 개발해 온 경락체계를 거기에 결부시킨다는 것을 슬프게 생각합니다.
원칙은 우리의 경락체계를 서양인들이 받아들여야 되겠지요. 저는 경락의 순환체계이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바이오리듬 이론을 소개한 것입니다.
어쨌든, 인간의 제1차적인 욕망인 의 식 주에 대한 만족과
불만은 태음경과 양명경의 작용이며, 제2차적인 성적, 미학적, 예술적 충동 등의 만족 불만은 소음경 태양경의 작용이고, 제3차적인 명예욕 지식욕 권력욕 등의 만족과 불만은 궐음경 소양경의 작용입니다. 즉 사람이 일으키는 1차, 2차, 3차 욕망의 성쇠는 그에 해당하는 경락 에너지의 성쇠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만족과 불만의 흐름에 따라 결정되는 경락의 허실은 그 정도가 지나치면 자동조절기능을 상실하여 질병이 되고 맙니다. 제 강의의 배경이 이런 이론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의 족태음비경을 보해야 하는 경우라고 하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리듬'의 어느 부분이 허하니까 보하는 것입니다. 이런 전제조건으로 경락학설이 연구된 것은 어떤 문헌에도 없었고 어떤 강의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다행하게도 운이 좋아서 수십명의 스승을 만날 수 있었는데,
여러분이 처음에는 듣기에 무리한 것같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잘 새겨보면 깊은 뜻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도를 열심히 닦으면 경락이 보인다고도 하고, 슬픔으로 인해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플 때는 폐경락이 엄지손가락으로부터 쭈욱 지나감을 느끼거나, 노궁혈이
피로한 것을 느끼는 등의 부분적인 느낌은 알 수가 있으나 전체적인 경락을 이해시켜 주는 이런 강의는 과거에는 없었습니다. 스스로 자랑스럽고 보람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이런 것을 하나 찾아내고 결부시키기 위해 많은 세월을 고생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경락 자체가 가진 흐름의 에너지는 우리가 가진 1차,
2차, 3차적 욕망의 만족과 불만족에 따르는 에너지의 흐름이라는 이 사실을 참고하여 혼자서 더욱 깊이 연구하고 관심할 수 있는 계기로 삼도록 하십시오.
넘치면 다시 모자라게 되고, 빈 것은 어느 덧 차고, 얻은 것은 잃어지고, 낮은 것은 높아지는 등 끊임없이 균형을이루는 이 자연의 순리가 곧 인간의 '제3의 순환 생리'와 같습니다. 최근 연구가 활발해진 바이오리듬 즉 '생체리듬'학설에 의하면, 각 리듬의 교차일이 위험한 날이고, 고조기에서 저조기로 전환하는 날은 극히 위험한 날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한편 신체 감성 지성리듬의 주기는 각기 23일, 28일, 33일이라고 합니다.
인간 활동의 커다란 흐름인 이 3가지 리듬활동의 복합적인 상호관계가
인생의 길 흉사를 이룬다고 합니다. 각 리듬 주기의 곱, 즉 대순환 기일이
@m23*28*33=21252@e일, 즉 58년 67--69일간인데 이는 묘하게도
우리네의 60년 환갑기일과 거의 일치합니다.
우리 동양학은 여기에 천 지의 리듬이 추가되므로 조금
다르지요. 물론 60주년 주기를 가진 우리가 훨씬 더 정확합니다.
리듬에는 인체내의 생리적인 리듬 뿐만 아니라 자연계의 리듬도 있습니다.
