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카페
유병덕
2015harrison@naver.com
이름 모를 새 두 마리가 들어왔다. 두 시간 정도 놀더니 돌아갔다. 며칠 후 한 마리가 또 찾아왔다. 하우스 속에서 땀 흘리는 내 앞을 떠나지 않고 계속 비행한다. 이곳은 펜트하우스가 아니다. 집에 머물기 답답하여 동네 카페에 갔다 문전박대 당했다. 내 마음 갈 곳 잃어 천신만고 끝에 구름카페를 지었다. 바람 따라 자유로이 소풍 가는 하얀 구름이 보이고 바이올린 선율보다 고운 새소리, 물소리가 들린다.
사색의 계절을 누가 가을이라 했던가. 내가 보기엔 겨울이다. 가을은 방황의 계절이다. 황금 들녘이 무장해제 되고 숨 고르기에 들어가면 내 마음은 낙엽 따라 이곳저곳으로 정처 없이 떠돈다. 겨울이 되어 내 마음은 닻을 내린다. 따뜻한 목로에 앉아 화롯불을 바라보며 달려왔던 지난여름 길을 돌아본다. 하얗게 눈 덮인 날이면 휘청거리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운다. 철저하게 나로 돌아와 또 하나의 나를 볼 수 있다.
현실은 답답한 작은 공간에 갇혀있다. 조용히 눈감으면 넓은 공간에 모인 사람들의 눈망울이 아른거린다. 노트북 화상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 낯설다. 집 근처 피트니스를 가보니 빨간 글씨로 써 놓았다.‘출입 금지’표시다. 터덜터덜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가까운 지인이 찾아와 모처럼 이야기를 나누려 카페에 들어갔다. 나가란다. 어디 가나 빗장이 걸려있다.
“왜 그렇게 시무룩해?”
그는 보건 분야의 전문가다. 우울해 보인다는 한마디 남기고 떠났다. 지난해부터 코로나왕국의 지령에 따라 집에 머무르면서 소심해지는가 보다. 아랫집에서 쿵쿵거린다고 올라올까 봐 발의 뒤꿈치를 들고 다녔다. 텔레비전 소리도 줄이고 말은 가급적 하지 않고 지냈다. ‘집콕’이니,‘방콕’이니 하는 신조어가 나도는 걸 보니 나와 비슷한 처지가 많은가 보다. 창밖에 하얀 구름이 자유로이 소풍가고 있다. 저 흰 구름이 머무는 카페는 어딜까?
그동안 동가식서가숙하며 이곳저곳으로 바쁘게 돌아다녔다. 집에서 의기소침하게 지내다 용기를 냈다. 오랜 기간 미루어오던 논문을 꺼내 어렵게 마무리했다. 한 공간에서 함께 지낸 아내로부터,
“그대에게 박사학위 하나를 더 수여합니다.”
행정학박사에다 졸지에‘잔소리박사’모함이다. 이는 집에 머물다 얻은 명예스럽지 못한 학위다. 자책감에 빠져 고민이 깊어질 때 마음공부를 만났다. 주로 명상을 하며 자기의 실체를 바라볼 수 있는 수행이다. 직장에서 젊은 시절 한때 여럿이 한 사무실에 근무했다. 돌이켜보니 동료들 간에 마찰과 갈등이 자주 일어났다. 관리자가 되면서 정책을 검토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려니 조용하게 마음을 정리할 공간이 필요했다. 가정에서도 의견충돌 없이 지내려면 내 마음을 다스리는 별도의 공간이 있어야겠다.
내 고민을 지인에게 털어놓았다. 박사학위 하나를 반납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어려울 때마다 그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남은 세월 얼마나 된다고 다투며 사느냐고 충고한다.
