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오광대가 마을의 안녕 및 제의식 을 비는 성격을 띠고 동제와 더불어 전승되어 어느지방 의 탈놀음 보다가장 최근까지지 전승 되었는데 1960년에 연희 한것이 최종막 이었다고 한다.두루마리 로 된 극본은 길이가 약 한발쯤 되는데 6.25동란때 유실 되었으며 탈은 1960년 대말 까지 전해 오다가 하나씩 없어 졌다고 한다.
당시 연희자 의 계보 를 생존한 가산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1.양반역에- 한내선(고인.살았으면128세가량)
2.말뚝이역에- 김소선(고인.살았으면115세가량)
3.옹생원역에-한사여(고인.살았으면150세가량)
4.중역에-김종선(고인.살았으면120세가량)
5.할미역에-조화산-조제신(조화산의아들.고인.살았으면102세)
6.도문둥이역에-박점룡(고인.살았으면120세가량)
7.마당쇠역에-정영선(고인.140세 추정)
8.악사역에-한재선(고인.129세추정.꽹과리)
9.가면제작에-한정선(고인.125세추정)
여기서 가산(駕山)마을은 한씨가 정착한지 13대 로 이어져 내려와서 연희자韓氏 는 전부 兄第또는 四寸.五寸임을 한씨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
1971년 에 발굴되어 1974년 에 경상남도 지방문화재 로 지정되어 전승되어 오던중 1980년11월17일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3호 로 지정되었다.
1971년 발굴이후 와 중요무형문화재73호 지정이후 계보를 살펴보면,
1.악사.가면제작역-한계홍(韓季弘).故人.藝能保有者
2.양반역-김오복(金五福).故人.藝能保有者
3.할미역-한윤영(韓允榮).故人.藝能保有者
4.오방신장(황제장군).원양반역-한종기(韓琮基).故人.藝能保有者-박상래(朴相來)助敎.한덕주(韓德柱)
5.말뚝이역-한우은(韓遇恩).故人.藝能保有者-한충기(韓忠基)
6.영노.도문둥이역-김윤기 (金尹基).故人.理修者
7.중 역-백상옥(白相玉).故人.敎育助敎-한수동(韓修東)故人
8.옹생원-방영주(方英周).敎育助敎-한남주(韓南周)
9.마당쇠-방학래(方鶴來).敎育助敎-한덕주(韓德柱)
전부 가산마을 사람들로 구성되어 탈놀음이 연희되었으며 .오무당을 제외하고 연희자들은 남자들로 구성했다. 당시 가산오광대 보존회 회장을 10년 이상 이끌었던 한종기(韓琮基)예능보유자님께서 당시 어려운 여건과 환경속에서 정부의 지원이 열악하여 많은 노력과 열정으로 동분서주 하여 1985년9월4일 에 드디어 가산오광대 전수관을 건립 낙성하였으며 이수.전수교육에 열과성의를 다받쳤으며.활동비.공연료.전수비.수임료등도 항상잡음없이 가산마을 동민 전체가 단결하여 오광대 공연이 있는날이면 마을축제 가 되어 막걸리 한사발과 김치와 돼지고기 수육 은 항상 가산오광대의 단골음식 에서 빠질수 없었다.지금은 고인 이 되셔서 가산오광대
공연장 앞마당 에 공적비가 고인의 업적과 넞 을 기리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