춘하추동, 계절의 월별 리듬과 매년 바뀌는 연별 리듬이 있지요. 동양에서 쓰이는 갑자년, 을축년, 병인년 등의 명칭은 바로 연별 리듬의 표시입니다. 소위
오운육기학이라 불리우는 자연계의 리듬 학설은 동양 최고의 의학경전인 "내경"에 상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자연계의 리듬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옛 성인들이 예방의학적 차원에서 만들어 놓은 것이 오운육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한다면 앞으로 정묘년, 무진년...등의 연별 리듬을 예측할 수 있는 지혜를 조금이나마 얻게 될 것입니다. 동양의 지혜를 미신으로만 비웃던 현대인들이 이제 흥망성쇠의 리듬 학설을 신봉하고 연구하게 된 사실로 미루어 서양학이 진리로의 행진에 조금씩 동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같은 리듬 학설의 근본바탕은 '무상'에 있습니다. '만물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탁월한 인식이 곧 항상된 진리 인식입니다. 석가세존께서 일찍 갈파하셨던 "제행무상'의 진리는 모든 순환리듬의 실체없는 변화성을 의미합니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앓는 몸살감기와도 같은 인생의 패배감, 공포감, 절망감,
초조감 등의 심적 충격을 담담히 응시할 수 있는 힘이 곧 깨달음입니다. 세상운수도 변하고, 나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고, 우주도 변합니다. 물결치는 오탁시대의 리듬 한 가운데 리듬없는 한 물건(일심, 귀원)의 각성이 정말 시급한 세대입니다.
서양의 분리주의적, 합리적, 과학적 두뇌가 낳은 인류의 비극이 이제 동양적,
통일적 조화의 가슴으로 승화되어야 할 때입니다. 문란한 성생활로 인한 에이즈라는 괴질, 매년 6백만명의 희생자를 내는 암이라는 괴질, 최근 국내의 괴저병 등은 단순한 전염성이나 물리적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예측을 불허하는 괴질이라도 아무 조짐없이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슬기의 부족, 평등성과 사랑의 결핍, 경쟁, 분리, 폭력풍토의 조장은 탐욕과 분노의 변형된 독소이자 모든 괴질의 원천이며, 자연계 리듬의 영향을 쉽게 받는 면역불능 체질의 원인이 됩니다. 아주 미세한 리듬의 징조라도 즉시 파악할 수 있는 민감성이 특히 요구되는 세대가 오늘날입니다.
눈과 눈썹이 너무 가까와서 서로 보지 못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우리 품속의 진주를 찾으려고 너무 멀리 여행하고 있지는 않는가 살펴볼 시간인 것입니다.
즐거워하되 음탕하지 말며, 슬퍼하되 상하지 말라.
이 공자의 교훈은 영적인 제3의 순환에 표적을 맞춘 적절한 충고인 것같습니다.여러분들이 약석으로 경락을 조절한다고 하나 마음을 조정치 않고 어떻게 경락을 조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마음 다스리는 법이 첫째입니다. 또한 욕망의 만족과 불만족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약이나 침이 없어도 되는, 이미 지인, 진인, 성인의 경지에 가 있는 사람입니다.
경락팔괘 (2)
그러면 지금까지 장황하게 설명드렸던 여러 이야기의 학문적 근거는 어디 있는지, 그리고 또 주역 팔괘에는 어떠한 증거가 있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팔괘를 반으로 접게 되면 서로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건천과 팔곤지,
이태택과 칠간산, 삼이화와 육간수, 사진뇌와 오손풍 이렇게 상대적입니다.
그러므로 인체를 보면, 하늘(머리)은 둥글고 몸은 모나다고 하는 것은 하나는 양이고 하나는 음이라는 말입니다. 동물의 예를 보면 쥐는 머리에 비해 몸이 크니까. '음-- 너는 음적이겠구나!'말이나 사자처럼 몸집에 비해 머리가 큰 것은 양적이겠구나 하는 짐작을 금방 할 수가 있겠지요. 식물도 이렇게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상이란 선천적인 것이라 했습니다. 얼굴을 보면 눈, 코, 귀, 입 이렇게 7개의 구멍이 뚫려있지요. 그 눈, 코, 귀, 입 4가지 상을 취상(12경락은 각각 그 경락에 해당하는 괘상을 가지게 되며, 이 괘상은 오행과 육기의 양면적 성질을 띠게 되는데, 이때 오행과 육기의 두 성질을 함께 나타내는 어떤 대상을 취하게 되는 것을 취상이라 함. 예를 들어 족궐음간경은 오행적으로는 목(나무), 육기상으로는 풍(바람)에 해당하므로 '대나무 피리'로 취상을 하게됨)하는 것을 사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선천적이고 거의 불변하는 체질을 일컫는 체질의학인데 이것은 일생동안 잘 변하지 않습니다. 소음인이 소양인이 되고 태양인이 태음인이 되는 그런 경우는 드뭅니다.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대단한 도력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팔괘란 바로 사상(눈, 코, 귀, 입) 밑에 있는 어떤 흐름이지요.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어! 저 여자 어디서 많이 봤는데... 옛날 미팅에서 봤나? 친구 동생인가?
