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잠실 베레모가 결혼 후 처음으로 휴가여행다운 2박3일 동안의 여행을 하고 느낀 소감을 쓴 글입니다. 비록 서툰 글이오나 정성에 후하게 점수를 주시고 재미있게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잠실 베레모에게 구혼여행기를 써 달라고 부탁하신 <양치기의 달님>께 드립니다.
舊婚여행기 (1) *** 휴가 한 번 가봅시다 ! ***
신랑은 출근 후부터 몸이 달아 안절부절하였다.
어제 부회장님이 출타중이어서 받지 못한 결재를 오늘 오전에 일찌감치 받아치우고는 곧바로 휴가를 떠나려고 속으로 마음을 먹었는데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따라 부회장실에 결재를 받기 위해 두명이나 대기중이었다.
혹시나하고 한 시간여를 기다렸으나 벌써 오전 시간이 다 지나고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쩝, 쩝, 쩝... 별 수 없지. 오후에 다시 와야지.
신랑은 까만 결재판을 오른손에 들고는 협회 건물을 총총 걸음으로 빠져나와 50미터쯤 떨어진 자기부서의 사무실로 들어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쏘이면서 더위를 식혔다.
지금 부회장 결재를 받으려는 서류는 지난주에 서귀포 리조트호텔에서 개최한 <KEPIC 주간 행사> 결과 보고서였다.
그 보고서에는 최종 행사 프로그램 진행결과와, 참석자 약 200명에 대한 간단한 분석, 후원금/참가비와 지출경비의 총 금액과 잔액, 후원금을 대준 29개 회사 명단, 총평과 내년도 행사의 개략적인 구상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대규모의 행사비용을 후원금 5000만원과 참가비 700만원 합계 5700만원의 자체수입으로 충당하고 약 700만원을 남기었고 참석자들로부터도 대단한 호평을 받았으니 협회 입장에서는 큰 수확일 터이고 결과보고 중에 상당한 칭찬을 들을 것을 예상했는데...
그러나 세상만사가 그거이 아닌거라...
점심시간이 끝나고 부회장실에 들어갔는데 엉뚱한 곳에서 책이 잡히고 말았다.
지난번 서귀포 행사에 관하여 모 신문에서 4개 면을 할애하여 대대적으로 특집기사를 실었는데 문제는 부회장 인사말씀과 그의 사진 게재를 못했으니...
쯧, 쯧, 쯧... 이런 불경죄가 어디있나...
다른 강사들은 협회 부장들까지도 커다란 사진까지 실어주고 원고내용도 자세히 보도하면서까지...
부회장님은 자신의 기사가 실리지 못한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여 행사 당일에도 지적한 바가 있었는데,
- 아니, 박실장 그렇게 커다랗게 특집을 실면서 행사의 주최기관인 협회를 타이틀로 뽑아 주지 않는 법이 어디 있소??
...?? 기사 내용에 협회 이름이 여러 번 나오고 유기자는 당연히 협회가 행사주관인 것을 가지고 괜한 트집이라고 시큰둥 하며 되레 서운해 하였는데 또 그 이야기이시라...??...
아무튼 우리 신랑께서는 큰 행사를 멋있게 기획하여 정말로 훌륭하게 잘 마치고는 상관인 부회장님으로부터 칭찬보다는 한참동안 책망을 들어야 했다.
그래도 신랑이 마음이 가벼웠던 것은 그 수고를 직속 처장님이 충분히 이해를 하고 극구 칭찬과 위로휴가를 강권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기는, 이것은 위로휴가가 아니라 지난 여름에 남들은 다들 다녀오는 하계 체력단련 휴가 즉 다시 말을 해서 바캉스휴가를 우리 신랑은 못갔으니 이거야말로 정확하게 표현하면 <<지각휴가>>였다.
매년 그의 여름휴가는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하고 지나가곤 했었는데 이번만은 경우가 달랐으니 처장님은 여러번,
- 아니 ! 박실장이 휴가를 다녀와야지 내 마음이 좀 편하겠오 ! 큰 행사를 하느라고 수고가 많았으니 제발 휴가 좀 가시요 !
