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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띠가 개띠에게
-46년 개띠 또래들아
개띠들아, 내년은 황금개띠란다. 황금처럼 금쪽처럼 개선장군처럼 뛰어 앞으로 잘 나아가거라. 모처럼 찾아온 황금개띠다. 그런데 요즘 왜 그리 뜸 하냐, 통 연락이 없으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무엇하고 지내느냐. 소식 좀 다오. 짙푸르던 얼굴 향기는 어디가고 머리통 가릴 머리카락 몇 올이 저렇게 바람에 휘날리니 동자승 같은 머리통이 다 드러나는구나. 돌돌말린 흰 눈썹 한 올 휘날리며 달그락대는 뼈마디로 휘 저어 보지만 엉성한 보행에 수심에 찬 얼굴이 애처롭구나. 지난번 강변역 공중화장실에서 소변을 오랫동안 보는 너를 보고 어쩌면 나와 그렇게 똑 같은지 하며 혀를 찼다. 닮을 건 안 닮고 하면서 말이다. 소변보겠다며 네 뒤에 쭉 줄 선 사람은 줄을 서도 한참 잘 못 섰다. 허허, 영문도 모른 채 다른 줄은 점점 줄어드는데 네가 있는 줄만 줄어들지 않아 무심한 얼굴을 한 그 모습들이 해탈한 모습이더라. 너는 뒤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더욱 소변보기 어려웠을 것이고. 이 모두가 늙음 때문이라니. 참 재미있고 얄궂다. 강력하던 소변줄기에 변기 깨진다고 엄살 같은 하얀 허풍 떨 때가 그립지?
윤기 나던 환한 얼굴은 어디가고 그 자리에 저승꽃은 왜 그리도 많이 피었느냐, 손등도 그렇고. 또 등은 왜 그렇게 굽었느냐, 나무는 굽으면 길맛가지라도 하지만 나이 들어 등 굽으면 아무 쓸모없더라. 그렇다고 명아주 지팡이 짚을 처지도 아니고. 제발 등 좀 펴려무나. 눈물 좀 흘리지 마라. 매운 것도 먹지 않았는데 왜 그리 눈물을 줄줄 흘리느냐. 어, 저것 봐라 콧물까지 흘리고 있네. 부모님이라도 돌아가신 줄 알겠다. 아마도 눈물길이 막혀 그런 모양이다. 안과에 빨리 달려가 눈물길을 넓혀라. 돈 걱정도 되겠지만 안보여 넘어지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게 된다. 늙더라도 기력 차려야 한다. 먹고 사느라 발버둥 친 지난 세월 생각하면 아깝지 않느냐, 무슨 일 있어도 아직 30년은 더 버텨야 한다. 오래 동안 건강하다가 이틀만 아프고 가자. 아니 이틀도 많다. 잠자다 가자. ‘할아버지 식사하세요.‘ 하면서 부르는 손자 목소리 못 듣고 가자. 그것이 젤 편하게 가는 방법이다. 모두들 그렇게 가고 싶어 기도들 해 대지만 공덕을 쌓기 전에는 쉽지 않다. 소강 민관식씨는 전날까지 친구와 테니스를 치고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으니 잠자다 살포시 떠난 게 아니더냐. 누구나 그렇게 되긴 어렵겠지만 누구나 그렇게 되지 말란 법도 없는 게 인생사다. 그리 될 라면 덕도 좀 쌓고 이웃과 나누며 선행도 좀 하면서 살아야 한다. 또 건강하면 쉽게 갈 수 있다. 그리고 늘 꼼지락거려라. 세계의 오래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소식하며 꼼지락대는 거더라. 소화도 잘 못시키는데 미련하게 많이 먹지 마라. 대신 자주 먹어야 한다.
뭘 그리 서둘러대느냐, 매사에 천천히 움직이는 게 답이다. 매사에 단순하게가 답이다. 오늘따라 용암처럼 끓어오르던 너의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그렇게 아등바등 대며 살려고 애썼는데 그게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알았을 땐 별 필요를 느끼지 않을 때이니 참 인생은 치밀하게 짜여진 허상이며 허구다. 나무에 조금 더 먼저 올라 열매를 따겠다며 자신의 어깨도 선뜻 내주고 남의 어깨도 슬쩍 올라타고 해보았지만 찻잔속의 태풍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알면 헛웃음 나온다. 그렇게 나무에 올라간 사람은 똑똑하고 약삭빠르다는 좋은 평을 들으며 기고만장하였으니 그렇지 못한 사람의 가슴속 피멍은 아는가 모르는가. 아, 이 불쌍한 중생들아. 그렇게 남의 가슴에 대못 질 하고 뭐가 그리 편하고 웃음 나오겠느냐. 그런 사람 중엔 일찍 저 세상으로 간 사람도 많다. 그 짓을 하려면 심장이 얼마나 불규칙적으로 빠르게 뛰었을까. 그런 재주 없는 나를 나는 진실로 사랑한다. 얼굴 두께 얇게 주신 부모님을 무지 사랑한다.
