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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2000-576, 2016. 9. 27. 화>
< 라면을 끓이며 >
김훈 지음
문학동네
김 훈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2학년 중퇴,
영문과 편입학 중퇴
단편
* 『화장』(2004) *『언니의 폐경』 (2005)
단편집
『강산무진』 (2006)
장편*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1994)* 『칼의 노래』 (2001)* 『현의 노래』 (2004)* 『개』 (2005)* 『남한산성』 (2007)* 『공무도하』 (2009)* 『내 젊은 날의 숲』 (2010)* 『흑산』 (2011)
에세이
* 『선택과 옹호』(1991)* 『풍경과 상처』 (1994)* 『내가 읽은 책과 세상』 (1996)* 『자전거 여행』 (2000)* 『원형의 섬 진도』(2001)*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2002)*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2002)* 『밥벌이의 지겨움』 (2003)* 『자전거 여행2』 (2004)* 『바다의 기별』 (2008)* 『라면을 끓이며』 (2015)
출판사 서평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悲哀”
김훈 산문의 정수
소설가 김훈의 산문이 출간되었다.
오래전에 절판되어 애서가들로 하여금 헌책방을 찾아다니게 한 김훈의 전설적인 산문『밥벌이의 지겨움』『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바다의 기별』에서 시대를 초월해 기억될 만한 산문들을 가려 뽑고, 이후 새로 쓴 산문 원고 400매가량을 합쳐 엮었다.
이 책에는 그의 가족 이야기부터 기자 시절 그가 거리에서 써내려간 글들, 최근에 도시를 견디지 못하고 동해와 서해의 섬에
각각 들어가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며 써내려간 글에 이르기까지, 김훈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글을 쓰고, 자가용에 몸을 싣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두 발로 바퀴를 굴려 세상을 나아가는 그가 기록한 세상과 내면의 지난한 풍경들. ‘밥벌이의 지겨움’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 길이 회자되는
김훈의 명문장들을 읽는 기쁨과 함께,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시대에 진영 논리에 휩싸여 악다구니를 벌이는 권력가들에게 그가 ‘슬프고 기막혀서’ 써내려간
글, 여전히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김훈 산문의 정수’가 이 책에 있다.
출판사 서평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소외된
노동으로 밥을 먹었다.”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책의 표제글이 된 「라면을 끓이며」는 매 해 36억 개, 1인당 74.1개씩의 라면을 먹으며 살아가는 평균 한국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자,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식사와 사교를 겸한 번듯한 자리에서
끼니를 고상하게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리에서 밥벌이를 견디다가 허름한 분식집에서 홀로 창밖을 내다보면서, 혹은 모르는 사람과 마주앉아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다. ‘목구멍을 쥐어뜯는’ 매운 국물들을 빠르게
들이켜고는 각자의 노동과 고난 속으로 다시 걸어들어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더 많다.
“있건 없건 간에 누구나 먹어야 하고, 한 번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때가 되면 또다시, 기어이 먹어야 하므로”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이들에게 라면은 뻔하고도 애잔한 음식이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라면을 먹어왔다.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다. 그 맛들은 내 정...(하략)
-
“나는 손의 힘으로 살아야 할 터인데,
손은 자꾸만 남의 손을 잡으려 한다.”
-
*
… 중략 …
내가 좋아하는 김밥은 그 속에 단무지와 시금치 또는 우엉 한 줄만 넣은 것이다.
절인 무와 실파, 깻잎, 고무마순처럼 야채만으로 속을 넣은 김밥도 좋다.
이런 김밥은 씹으면 청량감이 느껴진다.
또 일본식으로 초에 절인 매실과 깻잎만으로 만든 김밥도 깔끔하고 단정하다.
김밥 안에 하나의 주된 기둥을 이루는 맛이 있어야 하고
그 주변을 장식하는 부수적인 맛이 있어야 하는데,
중심부가 약하거나 중심부와 주변부가 뒤섞인 것은 좋은 김밥이 아니다.
… 중략 …
1부 밥 / 라면을 끓이며. 14p
*
… 중략 …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 현상이다.
… 중략 …
노랗고 자잘한 기름기로 덮인 국물에 곱슬곱슬한 면발이 담겨 있었는데,
그 가운데 깨어넣은 생계란이 또 예사아닌 영양과 품위를 보증하였다. (…)
철은 갑작스레 살아나는 식욕으로, 그러나 아주 공손하게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의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난 음식을 먹고 있는 듯했다.