... 나야 직장인으로서 맡겨진 일을 한 것 뿐인데, 이렇게 고마울 수가...
... 그래, 이 참에 박실장도 버젓한 휴가 한번 가보자 !
- 어! 박부장, 이부장 ! 나 지금부터 2박3일 더하기 휴무 토요일과 일요일 합하여 5일간 휴가를 간다 !
신랑은 수하 부장들한터 선언을 한후 다른 직원들과 동료들에게도 대충 인사를 하고는 곧 이어 처장님한테도 보고를 하고 재빨리 사무실을 빠저나와 핸드폰을 꺼냈다.
- 여보, 나요 ! 지금 사무실을 출발했으니 여행준비를 하시요 !
우리 신랑은 무척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하철에 올라섰다.
... 그래 ! 어차피 가는 휴가, 멋진 휴가를 한번 다녀오자구 !!
잠실 베레모
(2) *** 여보 ! 지금 우리가 어디를 가는 거죠 ? ***
지금 우리 신랑은 마음이 무척 홀가분하다.
2박3일을 여행을 하고 돌아와도 토요일, 일요일까지 연타로 5일을 쉴 생각을 하니 그저 어디엔가로 훨훨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내 오늘 신부를 깜짝 놀라게 해야지...하고는 그는 생각을 하면서 아파트에 들어서자 마자,
- 여행갈 준비됐어요 ?
하고는 다그쳐 물었다. 하긴 신부의 작은 청색 등산배낭이 임신한 것처럼 배가 불룩한 모습을 보아 이미 짐을 챙겨 놓은 것 같았다.
- 네. 옷만 갈아 입으면 돼요.
야, 신부님이 오늘 따라 동작 한 번 빠르구나. 다른 때 같으면 어디 갈려고 하려면 신부님 꾸물거리는 동작에 출발 전부터 신랑이 열을 받곤 했는데...
- 어디, 먼 곳으로 기차여행을 갑시다 ?
호 ! 우리 신부가 더 적극적이다. 하기는 그들 부부의 자동차는 낡을 대로 낡아 도저히 장거리 운행을 믿고 떠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신랑이 오래 다니던 한전을 갑자기 사표내고 사업이라고 한답시고 잠실에 사무실 하나를 얻어 여기저기를 쏘다고 다니던 1994년 추석 며칠 전이었다.
그의 발과 같은 프레스토의 밋션이 갑자기 고장나는 바람에 돈도 없겠다 벼룩시장 매물란을 뒤져 인근의 카센타에 나온 구형 프린스 로얄살롱을 단돈 250만원에 인수하여 지금껏 10년차 끌고 있으니 이만한 구두쇠가 대한민국에 또 있겠는가 ?
그의 두 아들들은,
- 아빠 ! 차 시트카바에서 시커멓게 때가 옷에 묻어나와요 ! 에어컨도 고장나고 우리 이제는 프린스 안 탈거에요.
직장의 선배 우실장에게 우리 신랑의 프린스를 타고 동해화력발전소에 가자고 했을 때 우실장은,
- 아니 내가 왜 그 차를 타요? 언제 주저 앉을 지도 모르는데...
에구 ! 주저 앉다니 ??
우리 신랑이 보기에는 멀쩡한 차를 폐차시키면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국가적인 손실인데...
아무튼 우리 신랑의 승용차가 그 정도이니 신부도 아예 자동차 여행은 생각지도 않고 기차여행을 제안한 것이다.
... 세상 형편을 모르는 소리... 차표 예매도 아니했는데 어떻게 기차여행을...라고 생각하며 신랑도 급하게 옷가지와 세면도구 등을 챙겨 그의 샘손나이트 손가방에 집어 넣었다.
(잠시, 이때 큰 실수를...? 나중에 말하겠음)
- 어머니 ! 우리 한 이틀 여행좀 다녀올 게요 !
