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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이 부활하고 있다 (3편)
[심층진단] 조용한 대약진, 가톨릭의 힘 ③
‘맑은 영혼’에의 목마름인가?
한국 가톨릭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전국적으로 시행했던 인구센서스의 결과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각 매스컴은 개신교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가톨릭의 괄목할 성장세에 주목하면서
그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기사와 방송을 내 보내고 있습니다.
국내 한 시사 월간지가 두 달에 걸쳐 게재한 내용을
세 번째로 소개합니다.
“가톨릭은 실용성, 접근성 갖춘 종교 명품“
소리 없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이 한국인의 신뢰 얻어
조용한 가톨릭이 영혼을 사로잡고 있다.
20년간 신자 증가율 175%, 10년간 74%. 가톨릭이 지금 한국에서 소리 없이 부활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가톨릭을 바라보는가?
개신교 교세에 가려진 한국 가톨릭
중세 가톨릭이 종교개혁을 내세운 신교에 의해 가위눌리듯,
한국에서도 가톨릭은 긴 시간 동안 세속의 박해와 개신교의 약진에 떼밀려
한걸음 뒷전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가톨릭이 우리 땅에 처음 전래된 것은 1784년,
(중국 베이징에 건너갔던 학자 이승훈이 그곳에서 프랑스 신부로부터 세례 받은 때)이었다.
개신교보다 100년이나 앞서 한국 땅에 들어왔지만,
그렇게 먼저 들어온 100년은 한마디로 ‘순교의 세기’가 되고 말았다.
그 시기 동안 가톨릭은 조선 왕실로부터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받았다.
무려 1만여 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그런 박해 속에서도 가톨릭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했지만 교세 확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가톨릭이 우리 왕실에 의해 인정받은 것은 1882년, 미국과 수호조약을 맺은 이후다.
이때부터 가톨릭은 본격 선교에 나서 교세를 확장하고 따뜻한 날을 맞아….
그렇게 됐으면 좋았겠지만 이번에는 후발주자인 개신교의 교세에 가렸다.
조선 왕조에 의해 가톨릭이 인정되던 것과 거의 같은 시기인 1885년,
미국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목사의 선교사업과 함께 이 땅에 들어온 개신교는
가톨릭의 역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탄탄(?)한 길을 걸었다.
개신교는 전래 초기부터 교육사업과 의료사업, 평등 이념을 펼치며 서민층을 급속히 파고들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물심양면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해방과 6·25, 그리고 근대화 과정에서는 반공이념,
미국식 근대 물질문명과 한국의 기복(祈福)신앙이 결합한데다
개신교 특유의 맹렬하고 열정적인 전도 방식에 힘입어 실로 폭발하듯 교세를 확장했다.
급기야 개신교가 전래된 지 100년 만인 1995년 개신교계는 ‘1,000만 성도’에 도달했음을 선포했다.
국민 네 사람 중 한 명은 개신교 신자로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런 개신교의 대약진에 가려 정작 100년이나 앞서 이 땅에 들어오고,
1만여 명의 순교자를 낸 가톨릭은 일반인의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외치는 자 많은’ 개신교의 목소리에 비해 그 목소리도 작아
일반인에게는 그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듯했다.
가톨릭은 한국에서 신흥 개신교, 그리고 전통 불교보다 주목받지 못하는 종교에 머물렀다.
‘오랜 주눅’으로부터의 탈출
가톨릭의 부활은 바로 그런 ‘오랜 주눅’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세계사에서 신교의 반격을 받아 파렴치범으로 몰려 무너진 가톨릭,
한국에서는 숱한 순교자를 내고 박해에 시달리다 개신교의 그늘에 가렸던 가톨릭이 되살아남을 뜻한다.
그러면 이제, 질문의 답을 찾아보자.
과연 오늘 가톨릭을 부활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가톨릭이 사람들의 눈길과 마음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를 연구한 오경환(인천 가톨릭대 명예교수) 신부는 가톨릭의 큰 힘 가운데 하나로
‘종교다움’을 든다.
“중요한 것은 가톨릭이 다른 종교보다 더 종교답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다른 종교에 비해 가톨릭이 일반인의 눈에는 좀 더 종교답게 비칠 구석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우선 그런 종교다움이 청렴성, 특히 성직자들의 청렴성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그것은 가난하다는 것과는 다른 뜻이죠.
가톨릭에서는 신부와 수녀의 청렴한 생활, 청빈한 생활을 대단히 중시합니다.
신부가 되고, 수녀가 되는 오랜 훈련기간에 그 같은 영성(靈性)훈련을 합니다.”
