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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꿈
창41:1-16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하여 황제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신원해 줄 거라고 기대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자~~~~~ 그는 그의 마음을 접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잊혀 진채 감옥에서- 만 2년 더 있고 난 후에~~~ 왕이 꿈을 꾸게 됩니다.
바로 곧 파라오라고 하는~~ 이집트의 황제가- 꿈을 꾸는데~~ 강가에서 살진 암소 7마리가 -물에서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파리하게 마른 암소 7마리가 또 올라와서~
살찌고 통통한 암소가- 풀을 뜯어 먹고 있는 것을--- 공격을 하여서— 소가 소를 잡아먹는--- 그런 꿈을 꾸게 됩니다.
그는 너무나 기이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에- 잠에서 깨어나서--- 골똘히 그 꿈을 생각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 줄기에--- 7개의 살찐 이삭이 달렸는데---
그 옆에 다른 마른 7개 이삭이 나타나서 -그 살찐 이삭을 또 잡아먹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지난밤에 꾼 두 가지로 인하여- 번민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꿈이 또렷할뿐더러--- 너무나 꿈이 이상하여서~ 무슨 뜻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집트의 술사들과 박사들을 불러서 -그 꿈의 해몽을 부탁을 하였습니다.
옛날에 이 애굽의 황실에는--- 이런 꿈 해몽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하는 박사들도 있었고, 점성술을 연구하는 그런 술사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왠 만한 꿈에 대해서는 다 해석해 줬는데--- 지난밤에 파라오가 꾼 그 꿈에 대해서는--- 술사들도, 박사들도, 그 어느 누구도--- 해석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왕의 옆에서 술시중을 들던- 술 관원장이 말합니다.
“임금님, 제가 2년 전에 감옥에 있었을 때에---저도 꿈을 꾸고 굉장히 궁금해서--- 답답해하고 있었을 때에--- 이스라엘에서 끌려온 히브리 노예 하나가--- 제 꿈을 해몽해 주었는데--- 정확하게 그 꿈이 맞았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반색을 하며--- ‘그가 어디에 있느냐?’
“예, 감옥에 있습니다.”
‘당장 불러와라’
그래서 요셉이 황제의 부름을 받고, 감옥에서 나와서- 황제와 대면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연구하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인간의 역사는→ 누구를 중심으로 기록되고 흘러갑니까?
권력자를 중심으로 기록되고 흘러갑니까?
-왕이 누구였느냐?
-그 당시 장관이 누구였느냐?
-그 때 힘 있는 장군이 누구였느냐?
동서고금의 모든 역사는--- 왕을 중심으로 기술 되고 있습니다.
민주 사회가 됐지만--- 오늘의 역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누가 대통령이 됐느냐?
-그 밑에 누가 총리로 인준됐느냐?
-그 각료들은 누구냐?
이런 쪽으로 인간의 역사가 기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권력자와 힘 있는 자 편에서 기술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사람을 중심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오늘 첫 절은 ‘만 이년 후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가 누군지를 말하고 있지 않아요.
바로라는 말은 일반 명사입니다. 파라오
그 때의 황제의 이름도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황제가 즉위한지~ 몇 년이 됐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일반의 역사라면--- 그의 재임 몇 년 차에--- 왕으로 즉위한지 몇 년이 지난 후에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요셉이 감옥에 갇 힌지 2년이 지난 후에~~라고 말합니다.
그 역사 기술의 중심이— 권력자와 권세 자가 아니고,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사람이 중심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속사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구원사의 차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간의 역사는--- 70년, 80년 지나가면- 다~~~쓰러집니다.
