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이나 10년 전 정권교체기였다면 지금쯤 청와대는 이미 집무를 정지하고 짐싸기에 몰두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 핵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인 지금 청와대는 조용하지만은 않다. 덕분에 함께 짐싸기에 들어갔어야 할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작년 1월 개각이 단행된 직후 몇몇 기자들은 "이제 청와대에서 큰 뉴스 나오는 건 끝이다"라고 선언하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러 몰려나가기도 했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달 '악의 축' 발언 속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부터 시작해 빅뉴스는 실타래에서 실 풀리듯 끊이지가 않았다. 1월에 '큰 뉴스 끝'을 선언했던 일부 기자들은 6개월이 지난 7월에도 '총리인준 부결' 소식을 전해듣고 휴가를 중단한채 뛰어오기도 했었다.
필자도 지난달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에는 '이제는 정말 아무 것도 없겠지'라고 생각했었다. 3년 가까이 출입해온 청와대를 떠날 때가 됐으니 이것저것 정리도 좀 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최근 열흘 사이에만 해도 청와대에서는 두 개의 톱 기사가 나왔다. 하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 봉쇄반대 발언'이고 또 하나는 '동교동계 해체지시' 였다. 어찌 됐건 기자는 큰 뉴스가 나오면 신이 나는 법이다. 더구나 두 개의 소식 모두 YTN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1보를 전했기 때문에 자랑 겸 뒷얘기를 전해보려고 한다.
김대통령의 '북한 봉쇄 반대 발언'은 지난 12월 30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나왔다. 그 날은 박선숙 청와대 대변인과 기자들이 송년 점심을 함께 하는 날이었다. 박대변인은 점심 자리에서 방송기자들에게 "오늘은 리포트를 해야 될 것 같다"고 부탁을 했다. 그러나 괜히 송년 분위기에 들떠있던 우리는 서로 "기사거리가 돼야 리포트를 하는 거지" 하면서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국무회의 브리핑은 늦게도 나왔다. 대변인의 브리핑 자료가 기자들에게 전달된 것은 오후 2시 50분쯤. 필자는 '어지간하면 단신'이라고 마음먹고 천천히 자료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공산권 국가에 대해 압박하거나 고립하는 정책은 성공한 사례가 없습니다. 과거 소련에서 그랬고 쿠바에서 그랬고 베트남에서는 전쟁까지 해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라는 김대통령의 발언이 또렷하게 적혀 있는게 아닌가. 평소 매우 신중한 외교적 수사를 사용하는 김대통령이 이런 수위의 발언을 한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더구나 그 전 날부터 미국 정부는 언론을 통해 "대북 맞춤형 봉쇄정책 추진"이라는 방침을 본격적으로 띄우고 있는 시점이었다.
갑자기 눈에 빛이 나고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오후 3시 뉴스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우선 "대북 봉쇄정책 성공 못해"라는 제목으로 단신 기사를 쓰고 3시 뉴스에 꼭 내달라고 뉴스편집부에 부탁을 했다. 김대통령의 발언은 오후 3시 YTN 뉴스를 통해 가장 먼저 세상에 알려졌다. 곧바로 4시 뉴스 리포트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3시 뉴스가 나간 뒤 청와대 관계자들이 "그 발언은 역사적인 사실을 지적한 것에 불과하고 그런 식으로 제목을 잡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기자실에 해명을 해왔다. 몇몇 다른 언론들은 그 발언내용을 뒤로 돌리고 다른 제목으로 기사를 써서 출고를 했다. 잠시 혼란스런 순간이었다. 대세를 따르지 않다가 혼자 바보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김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이런 발언을 한 것은 대통령의 의지가 실려있다고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기사제목이 안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다른 몇몇 기자들도 나의 의견에 동의를 표시했다. 4시뉴스에 김대통령의 육성을 넣어서 리포트를 방송했다. 대세가 이렇게 흐르자 결국 다른 제목으로 출고했던 언론들도 제목을 바꿔서 기사를 다시 출고할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박선숙 대변인에게 물어본 결과 김대통령의 이 발언은 확실히 '마음먹고' 한 발언이었다. 박대변인의 설명은 이랬다. "그 말은 대통령이 30년 전부터 해온 말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은 이 시점에 한번 짚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의지를 실어서 발언한 것이다." 대통령의 이 발언이 나간 뒤 결과적으로 미국 정부는 '대북 봉쇄정책은 우리의 전략이 아니다' 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미관계가 이제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김대통령의 '대북 봉쇄반대' 국무회의 발언]