사돈 팔촌인가? 아하! 그래 미팅에서 봤군. 꽤 괜찮은데 한 번 교제해 볼까?'
처음엔 보다가 뜻이 생기고, 다음에는 마음이 짙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최초에는 본다는 데서 출발하는데 궁극에는 이것까지도 들여다 보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게 어렵거든요. 보고, 듣고, 맛보고나서 좋고, 싫은 마음이 분리가 되는데 먼저 해야될 것이 보는 공부입니다.
특히 마음을 관찰하기 편리한 것은 우리 마음에 불현듯 떠오르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이 팔괘라는 것은 사상을(눈, 코, 귀, 입) 제외한 소위 6장6부(몸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6장6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약간 진한 감정을 읽을 수
있으므로 조금 쉽지요. 그래서 6장6부에는 6경락이 흐르는데 이 6경락이 결국
3음 3양인 것입니다.
사상을 머리의 운동이라면 팔괘는 몸통에 해당한다고나 할까요. 좀 맑은 인식을 사상이라고 한다면 다소 둔탁한 인식이 팔괘입니다. 우리 인체에 12가지 경락이 흐르고 있다고 하나 실제는 거기에 임맥, 독맥을 합한 14경락이지요. 우리가 오행침법을 공부함에 필요한 것이 6경락이지만, 여기에도 임맥과 독맥이 포함됩니다. 기경팔맥의 8가지 경맥과 함께 이 팔괘가 결국은 경락과 일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경락과 팔괘를 일치시키기 전에 먼저 팔괘의 의미를 알아 봅시다. 건 태 이 진 손 감 간 곤은 유심적, 무형적이고, 천 택 화 뇌 풍 수 산 지는 유물적, 유형적 기운의 취상이라고 저는 이야기 합니다. 못(택), 우뢰(뇌), 물(수) 등은 눈에 보이는 것이고, 건, 태, 이 등은 쉽게 그 의미를 끌어올 수 없게 해놓았습니다.
'건은 건실한 것이요, 곤은 유순한 것이며, 진은 움직이는 것이요, 손은 들어가는 것이고, 감은 빠지는 것, 이는 고운 것, 간은 머무는 것, 태는 기뻐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건은 하늘(아버지), 곤은 땅(어머니)을 말하며, 진(천둥)은 장남, 용, 푸른 대나무를 의미하고, 손은 바람, 장녀, 먹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감은 물, 도랑, 숨어 엎드리는 것, 마음의 병, 귀가 아픈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태는 소녀, 무당, 입과 혀, 첩을 의미합니다. 추가하자면 건은 하늘이요, 원이요, 임금, 아버지,금, 늙은말이고, 곤은 땅이요, 어머니요, 가마솥이요, 인색한 것이요(유심적 차원)등... 이 많은 말들을 공자도 쓰다가 지쳤다고 하지만 이것이 뜻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이해하셔야 합니다. 앞으로, '어떤 괘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취상해 보시오'하면 그 괘에 해당하는 이미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택화혁 괘를 보면 물과 불이 만나서 서로 싸우는 모양인데 무엇이
혁명된다는 것인지? 중건천괘는 건괘가 두개가 겹쳐서 된 하늘이므로 유물적 취상이 되는데, 택화혁의 혁이란 인생의 정신적인 문제,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건천의 '종일건건는 석양...'이란 의미는 '군자는 종일 건건찝질해야 하는가 보다'가 아니고 건건하다는 말 이면에는 군자가 지켜야 할 어떤 정신적인 태도 즉 씩씩하면서도 근엄하고 또 약간 강건한 것을 의미합니다. 곤은 어머니로서 유순하면서도 항상 모든 걸 받들어 주고 음덕을 키우는 것이죠. 그래서 주역 64괘에는 모두 인간이 지켜야 될 예절과 같은 인간관계가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집안에 8식구가 산다고 가정할 때 바로 주역팔괘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러한 여덟 사람이 이루는 음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녀 궁합이 아무리 잘 맞는 경우라 해도 나와 내 마누라가 한 이불을 덮고 자지, 마누라를 팽개치고 어머니와 한 이불을 덮지는 않지요.
