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상식, 커먼 센스 커먼 날리지/를 주장합니다. Copilot said: 그것도 하나의 매우 흥미로운 입장입니다.
홍익인간, 인내천, 실학 같은 말들은 역사적 무게가 있지만, 현대를 사는 사람에게는 너무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당신이 말하는
상식(Common Sense) 공통지식(Common Knowledge)
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왜냐하면 현대 사회의 많은 갈등은 사실 이념의 부족보다도 상식의 부족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거짓말하지 말자.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 사실을 확인하고 말하자. 잘 모르면 인정하자. 공공의 규칙을 지키자. 이런 것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상식입니다.
18세기 실학자들이 주장했던 것도 어쩌면 오늘날의 표현으로는 "상식으로 돌아가자"에 가까웠습니다.
정약용이 살았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백성이 굶주리는데 학문만 논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당신의 관점을 한 줄의 문구로 다듬어 본다면: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가장 좋은 사회다.
또는
이념보다 상식.
또는
공통의 지식 위에 공통의 미래가 세워진다.
홍익인간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이상이라면,
당신의 문장은
"먼저 상식적으로 생각하라."
는 출발점처럼 들립니다.
어쩌면 21세기에 가장 실학적인 구호일 수도 있겠네요.
You said: 네, 그래서 꿈을 꿨구요. 그 꿈은 계시록 자리에 상식을 놓은 것이에요. 그냥 상식도 완전하지만 성경을 상식으로 해서 완성시키자는 것이에요. 하나님 지혜를 상식으로 대신하고 사람의 지혜를 상식으로 하나님의 지혜에 비교되는 그런 것이에요. 모두 상식을 갖춰 성경도 세상도 모두 상식안에 있게하자는 것이지요
Copilot said: 그 생각은 철학이라기보다 하나의 해석학적 시도로 들립니다.
당신의 말을 제가 이해한 대로 정리해보면,
"계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를 상식 안에서 이해하자."
"성경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성경과 세상을 모두 상식이라는 공통의 기준 위에서 보자."
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역사적으로도 비슷한 흐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세에는 "계시가 우선"이었습니다. 근대에는 "이성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실학은 "현실과 경험을 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상식(Common Sense)을 기준으로 삼자"
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이것은 신앙과 비신앙의 중간에서 대화하려는 시도로도 보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문장을 볼 때,
신앙인은 계시로 받아들이고,
상식은
"사랑이 증오보다 사람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라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도,
상식의 언어로는
"서로 배려하지 않는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생각은 "성경을 상식으로 대체하자"보다는,
"성경의 지혜와 인간의 경험을 상식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만나게 하자."
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조심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상식은 시대마다 변합니다.
한 시대에는 상식이었던 것이 다른 시대에는 편견이 되기도 합니다.
반면 종교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찾으려 합니다.
그래서 둘 사이에는 항상 긴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생각은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최종 목표가 특정 종교의 승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지혜"
를 찾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사상을 한 줄로 표현한다면 저는 이렇게 적고 싶습니다.
"계시와 세상을 잇는 다리는 상식이다."
또는
"하나님의 지혜는 믿음으로, 사람의 지혜는 경험으로 오지만, 둘이 만나는 곳은 상식이다."
라는 문장도 가능하겠습니다.
You said: 해석이 경쾌합니다.이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가 기독교의 신이되, 혹세무민한 천국과 지옥은 없애자 부활은 과학적으로 해석하자. 단 예수의 부활은 인정하자. 게시록 전쟁은 없다.입니다 Copilot said: 그것은 전통적인 기독교와는 상당히 다른 입장이지만, 하나의 철학적 구상으로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제가 당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는 인정한다. 예수의 부활도 인정한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을 대중을 통제하는 신화적 장치로 이해한다. 계시록의 종말 전쟁은 실제 사건이 아니라 상징으로 해석한다. 성경을 상식과 이성의 검증 아래 다시 읽는다.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가 상식 안에서 만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은 역사적으로 말하면 "탈신화화"에 가까운 시도입니다. 즉, 신앙의 핵심 정신은 남기고 초자연적 설명은 상징이나 철학으로 해석하려는 것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당신이 단순한 무신론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무신론자는 보통
"부활도 없다." ==================================================== 라고 말합니다.
반면 당신은
"예수는 인정한다."
"부활도 인정한다."
"다만 나머지는 상식적으로 재해석하자."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반종교라기보다 오히려 "상식적 신앙" 혹은 "합리적 기독교"를 지향하는 모습에 가깝습니다.
만약 이것을 선언문처럼 압축한다면:
예수를 남기고 신화를 걷어내자.
성경을 버리지 말고 상식으로 완성하자.
종말을 기다리지 말고 세상을 개선하자.
천국과 지옥의 공포보다 인간의 양심을 믿자.
라는 표현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만 전통적인 기독교 입장에서는 천국, 지옥, 계시록, 부활이 서로 연결된 교리들이기 때문에, 부활은 인정하면서 천국과 지옥을 부정하는 것은 정통 교리와는 다른 해석으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당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는 "믿음"도 "계시"도 아닌 것 같습니다.
당신의 중심 단어는 오히려
상식
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구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모든 진리는 상식 앞에 설 수 있어야 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홍익인간처럼 짧은 표어이면서도, 당신이 말한 성경·사회·과학을 함께 포괄하는 원리로 보입니다.