그로부터 사흘 뒤. 이번에는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실에서 빅뉴스가 터져 나왔다. 박지원 실장은 전날인 1월 1일 공관에 새해 인사차 찾아온 기자들에게 "오늘은 기사거리를 말할 수 없고 대신 내일 기자간담회를 할텐데 그 때는 실명으로 기사를 써도 좋다"고 예고한 상태였다. 청와대 기자들의 비서실 오전 방문취재는 11시부터 1시간 동안 허용된다. 11시가 되자 기자들이 박지원 비서실장실로 몰려들었다. 박실장은 "김대통령은 퇴임 이후 평범한 시민으로 국가발전과 세계평화를 위한 일에만 전념할 생각이다"라고 운을 떼더니 "대통령은 아직도 동교동계라는 말이 나오는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는 동교동계라는 모임을 갖거나 동교동계라는 이름도 쓰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을 이어갔다.
박실장의 말은 느릿느릿 계속 이어지고 있었지만 더 듣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함께 있던 채문석 차장이 필자에게 먼저 나가라는 사인을 보냈다. 곧바로 간담회장을 뛰어나와 우선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뉴스편집부 임장혁 기자에게 "긴급자막 좀 넣어줘, '김대통령 동교동계 해체 바람직'"하고 부탁했다. 곧바로 비서실장 부속실 소파에 앉아 기사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부속실 TV는 YTN에 채널이 맞춰져 있었다. 첫 긴급자막이 나오기까지 시간은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다른 방송사들도 지금쯤 회사에 전화를 하고 있을텐데... 사실 시청자 입장에서야 어느 방송이 몇 초 먼저 자막을 넣든 별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방송기자들 입장에서는 그게 아닌 것이다.
드디어 긴급자막이 나오고 11시 뉴스를 진행하던 정찬배 앵커가 자막 내용만으로 1보를 전했다. 다시 임장혁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세 문장 짜리 단신을 불러준 뒤 전화 생방송을 준비했다. 긴급뉴스가 나간 것을 본 청와대측이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해체'나 '지시'같은 용어는 좀 안 써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해 왔지만 마음도 급한데 다른 말을 찾을 경황이 없었다. 단신 세 문장 뒤에 스스로도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두 문장을 대충 더 쓴 뒤 전화 리포트를 시작했다.
긴장된 목소리로 생방송을 마치고 전화를 끊자 전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비서실장실 보좌관들과 여직원들이 박수를 보내줬다. 청와대 출입 3년 동안 수많은 긴급뉴스들을 처리했지만 기자실이 아닌 남의 사무실에서 전화 생방송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대통령 퇴임을 50일 앞둔 말년에.
['대북봉쇄 반대'와 '동교동계 해체지시' 리포트]
북한 핵 문제가 앞으로의 50일간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조순용 청와대 정무수석은 "김대통령 퇴임 전 '동교동계 해체'처럼 정치 분야에서도 놀랄만한 뉴스가 몇 개 더 나올 것"이라고 예고까지 했다. 아무래도 남은 50일 대통령이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나 말년 병장처럼 늘어지기는 어려울 모양이다.
첫댓글 북한의 핵문제로 복잡할 때라서 동교동을 해체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난국을 잘 헤쳐나갈 것을 당부 했는데도 기득권에 눈이 먼 일부 의원들의 반발로 결국 당이 갈라졌지요..민주당의 분당을 노무현 대통령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남북관계를 미국이 정한 가이드 라인을 넘나들면서 앞서나가다 대통령께서 힘들어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임기 마지막 까지 민족을 위해 힘들게 고생하셨구나 라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숙여짐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