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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통 배(韓船)
◆ 한선의 기본 구조
한국의 전통 배(韓船)는 먼저 두터운 배밑판(저판:低板)을 평탄하고 깔고, 그 옆으로 삼판(외판)을 붙여 올리고, 삼판이 안쪽으로 찌그러들지 않도록 삼판 사이에 가로로 게롱(가룡목:加龍木)을 걸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 위에 다시 멍에(가목:駕木)를 올려, 갑판(포판)을 지탱하는 대들보의 구실을 하게한다. 아래 그림은 20세기 초 일본 학자에 의해 조사된 전라남도 진도 지역 어선의 그림이다. 이 어선 그림은 한국 전통 선박의 기본 구조를 잘 보여주는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판옥선, 거북선, 사신선 등 거의 대부분의 한국 전통 선박들은 이 한선 기본형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아래 그림에서 패란 위에 멍에(가목)를 걸치고 갑판을 2층으로 만든 것이 바로 판옥선이고, 그 위에 지붕을 씌운 것이 바로 거북선이다.
◆ 한선의 배 모양(船型)에 있어서의 특징
판옥선과 거북선을 포함한 한국의 전통 배(韓船)들은 대부분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구조적인 면에서 볼때 한선은 원시적인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원시적인 특성이 반드시 한선의 약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국 해안의 특수한 지리적 조건하에서는 한선의 원시적 특성이 유리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배 길이를 폭으로 나눈 값을 장폭비(長幅比: L/B)라고 한다. 배 길이가 길고, 배 폭이 좁을수록 장폭비가 커진다. 반대로 배가 짧고, 넓적할수록 장폭비는 작아진다. 일반적으로 조선 기술이 진보하면서, 장폭비가 커지는게 일반적인 경향이다. 다시말해 고대 선박일수록 장폭비가 작다. 프리깃급 이상의 현대 군함의 경우 장폭비는 10 내외이다. 예를들어 배수량 1200톤급 정도의 현대적인 프리깃함이라면 길이 100m에 폭이 10m 정도이다. 이에 반해 한국 전통 배의 장폭비는 2.64~3.39 정도이다. 장폭비가 3 내외라는 것은 대단히 작은 수치이며, 배 길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폭이 넓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큰 장폭비는 평면 형태의 이물(船首) 구조,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 선형과 함께 전체적으로 배의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선(韓船)들은 기본적으로 배의 이물(船首)과 고물(船尾)이 넓고 평평하다. ①은 한국 전통 배의 상면도인데, 세끼부네가 출현하기 전의 일본 전통 배들도 이런 형태였다. ②은 고대~중세의 유럽과 중동 지역 갤리선들의 일반적인 모양이다. ③은 근대 이후 범선에서 부터 현대 군함에 이르기까지의 전 세계의 표준적인 배 모양이며, 일본의 전통 배인 세끼부네도 이런 형태이다. ①처럼 이물이 평면(Blunted Stem)인 한국 전통 선박은 파도를 헤쳐나가는 능력이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서양의 전통 선박이나 현대 선박 보다는 다소 원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전통 선박 처럼 이물이 평평할 경우 제작이 좀 더 간편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배 앞부분을 더 튼튼하게 만들수도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한선(韓船)은 배 밑바닥이 평평한 평저선(平底船)이다. 현대 군함을 포함한 대부분의 배들은 바닥이 뾰족한 첨저선이다. 서양의 전통선박은 거의 대부분 첨저선이며, 중국의 전통선박 중에도 첨저선이 적지 않다. 일본의 전통선박인 세끼부네는 첨저선에 가까우나, 전형적인 첨저선은 아니며, 평저선에서 첨저선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상의 절충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전통 선박은 거의 예외없이 평저선이다. 평저선은 첨저선에 비하면 원시적인 구조의 배라고 할 수 있다. 