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원숭(安元崇)의 장인 원선지(元善之, 1288~1330)의 묘지명(墓誌銘)은 최해(崔瀣, 1287~1340)의 문집 『졸고천백(拙藁千百)』에 실린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묘지명 실물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 보다 완전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원선지(元善之, 1288~1330) 묘지명(墓誌銘)에 둘째 사위로 나오는 제위보 판관(濟危寶 判官) 안정(安靖)이 안원숭(安元崇)이다. 안원숭(安元崇)은 장성하여 결혼한 후인 1330년에도 초명 안정(安靖)을 그대로 쓰고 있어 원(元) 자가 형제간의 이름 항렬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가 나중에 원(元) 자가 들어가는 이름으로 개명하지 않았더라면 후대에 신죽산 안원형(安元衡)이나 탐진 안원린(安元璘)과 형제라는 주장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안원형의 초명은 안원룡(安元龍), 안원린의 초명은 안원륜(安元崙)이라고 주장하는데, 왜 이들의 형이라는 안원숭(安元崇)의 초명은 원(元) 자가 없는 안정(安靖)인가?
대원(大元) 고(故) 정동도진무(征東都鎭撫) 고려(高麗) 광정대부(匡靖大夫) 검교첨의평리(檢校僉議評理) 원공(元公) 묘지명(墓誌銘) : 최해(崔瀣), 『졸고천백(拙藁千百)』 제1권
위의 문집에는 묘지명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명(銘)이 누락되어 있는데, 아래 묘지명 실물에는 명(銘)까지 모두 나와 있다.
원선지(元善之, 1288~1330) 묘지명(墓誌銘) : 국립중앙박물관의 묘지명 실물 이미지
묘지명의 글씨를 쓴 사람은 전 통직랑 도관직랑(前 通直郞 都官直郞) 송한(宋翰)이고, 제작연대는 지순(至順) 원년 경오(庚午, 1330년) 9월이다.
묘지명 실물 판독문 및 번역문
"次適濟危寶判官安靖系曰 ..." 부분을 "차녀는 제위보판관(濟危寶判官) 안정계(安靖系)와 혼인하였다. 〈명(銘)하여〉 이른다...."로 번역했으나, 이는 끊어 읽기를 잘못한 것이다. "次適濟危寶判官安靖 [차녀는 제위보판관(濟危寶判官) 안정(安靖)과 혼인하였다.]"로 끊고, "系曰... [이어서 이른다....]"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 둘째 사위는 安靖系가 아닌 安靖이다.
〈명(銘)〉은 보통 "銘曰... [〈명(銘)하여〉 이른다....]" 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系曰...[이어서 이른다...]"로 표현이 약간 바뀌었다,
최해의 문집에는 이 다음에 나와야 할 〈명(銘)〉 부분이 누락되어 있으나, 실물 묘지명에는 온전하게 나온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해서 볼 수 있고, 글자들이 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