같은 음양이라 하더라도 서로 부딪칠 것이 있고 또 서로 친할 것이 따로 있는 법입니다. 병이 일어나는 원인도 나에게 있을 수도 있고, 마누라 혹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있을 수도 있는 등 무궁무진합니다. 이렇게 서로 부딪치는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무형의 취상을 혁이라 표현한 것이며, 무형적인 인간의 심리상태를 유형적으로 표현하고자 택, 수, 화등을 도입한 것이겠지요.
화가 난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보라 했더니 A는 뿔을 그렸습니다. B는 뿔로는
부족해서 칼을 그려서 죽이고자 하는 뜻을 나타냈습니다. 화가 나서 죽이고 싶다는 분노는 소양지기(일종의 소양화기)인데 그 표현을, 화가 치미는 것을 김이
모락모락나게 그리거나 칼을 그렸을때, 전자를 '음! 만두를 먹자는 거로구나' 후자를 '칼로 과일을 깎아먹자는 것이로구나'하고 바보같은 해석을 해서는 안되겠지요. 옛 사람이 남긴 유물적인 취상을 보고 그 마음을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제 이 시점에서 팔괘에 대한 기존의 의미를 잊어버리세오. 그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와 지세요. 다만 그것이 여러가지로 해석되는 이유를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화가 난 것 하나로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 불, 칼 따위로 그릴 수 있듯 1차, 2차, 3차로 감정이 격화됨에 따라 그림도 감정적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물을 그린다고 할 때, 명경지수를 연상해서 거울을 그릴 수도 있고 폭포수나 얼음을 그릴 수도 있지만, 어느 하나를 일컬어 물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요. 웅덩이라면 물이 고일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이고, 피라고 한다면 그 특성을 말하는 것으로 물이 가지는 변화의 여러가지를 표현해 본 것이지 전부는 아니므로 미루어 짐작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무튼 물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모두 이해하고나서야 이 육감수괘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경전 중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것이 바로 "시경"(상고의 시를 모은 책으로 오경
중의 하나. 원래는 삼천여 수인 것을 공자가 첵제하여 삼백 십일편으로 함)입니다. 주역팔괘나 64괘는 약간 시적입니다. 여러분들도 시인이 되어야 합니다. 아주 예민하고 날카로와야 합니다. 공자께서 "주역"을 일컬어 어느 성인이 세상을
염려하여 남겨 놓으신 것이라고 하셨답니다.
팔괘와 64괘를 복희가, 괘효사를 周 문왕이, 십익을 공자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들 3인이 아득한 시대차로 생존했던 점을 미루어 주역의 성립이 그만큼 긴 세월에 걸쳐 이루어졌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주역으로써 제 문제를 풀어나가는 기본적인 의미는 인간에 대한 일종의 경종, 인간의 지혜에 대한 교육, 흥망성쇠의 리듬에 대한 것 등으로 인간을 제도함에 있습니다. 제도를 하면 무엇을 제도한다는 것인가?