“재물이 많으면 걱정이 한 짐이고, 마음이 부자이면 행복이 한 짐이다”
선사禪師처럼 보였다. 그리고 손목에 매는 미핏(Mi Fit)과 스마트 폰에 걷기 앱을 깔아주며 되도록 사람보다는 자연과 대화하란다. 정신건강을 위해 삶의 보람을 찾는 일을 해보라며 농작물을 키워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그런데 땅거지다. 평생 월급쟁이로 살아 달랑 집 하나 있다. 첫눈이 내리던 날 그는 찾아와 땅을 보러 가자며 내 손을잡아끌었다. 야트막한 산자락이 병풍처럼 처져있고 물 좋고 비옥한 땅 위에 예쁜 집 한 채가 있다. 북서쪽으로 멀리 빈계산과 가까이에는 호남고속도로가 보이고, 남동쪽으로는 유성 시가지 간선도로가 통과한다. 심심찮게 양쪽 도로에서 오가는 차 소리가 귓전에 내려앉는다. 그 하우스는 인근 아파트 한 채 가격이다. 그는 걱정하지 말란다. 어리둥절했다.
졸지에 초보 농군이 되었다. 우선 주변에 있는 농막의 주인을 찾았다. 그는 상추를 20여 년간 재배하여, 시장에 출하하는 사람이다. 담배를 하나 꺼내 물더니 마을 전설부터 하우스 관리요령까지 자세히 가르쳐준다. 처음이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농지원부’만들라는 소리만 기억에 남았다.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농지원부를 신고하니 며칠 후 난감한 일이 생겼다. 농지소재지 동 직원이 하우스 안에 아무런 작물이 없다며 반려하겠다는 전화다. 땅을 갈아엎고 작물을 심어야 한다. 급한 마음에 직접 손으로 땅을 파고 씨앗을 심을 심산이었다. 농협으로 달려가 씨앗과 비료를 사려는데 안 판다는 것이다. 가격할인을 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농업경영체등록이 되지 않아 팔지 못한다니 혼란스러웠다. 갈수록 태산이다. 물어물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가보니 농지 소재지 이웃 주민 두 사람에게 농업경작 사실 확인서를 받아오란다. 고봉을 넘고 나니 준령이 가로막고 있는 격이다. 걸어가든 뛰어가든 종착역은 하나일 터인데 괜한 일을 시작했나 싶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낮선 일을 참고 또 참으며, 내 마음이 자유로이 드나들 구름카페를 만들었다.
한 동이 아니다. 두 동이나 된다. 영하 10도의 추위라지만 삽질을 하다 보니 온몸에다 땀범벅이다. 해가 빈계산 너머로 꼬리를 감추려 한다. 일과를 마치고 손목에 차고 있던 미핏(Mi Fit)을 보니 1만6천이다. 이는 팔이 움직인 숫자다. 걷기는 1만 보가 약간 넘게 표시되었다. 그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실내 피트니스에서도 그 만큼 운동하기 어렵다며 극찬한다. 구름카페는 시무룩했던 나를 일으켜 세운다.
내 마음은 곱게 물든 저녁노을에 일렁인다. 내 앞을 비행하던 이름 모를 새, 배고파 찾아와 얼굴 내민 들고양이, 윗집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편안한 모습, 창고 처마 끝에 매달린 긴 고드름과 비닐하우스 위에 쌓인 하얀 눈이 내 마음을 어린 시절로 소환한다. 석양에 비친 새털구름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집으로 오는 길이 뿌듯하다. 다시 퇴근행렬에 합류했다. 이젠 우유 한 잔과 빠게트 한 조각으로는 저녁 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따끈한 밥을 짓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찌개를 끓였다. 온몸에서 신호가 온다. 엉치가 땅기고 어깨가 뻐근하지만, 부엌 설거지까지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머지않아 그녀에게 받은 불명예학위는 반납할 듯하다. 그리고 그대 마음에 우산이 될 수 있으리라.
첫댓글 구름까페 멋져요 언제 구경 좀 시켜주세요.ㅎㅎ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