-이문열, <변경>7권, 문학과지성사, 1998, 177쪽
등장인물이 생애의 첫 라면을 ‘공손하게'먹었다는 표현은 의미심장하다.
그때 라면 맛은 그후에 닥쳐올 산업화시대 전체 삶의 맛이었다.
사람들이 결국 그 맛에 인이 박히고 거기에 주눅들려 살아가게 되리라는
예감을 그 ‘공손하게'라는 네 글자는 함축하고 있다.
… 중략 …
1부 밥 / 라면을 끓이며. 16-19pp
*
… 중략 …
사실, 이 글은 오랜 세월 동안 라면을 끓이고 또 먹어온
나의 라면 조리법을 소개하려고 시작했는데,
… 중략 …
나는 이 모든 것을 스승없이 혼자서, 수많은 실험과 실패를 거듭하며 배웠다.
레시피를 읽고 따라 한 것이 아니다.
… 중략 …
나는 라면을 먹을 때 내가 가진 그릇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비싼 도자기 그릇에 담아서,
깨끗하고 날씬한 일회용 나무 젓가락으로 먹는다.
… 중략 …
라면을 끓일 때 나는 사람들의 목구멍을 찌르며 넘어가는 36억 개
라면의 그 분말수프의 맛을 생각한다. 파와 계란의 힘으로,
조금은 순해진 내 라면 국물의 맛을 36억 개의 라면에게 전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눈을 팔다가
라면일 끓어 넘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라면의 길은 아직도 멀다.
… 중략 …
1부 밥 / 라면을 끓이며. 28-31pp
J.S.Bach (1685.3.21.-1750.7.28.)
Goldberg Variations: Aria
Glenn Gould (1932.9.25.-1982.10.4.)
*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배터리가 다 떨어지면 핸드폰은 꼬르륵 소리를 내면서 죽는다.
… 중략 …
모든 ‘먹는‘ 동작에는 비애가 있다. 모든 포유류는 어금니로 음식물을 으깨서 먹게되어 있다.
지하철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서 짜장면을 먹는 걸인의 동작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냅킨을 두르고 거위간을 먹는 귀부인의 동작은 같다.
그래서 밥의 질감은 운명과도 같은 정서를 형성한다.
… 중략 …
모든 밥에는 낚시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시바늘을 함께 삼킨다.
저쪽 물가에 낚시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 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예수님이 인간의 밥벌이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씨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거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먹이시느니라"라고 하셨다지만,
나는 이 말을 믿지 못한다. 하느님이 새는 맨입에 먹여주실지 몰라도
인간을 맨입에 먹여주시지는 않는다.
… 중략 …
1부 밥 / 밥1. 70-72pp
*
… 중략 …
물고기가 이동할 때 몸의 색깔은 산호와 수초의 색깔에 맞게 변해갔다.
그것들의 무늬와 생김새는 하늘의 별보다도 더 다양했고,
그것들의 몸놀림은 정靜과 동動 사이에 경계가 없었다. 영롱하고 발랄한 목숨들이었다.
“물고기들은 왜 저마다 저러한 무늬를 갖게 되는가"를 젊은 과학자들에게 물어보았다.
“그것이 종의 특수성이다"라고 과학자들은 대답해주었다.
그 대답은, 그 질문처럼 답답한 인간의 언어였다.
… 중략 …
다윈은 아직도 관찰중이고, 진화론은 지금 진화중이다.
… 중략 …
열대의 바다에서, 색色은 공空으로 소멸하지 않는다. 색들은 생멸을 거듭하면서 공을 가득 채운다.
열대의 바다에서 색과 공은 서로 의지해 있다. 색은 공의 내용이고, 공은 색의 자리이다.
색과 공이 서로 끌어안고 시간 속을 흘러가고 있다. 열대의 바다에서 색과 공은 동행한다.
… 중략 …
세월은 약탈과 살육을 로망으로 바꾸었고
사실과 전설은 이제 구분되지 않는다.
… 중략 …
1부 밥 / 남태평양. 81-85pp
*
… 중략 …
1986년에 미크로네시아는 섬들의 연방국가로 독립하면서 안보를 미국에 위임했다.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헌법 전문은 그 섬들의 고통과 희망을 선명히 드러내면서도
과도한 국가주의를 노출시키지는 않는다.
많은 섬들을 한 국가로 만들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우리들의 서로 다름은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
바다는 우리를 격절시키지 않고 하나로 묶어준다. (…)
우리는 이 섬들 이외의 또 다른 고장을 원하지 않는다.