평저선은 선체저항이 커서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동일한 배수량일 경우 평저선은 첨저선에 비하여 흘수가 작아진다. 흘수가 작아지면 배가 직진할 수 있는 능력(Dirctional Stability)이 떨어진다. 이런 단점들 때문에 평저선은 연안이나 내륙 하천에서 주로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원시적인 평저선 형태를 고집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한국의 대표적 전통 선박 전문가인 김재근 교수는 그 그 이유로 세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바로 한국 해안의 지리적 조건 때문이다. 한국의 남~서해안은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지역이다. 첨저선 형태의 경우 배 밑바닥이 뾰족하므로 썰물 때 갯벌 위에 좌초할 위험이 크다. 이에 반해 평저선 형태의 경우 썰물 때 갯벌에 안전하게 내려 앉을 수 있다. 둘째로, 바람이나 노에 의존하는 범노선(帆櫓船)의 경우, 대양이 아닌 연안지역에서는 대부분 마찰저항(주로 배에서 물에 잠기는 부분이 물과 마찰하면서 생기는 속력저하)이 문제될뿐, 조파저항(주로 배 앞부분의 파도에 의한 속력저하)은 생각만큼 그렇게 영향이 크지 않다고 한다. 마찰저항에 의한 속력손실은 감안하더라도 조파저항에 의한 속력손실은 그렇게 크지 않으므로, 전체적인 속도에선 그렇게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세째로, 흘수가 작은 배는 선회성능이 좋아서 좌우 방향 전환을 쉽게 할 수 있으며, 선회반경도 작다. 결정적으로 한국 해안처럼 좁고 섬이 많은 연안 지역 해전에서는 선회성능은 속도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한선의 목재 결합 방식
우리나라 전통 목조건축에서는 철제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건물은 짓는 경우가 있다. 한국의 전통 배도 마찬가지이다.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몇몇 예외가 있으나, 대다수의 한국 전통 선박은 철제 못을 사용하지 않고 목제 못만 사용하여 배를 건조한다. 반대로 일본의 전통 배는 철제 못을 사용하여 배를 건조한다.
철제 못과 목제 못은 그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철제 못을 사용하면, 배를 처음 건조했을때 강도가 강하다. 그러나, 철제 못은 바다 위에서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부식이 일어나서 강도가 조금씩 떨어진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철제 못과 나무 사이에 틈이 벌어져서 나무 사이의 결합 강도가 떨어지게 된다. 목제 못을 사용할 경우, 처음 배를 건조했을 때는 철제 못보다 강도가 약하지만, 철제 못에 비해서 부식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철제 못과는 달리 시간이 경과해도 나무 사이에 틈이 벌어지지 않는다.
서양 목재 배의 외판 결합 방식에는 카벨 이음방식과 클링커 이음방식이 있다. 한국 전통 배의 삼판(외판) 결합 방식은 그 중간방식으로 턱붙이 클링커 이음방식(Rabetted Clinker Joint)이다. 위 한선 기본 구조도에서 볼 수 있듯이 아래 위 삼판을 부분적으로 겹치면서 그 사이로 못을 넣어 고정시키는 것이 턱붙이 클링커 이음방식이다. 전남 완도 앞바다에서 인양된 고려시대(대략 11세기)의 완도선(莞島船)의 외판 결합방식도 턱붙이 클링커 이음방식이다. 중국 전통 배의 경우도 턱붙이 클링커 이음방식을 사용한 예가 적지 않다.
◆ 한선에 사용되는 목재
목조문화재의 재질 분석 전문가인 박상진 교수에 따르면, 한국 전통 선박에 사용되는 목재는 다음과 같다.
한국 전통 배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목재는 소나무다. 소나무를 비롯한 침엽수는 비중은 약간 낮으나 가볍고 가공하기 쉬우며 상당한 내수성(耐水性)을 갖는다. 이 때문에 배의 외부를 꾸미는데 적합한 재질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 전통 선박의 배밑판(저판)과 삼판(외판)은 거의 대부분 소나무로 되어 있다. 특히 배밑판(저판)의 경우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송진이 많은 소나무를 주로 사용한다.
