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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잠언서 강해(6) /
"여호와의 징계와 지혜의 가치"
+ 본 문 : 잠 언 3장 11절 - 26절 (구약 p.912)
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13.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16.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17.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19.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20.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21.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22.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23. 네가 네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24.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25. 너는 갑작스러운 두려움도 악인에게 닥치는 멸망도 두려워하지 말라.
26.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아멘!
+ 서로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
+ 찬양하겠습니다. /
오늘 본문은 지혜를 얻으려다가 어떠한 고난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얻으려고 하는 지혜는,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11절에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하셨고
시편 94편 12절 말씀에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요한계시록 3장 19절에서도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면 왜 이런 교훈을 하였을까요?
우리 사람이 징계를 받을 때, 경솔히 다를 수가 있어서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어려움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자기의 힘으로,
어려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 한다든지, 그저 그것이 우연히 그렇게 된 것으로만,
생각하고, 아무런 자기반성도 없이 지내기가 쉬운데,
이것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는 일'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아야 할 뿐더러 그의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에는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취할 징계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아버지의 사랑의 징계' 로 알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제가 아는 여 성도님은 아들이 몇 명의 학생이 모여서 공부를 그룹과외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너 오늘 과외 선생님에게 몇 대나 맞았니?’ 하고 묻습니다.
아이가 ‘안 맞았어요?’ 하면 오히려 어머니는 섭섭해 하면서 다음날 선생님에게,
선물까지 드리면서 ‘우리 아이 좀 많이 때려 주세요.’ 하고 부탁합니다.
그 다음날 아들이 공부하고 돌아오면 ‘얘야, 오늘은 선생님에게 몇 대나 맞았니?’
하고 묻습니다. 아들이 ‘열 대 맞았어요.’ 하면 ‘됐다.’ 하면서 좋아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선물까지 사다 주면서 자식을 때려달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요즘 신세대 어머니들 같으면, 자식 기죽인다고 항의하고 과외 그만 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 성도님은 자식을 더 잘 되게 하려는 어머니의 깊은 사랑이 있었기에,
그리 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공부를 시키는데, 잘못이 있어도 때리지 아니하고,
내버려두면 그것은 그 학생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증거요, 관심이 없다는 표시오,
될 대로 되어라 하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선물을 주면서까지,
선생님의 관심 안에 있는 학생이 되기를 그 어머니는 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학생들은 세상의 학문을 배우기 위해서,
돈을 들여 매를 많아 가면서 애쓰는데, 우리는 조그만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이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이런 어려움을 주시나?’ 하고,
대들고, 원망하고, 시비하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배반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욥기 5장 17절에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은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견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환란을 당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치 않는 증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당하는 모든 고난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보시는 징계들의 일부분이며, 또한 그것은 나를 사랑하사 깨끗케 하시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은 잠시 동안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련 가운데서,
어쩔 수 없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으나 즐거워하라! 믿음 때문에 시련 받는 것은,
불로 연단해도 결국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것이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명예를 차지하게 될 것이니라." (벧전 1:6-7 참고).
에가드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는 사탄의 애무와 사랑보다 오히려 낫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징계하시고, 사탄은 우리를 죽게 하려고 애무한다는 말입니다.
트랩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징벌을 피하려는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의심하는 사람이라.' 고 말했습니다. 사실, 사랑이 없는 사람에겐 징계하지 아니합니다.
징계 받는 사람보다, 징계하는 사람이 더 힘이 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징계 받을 죄를 범했는데도 징계가 없으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과연 하나님이 나를 자녀로,
대우해 주시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징계를 어떻게 받아야 합니까?
우리는 징계 받을 때,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하신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징계에 두 가지로 반응하는데, 멀리 도망가는 사람, 가까이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지혜가 무엇입니까? 첫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이 지혜의 근본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이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행복을 얻어보려고 만족과 기쁨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인류역사 이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참 행복을 얻은 예는 하나도 없습니다.
어거스틴의 말대로 인간은 하나님을 위하여 지음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품에,
돌아오기 전에는 참 행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외쳤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포도주는 기쁨, 젖은 만족을 의미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양식 아닌 것은 술입니다.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배부르게 못할 것은 담배입니다.