전쟁을 겪었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분열을 겪었으므로 우리는 단결을 원한다.
지배를 겪었으므로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미크로네시아 국가는 인간이 별들 사이를 항해하는 시대에 태어났다.
… 중략 …
1부 밥 / 남태평양. 86-87pp
미크로네시아
(Micronesia, 그리스어 단어 μικρόν = 작은, νησί = 섬에서 유래했다.)
Micronesia Pohnpei Nukuoro Atoll
(2006.5.31.위성사진, 좌표 북위 3.85, 남위 154.9, 섬 길이 9.7Km, 인구 약900명)
*
… 중략 …
글이란 아무리 세상 없이 잘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몇 줄이라 하더라도 그 물적 바탕은
훈민정음 스물네 글자를 이리저리 꿰어맞추고 붙였다 떼었다 하는 것이다.
그러니 글을 쓸 때 오른손엔 연필, 왼손엔 지우개를 쥔
내 몸은 부지할 곳이 없고 숨쉴 공기가 모자란다.
다 큰 사내가 어찌 연필과 지우개만으로 그 몸의 일을 넉넉히 할 수가 있겠는가.
나는 이렇게는 도저히 못한다.
지난 봄에는 글쓰기를 아예 작파하고 놀았다.
내가 사는 마을에는 집을 짓는 공사장이 있다.
… 중략 …
옥수수가 좀 자라자, 다시 연필과 지우개를 쥘 수밖에 없는 내 몸의 조바심을 겨우 진정되었다.
… 중략 …
공사중인 집의 처마 끝에 매달려 못질하는 젊은 목수는 그 아름다움으로 나를 주눅들게 한다.
그러나 누구의 삶인들 고달프고 스산하지 않겠는가.
나무통이 좁아서 뿌리가 비어져나온 옥수수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새로운 슬픔으로 지나간 슬픔을 위로한다.
옥수수잎에서, 먼 바람 소리가 들린다.
놀다보니 봄은 다 갔고,
내 사랑하는 젊은 목수들은 집을 다 짓고 어디론지 가고 없다.
1부 밥 / 목수. 129-130pp
* 작파(斫破) 명사- 찍어서 쪼개거나 쪼개어 깨뜨림.
Libertango ( A.Piazzolla) BOLERO BERLIN
Bolero, Tango, Jazz with members of the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Martin Stegner Viola
Manfred Preis Clarinet
Helmut Nieberle Guitar
Raphael Haeger Piano
Esko Laine Doublebass
Topo Gioia Percussion
*
… 중략 …
중국 고대의 전국시대에 수많은 나라들이 멸망했다.
그 나라들은 대부분 반성하는 기능의 마비, 무책임, 무방비 때문에 망했고
여러 나라들이 줄줄이 망해가는 꼴을 보면서 그 뒤를 따라서 똑같이 되풀이하다가 망했다.
고통의 맨살, 죄업의 뿌리와 직면하기를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뉘우침의 진정성과 눈물의 힘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함석헌 咸錫憲(1901~1989)은 말했다.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
사람은 고난을 당해서만 까닭의 실꾸리를 감게 되고
그 실꾸리를 감아가면 영원의 문간에 이르고 만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한길사, 1977, 444쪽
2부 돈 / 세월호. 176-177pp
*
… 중략 …
나는 천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퇴계의 초상을 들여다볼 때마다
기호와 실물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이러니 돈 벌 생각은 아예 못한다. 얼마 전에 마누라가 신용카드라는 것을 만들어 주었다.
이것은 경이로운 물건이었다.
기계에 넣기만 하면 돈이 촤르르촤르르 쏟아져나왔다.
돈과 관련된 삶의 고통이 모두 해결되었구나 싶었다.
은행마다 우체국마다 편의점마다 돈 쏟아지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돈은 촤르르촤르르 겁도 엇이 쏟아져나왔다.
다시 귀기울이니, 이 촤르르 소리는 실물과 기호 사이의 나락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용카드를 너무 많이 써서 패가망신하고 있다.
기호와 실물 사이에는 지옥이 있고,
이 지옥에 떨어지면 헤어날 길이 없다.
촤르르촤르르 돈은 쏟아지고 지옥문은 자꾸 넓어진다.
퇴계 선생께 거듭 죄송하다.
2부 돈 / 돈2. 185p
*
원고료로 받은 10만원짜리 수표 두장을 마누라 몰래 쓰려고
책갈피 속에 감추어놓았는데 찾을 수가 없다.