실제로 가톨릭 성직자들은 주택을 소유하거나 개인 재산을 모으는 일이 없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각 교구에서 곧바로 조치를 취한다.
신부는 헌금에 손대지 못하고 신도들에 의해 중앙으로 모여 규정대로 다시 일선에 나누어지는 규율이 적용되고 있다.
성직자의 생활비와 활동비도 규정에 따라 지급된다.
당연히 신부들은 그렇게 지급받는 생활비와 활동비에 대해 소득세를 납부한다.
그것이 성직자의 기본이라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다.
신자 개인의 헌금에 대한 철저한 비밀 유지도 가톨릭에서 중시하는 덕목이다.
“어떤 경우든 헌금은 자발적으로 하게 합니다.
누가 얼마를 헌금했는지는 절대 공개되지 않습니다.
신자들의 헌금액을 공개하거나 헌금경쟁을 유발하는 어떤 행위도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전통이 세워져 있습니다.
모든 이가 자기 형편대로 헌금하게 합니다.”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교회 밖에 대해서도 종교다운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가톨릭의 힘”이라면서
오 신부는 설명한다.
“가톨릭에서는 선교와 복음화를 기본 사명으로 삼습니다.
선교와 복음화에는 사회정의활동과 인권활동이 필수사항으로 포함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초반 가톨릭노동청년운동이 시작된 이래
주요한 정치·사회적 사건이나 인권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가톨릭교회가 나섰습니다.
문제를 지적하고 그 해결을 주장했습니다.
명동성당은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수많은 개별 성당 가운데 하나이지만
그 위상과 존재 의미가 다릅니다.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가톨릭은 물론 우리 양심의 상징처럼 자리 매겨져 왔습니다.
그런 점들이 가톨릭의 정의로움, 나아가 종교다움을 강화했을 것입니다.”
‘나부터 열려야’
그러나 종교다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오 신부는 “종교가 높은 자리에서 숭고함만을 강요하면 일반 대중과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간파한다.
그러면서 그는 “가톨릭의 유연함, 열린 태도가 일반 대중의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 같다”고 말한다.
“가톨릭은 자기반성을 잘합니다.
종교개혁 이후 자기 잘못은 먼저 파악해 고쳐나가야 한다는 전통이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각국의 선교 방식도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가톨릭 교리와 방식을 강요했지만(이를 식민주의적 선교라고 한다)
이제는 각국과 각 민족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중시합니다.”
가령 우리나라에서는 제례(祭禮)문제로 갈등이 심했는데
1939년 이후 교황이 이에 대해 관대한 태도와 조치를 취했고,
실제 우리 한국 주교단에서도 1958년 이후 금지하는 항목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우리 전통 제례를 용인해 왔다.
그것은 우리 한국인들의 마음을 열어가는 중요한 열쇠가 됐던 셈이다.
나아가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가톨릭은 대단히 열린 태도를 갖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종교라고 해도 제각기 옳고 성스러운 것이 있고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공식 선언한 상태다.
다시 그의 말을 듣자.
“그 같은 태도는 유대교·이슬람교·힌두교·무신론자의 경우까지 포함됩니다.
개신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 가톨릭에서는 개신교를 ‘(한 기독교 안에서) 갈라진 교회’라고 해서,
그곳을 통해서도 구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런 열린 태도야말로 종교가 추구해야 할 자세라고 봅니다.
그런 점이 또한 일반인들에게는 가톨릭을 더 종교다운 종교로 인식하게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언뜻 양립하기 어려울 것 같은 두 가지,
곧 가톨릭이 한편으로는 종교다움을 유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에 대해 열린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배경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은 가톨릭이 흔들림 없이 유지해온 전통적 결속력에 있습니다.
가톨릭이라는 말 자체가 세계 교회(성당)가 하나, 한 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교황과 세계주교회의의 결정이 일선 성직자와 교회에 비교적 순조롭게 받아들여집니다.
성직자와 신자들은 또 그들대로 상부 기관의 결정을 존중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원칙을 유지하는 일도,
또 예외를 허용하면서 상황에 따라 열린 태도를 가질 수 있는 일도 가능합니다.
‘이러이러한 것을 고쳐보자’ 하면 단합이 잘 되거든요.
그런 점에서 중간에 굴곡도 많았지만 어쨌든 2,000년을 면면히 이어온 가톨릭의 전통,
거기에 기초한 일체감과 결속력이 가장 큰 힘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 개종 문제를 심도 있게 연구해온 종교사회학자 정재영(실천신학대학원) 교수는
독특한 시각으로 천주교의 강점을 분석한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종교를 과거 박해 시대처럼 어떤 중대한 결심이나 결단을 하고 찾지 않습니다.