그러므로 술과 담배는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선지자는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은이나 정금보다 낫고, 진주보다 귀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남의 밭을 갈다가,
보화를 발견한 후,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사므로,
그 밭의 보화가 비로소 보화를 발견한 그 사람의 것이 되었다.“ 고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지혜를 얻으려면, 먼저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다 팔아 버려야 합니다.
전에 좋아하던 것 다 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 한 분을 소유하기 위해,
그가 소유하고 있던 것을 다 분토처럼 여겼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너무나 고상했기 때문이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참된 복을 주는 이 지혜를 얻기 위하여 과거에 좋아하던 것을 다 버렸습니까?
내 지식, 내 재물, 내 지위, 내 가문, 신앙적 교만을 모두 포기했습니까?
오늘 본문 16절, 17절에 지혜를 얻은 자가 받을 복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왼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아멘! 아멘!
그렇습니다. 지혜를 얻지 못한 자의 장수가 복이 될 수 없고, 그가 소유한,
많은 물질이 만족과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혜를 얻은 사람에게는,
장수가 복이요, 부귀가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영생도,
역시 지혜의 열매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 이상 더 위대한 존영은 이 세상에 있지 아니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부와 영예를 금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그것들은 오른편 손이 아닌, 좌편 손에 가져야 합니다.
지혜를 얻은 사람의 길은 즐거운 길입니다. 지혜를 얻은 사람에게는 장수와 재물과,
영예만 주실 뿐 아니라, 지혜는 이 세상에서도 영혼의 안정과 평화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참된 지혜를 얻음으로써 누리는 평안이 참 평안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아멘! 아멘!
지혜를 얻는 사람은 생명과일을 먹고, 생명수를 마시는 낙원의 축복을 누립니다.
오늘 본문 18절에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즉 낙원의 축복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2절에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이처럼 하늘의 지혜를 얻은 사람은 달마다 열리는 생명나무 과실을 먹으므로,
새 생명을 얻고, 힘을 얻을뿐더러, 그 심령이 상할 때 생명의 새물로 소성함을 얻는,
축복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얼마나 크고 엄청난 축복입니까?
지혜는 하나님의 기본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로 친지를 창조하셨으며,
만물을 운행하십니다. 작은데서 큰데 이르기까지 제한된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경이와 세미함에 그저 감탄과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장 고상한 생애, 가장 깊은 평화, 가장 바른 생각, 가장 훌륭한 노력,
가장 순결한 기쁨은 모두 하나님 안에서 그와 더불어 연합할 때 얻는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지혜이십니다.(요 1:1-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로서 우주 만물이 그를 통하여 지은바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면,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지혜를 얻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다는 것은,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아멘!
오늘 이 시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시므로 약속된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21절에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한 지혜를 언제나 우리 눈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잠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22절에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신약적으로 말하면 참된 지혜, 완전한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인데,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 중심에 모셔 그가 우리 안에 거하게 하면, 우리의 영혼이 사는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네가 네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23절) -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주님이 그 길을 인도하시므로 형통한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가는 길을 잘못 드는 사람, 걸려서 넘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그의 인격과 명성, 가정의 행복과 기쁨이 한번 실족함으로 인해서,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사라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 인도를 받아 가는 사람은, 인생행로에서 실족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그 행사가 다 형통할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리고 오늘 본문 24절에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잠이 달리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안에 거하는 사람,
완전한 지혜를 소유한 사람은 그 심령의 고요가 있습니다. 마음에 평화가 있습니다.
그 마음속에 공포가 없습니다. 담대합니다. 안심해 합니다. 아무리 고통과 역경의,
심연 속에 있다고 해도 그 환경이 그 마음속의 평안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오순절에 성령 충만한 사도 베드로가 능력 있게 주님을 증언하다가,
유대인들의 강한 반발을 일으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생각하면 이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이고 억울한 일입니까? 그러나 성령충만한,
베드로의 마음에 있는 주님이 주신 참 평화는 빼앗아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방 속에서 천사가 와서 잠을 깨울 때까지 평안히 잠을 잤습니다.
오늘 본문 25절에서 26절에도 "너는 갑작스러운 두려움도, 악인에게 닥치는,
멸망도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말씀하였습니다. 여러분! 아멘입니꺼>
오늘 이 시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
우리 예수님을 소유하므로 약속하신 장수와 부귀. 기쁨과 영생, 생명나무와 평화,
그리고 형통의 축복을 다 받을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