<맹자>속에 넣었다가, 아무래도 옛 성인께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다른 책으로 바꾸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맹자>속에도 없고, <공자>속에도 없고, <장자>속에도 없고,
제자백가서와 동서고금을 모도리 뒤져도 없다.
수표를 찾으려고 <장자>를 펼쳐보니 “슬프다, 사람의 삶이란 이다지도 아둔한 것인가!
외물에 얽혀 마음과 다투는 구나"라고 적혀 있어 수표 찾기를 단념할까 했으나
또 그 다음 페이지에 “무릇 감추어진 것치고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내 언젠가는 기어이 이 수표 두장을 찾아내고야 말 터이다.
… 중략 …
직무는 기능이며 직위는 신분이다.
직무는 용用이고 직위는 체體인 것이다.
그것은 분리되지 않는다. 체가 없으면 용이 작동되지 않는다.
생각을 해보라.
그가 그런 직위에 있지 않고 나처럼 원고지 칸이나 메우는 포의布衣의 서생이거나
혹은 거리의 노숙자였다면 어느 미치광이가 돈을 싸들고 와서 ‘인사'를 드렸겠는가.
구체성과 추상성, 밀실과 광장을 표표히 넘나드는 돈의 복합성이
이 자명한 유죄를 무죄로 만든다.
무죄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다시 수표 두 장을 찾아봐야겠다.
2부 돈 / 돈3. 186-190pp
달빛에 흐르는 눈물
해금 정겨운
*
… 중략 …
연필로 글을 쓰면 팔목과 어깨가 아프고, 빼고 지우고 다시 끼워맞추는 일이 힘들다.
그러나 연필로 쓰면,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 살아 있는 육체성의 느낌이 나에게는 소중하다.
나는 이 느낌이 없이는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이 느낌은 고통스럽고도 행복하다.
몸의 느낌을 스스로 조율하면서 나는 말을 선택하고 음악을 부여하고
지우고 빼고 다시 쓰고 찢어버린다.
내 몸이 허락할 때, 나는 내 맘에 드는 글을 쓸 수가 있고
내 몸이 허락하지 않는 글을 나는 쓸 수가 없다.
지우개는 그래서 내 평생의 필기도구이다.
지우개가 없는 글쓰기를 나는 생각할 수 없다.
지워야만 쓸 수 있고, 지울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므로 나는 겨우 두어 줄씩 쓸 수 있다.
그래서 원고지를 몇 장 쓰고 나면 내 손은 새까맣게 더러워진다.
… 중략 …
3부 몸 / 손1. 267-268pp
*
… 중략 …
아날로그는 이제 낙후된 삶의 방식이다.
아날로그는 다 죽게 되어있다.
아날로그는 더 이상 디지털 문명의 대안이 될 수가 없다.
… 중략 …
여자 사랑하기를 좋아하는 내 바람둥이 친구는
“연애란 오직 살을 부비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아, 어렇게 간단한 것을 몰라서 이토록 헤매었다는 말인가 싶었다.
살은 오직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작동한다.
나는 살의 아날로그를 자세히 쓸 힘이 없다.
그것은 아직도 내 언어의 힘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살의 아날로그는 언어와는 무관한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언어의 반대말은 ‘살'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모르기는 해도, 살 역시 악기나 연장의 작동원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두려운 것은 이'살'이 타인의 ‘살'과의 관계 속에서 작동한다는 점이다.
그 대목을 나는 내가 힘이 있을 때 한번 써볼 생각이다.
그러나 쓰지 못하면 또 어떠랴, 살은 언어의 영역이 아닌 것을.
나는 손의 힘으로 살아야 하 터인데,
손은 자꾸만 남의 손을 잡으려 한다.
3부 몸 / 손1. 268-277pp
Lee Oskar (1948.3.24. -)
My Road
*
… 중략 …
이 소멸은
멀고 먼 상류의 산악으로부터 바다에까지 이르는 새로운 흐름을 예비하는 소멸이다.
그리고 북한산은 그 소멸하는 강 너머에 우뚝하다.
북한산은 역사적 삶의 영원성의 표상이다.
그리고 한강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새로운 시간의 흐름이다.
북한산은 ‘있음being’이고 한강은'됨becoming’이다.
이것이 서울의 서울다운 정체성의 근본이다.