반대로 참나무류를 비롯한 활엽수는 비중이 높고 가공하기 어려우나 강도가 높다. 이 때문에 게롱(加龍木)이나 멍에(駕木)처럼 배의 구조를 지탱하기 위해 힘을 받는 부분에는 상수리나무나 졸참나무 같은 참나무 계통의 나무를 주로 사용했다. 나무 못으로는 주로 단단하고 잘 썩지 않는 녹나무, 산뽕나무, 느티나무를 주로 사용했다. 즉, 기본적으로 한국 전통선박의 주된 재목은 소나무이며, 강도보강 재료로 참나무 계통(상수리나무, 졸참나무)의 나무를 사용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전형적인 곧은 나무가 아니고 옹이가 있거나 구부러진 나무는 압축응력재 혹은 인장응력재라는 특별한 조직을 만든다. 이런 나무는 부러지기 쉬운 결점을 가지고 있으며, 갑작스러게 부러지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소나무는 평균적으로 옹이가 많고 굽어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소나무를 사용하여 배를 만들 경우 얇게 가공하는 것은 위험하며, 뚜껍게 가공하여 강도를 보완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한국 전통 배들은 매우 두꺼운 판자를 사용한다.
일본 전통 선박은 주로 삼나무(衫木)이나 전나무(檜木)로 만들어져 있다. 삼나무나 전나무는 소나무에 비하여 더욱 가볍고 가공하기 쉬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삼나무나 전나무는 판자를 얇고 정밀하게 가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일본 전통 배는 이런 삼나무나 전나무의 특성을 살려서 배에 사용되는 판자가 매우 얇고 정밀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강도면에서 삼나무나 전나무는 소나무보다 약하다는 약점이 있다. 특히 한국에서 주로 선박 재료로 사용한 소나무 종류인 적송(赤松)은 일본의 선박재료인 삼나무나 전나무에 비해 훨씬 강한 재질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일본 전통 선박은 약한 재료를 얇게 가공한 셈이되는 반면, 한국 전통 선박은 보다 강한 재료를 두껍게 가공한 셈이 된다.
배의 전체적인 튼튼함은 삼판(외판)의 강도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게롱(加龍木) 같은 강도보강 구조의 강도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고해도 전투용 선박의 경우 삼판이 약하다는 것은 그만큼 각종 화약무기의 공격이나 충돌시에 약점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선박용 목재의 특성 차이는 임진왜란 당시 해전의 승패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 한국식 노
한국식 노(櫓)는 한국 전통 배의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이다. 흔히 한국식 노라고 하지만, 실제로 한국만의 특유한 노 젓는 방식은 아니며, 중국과 일본에도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중국 학계에서는 이러한 형식의 노가 한(漢)나라 시대에 처음 개발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양식 노(Oar)가 배의 진향방향과 평행하게 움직인다면, 한국식 노는 배의 진향방향과 90도 각도로 움직인다. 비유하자면 한국식 노의 운동은 물고기 꼬리 지느러미의 움직임과 유사하다.
◆ 한선의 돛
한선의 돛은 대체로 직사각형 모양이며, 돛의 아래 위쪽에 상활대와 질활대를 달고 그 사이에 돛감을 매달았다. 돛감 중간에는 2~3척 간격으로 7~30개의 활대를 궤게 된다. 활대의 끝에는 아디줄(도부줄)을 매단다. 아디줄을 모아 연결한 아디채(도부채)를 가지고 돛을 조작하게 된다.
전투용 배나 국가 소유의 배들은 돛감(범포:帆布)으로 삼베나 면포를 사용했다. 민간용 배들은 돛감으로 부들로 짠 자리를 사용했다. '부들로 짠 자리'가 무엇인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으나, 여름에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돛자리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의 돛은 전체적인 형태상으로 러그 세일형(Lug Sail)이며, 중국식 돛이 약간 간략화된 형태라고 할수 있다.