친구야 콧물 좀 흘리지 마라. 흐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친구가 가엽다. 그리도 총명하던 네가 어찌 그리 되었느냐. 말은 하다말고 왜 그리 중단하느냐. 그렇게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느냐. 설단(舌端) 현상이라고 하기엔 단어가 너무 고급스러워 참아야겠다. 그러니 또 어쩌겠니. 단어가 젊은 시절처럼 제때 생각난다면 우리는 죽지 않겠지. 안 나는 게 정상이지만 심하면 안 된다. 심하면 치매라고 사람들 손가락질한다. 그 대상은 되지 말아야지. 미국 대통령 한 사람도 그런 병으로 사망했다. 그리 안 되려면 공부가 최고라 하더라. tv에만 매달리지 말고 공부 좀 해 보자꾸나. 시간이 우리에겐 제한되어 있다. 지금부터는 시간을 알토란처럼 써야한다. 그러려면 tv보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영국시인 에드워드 하우스먼은 ’젊은이들이여 일어나게 여행 끝나면 잠 잘 시간 충분하다네.‘라고 읊었다. 여행 끝나면 계속 잠 잘 텐데 무슨 잠을 그렇게 많이 자느냐.
너 오른쪽 다리는 왜 절룩거리나. 무슨 일 있는 거냐. 여덟팔자 방향으로 벌어져 그 모습이 왜 그리 어정쩡하냐. 원당축구장에서 그렇게도 날쌘돌이처럼 날아다닌 네가 어쩌다 병아리다리처럼 되었느냐. 아주 조금씩이라도 가벼운 아령이라도 들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하면서 근육을 조금이라도 키워라. 특히 허벅지 근육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넓은 대지위에 전원주택을 지을 거 아니냐. 너는 전원주택을 아주 좋아하지 않았느냐. 몸의 전원주택지로는 허벅지만 곳이 없다. 단단하게 넓게 택지를 만들어라. 그것만이 사는 길이다. 네 바지는 아들로부터 얻어 입은 바지냐, 왜 그리도 헐렁 하느냐, 가는 막대기를 싼 보자기처럼 펄럭대는구나. 허리는 커지고 엉덩이는 사라졌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너의 그 빵빵하던 엉덩이의 소멸은 모든 슬픔가운데 으뜸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힙업 시키는 운동을 하여라. 스쿼트가 좋다. 스탠드 프레스도 좋고, 뭐든 꾸준히 해야 한다. 몇 번하고 팽개치고 반거충이처럼 행동하면 되는 게 없다. 내년은 황금개띠해라며 모두 들떠있다. 붕 뜰 때 문제가 생기기 쉽다. 천천히 그리고 단순하게가 늘그막 삶의 답이라는 걸 명심하여라.
-개띠와 또 다른 띠
삶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긴 여행입니다. 탄생은 우주와 맺은 일방적 계약입니다. 죽음은 그 일방의 계약을 파기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탄생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늙어 가는 모습은 죽어가는 모습을 미리 보는 훌륭한 증거입니다. 꽃은 원래 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도 그렇습니다. 꽃의 끝 또한 꽃 이전으로 돌아갑니다. 인간의 끝 또한 그렇습니다. 먼지와 바람으로 저 우주 공간으로 사라집니다. 잘났다고 으스대봐야 숨 쉬는 찰나의 순간일 뿐입니다. 삶의 본원적 성질을 조금이라도 성찰한다면 답은 자명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은 낮이 밤이 되듯 모든 생명체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만 죽음을 인지하는 인간에겐 조금 더 가혹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인생에서 가장 멋있는 최고 최대의 피날레입니다. 죽음은 순간에서 영원으로의 자리바꿈입니다. 무에서 유로 창조될 때 큰 기쁨이었듯 이제 유에서 무로 사라지는 죽음의 과정 또한 큰 축복인 것입니다. 늙어가는 과정을 잘 들여다보면 죽음 과정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밀알은 썩지 않으면 한 알로 존재합니다. 썩음으로써 마침내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 시킵니다. 삶은 아름답습니다. 그래야 죽음 또한 아름답습니다. 삶이 더럽고 추악하고 이지러지면 죽음 또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아름다운 죽음은 아름다운 삶 속에 그 답이 들어있습니다.