서울이 아무리 망가져도, 산하가 남아 있는 한 이 정체성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남산타워는 아니다. 서울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은 비로소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북한산과 한강 사이의 공간에 서울다운 합리성과 보편성을 건설하고,
서울다운 삶의 질감을 이루어내는 일이 서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이다.
북한산과 한강은 크고 또 넓어서 능히 만인의 고향이 될 만하다.
다들 서울로 몰려들어서, 출신지 지역별로 정치적 패거리 작당을 한다면,
서울은 끝끝내 만인의 타향일 뿐이다.
한강은, 아직은 타향을 흐르는 강이다.
4부 길 /고향3. 330-331pp
*
… 중략 …
가마의 어둠은 물, 불, 바람 그리고 흙 같은 원소들이
서로 자연으로서의 성질을 삼투시켜가며, 그 삼투작용들이 모두 합쳐져서 하나의 새로운 인공 자연을 빚어내는 잉태의 공간이었다.
이 구조는 거대한 여성 성기와도 같았다.
도공들은 가마에 불을 대는 행위를 ‘가마 익힌다'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그 말은 토기가 흙으로 빚어져서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
곧 토기의 회임에서 출생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매우 적절히 표현함으로써 토기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었다.
… 중략 …
하나의 토기가 태어날 때 그것들은 물과 불과 흙과 공기의 모든 원소들을 편력한다.
그리고 하나의 토기는 그 어느 요소도 아닌 새로운 인공의 자연이다.
가마에 불이 꺼지고, 토기들이 쏟아져나올 때,
완성된 토기는 저마다의 운명의 색깔로 반짝이거나 혹은 조용하다.
그것들은 저마다 개별적인 표정을 띠고 있다.
토기가 쏟아져나올때 그것들은 얼마나 많은 말들을 참고 있는 것인가.
그것들이 걸어오는 말에 나는 응답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공통된 본질 위에서 개별적 운명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그 비밀에 응답하지 못한 채,
토기 한 점을 사서 서울로 돌아왔다.
4부 길 / 가마. 345-348pp
*
… 중략 …
나무나 풀은 본래 주인이 따로 없고, 바라보는 사람이 주인이다.
그런데도 우리집 아이들은
“옆집도 매화를 심었으니 우리도 마당에 꽃 피는 나무를 심자"고 조른다.
소유는 아름다움을 개인화함으로써 그 아름다움을 배가하는 모양이다.
이걸 나무랄 수도 없다.
“우리집 나무나 남의 집 나무나 다 똑같은 것이다.
금강산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옆집 매화나무가 더 아름답고 절실한 것이다.
나와 가까운 것들, 내 눈에 잘 띄는 것이 귀한 것이다"라고 말해본들
아이들이 그 말을 알아들을 리도 없다.
… 중략 …
꽃을 산 사람들은 제 손에 들린 꽃을
각별한 애정의 눈으로 들여다보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인간들은 애처롭고도, 애처로운 만큼 아름다워 보였다.
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은,
그야말로 들판에 피는 야생화처럼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때가 되면 무자비하게
짓밟힐 수 있다. 그리고 이 설명할 길 없는 비극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꽃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하고 많은 꽃들 중에서
제집 베란다의 꽃을 더욱 애지중지한다.
… 중략 …
4부 길 / 꽃. 357-360pp
영화 '맨발의 이사도라'중 Isadora
Maurice Jarre (1924.9.12.-2009.3.29.)
기타 안형수
작가의 말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향하여 나는 오랫동안 중언부언하였다.
나는 쓸 수 없는 것들을 쓸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헛된 것들을 지껄였다.
간절해서 쓴 것들도 모두 시간에 쓸려서 바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늘 말 밖에 있었다.
지극한 말은, 말의 굴레를 벗어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리라.
이제,
함부로 내보낸 말과 글을 뉘우치는 일을 여생의 과정으로 삼되,
뉘우쳐도 돌이킬 수 없으니 슬프고 누추하다.
나는 사물과 직접 마주 대하려 한다.
2015년 여름은 화탕지옥 속의 아비규환이었다.
덥고 또 더워서 나는 나무그늘에서 겨우 견디었다.
그 여름이 가고,
가을이 또 와서 숙살肅殺의 서늘함이 칼처럼 무섭다.
낮고 순한 말로 이 세상에 말을 걸고 싶은 소망으로 몇 편의 글을 겨우 추려서 이 책을 엮는데,
또 하나의 장애물을 만드는 것이 아닌지를 나는 걱정한다.