목숨을 걸고 종교와 신앙을 선택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거죠.
혹은 자기 인생을 내던져가며 종교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대다수는 마치 우리가 연예인들을 보면서 대중문화를 소비하듯,
종교 또한 그렇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의 영혼을 맡기고, 내 마음의 위안을 얻고, 내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종교를 선택해
그것을 ‘소비’하는 것이죠.
그런 소비 심리가 지향하는 것은 역시 명품(名品)입니다.
종교의 명품.
곧 더욱 종교다운 종교를 추구하고 원하게 됩니다.
각박해지는 세상과 인간관계 속에서 종교다운 종교, 명품 종교를 통해
마음을 위로받고 영혼의 안식처로 삼는 거죠.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오랫동안 종교적 전통과 원칙을 지켜오는 종교가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가톨릭이라고 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미사의 고요함과 엄숙함, 겉으로 보이는 제복(uniform)부터
일반인과는 확실히 뭔가 달라 보이는 신부와 수녀의 모습,
오랜 전통에서 비롯되는 무게감이 어우러져 가톨릭을 명품처럼 보이게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나아가 그는 “명품성만 갖고 있다면 일반 서민이 그것을 ‘소비’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있기 때문에 명품성과 동시에 실용성도 갖고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가톨릭은 종교적 명품성,
곧 종교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헌금이든 선교든 봉사활동이든 자율성을 강조합니다.
성직자들이 평신도들에게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해 열린 관용적 태도를 유지합니다.
세상에서 험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솔선해서 자기들이 맡아 해 나가는 것도
일반 대중에게 접근하는 데 대단히 유용합니다.
또 가톨릭 스스로 지속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계속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한마디로 명품은 명품이되 실용성과 접근성까지 가진 명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종교에서 어떤 영혼의 만족을 구하려는 현대인의 취향에 가톨릭이 잘 맞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종교는 청정해야 할 영혼의 상수원上水源
앞에서 본 K씨와 P씨의 사례,
그리고 앞서 전문가들이 던지는 메시지를 통해 오늘 가톨릭이 한국 땅에서
왜 다시 영혼의 안식처로 부활하는가에 대한 답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6월12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산하 한국사목연구소에서 발표한
‘정부의 통계조사 결과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설명문’에는 그 같은 답변이 잘 요약돼 있다.
“최근 각종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에서는 한국 가톨릭교회에 대한 일반 국민의 긍정적 인식이
유효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인권 증진에서 교회의 역할, 사회봉사와 사회복지분야에서의 헌신,
타 종교에 대한 개방성과 관용적 자세, 성직자들에 대한 신뢰도 등에서 신뢰할 만한 종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 가톨릭교회의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가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소리 없이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다해 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헌신적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한국사회 안에서 가톨릭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내는
핵심 요소입니다.
이분들의 소박하고 힘 있는 삶은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그릇된 가치관과 물질주의에 맞서 사랑을 바탕으로 한 나눔과 섬김을 끊임없이
실천하는 일입니다.”
이런 요인들이 합쳐져 오늘날 가톨릭은 한국인이 영혼을 위탁할 종교로 바라볼 만큼 성장하며
부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가톨릭의 부활이 종교적 의미를 넘어 세속의 세계에 던지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오경환 신부는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한 방울의 썩은 물을 정화하는 데는 대충 그 300배 이상의 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썩어 넘어지기는 쉽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되살아나는 데는 너무도 힘든 과정,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종교는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의 정신,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겠다고 나선 종교가 오염되고 부패해 타락한 뒤
그것이 다시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하겠습니까?”
오 신부는 “부패한 가톨릭이 신교의 반격을 받은 지 이제 500년입니다.
그 긴 시간의 회개와 자숙, 고행과 순교를 거친 오늘에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영혼을 파고들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며
“가톨릭이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영혼의 상수원(上水源)으로서 부족한 점은 없는지,
오염된 곳은 없는지 스스로 늘 두려워해야 한다”고 덧 붙였다.
[출처] 한국 가톨릭이 부활하고있다(3)|작성자 빈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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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교회 밖의 시각이지만 상당히 정확하면서 예리한 분석입니다.~~미처 우리 신자들이 잘 못느끼는 부분도 짚어내는군요.~~일단 실용성을 겸비한 '명품'종교가 바로 천주교인데,우리 스스로는 명품이라는 부분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인식한다면 이 명품을 이웃에게 선물해야하는 숙제가 남는데 제대로들 해내는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