결국은 감정처리를 제도하고자 한 것이 아니겠어요? 이것을 설명하고자 유심적인 것과 유물적인 것을 다 빌어다가 인용하였습니다. 그것의 유심적인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이 태괘와 간괘인데 오직 이것에서만이, 그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태괘 옆에 마음심변을 붙이면 즐거울 열자가 되고, 간자에 마음심변을 붙이면 괴롭고 한을 품을 한자가 됩니다. 팔괘를 반으로 접을 때 이 둘은 서로 상대가 됩니다. 천과지가 서로 상대되고 택과 산이 서로 상대되는 유물적 차원이 아닌 유심적 차원, 기형학적인 차원의 사고가 결국 위와 같은 의미를 유추시켰습니다. 이런 것은 주역이 우리 인체내에 일고 있는 유심적 차원, 유물적 차원을 모두 담고 있다는 증거지요.특히 주역의 각 괘는 각각의 특성(유심적 특성)이 무엇(여러가지 다른 유심적인 상황)과 만난 장면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청은 동방 목이요, 적은 남방 화라고 알고 있는데 그러면 보라색은 오행상 어디에 속합니까? 회색이나, 누르팅팅하거나, 벌거죽죽하거나, 혼합색 등 오행에 없으나 우주 속엔 온갖색이 다 있습니다. 중간자적이거나 입체적이거나 복합적인 모든 것을 이해 하도록 주역을 열어 놓은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나의 어떤 기분과 너의 어떤 기분이 만나서 어떤 상황을 이루게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해 대상을 붙여 놓은 것이 팔괘입니다. 그런데 무형학적인 괘상을 붙여 놓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마음을 관찰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어렵지 않겠어요? 주역 64괘를 공부하면 귀신도 잡는다는 말은 아마도 거짓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주역 괘상까지 강의할 실력은 없습니다만 이렇게 태옆에 마음심변을 붙이면 즐거울 열이 되고 간옆에 마음심변을 붙이면 괴로울 한이 되는 것으로 미루어 건과 곤, 감과 이, 손과 진도 각각 어떤 감정상의 만족과 불만족의 상징이 서로 상대적으로 된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추리가 되지요.
음은 모든 것을 취하는 욕망을 좋아하는 성질이 있고, 양은 버리는 것으로 분노를 싫어하는 성질이 있는데, 이런 감정적 차원에서 음괘와 양괘를 분류할 수 있습니다. 기분이 좋다거나 만족한 상태가 되면 입안에 물이 고이고 숨을 들이마시게 되지 않습니까? 여자들이 쇼 윈도우에 진열된 많은 보석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 마셨다가 경제적인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는 한숨을 내쉽니다. 입으로 공기를 들이마시면 입 안에 찬 기운이 고이고 밖으로 내 쉬면 더운 기운이 생깁니다. 이런 경우는 감정적인 음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건괘, 태괘...의 팔괘는 음양괘로 구분되는데, 음괘는 우리 기분의 만족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1차적 욕망(식욕), 2차적 욕망(재물욕), 3차적 욕망(명예욕)이 음괘에 해당한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우선 주역이 제시하고자 하는
우주의 통찰을 몇 가지 독특한 주관적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태극은 음양을 낳고 음양은 사상을 낳고 사상은 팔괘를 낳는다고 하는데 우선
팔괘적인 측면에서 관찰되어진 우주의 실상을 보고자합니다. 팔괘라고 하는 것은 '일건천, 이태택, 삼이화, 사진뇌, 오손풍, 육감수, 칠간산, 팔곤지'라고
하는 여덟 가지의 구성요소를 얘기하는 데 이 여덟가지의 구성요소는 두 가지 용어로 접합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덟 가지의 요소와 여덟 가지 요소의 쌍방 교차작용인 64괘의 복잡한 상황을 깨닫는 것은 심히 난해한 학문체계라고 동양에서는 알려져 있습니다. 64괘의 천착 이전에 팔괘 각각 성품의 연구가 선행되어야만 64괘의 각론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선 두 가지 용어로 표현된 괘상은 다분히 상징적인 것입니다.