인생후반부가 건강하고 행복하려면 공부와 걷기로 요약 할 수 있습니다. 퇴직 후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생리적 시간을 빼더라도 약 8만 시간의 여유가 있습니다.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의 시간으로 나누어집니다. 공부와 걷기, 하나는 하드웨어로 건강을 다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프트웨어의 개발로 경제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비경제활동이라도 할 일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간 얽매였던 삶에서 벗어나 내가 진정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푹 빠져 여생을 보내는 것은 윤기 있고 보람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개의 축을 균형 있게 끌고 나가야 합니다. 잘 헤아려 실천에 옮기면 행복한 노후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습니다. 설령 많은 시간이 허락된다하더라도 시시하게 시간을 낭비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잠자는 시간과 TV보는 시간을 줄여야만 자신의 야망을 펼칠 수 있습니다. 이 두 개가 모든 사람의 발목을 잡습니다.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는 요즘 글을 쓰는 중간 중간에 틈을 내어 두 개의 노인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의 졸서 ‘미친노인이 되라’와 ‘노인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를 교과서로 삼아 인생후반부를 어떻게 살아야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되는지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제가 노인서 두 권을 쓴 동기와도 잘 맞아 신바람 납니다. 또 틈나는 대로 고향에 가서 농사도 짓고 초부(樵夫)의 생활도 하고 있습니다. 곧 1,000만(20.8%, 2026년) 노인이 되는 세상이 옵니다. 2035년엔 1,750만 명(35%)으로 정점을 찍습니다. 노인들이 아프지 않고 잘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이들 중 대다수 노인들이 모두 가난하고 병치레 합니다. OECD 34개국 중 빈곤과 자살률이 7년째 1위를 달리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지난 7월 6일, 독일 베를린에서 한. 중 첫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문 대통력의 자서전 ‘운명’의 첫머리에 나오는 글귀 ‘장강후랑추전랑일대신인환구인(長江後浪推前浪一代新人換舊人)’을 인용하면서 호감을 나타냈습니다. 이 글귀는 명대(明代)의 격언집인 ‘증광현문(增廣賢文)’에 나오는 명언입니다. ‘장강의 뒷물은 앞 물을 밀어내고 한시대의 새사람은 옛사람과 자리바꿈을 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이와 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삶과 죽음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동해바다의 파도도 예외 없이 이와 같습니다. 앞 파도는 모래톱에서 일생을 마감합니다. 저 멀리서 흰 말갈기를 휘날리며 칠지도(七枝刀)를 들고 달려오는 젊은 파도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영락없이 모래톱에서 스러집니다.
삶이란 죽음 바로 앞에 놓인 잠깐의 유희에 불과합니다. 탄생 이전에는 무의 상태입니다. 따라서 죽음은 탄생이전의 상태, 즉 무의 상태로의 회귀입니다. 하루를 살다 가는 하루살이나 80년을 살다가는 인간은 시간의 미미한 차이일 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죽음 후에는 미세한 먼지나 바람일 뿐입니다. 그러니 죽음은 이 생의 최고 최후의 피날레며 축제이고 무의 본향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인생 한세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생노각만사비우환여산일소공(人生老覺萬事非憂患如山一笑空)’입니다. ‘늙어 생각해보니 만사가 아무것도 아니며 걱정이 태산 같으나 한 번 소리쳐 웃으면 그만이다’고 생각하면 온 세상은 넓고 아름다우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인생후반부가 행복하고 윤택해지려면 지적 갈증에 늘 목말라하시기 바랍니다. 아는데 용감하시기 바랍니다.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동시대를 함께했던 세계의 모든 사물을 하나라도 가까이 친하게 지내십시오. 모두 5~60 년 전에 12년(또는 16년)공부한 것 가지고 평생 써 먹습니다. 참 간이 큰 편입니다. 그러니 고집만 생기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안주하기를 좋아합니다. 그것은 세상 돌아가는 트렌드를 읽지 못한 우매함으로 나타납니다. 발 빠른 대처를 할 수 없고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 됩니다. 서력원년을 중심으로 인류가 구축한 지식의 양은 배가 되는데 1750년이 걸렸습니다. 1900년대에는 4배가 되었습니다. 다시 이것은 1950년대에 이르러 8배가 되었고 지금은 2~3개월 사이에 지식과 정보의 양이 갑절로 늘어나는 시대입니다. 이것은 지식의 노후화 속도를 가속화시키며 이는 곧 현대사회 적응을 위하여 새 지식을 끊임없이 얻어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꼭 돈을 많이 들여야 삶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에게는 즐거움의 무한한 소재인 자연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습니다. 산과 바다가 있고 강이 있습니다. 달과 별과 구름이 있습니다. 나무와 꽃과 맑은 바람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볼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는 가슴만 활짝 열면 됩니다. 잎이 지고 나면 그 자리에 새 움이 돋는 것이 우주의 리듬이고 생명의 질서입니다. 한 가지에 매 달린 잎도 서로 가는 길이 다릅니다. 우리의 인생 또한 그렇습니다.