판옥선이나 거북선 같은 큰 배들은 거의 대부분 돛이 2개인 쌍범(雙帆)이다. 쌍범일 경우 앞부분의 돛대를 '이물 돛대'라고 부르고, 뒤쪽의 돛대를 '한판 돛대'라고 부른다. 두 돛대의 크기는 거의 비슷하지만, 대체로 뒤쪽에 있는 한판 돛대가 조금 더 큰 기본 돛대가 된다.
대부분의 한국 전통 배는 돛대를 눕히는 것이 가능하다. 돛대로 사용하는 나무는 강도가 우수한 참나무 계통의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조록나무를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큰 배에는 다오목(多吾木)이라는 특수한 참나무를 쓰기도 했다.
중국이나 한국의 러그 세일형 돛은 역풍이 불때도 항행이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다. 이에 반해 일본 전통 배의 횡범(橫帆)은 역풍이 불때는 항해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일본의 전통 배들은 대부분 돛이 하나인 단범(單帆)이다. (단, 아다케의 경우 돛이 2개인 경우가 많다) 이런 점들은 당시 일본 배의 중요한 약점 중에 하나이다.
◆ 한선의 키
한선에서 사용되는 키(치,타:舵)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첫번재 방식은 이물(船尾) 판재에 키 구멍을 뚫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한국, 중국, 일본의 전통 배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형식이다. 판옥선이나 거북선 같은 조선 수군의 싸움배들도 보통 이런 방식을 쓴다. 이 방식은 위에서만 고정이 되므로, 키의 높이를 상하로 쉽게 조절할 수 있다. 두번째 방식은 이물 판재에 평행하게 타축(舵軸)을 붙이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다른 나라의 전통 배에선 거의 발견되지 않는 방식으로 한국 전통 배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형식이다. 이 방식은 배 밑바닥 보다 더 깊이 키가 깊숙하게 잠기게 되므로, 키의 효과가 우수하다.
아래 왼쪽 사진은 서울 이촌동의 한강에 정박중인 실물 크기 복원 커북선의 키 손잡이다. 근대 이후의 각종 선박은 원형의 조종타를 가지고 있지만, 한선의 키 손잡이는 단순히 좌우로 꺽는 방식이다. 그림과 사진 속의 키 손잡이는 모두 앞을 향하고 있지만, 뒤쪽 방향으로 키 손잡이가 부착된 경우도 있다. 물론, 뒤쪽 방향으로 키 손잡이가 달린 경우라도 작동방식은 같다. 아래 오른쪽 사진은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 중인, 조선시대 일본을 왕래하던 사신선의 복원 모형이다. 이 사진 속의 키가 바로 전형적인 동양식 현수타이다.
◆ 한선의 닻
우리나라 전통 배의 닻은 나무로 된 큰 닻이 대부분이다. 한국 전통 배의 주된 연안 항로인 서해안은 넓은 갯벌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갯벌에서는 목제 초대형 닻이라야, 갯벌 속에서 닻이 잘 고정된다고 한다. 아래 사진은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의 한국식 초대형 목제 닻 이다. 이 닻은 우리나라 전통 어선 중에 하나인 '멍텅구리 배'에서 사용하는 닻이다. 배에 따라 닻의 크기는 조금식 다르지만, 우리나라 전통 배의 닻은 대체로 아래 사진과 비슷한 모양이다. 아래 사진의 닻은 닻장도 나무로 만들었지만, 닻장대신 돌로 만든 정석(碇石)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닻을 내리거나 감아올릴 때는 닻줄 물레를 사용한다. 일부 연구가들은 이충무공전서에 그려진 전라좌수영 거북선 그림의 닻이 너무 커서 실제로는 좀 더 작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한국식 닻을 잘 모르고하는 이야기이다.
◆ 판옥선이란 무엇인가?