BizChat에 대한 피드백 제공 You said: 맞아요. 그리고 더 나아가. 교회를 모두 없애고 몇군데의 교회만 남기고 이를 레위인이 월급을 받으면서 지킨다.예배는 없고 주일 찬양과 기도만 한다.옛날처럼 많은 교회와 목회자가 있는 것은 100%에서 1%까지 사회의 믿음에 따라서 그에 따라 교회수도 조절하고,0%에서는 종교는 없고,상식만 있다.0%인 세상을 상식의 세상이라한다.100%는 신정시대가 된다. 1%는 몇군데의 교회만 있다. Copilot said:
당신이 말하는 것은 일반적인 종교개혁보다 더 급진적인 구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목표가 "종교를 공격하자"가 아니라,
"상식이 중심이 되고 종교는 최소한으로 남아야 한다."
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정리하면 당신의 구상은 대략 이런 단계 같습니다.
100%
신정사회 종교가 사회 전반을 지배 성직자 다수
10%
종교는 존재 사회는 이성과 법 중심 교회 수 감소
1%
상징적 교회만 존재 전문 레위인(성직자)이 관리 예배보다 찬양과 기도 중심 종교는 문화유산에 가까움
0%
종교 제도 없음 상식만 존재 인간의 지혜와 경험이 사회를 이끎
당신의 사상에서 핵심은 사실 교회를 줄이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신앙의 비중이 줄어들수록 상식의 비중이 커진다.
라는 역사관에 있습니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인류가 성숙할수록 외부 권위보다 내부 상식에 의존하게 된다.
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종교사적으로 보면 이는 계몽주의와도 닮아 있고, 실학과도 닮아 있으며, 또 독자적인 면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몽주의는 종교를 버리려 했지만,
당신은
"예수는 남긴다."
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신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상식을 완성한 인간, 또는 상식의 최고 모델로 보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체계에 이름을 붙인다면 저는 오히려
상식주의
또는
상식신학
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이를 선언문처럼 쓰면 이렇게 될 것 같습니다.
모든 진리는 상식 안에 있어야 한다.
종교는 상식을 넘어설 수 없고, 과학도 상식을 떠날 수 없다.
예수는 남되 공포는 버린다.
천국과 지옥보다 양심을 중시한다.
종말을 기다리지 않고 세상을 개선한다.
인류의 완성은 상식의 완성이다.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질문은 그 다음입니다.
상식이란 무엇인가?
왜냐하면 당신의 체계에서 "하나님"보다도, "교회"보다도, "성경"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 있는 개념이 바로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앞으로 당신이 가장 오래 연구해야 할 주제도 예수나 교회가 아니라,
"상식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정의가 세워지는 순간, 지금 이야기한 생각들은 하나의 철학 체계로 훨씬 더 선명해질 수 있습니다.
BizChat에 대한 피드백 제공 You said: 맞아요. 데이타가 좋은 것은 핵심을 잘 파악하고 세부적인 것까지 주장하는 것을 체계화해서 잘 나타내 준다는 것입니다.아주 최고예요.이렇게 모든 사람이 상식을 알아주고 지켜내자는 것이에요. 제 뜻은 Copilot said:
그 말씀을 들으니, 당신이 말하는 핵심이 종교 개혁이나 교회 비판이 아니라는 점이 더 분명해집니다.
당신의 뜻은 결국 이것으로 들립니다.
"모든 사람이 상식을 갖추고 살아가자."
그리고 그 상식은 단순한 생활 요령이 아니라,
정직함 타인에 대한 배려 사실을 존중하는 태도 책임감 대화와 합의 검증 가능한 진실
을 포함하는 인간 공동의 지혜인 것이지요.
그래서 당신에게 성경도 상식 안에 있어야 하고, 과학도 상식 안에 있어야 하고, 정치도 상식 안에 있어야 하고, 경제도 상식 안에 있어야 합니다.
종교가 상식을 해치면 안 되고, 과학이 상식을 해치면 안 되고, 이념도 상식을 해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이 말하는 상식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보다 훨씬 큰 개념입니다.
홍익인간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말이라면,
당신의 말은
"널리 인간이 상식을 따르게 하라."
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의 사상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모든 학문과 종교와 제도는 상식 안에 있어야 한다.
또는 더 짧게,
상식은 모두의 공통 종교다.
라는 표현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신의 사상은 궁극적으로 종교를 없애는 데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없어져도 사람이 바르게 살 수 있을 만큼 상식을 보편화하는 것
에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의미에서 당신이 꿈꾸는 세상은 "무종교 사회"라기보다,
"상식이 신뢰를 대신하는 사회"
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대화를 통해 제가 느낀 당신의 핵심 문장은 이것입니다.
믿음이 사람을 지키는 시대에서, 상식이 사람을 지키는 시대로.
이 한 문장에 당신이 말한 홍익인간, 실학, 예수, 교회, 사회에 대한 생각이 상당 부분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BizChat에 대한 피드백 제공 You said: 네,좋습니다.Thanks Copilot said:
천만에요. 오히려 흥미로운 대화였습니다.
제가 들은 당신의 생각을 가장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것 같습니다.
"상식이 종교와 과학과 사회를 연결하는 공통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홍익인간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라면,
당신의 문장은
"널리 인간이 상식을 갖게 하라."
로 표현될 수 있겠습니다.
또 지금까지의 대화에서 당신의 사상을 한 편의 짧은 선언문으로 정리하면:
상식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종교도 상식 안에 있고, 과학도 상식 안에 있다.
상식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통의 언어이다.
믿음은 달라도 상식은 함께할 수 있다.
인류의 발전은 상식의 발전이다.
이런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당신이 주장하는 상식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직함 검증 대화 책임 배려 공동의 이해
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입니다.
어쩌면 실학자들이 꿈꾸었던 현실성, 홍익인간이 꿈꾸었던 공공성, 그리고 예수가 말한 사랑의 일부를 모두 "상식"이라는 단어 안에 담으려는 시도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좋은 사상은 때때로 복잡한 책 한 권보다 한 문장이 더 강합니다.
당신의 경우라면 저는 이 문장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모든 진리는 상식 앞에 설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저도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