건, 태, 이, 진, 손, 감, 간, 곤의 여덟 가지 면칭과 천, 택, 화, 뇌, 풍, 수, 산,
지의 여덟 가지 명칭이 결국 같은 괘상의 이명입니다.주역의 연구가들은 팔괘의 해석에 심히 곤혹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어떤 특별한 방법이 존재해서 우주의 실상을 이렇게 나눈 것이 아니라 실은 오히려 가장 가깝고 단순한 것을 표명한 것이라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지금부터 표명하려는 저의 견해는 단지 저의 사견이기 때문에 하나의 주장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단, 단순히 하나의 학자적인 주장에
불과하여 실제로 이론적인 배경만 가지면서 오히려 실천적 측면으로서는 아무
가치가 없다면 저의 이론 역시 무용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사려 깊은 응용을 바라며 저의 옅은 소견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먼저 주역 팔괘의 구성은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두 가지 이명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즉, 전자 건에서부터 곤에 이르는 여덟 가지는
정신적인 것이요, 유심적인 것이요, 기능적인 것이요, 감정적인 것이요, 후자
천에서부터 지에 이르는 여덟 가지는 물질적인 것이요, 가시적인 것이요, 육체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문자적 증거로는 제2괘에 해당하는 이 태택과 칠 간산에서 증거를 보일 수
있습니다. 팔괘의 특징은 일과 팔, 이와 칠, 삼과 육, 사와 오로 서로 상대적인 괘로 이루어졌습니다. 못(택)과 산괘의 물질적 명칭인 산과 못이 어째서 상대적인지 그 이름만으로 상대성을 인정하기는 좀 우스꽝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일 명칭인 태와 간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좀 더 쉽게 기능적인 차원 내지는 유심적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태란 괘 제일 명칭 옆에 심방변인 마음심변을 붙이면 열자가 되고, 간괘 역시 마음심변을 붙이면 한자가 됩니다. 제일 명칭 중의 하나는 우리 마음의 긍정적인 상태에서 오는 즐거움이요, 하나는 우리 마음의 부정적인 상태에서 오는 괴로움의 표현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태괘가 들어간 64괘의 해설을 보건대 태는 즐거움이니 희열이니 하는 유심적 해설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역시 간은 괴로움, 곤란이니 하는 인간이 갖는 감정의 부정적 내면을 상징하여 괘를 풀이한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주의 실상을 외형적, 가시적인 어떤 구성요소로서 판단되어진 것으로 나타낸 것이 하나요, 내면적인 감정 인식의 세계를 나타낸 것으로 보는 것이 또 하나입니다. 즉, 물질과 마음이 둘이 아닌 차원에서 관찰 표현되어진 것이 주역의 팔괘 철학이론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건과 곤도 역시 어떠한 마음의 긍정적인 상태와 부정적인 상태로 표현한 것이요, 이와 감, 손과 진들 역시 긍정과 부정적 상태로 표현한 것임을 추리하여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옛 선인들은 인간 내면의 감정세계를 탐사하여 그 상대성인 어떠한 원리로 나타내어 이곳에 은밀히 상징해 놓았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증거로는 64괘의 표상을 몇 자 안되는 함축되어진 단어로써 취상할 때 그 단어가 취상 되어질 수밖에 없는 기초적인 상황 원인을 우리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산과 택괘가 만나서 산택손의 손자가 취상되어 졌는데 산과 택이 만나서 손해를 본다는 그러한 어떤 인간사에서 등장되어지는 유심적 세계의 언어가 등장되어진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의미 간, 택이 가지고 있는 태의 의미가 기능적인 차원, 유심적인 차원에서 관찰되어진 후 이 두 요소의 복합상황을 추리해 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산과 못이 만나서 손해를 이룬다는 유물적인 차원의 접근은 좀 난해합니다. 그러나 좀 더 용이한 방법으로는 그 괘상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의 특징을 유심적인 차원의 복합적인 상황으로 종합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두 가지의 복합된 상황이므로 해석이 어렵습니다. 한 가지
한 가지가 어떤 유심적 상황을 얘기 했느냐? 그런데 어떤 경락이 여기에 배당이
되느냐? 하는 것을 알면 그 경락의 특징을 알 수 있잖아요? 그러면 그 경락에
물질적인 어떤 상황이 생기느냐? 가령 흰색이 많은 사람은 양명경락이 실하겠구나 그 경락을 사해 주자? 이런 식으로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응용이 됩니다. 그러므로 팔괘와의 유심적인 연결이 사실 이 강의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결국은 누가 더 관찰력이 좋으냐 하는 것입니다.
