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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성숙한 신앙생활(2) - 예배 생활”
+ 본 문 : 요한복음 4장 19절 – 24절 (신약 148쪽)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아멘!
+ 주님께 인사를 드립시다. /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경배합니다.’
+ 서로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 ‘예수님 안에서 만나 반갑습니다.’
+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면,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그리심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리는데,
과연 어디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옳습니까?"
그때 예수님은 "어디서 제사를 드리는가"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제사를 드리는가" 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며,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배생활입니다.
교육도 중요하고, 선교도 중요하고, 친교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생활입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살고, 예배가 살아야 그리스도인인 내 인생이 삽니다.
습관화된 예배, 형식화된 예배를 드리면, 교회도 죽고 나도 죽습니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은혜 충만 성령 충만한 예배에
교회와 나의 생명이 달려있습니다.
교회 여러 부서의 봉사자들이 다 열심히 봉사하여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열성적인
봉사자는 예배를 안내하고, 예배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실의 기도자들이어야 합니다.
목사보다 더 일찍 나와 예배 준비를 하고, 목사보다 더 늦게까지 남아 뒷정리를 해야 합니다.
예배 시작 전에만 안내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드리는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도
안내하던 자리에서 맞이하던 그 모습으로 인사하고, 기도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배 안내위원은 물론 모든 봉사자들, 기도실의 기도하는 것보다
예배의 현장에서 예배드리는 예배생활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배생활보다 봉사생활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교회를 섬기지 않고, 자기의 생각과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으면,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가장 골치 아픈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배는 건성으로 드리고, 당회와 제직회, 그리고 교회 안팎의 회의만을 열심히 하고, 봉사를
한답시고 열심을 내다가, 결국은 교회의 주도권을 쥐려고 이 사람과 싸우고, 저 사람과
싸우는, 골치 아픈 일들이 우리 한국교회에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의도 중요하고, 봉사도 중요하지만, 예배드리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회의 잘하고 봉사 잘 하는 사람도 찾으시고, 기도 잘하는 사람도 찾으시지만,
그보다도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참으로 잘 믿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성도님이 수요예배 시간에 감사헌금을 드리면서, 감사헌금 봉투에 ‘수요예배를 통하여
예배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기록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내용을 읽으면서, 가장 복되고 귀한 은혜와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배에 기쁨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그리고 그 기쁨을 예배를 드리면서 느끼십니까?
예배에 기쁨이 있고, 예배에 은혜가 있고, 예배에 감동이 있고, 예배에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은혜 충만한 예배, 성령 충만한 예배, 기쁨과 감격이 살아있는 예배를 드립시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3). 아멘.
예배 인도자가 없어서 고민하는 한 시골 교회에, 집사님 한 분을 예배 인도자로 세웠습니다.
어느 날, 당회장 목사님이 그 교회를 방문해 맨 뒷자리에서 조용히 예배를 드렸는데,
배운 것 없는 농부인 집사님께서 얼마나 은혜롭게 예배를 인도하고,
얼마나 뜨겁게 감동적으로 설교를 하든지, 예배를 마친 후, 너무너무 놀라서
‘아니 어떻게 그렇게 은혜롭게 예배를 인도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농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되묻기를 ‘아니, 그러면 은혜롭지 않게도 예배를
드릴 수 있단 말입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교부 크리소스톰 이야기)
물었던 목사님이 오히려 할 말이 없었습니다.
* 그러면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우리의 예배생활이 되려면, 어떤 예배생활이어야 합니까?
첫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우리의 예배생활이 되려면, 결석이나 지각이 없어야 합니다.
예배생활을 잘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석이나 지각이 없습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일예배를 빠지지 않고 출석을 잘하는 일입니다.
예전엔 주일을 생명 걸고 지키는 성수주일 교인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나 쉽게 주일을 어깁니다. 코로나 이후 더 그렇습니다.
심지어 대면예배가 아니라 온라인 예배로 만족하는 교인들이 너무나 많아졌습니다.
직장에 일이 생겼다고 주일날 교회 한 번 빠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결혼식이나,
동네 친목 계가리에 참석하느라고 주일예배에 아무렇지도 않게 빠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초신자들이 아니라, 제직 중에도 가끔씩 그런 분들이 있어서 마음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주일에 결혼식이 있다면, 미리 축의금을 준비해 가서 미리 인사를 하면서 ‘내일은 주일이라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미리 왔다.‘ 고 하면 얼마나 근사합니까?
학생이 공부를 잘 하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는 것입니다.