조선 전기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에는 군함을 대맹선,중맹선,소맹선으로 구별하고 있다. 이에 반해 조선 후기의 법전인 대전회통에는 전선, 방선, 병선으로 군함 종류를 구별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수군의 주력 군함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판옥선(板屋船)이다. 임진왜란 당시의 판옥선은 조선 전기의 대맹선과는 전혀 다른 배이며, 대략 조선 후기의 전선(戰船)에 해당한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판옥선, 판옥전선, 전선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웠다.
다른 전통 한국 선박과 구별되는 판옥선만의 특징은 무엇일까? 판옥선의 가장 큰 특징은 판옥선이 조선 전기의 가장 큰 군함인 대맹선보다도 더 큰배라는 점과, 판옥선이 2층 갑판을 가진 배라는 점이다. 갑판이 2층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요원인 격군(格軍)은 갑판(1층) 위에서 안전하게 노를 저을 수 있으며, 전투요원들은 상갑판(2층) 위에서 적을 내려다보면서 유리하게 전투를 수행할 수 있다. 판옥선도 거북선처럼 갑판 아래에도 선실이 존재했다면 전체적으로는 3층이 되는 셈이다. 이것이 판옥선의 가장 큰 특징이다.
아래 그림은 정조 대에 작성된 각선도본(各船圖本)의 판옥선으로, 판옥선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자료중에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판옥선이란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가? 판옥(板屋)은 '판자로 만든 집'이란 뜻이다. 판옥선 이전의 주력 군함인 대맹선은 갑판 위가 평평한 평선형(平船型)인데 비하여, 판옥선은 갑판 위에 다시 갑판(상갑판)이 추가되어 있고, 장대(將臺)도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판옥선'으로 부르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종 39년에 판중추부사 송흠은 당시 전라도 지역에 침입하는 중국 해적선이 "백여명이 탑승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크고, 판자를 사용하여 배 위에 집을 만들었으며(以板爲屋), 나무 판자로써 방패를 세웠다(用板爲障)"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보이는 以板爲屋이라는 문구는 판옥선이라는 이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의 역할은 상당 부분 과장되어 왔다. 거북선이 훌륭한 군함인 것은 틀림 없으나, 거북선이 조선 수군의 주력 군함은 아니었다. 오히려 판옥선이 실제 전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조선 수군의 주력 군함이었다. 판옥선과 각종 화약무기야말로 이순신의 뛰어난 군사적 자질을 물질적으로 뒷받침한 핵심적인 토대였다.
◆ 판옥선의 개발과정-대함주의자들의 승리
판옥선의 개발과정은 아직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대략 중종 말~명종 초에 걸쳐서 판옥선이 개발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명종 10년(1555년) 9월 16일 한강에서 새로 만든 전선(戰船)을 시험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 기록에 보이는 "새로 만든 전선"이 판옥선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뒤이어 명종 12년의 기록에 판옥선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은 '호남동순록'의 기록을 근거로, 이때 판옥선을 개발한 것이 다름아닌 정걸(丁傑) 장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야사가 아닌 믿을 만한 기록에서 정걸이 판옥선을 개발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정걸 장군은 1555년에 전라도 도순변사의 군관으로 활약했고, 1556년에는 전라도 남도포 만호로 활약하고 있었으므로, 이 당시 판옥선 개발에 참여했을 가능성은 있다.
명종대에 아무런 전후관계도 없이 갑자기 판옥선이 출현한 것은 아니다. 조선 전기 성종~연산군~중종대에 걸쳐 어떤 배가 가장 해전에 효율적인가에 대해 일종의 전략전술적 논쟁이 존재해왔다. 척수가 적더라도 큰 배를 중시하는 대함주의(大艦主義)와, 작은 배를 사용하더라도 많은 수의 배를 보유해야 한다는 소함주의(小艦主義)가 대립했던 것이다. 특히 삼포왜란과 사량왜변을 경험한 중종대에는 이와 관련된 논쟁이 그치지 않았다.