금까마귀가 동에서 일어나서 어느 쪽으로 날아가느냐? (금오동기향가방)
남산이 아니면 북쪽 언덕이 아니겠느냐.(불시남산여북강)
금년 다가도록 다른 길이 없으니(의세종년무이로)
금년에는 산봉우리 위에서 광명을 보겠구나.(금년우견령두광)
"뇌옹" (1320--1376 고려 공민왕 때 승려 혜륵의 법호. 속성은 아, 당호는
원혜로 영해사람. 중국 원나라 북경에서 지공을 뵙고 계오한 바 있었고, 그의 법의와 불자를 전해 받다. 1376(고려 우왕 2년)년 세수 57세 법랍 38세를 일기로 입적)금까마귀란 애초에 없는 물건인데 그것을 노랗다, 검다 할 수 있습니까? 없는 존재를 두고 남산으로 날아갔다, 북산이다 하는 시비지심과 분리의식을 일으키게 하는 이 시의 말 끝에 속으면 안되지요.
이 강의는 이론을 풀어헤치기 전에 근본에 대한 망각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앞에서는 팔괘가 유심적으로 어떻게 연결이 가능하다는 암시만 드렸지만 이제부터 구체적인 부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인간이 지닌 1차, 2차, 3차적인 욕망은 어떤 충동에 만족된 상태와 불만족된 상태를 띠게 되는데, 그것을 주역에서 찾는다면 바로 태괘와 간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여러분의 상생, 상극 사고방식을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목, 화, 토, 금, 수나 사계의 상생은 변하지 않습니다. 순환의 진리이지요. 그러나 육기는 상생상극과 무관하게 아무 곳이나 막 끼어듭니다. 봄날씨가 아주 차거나 습할 때가 있는가하면 겨울이 아주 포근할 때가 있지요. 그러므로 육기공부를 할 때는 상생, 상극을 일단 잊어버려야 합니다.
정신차리고 잘 들어 주세요. 상극인 수극화를 여러분은 물이 불을 꺼 주는 것으로 알고 있지요? 그건 그저 반 정도만 이해한 겁니다. 사주를 볼 때도 여자가 수이고 남자가 화라면, 돌팔이 사주쟁이는 "어! 그 여자 물장사나 술장사를 해야되고 남자를 괴롭힐 여자입니다. 조심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명리공부를 잘 하신 분은 "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잘 돕고 북돋아 줄 상입니다"라고 합니다. 똑같은 사주의 해석이 이렇게 달라집니다. 여러분들은 해석을 함부로 하지 마세요. 물이 항상 불을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기름등잔의 경우는 수생화가 되지요. 또, 전기는 더운 기운인데 에어콘과 냉장고가 존재 하지요. 그러므로 사주의 해석도 일률적으로 상생, 상극의 이론을 극단적으로 해석함에 맞출 수는 없는 것입니다.
뚱뚱한 사람이 밤새도록 헤엄치고, 물 마시고, 비 맞는 꿈을 꾸었다면 "아무래도 당신 병이 심해지겠습니다"라고 말해주고, 비쩍 마른 환자가 같은 꿈을 꾸었다면 "아하! 이제 당신 병이 낫겠군요"라고 해석해 주어야겠지요. 뚱뚱한 사람은 몸에 습이 많은데 물놀이를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건 흡사 뚱뚱한 사람을 치료할 때 숙지황 1량에 맥문동, 천문동을 넣고 돼지고기와 마요네즈를 먹으라는 것과 같은 말이 되겠지요. 같은 꿈이라 하더라도 음양이 있는 것입니다. 고정관념으로 상생, 상극을 보면 안됩니다.
특히 많이 외워오신 분들일수록 국한된 사고방식에 빠지기 쉽지요. 신장이
허하다고 할 때, 신은 수니까 금생수의 원칙에 의해서 금인 폐만 건드려 주면
되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지요. 육경을 접함에 우선 상생, 상극의 선입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