귀가 어두운 96세 시어머님은 톤이 굵은 아들 신랑의 목소리는 아예 못알아 듣고 며느리 신부의 목소리도 아주 크게 소리를 질려야지 알아 들으신다.
더구나 외식이나 외출 자체를 못 마땅하게 여기시는 시어머님은 오늘도 벌써 속이 언짢아 하시는 눈치가 보인다.
- 뭐라고 ?
- 놀러 갔다가 온다구요 !
신부는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 성국아, 엄마 아빠 여행 좀 하고 올 게 !
우리 신랑신부는 이미 두 아들을 두었는데 둘째 성국이는 입영 영장을 받아 놓고는 휴학을 하고 있었다.
- 언제 돌아오세요 ?
- 내일 모레!
이렇게 서둘러서 아파트를 출발한 그들 부부는 지하철을 탔다.
신랑이야 목적지가 있었지만 신부는 무조건 집을 나선 셈이다.
까다로우신 시어머님 밑에서 결혼시부터 오늘까지 무려 24년만에 처음으로 시도한 2박3일의 황금같은 휴가는 이렇게 출발을 한 것이다.
- 여보 ! 지금 우리가 어디를 가는 거죠 ?
최근에 허리 디스크까지 얻어 심한 고생을 하고있던 신부는 며칠 전 신랑에게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흐느껴 울면서,
- 당신 어머님 좀 며칠 시골 형님 댁에 가 계시라고 하면 안돼요?
라고 말했을 정도로 신부의 마음 고생은 심했었다. 그런 신부가 집을 탈출했는데 그 목적지가 정해진 것이 아니니 궁금할 수 밖에...
- 그냥... 아무데나 가자구.
신랑은 태연하게 가까운 곳에 그가 즐겨하는 등산이라도 가는 기분으로 말했다. 지하철을 5호선으로 바꿔탔다.
안내판에 김포공항이라고 쓴 글씨가 신랑의 마음에 걸렸지만 우리 신부는 설마 자기들이 비행기를 타러 간다는 것을 가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신부는 성격이 유별나게 소심하여 430리터 짜리 대형 냉장고를 들여 올 때도 너무 크다고 깜짝 놀라서는 얼굴이 상기된 채 냉장고를 반환하라고 하루종일 신랑을 조른 적이 있고,
3년전쯤에는 신랑의 직장에서 기획한 제주도 부부동반 여행을 신청해 놓은 후 비행기 타는 것이 무섭다고 여행을 취소하자며 무려 3일 동안이나 안달을 한 전과(?)가 있었다.
그러니 우리 신랑이 목적지를 숨기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 아니, 지금 어디 가는 거에요?
- 가보면 알아요.
잠실 베레모
(3) *** 신부는 비행기가 무서워라 ! ***
지하철 5호선 전동차를 벌써 영등포구청역과 오목교를 지나 화곡동에 접어 들었다.
- 진짜 우리 어디를 가는 거에요?
신랑은 이제 더 이상 숨길 수도, 숨길 필요도 없었다.
- 김포공항 !
- 그런 것 같더라...
신부도 놀라지도 아니하였다.
- 이번에 제주도 한번 여행합시다 !
- 당신은 지난번에 다녀왔잖아요?
- 당신은 안 가봤잖아? 비행기도 안 타보고... 누가 알면 나이 오십이 넘도록 이제까지 뭣하면서 살았느냐고 말할라.
하기는 신부가 오늘까지 우물안 개구리가 된 것은 신랑탓만은 아니다.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우리 신랑은 신부에게 늘 불만인 것이 같이 등산이나 여행을 못다니는 점이었다.
신부는 그냥 집과 시장과 교회 사이를 오가는 것에 만족이었고 특별히 바깥 세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 김포공항에 간다는 신랑의 말에 놀라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티케팅을 한후 신랑은 신부에게 설명을 하였다.