학생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학교에 빠진다면, 그 학생은 공부를 잘할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 충만, 성령 충만, 말씀 충만한 예배를 통하여,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주일성수를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예배에 빠지지 않겠다고 결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왕이면 지각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정성껏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찾으신다고 하셨는데,
여러분들이 그러한 예배를 드리시는 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아멘! (출 20:8)
만약 대통령이 직접 만찬에 초대한다는 초청장을 받았다면, 설렘에 잠을 설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 생명의 주님을 만나는 자리에 여러분들은 얼마나 정성을 다해 도착했습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결석이나 지각이 없습니다.
둘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우리의 예배생활이 되려면, 특별석에 앉아야 합니다.
예배생활을 잘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배 시간에 앉은 자리가 다릅니다.
실제로 신앙생활에서도 예배시간에 어느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느냐에 따라 ,
예배의 효과가 달라지고, 받는 은혜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흔히 예배당의 뒷자리는 동, 가운데 자리는 은, 맨 앞자리는 금이라 하는데 그것은 사실입니다.
특별한 사정 때문에 뒷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도 있지만, 언제나 뒷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예배와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한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앞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교인들 중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뒷자리나 구석 자리를 찾아 앉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음악회에 가면 자리에 따라 특별석인 S석, 그리고 A석, B석, C석으로 구분된 일반석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능하면 S석에 앉으려고 하는데, 실제로 좌석에 따라 음악 감상의 질이 좌우됩니다.
예배당에도 S석과 A석, 그리고 B석과 C석이 있습니다.
음악회는 몰라도, 예배는 근사한 S석에서 드리는 멋있는 사람들이 꼭 되십시요.
신약성경이 전하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자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 병 고침을 받던 병자들의 모습입니까? 아니면 두 렙돈을 드리던 과부의 손길입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강복을 부탁드린 어머니들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경청하던 마리아의 자세입니다.
주님께서도 마리아의 자세를 높이 보시고,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발치, 교회의 앞자리로 나오시면 천사와 24 장로들에게,
둘러싸여 경배 받으시는 예수님을 좀 더 가까이에서 뵐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우리의 예배생활이 되려면, 옷차림이 달라야 합니다.
예배생활을 잘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배 시간에 입고 오는 옷차림이 다릅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올 때, 아무 옷이나 편한 대로 입고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서 복장이 달라지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복장은 달라집니다.
친구를 만날 때와 어른을 만날 때의 복장은 달라져야 합니다.
사람을 만날 때, 어떤 복장으로 만나느냐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평가가 달라집니다.
주일날 예배드리러 오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복장으로 교회에 나가느냐에 따라,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생각 없이 아무 옷이나 편한 대로 입고 나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결례가 됩니다.
세상의 행사와 식중에도 특별히 예를 갖추어 하는 식을, 우리는 예식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특별한 예식에는 반드시 예복을 입는 것이 상식이요, 원칙입니다.
결혼식은 특별한 예식이기에, 결혼식에는 예복을 입는 것이 상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예식보다 더 중요한 예식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릴 때, 예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입니다.
주일날 예배를 드리러 갈 때, 자신이 입고 가는 옷에 대하여 한 번 더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훈련을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도 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미국에는 ‘선데이 베스트(Sunday Best)' 라는 말이 있는데,
주일에 입는 최고 좋은 옷이란 뜻입니다. 경건과 삶의 실천에서 우리의 모범이,
되는 청교도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Sunday Best 는 한 벌씩 지니고 있었습니다.
비싼 옷, 화려한 옷이 좋은 옷이 아니라, 주일을 위해 구별된 옷이 좋은 옷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주일을 위한 옷차림을 구별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지지 않는 눈보다
더 흰 옷,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혀 주실 것입니다.
율법주의, 형식주의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 대한 정성이라고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우리의 예배생활이 되려면, 설교를 잘 들어야 합니다.
예배생활을 잘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면, 설교를 정말로 잘 듣습니다.
설교자가 영의 눈으로 보면,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소리없이 심령에 스며듭니다.
똑같은 설교를 들었는데, 어떤 사람은 그저 도덕적인 좋은 말씀으로 듣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설교를 듣고, 큰 은혜를 받습니다.
설교는 설교를 하는 사람에게도 달려 있지만, 설교를 듣는 사람에게도 달려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 사도의 설교와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가 나옵니다.
베드로 사도와 스데반 집사님 두 사람의 설교, 모두 다 복음적인 설교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도 베드로가 설교를 할 때에는 3천 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는데,
스데반 집사님이 설교를 하자, 사람들은 스데반 집사님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설교자의 차이가 아니라, 설교를 듣는 사람의 차이 때문에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면서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귀가 있다고 다 말씀을 듣는 것은 아니라,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따로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사 중의 은사는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는 귀의 은사요, 축복 중의 축복은,
설교를 들을 때마다 은혜를 충만히 받는 말씀의 축복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는 귀의 은사와 은혜를 충만히 받는 말씀의 축복을 받으려면,
설교를 들을 때마다 믿음으로 집중해야 하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가 설교를 하든, 설교자를 귀하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 복 있는 그리스도인은 누가 설교를 하든, 그 설교가 조리가 있든 없든,
돌이 많든 적든 상관하지 않고 언제나 듣는 설교 속에서 금을 캐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되기 위하여 기도하고, 영성 개발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어떻든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우리의 예배생활이 되려면, 설교를 잘 들어야 합니다.