◆ 판옥선의 구조
일반적인 전통 한선을 크게 만들어, 갑판을 2층으로 설치한 것이 바로 판옥선이다. 따라서, 2층 갑판구조를 제외한 기본적인 구조는 다른 한선과 같다. 일반적으로 1층 갑판에 노를 젓는 병사(격군,노군)가 탑승하고 2층 갑판에 전투요원(사부, 포수, 화포장)이 탑승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각종 판옥선 그림 중에 2층 갑판에 대포를 탑재하고 있는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다. 필자도 사부를 비롯한 전투요원 대다수는 2층 갑판에 탑승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1층 갑판에도 포수를 비롯한 적지 않은 전투요원이 탑승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충무공전서에 따르면 거북선의 경우 1층 갑판 아래에 다시 24개의 선실이 있다고 한다. 판옥선의 경우 거북선처럼 1층 갑판 아래에 선실을 두었는지, 아니면 1층 갑판에 선실을 두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현호가 작다는 점도 판옥선의 또다른 특징이다. 현호(舷弧:Sheer)란 쉽게 말해 선체 측면의 휘어진 정도를 의미한다. 판옥선의 경우 선수현호가 거의 없으며, 선미현호도 아주 작다. 판옥선의 경우 현대 선박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전통 한국 배와 비교해도 현호가 작은 편이다. 거북선의 경우도 판옥선처럼 선수현호가 작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약간의 현호를 주는 편이 전체적인 배의 성능을 좋게함에도, 판옥선에 현호를 거의 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물(선수)에 화포를 쉽게 설치하기 위해 선수현호를 작게 만들었다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판옥선과 거북선의 이물비우(船首材)는 세로로 결합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다른 한국 전통 배의 이물비우는 가로로 결합되어 있지만, 판옥선의 이물비우는 강도를 강화하기 위해 세로로 결합되어 있다고 한다. 각선도본의 판옥선 그림을 보면 배 이물의 판자가 세로로 결합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위 판옥선 그림을 보면 판옥선 이물비우(船首材)에는 귀신그림(鬼面)이 그려져 있다. 이것이 단순한 그림인지, 아니면 적선을 파괴하기 위해 배로 충돌할때 사용하는 충각용 돌기(Ram)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많은 학자들이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으나, 대부분 단순한 추정에 불과한 것이다. 판옥선의 갑판 가운데에는 장대(將臺)가 위치하고 있다. 장대는 현대 군함의 함교와 유사하게 갑판 위에 높게 만들어진 구조물로 지휘관이 높은 곳에서 지휘할 수도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 판옥선 그림에 그려진 장대의 위치가 그림마다 조금식 차이가 있어서, 장대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각선도본 속의 판옥선은 두 돛대가 모두 눕혀진 상태이다.
다른 한선과 마찬가지로 판옥선의 돛대도 눕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판옥선에는 돛대 외에 신호용 깃발을 올리는 별도의 깃대(승기죽:昇旗竹)도 세워져 있다. 각선도본의 판옥선 그림에 그려진 키는 마치 허공에 매달린 것처럼 그려놓았으나, 이는 키의 구조를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그린 것이고, 실제로는 동양식 현수타로 생각되며, 아래 복원 모형에도 동양식 현수타로 만들어져 있다. 각선도본 상의 판옥선에는 상층갑판에 키를 조작하는 키 손잡이(舵柄)가 보이지 않는다. 키 손잡이가 하층갑판(1층)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다른 판옥선 그림에는 상층갑판(2층)에 키 손잡이가 설치된 경우도 있다. 각선도본의 판옥선 그림에는 닻을 조작하는 닻줄물레도 보이지 않는다. 닻줄물레가 없었다고 생각할 수 없으므로, 닻줄물레가 단순히 생략된 것이거나, 하층갑판(1층)에 닻줄물레가 존재할 것이다. 상층갑판과 하층갑판을 오르내리는 출입구도 분명하지 않다. 각선도본 상에는 외관상 어떤 출입구도 보이지 않는다. 아래 판옥선 복원 모형에는 장대 1층에 출입구를 만들어 놓았다.