- 항공권은 예매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공항에서 출발전에 반드시 티켓팅을 해야 좌석이 배정되지. 이것 KE 1245가 편명이고 탑승구 번호와 보딩타임 그리고 좌석번호도 중요하고. 국내선의 경우 보통 보딩타임 20,30분전에는 공항까지 나와야 해. 좌석번호는 오른쪽 부터 A열, B열, C열 ... 로 되어 있고.
그런데, 앗차 !? !? 이를 어쩌지 !?
갑짜기 신랑은 생각이 났다. 약봉지를 챙기지 못한 것이다.
어휴... 이를 어쩐담...
하루 세번, 정해진 시간에 파킨슨병 약을 복용해야 하는 그로서는 여행가방을 챙길때 약봉지를 빠트린 것은 큰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 어떻게 하지요 ?
신부도 걱정을 아니할 수가 없었다.
- 뭐, 죽기야 하겠어. 한 이틀 약을 안 먹으면 어떤지 한번 두고 보자구 !
용감한 사람들 !! 그들은 그렇게 마음 편하게 결론을 내리고는 용감하게도 파킨슨병에 도전장을 냈다. 아니 렌트카 운전도 해야 하는데... 어쩔려고...
신부는 공항내 출발수속을 받으면서도 마음의 동요가 안 보였다.
- 비행기는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마음가짐으로 타는 거야.
신랑은 공수훈련을 받을 때 교관의 말이 생각났다.
- 훈련생 여러분 ! 낙하산이 안 펴저서 죽으면 죽는 것입니다 ! 어차피 한번은 죽어야하는 목숨, 조국을 위해 산화하면 그 얼마나 명예로운 일입니까 !
- 죽으면 살리라...
신부는 구약성경의 에스더 이야기를 상기하면서 죽으면 산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 생활시절에 궁녀에 불과한 에스더가 아핫수에로 왕에게 홀을 내밀면서 한말이다.
이때 왕이 홀을 잡아주면 궁녀를 사랑한다는 표시이고 왕이 궁녀가 내민 홀을 외면하면 그 궁녀는 왕을 미혹한 죄로 사형에 처해진다는 것인데
노예의 신분에 불과했던 에스더는 죽을 각오로 왕에게 홀을 내밀어 왕의 총애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의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여 해결한 이야기다.
- 비행기 내에서는 핸드폰을 꺼야 하고 저쪽이 화장실이고 비행시간이 길면 기내식이 나오는데 이렇게 앞 등받이 탁자를 펴고 식기를 놓으면 되고...
신랑의 설명이 계속되는 사이에 벌써 비행기는 이륙을 위한 가속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신랑이 노력을 해도 신부는 다소 겁이 나는지 신랑의 손을 꼭 붙잡았다. 신랑은 그녀의 체온과 맥박과 또 부드런운 손길의 촉감을 느꼈다.
부르릉 릉 릉 !!! 덜컹 ! 스르르 ! 기우뚱 !
드디어 이륙을 했다. 신랑이야 수없이 많이 비행기를 탔지만 신부가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저기가 행주대교, 저기가 일산 아파트 !
신랑이 설명을 하는 사이에 비행기는 남쪽으로 기수를 돌렸고 강화도 마니산과 인천공항이 눈아래 들어왔다.
신부는 신기한 듯 육지와 흰구름과 기내를 번갈아 바라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휴... 안심이다 하면서 신랑은 일단 이번 여행을 잘 왔다고 생각했다.
- 음료수 무엇으로 드실래요 ?
스튜어디스가 방긋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잠실 베레모
(4) *** 제주도에서 첫번째 신방을 차리다. ***
비행기가 완전하게 고도를 잡으면 아래에는 흔히 하얀 목화구름밖에는 안보이는 데 그 모습이 너무 환상적이다.
내가 1987년도에 처음 미국행 비행기를 타면서 태평양의 넓은 바다를 볼거라고 예상을 했다가는 오직 눈부신 목화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것 밖에는 보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국내선의 경우는 비행고도가 낮아 눈 아래에 서해안 섬들과 육지와 남해바다를 구름사이로 구경할 수가 있었다. 지도와 지형에 익숙한 우리 신랑은 연신해서 설명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