2015년 가을
김훈
*화탕지옥(火湯地獄)은 엄청난 크기의 무쇠솥에 물을 끓이고 있는 지옥으로
초강대왕의 심판에 통과하지 못한 중생들이 떨어지는 지옥이다.
*숙살肅殺 쌀쌀한 가을 기운(氣運)이 풀이나 나무를 말리어 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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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순한 말로 이 세상에 말을 걸고 싶은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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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내용! 김사합니다. 갑자기 라면이 먹고싶습니다.(60년대 라면)
ㅎㅎㅎ 저도 먹고 싶어지네요^^ 그런데 60년대 라면은 어떨까 궁금합니다.
이번 주말에 집에서 먹어야겠습니다. 계란과 함께~~
김훈..치켜세운 눈썹
흩어진 머리칼..
뜨거운 라면..(세상)과 링 위에서
맞짱뜨고 내려온 복서...
~o~ //
그가 돌아왔다...
ㅎㅎ
본문중 '함부로 내뱉은 말과 글을 뉘우치는 일을 여생의 과정으로 삼되....... ' 에서 저를 다시 반성토록하네요
오늘도 가능하면 말을적게하고 좋은말만 하도록 노력해야겠네요
모두 멋진하루되시기 바랍니다 ^^*
비가 조근조근 내리는 하루가 되겠습니다.
봉호선생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이청아 청아씨~ㅎㅎ 내일 아침은 그이의 63번째 생일이어서 저녁에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미역국에 찰밥 그리고 조기구이와 불고기입니다ㅋㅋ^^
성남에 이사와서 그이 생일 음식을 하니 고향을 떠나온것이 실감납니다.
이곳에 둥지를 틀어서 그이와 딸...
셋이서 적응되기까지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나무도 옮겨심으면 몸살을 하듯이
익숙하려니 힘들기도 하구요.
외국에 이민가서 사는 교포들은 언어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며 문화 상식 역사
물 나무 꽃 습관 음식 정치 법률 의료서비스 약 직업 등...
무수히 많은 새로움에 적음해야하니
가히 그 어려움이 얼마나 클까요?
새삼 가족과 교수님, 좋은 인연들이
고마운 밤입니다~♡♡
@푸른나무(이옥선)
10월달에도 언제나 즐거움으로 가득한 바쁜 시간 보내고 계시는 모습에 저도 즐겁습니다^^ㅎㅎ
사진에 훈남인 두분은 아드님과 손자분 >.< ?
비가 똑똑 떨어지며 센티해지는
아침입니다.
이럴때 영화 한편이 필요합니다.^^
요즘 독립운동 의열단 나오는
영화 보러가야겠어요.
어제 그이 친구들 오시라해서
음식대접하고 그이가 기뻐했습니다.
타향살이의 애환을 나누는
좋은시간~~♡♡♡
❤^ . ^❤
냉면..며칠전에 아는분이 냉면을 잘하는곳이 있다고 차에 태워 데려갔어요. 저는 이곳 지리에 어두워서 그냥 따라갔습니다.
식당에 들어갔더니 꽤 넓은 실내에 왼쪽구석에 남학생들이 선생님모시고
진을치고 앉아있어서 인사드리고 한쪽편에 자리잡았습니다.
비빔냉면이 맛있다고 해서 시켰더니 과연 맛이 좋았어요.
올해들어 처음 먹는 냉면~^^
저쪽 남학생이 밥값을 냈다고 하셔서~
덕분에 더 맛있게 먹었지요.
식사후 찻집에서 재밌게 놀고 다음을 기약하며~타향에서도 좋은분을 사귀어서 행복합니당~^^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시간 되셨겠습니다.
갑자기 비빔냉면에 맛있는 만두 한입 먹고 싶어져요^^ㅎㅎ
역시 점심때가 되어서 더욱 시장기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옥선선생님, 오늘 점심도 맛있게 드세요^^
시월..한낮의 햇볕도 차츰 엷어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한가로운 계절만큼이나
비좁았던 마음도 따뜻해지고
넓어짐을 느낍니다.
어쩔수없이 환경에 끌려가는
자신을 가다듬어
갈 하늘처럼 푸르게
갈무리해보는 아침입니다.
이중섭전이 오늘로서 마무리
되니 덕수궁에 가볼까합니다.^^
와,,
좋은 날 좋은 시간 되시겠습니다.
잘 다녀오셔서 저도 보여주세요^^ 호호,,
어,여섯시 내고향 생방송 녹화하네요.^^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
덕수궁 담 너머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