다섯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우리의 예배생활이 되려면, 말씀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생활을 잘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배 시간에 들은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설악산에 흔들바위가 있는데, 천하에 흔들바위도 겨울이 되면 바위가 얼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설교자가 아무리 뜨겁게 설교해도 얼어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요지부동 움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표현대로 하자면,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애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 비유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리고는 세상이니, 세상으로 가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강도는 마귀니, 조심하라는 말씀입니까?
여관은 교회와 같으니, 좋은 교회를 선택하라는 말씀입니까?
천만에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가서 너희도 그대로 행하라!"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있는 말씀 그대로 믿고 실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핵심을 몸으로 살아 보이는 것, 그것이 성경의 완결입니다.
여섯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우리의 예배생활이 되려면, 뜨겁게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예배생활을 잘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뜨겁게 찬송을 부릅니다. 입술로도 마음으로도 말입니다.
자신의 신앙 상태가 좋은가 좋지 않은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
가장 확실한 방법의 하나는 찬송을 부를 때, 지루하게 느껴지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살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노래는 보통 2절인데, 찬송가는 송영을 빼고는 짧은 것은 2절, 3절까지 있는 것도 있지만,
보통 4절까지 있고, 긴 것은 5절, 6절까지도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찬송가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예배 중에 3절짜리 찬송이 나오면, 그날은 왠지
횡재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5절짜리 찬송이 나오면 '이걸 언제 다 부르나' 하고
걱정이 든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신앙에 병이 든 사람입니다.
영적인 상태가 맑고, 건강한 사람은 찬송을 부를 때 표가 납니다.
찬송을 정말 신이 나서 부르고, 찬송을 부르다가 감동이 되어서 눈물을 흘리며 부를 뿐만 아니라,
그 찬송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불러도 조금도 지루해 하지 않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목회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만큼 고통스러운 일을 당할 때면, 저는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부릅니다.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철철 흐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뜨거운 마음으로 찬송을 부르다 보면,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발목에 차고
무릎에 차고, 허리에 차고, 나중에는 헤엄칠 물처럼 충만하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은혜로 고통스러울 만큼 힘든 일들이 다 치유되고 맙니다.
모든 찬송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 기쁨이 있습니다. / 감동이 있습니다. / 능력이 있습니다.
살아 역사하는 교회들을 보면, 예배가 살아있고,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는 말씀이 살아 있고,
찬송이 살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은혜 받은 교인들을 보면, 살아 있는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아멘! 아멘!’ 을
연발하며, 찬송을 부를 때에 눈물을 줄줄 흘려가며 열심히 부릅니다.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신다면, 찬송을 열심히 잘 부르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일곱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우리의 예배생활이 되려면, 예배를 뜨겁게 드립니다.
예배생활을 잘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뜨겁게 드립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예배 시간에 손뼉 치고, 아멘 아멘 하는 사람들, 그거 제 정신입니까?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손을 들고 찬송을 부릅니까? 이거야 원 불신자를 보기에 창피해서...‘
하고 분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나의 체질상 장로교회가 좋습니다.
어떤 교회에 가면, '주여 삼창을 하고 통성기도 합시다.‘ 하고, 큰 소리로 '주여! 주여! 주여!'를
외친 후 천정이 떠나갈 듯한 소리로 기도를 하는데, 나와는 전혀 스타일이 다르기에
어색하지만, 나는 그 영적 분위기만큼은 좋아합니다.
영적 분위기가 좋으면,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그래서 설교자인 저도 함께 큰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찬송을 부를 때 박수를 치고 싶으면 박수를 치고, 기도하면서 ‘주여!’ 를
큰소리로 외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분별할 줄은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이 생각 없이 너무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너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감정을 닫아두는 것도 좋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는 신앙에는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워야만 합니다.
곧 성경을 공부할 때는 차가운 머리로 하고, 예배를 드릴 때는 뜨거운 가슴으로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우리의 예배 생활이 되려면, 결석이나 지각이 없어야 합니다.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옷차림이 구별된 옷이어야 합니다.
설교를 잘 들어야 합니다.
말씀의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뜨겁게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예배를 뜨겁게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참으로 잘 믿는 사람이 드리는 예배, 곧 은혜 충만한 예배, 성령 충만한 예배,
기쁨과 감격이 살아있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생활을 함으로
예배하는 자가 받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