아래 사진은 학계의 기존 연구성과를 토대로 실제로 복원한 판옥선의 모형으로, 국립 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 중이다.
◆ 판옥선의 크기와 승선인원
한국 전통 배의 경우 배 밑판의 길이를 기준으로 삼을뿐, 다른 규격은 배마다 약간식의 편차가 있다. 특히, 판옥선의 각 부분 치수가 누락없이 완벽하게 기록된 사료는 없다. 임진왜란 당시의 판옥선 크기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없지만, 임진왜란 종전 직후인 광해군대 (1608~1623)의 판옥선 배밑판 크기 기록은 남아있다.
이때의 크기는 배밑판(저판,본판)의 길이①를 기준으로 소선이 47.5~50자(尺), 중선이 55자, 대선이 70자이다. 배의 구조상 배밑판 길이는 배 전체 길이보다는 짧다. 이러한 구조를 고려한다면 배밑판 70자의 대선을 기준으로 선체길이②는 대략 80~90자, 전체 배 길이③는 대략 90~110자(약 28~34m) 정도 되었을 것이다. 물론, 파(把) 단위법을 영조척으로 환산하고 이를 다시 미터법으로 환산해서, 현호는 추정수치를 대입했으므로, 28~34m라는 길이는 단순한 참고 수치에 불과한 것이다.
판옥선의 일반적인 구조상 저판 길이 70자 정도라면 배밑판의 넓이⑤는 가장 폭이 넓은 곳을 기준으로 15자(약 4.6m)이며, 선체의 넓이⑥는 26~30자(8~9.2m)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1~2층 갑판의 넓이④는 선체 폭에서 노를 꽂을수 있는 여유분을 추가하여 대략 36자(약 11m) 정도가 된다.
각선도본을 보면 최대급 판옥선인 통영상선의 경우 선체 높이⑦는 8자(약 2.5m)이며, 하층신방패고(下層信防牌高)는 5자(尺)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하층신방패고'가 정확하게 어디에서 어디까지의 높이를 말하는 것인지는 애매하다. 일부 학자들은 2층 방패판의 높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단어 자체의 의미는 1층 갑판(하층 갑판 높이)⑧의 높이를 의미하는 것 같다. 조선시대 영조척 1척을 미터법으로 환산하는 기준은 영조척 1자(尺)=30.7cm / 31.195cm / 31.21cm / 31.22cm / 31.24cm / 31.25cm / 31.55cm 등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가장 길게 계산해도 높이는 157.75cm 가 된다. 구한말을 기준으로 조선인 남성의 평균 신장은 155~162cm 정도이다. 만일, 최대급 판옥선인 통영상선의 1층 갑판 높이를 대략 153.5~157.75cm 내외로 가정한다면, 판옥선이나 2층 구조 거북선의 경우 1층 탑승자(주로 격군,노군)의 키를 제한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현재로서는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우나, 앞으로 좀 더 정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이충무공전서에 규정된 통제영 거북선의 경우도 패란과 현란 사이의 높이가 4자3치(약 1.31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높이라면 직립자세로 서있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높이이다. 이 경우에는 현란 자체의 높이가 있으므로 현란의 정확한 높이에 따라 하층(1층) 갑판의 정확한 높이⑧가 결정될 수 있다. 거북선 지붕(개판)의 구조와 기울기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사람들을 무리없이 탑승시키기 위해서는 1층 갑판의 높이는 6자(약 1.84m)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현란(신방) 자체의 높이가 1~1.5자 (약 0.3~0.5m) 정도는 되어야 한다.
임진왜란 종전 후의 판옥선 크기와 승선인원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남아있다. 예를들어 숙종(1674~1720) 시대의 판옥선과 거북선 승선 인원은 다음과 같다. 표에서 통영상선은 수군 통제사 기함이며, 수사 전선은 각 수사의 기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