인생에는 생로병사의 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늙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의 삶의 과정입니다. 젊음과 마찬가지로 노년에도 그 나름의 분위기와 기쁨과 고뇌가 있습니다. 가을바람에 열매가 익어가듯, 노년에 이르러서는 그 인생이 성숙해져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 발생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의지적인 노력을 통해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노년에 이르면 인생의 전 과정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관조의 시야가 열립니다. 미국의 우주인 존 글렌은 77세의 나이에 두 번째 우주여행을 했고 부시 전 대통령은 80세 생일 기념으로 낙하산 점프를 하였습니다. 존 글렌은 36년 전에 우주에 다녀왔지만, 다시 한 번 그때를 회상하면서 늙음이 우주공간에서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우주비행에 나섰다고 합니다. 그 탐구 정신과 열정과 기상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늙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인간에는 무한한 능력이 있습니다. 다만 육신의 나이에 집착해서 우리가 그것을 묵혀 돌보지 않고 그냥 놔 둘 뿐입니다. 나이를 탓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둘 포기하기 시작한다면 삶 자체가 스스로 노쇠를 불러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노쇠의 종착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음입니다. 죽었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움직임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이 우주든 생물이든 또 자연현상이든 늘 살아 움직입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면, 팔다리 근육이 쇠퇴하고 무기력해집니다. 두뇌도 마찬가지입니다. 활용하지 않으면 마치 묵정밭처럼 잡초만 무성해집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힘을 얻는 이유입니다. 할 일이 없는 사람은 쉬 늙습니다. 늙을 겨를 이 없이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사람은 늙을 수 가 없습니다. 늙고 싶어도 늙지 않습니다. 평소에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에 대비해야합니다. 죽음을 배워둬야 합니다. 자연의 사계절과 마찬가지로 이 생로병사는 순환의 질서입니다. 이 순환의 질서를 두려워 하거나 거부하는 노년은 그 인생의 과정에서 품위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정신적인 재산이란 삶의 지혜를 말합니다. 삶의 지혜란 순환의 질서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여유와 아량인 것입니다. 죽음까지도 흔연히 맞아들일 수 있는 열린 가슴에 품위 있는 생이 있습니다.
노인은 올라가는 것 단하나 혈압만 빼고 모두 떨어지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소중하게 쌓이는 경륜과 지혜가 있어 살만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늙는다는 것은 작아진다는 것이고, 마른다는 것이고, 비운다는 것입니다. 늙으면 살던 집을 좁히고, 이고 지고 끼고 살던 것을 버리고, 일이나 사람을 줄이는 까닭입니다. 몸소, 간소, 검소, 감소, 축소, 청소하지 않으면 늙음은 시간의 소굴이 되기 십상입니다. 작아진 몸을 눕힐 주소하나, 낮아진 몸을 의지할 지팡이 하나, 굼뜬 몸을 일으켜 세워줄 마음 하나, 주먹만 한 위를 채워줄 언 밥 한 그릇으로 압축되는 삶이 늘그막 삶입니다. 사랑이든 욕망이든 일상이든 낮고 작고 가벼워져야 크고 넓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눈을 감을 때 홀가분하고 긴 여행길의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탄생은 우주와 맺은 일방적 계약입니다. 죽음은 그 일방의 계약을 파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맺어진 지구와의 인연은 우연이며 필연입니다. 나와 지구와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 세계의 사물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무한 자연과 사물들의 무한 배치는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아름답게 해 줍니다. 이 오묘한 자연의 섭리는 우리를 늘 감동케 합니다. 어찌 이런 기막힌 배치를 할 수 있을까요. 하늘과 땅의 배치, 공기의 무한 공급, 별의 배치. 초록의 배치, 바다의 배치, 그 곳에서 꼼지락대는 모든 생물들의 배치는 가히 신의 손이 아니면 불가능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완벽한 배치 속에 맨 몸뚱어리로 와 그냥 얹혀살며 맘껏 소유하고 뜀박질하고 놀고 하였습니다. 때문에 돌아갈 때는 완벽하게 우주의 주인인 창조주에게 원형그대로 돌려주고 탄생 이전 상태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모든 전 우주적인 것들에 늘 고마운 마음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스티브잡스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탄생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야금야금 시간을 까먹습니다. 우리에게 부여된 나머지 시간을 어찌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뚜렷하게 보일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다가오는 황금개띠 해에 황금처럼 금쪽처럼 개선장군처럼 뛰어 앞으로 잘 나아가시기 바라며 건강의 복을 담뿍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프면 안 됩니다. 아프면 모두의 고통입니다. 이 글로 올 한해 마무리 인사와 새해인사에 대신합니다.
2017.12.29
돌솔 이 응 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