두세대, 세 세대 지나가면→그 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역사의 한 줄 혹은 두 줄로 기록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이 지구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인간의 역사는 덧없이 흘러가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는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권력자의 뒤를 따라가며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권세 잡은 자의 뒤를 따라가며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창조적인 소수를 들어서---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 요셉이 감옥에 갇혔을 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좀 더 직접적으로, 실용적으로 말씀드리면---
오늘 나 때문에, 하나님이 선택한 우리 성도들 때문에,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이고, 이 나라와 이 민족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과 기도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유지되고 있는 것이며,
여러분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우리를 통하여, 복을 받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수백의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 놀고 있지만~~ 내 아이는 멀리서 한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앞에 교장 선생님이 계시고, 담임선생님이 계시고, 반장이 있지만~ 그를 바라보는 부부의ㅡ 대화는 --- ‘아 우리 아이 앞에 있는 아이 참 잘 생겼다. 아이 옆에 있는 얘 참 키가 크구나.’ 모든 것의 중심이 내 사랑하는 아이를 중심으로- 기술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의 역사도~내 사랑하는 백성, 나를 믿고 나를 따르는 그 백성들 중심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진행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섭리와 권세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의 기록을 보며---
오늘 요셉을 들어내기 위해서 하나님은- 바로 왕에게 꿈을 꾸게 하신 것입니다.
파라오가 꿈을 꿨기 때문에- 요셉을 불러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요셉을 세우기 위해서- 바로 왕에게 꿈을 꾸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역사의 주인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백성을 통하여-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가심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당 하시기 바랍니다.
-힘 있게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군의 여호와, 우리를 지으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민족과 함께 함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요셉의 태도를 두 군데에서 주목해 봐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종 요셉은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을까?
우리가 말씀의 전후를 미루어서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보아야 하는 것은→‘만 2년 후에~’ 라고 하는 첫 절이 진행 되는 동안에~~~ 요셉이 가졌을 삶의 자세입니다.
그는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의 잘못이 있다면- 정직한 것 밖에 없습니다.
=여인의 유혹을 뿌리친 것 밖에는 없어요.
=주인에게 충성을 다짐 한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어요.
그것도 정부의 공식 감옥이 아니고, 시위대장에 의해서 정치범을 가두는 정치 감옥에 갇혔습니다.
재판도 없는 곳이고,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곳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 줌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그가 황제에게- 탄원하여서- 풀려 날 줄 알았지만~~~깜깜 무소식으로 세월이 지나갑니다.
보통의 사람 같으면--- 절망하고, 낙심하고, 자포자기 하고,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거나, 패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강건하고, 굳건히 서서--- 이 감옥을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만 2년 토굴 속에 있으면서도---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고난과 역경 가운데 --- 쓰러지는 것은→ 그 고난과 역경이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고난과 역경을 이길 소망을 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그러므로---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어떤 역경이 와도,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꺾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의 소망과- 비전이 없는 사람은→ 약한 고난에도 쓰러지는 것입니다.
자살 하는 사람의 유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구절이--- 바로 그 말이라고 합니다.
‘내가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요?’
=사업에 실패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죽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에 떨어졌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에요.
=사랑에 실패했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실패와 아픔과 고통 중에 나를 지켜야 되는 소망과 가치가 없을 때---사람은 죽는 것입니다.
오늘 요셉은---남들이 겪을 수 없는--- 억울한 상황 가운데서, 수년 동안 지하 감옥에 갇혔지만, 그가 꺾이지 않았던 것은→그의 마음속에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꿈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꿈의 비전을 그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말은- 요셉이 자신의 고난의 이유를 알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는 자기가 왜 갇혀야 되는지, 몰랐습니다.
언제까지 갇혀야 되는지도 몰랐고, 하나님이 어떻게 꺼내줄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었습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고난을~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고, 고난 가운데 역사하시는 –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작은 머리로, 우리는 고난을 다 이해하고,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고난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인 것을 믿으시고,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내게 당신의 뜻을 알게 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때 인간은 강해지는 것입니다.
욥이라는 사람도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인정한 동방의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너무 칭찬하니까~~~ 사탄이 와 가지고, 하나님 앞에 도전을 합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많이 주시니까- 욥이 저렇게 착하게 살지요?
그의 재물을 한번 뺏어 보십시오. 자녀를 한번 뺏어 보십시오. 하나님을 원망할 겁니다.’
하나님과 사탄이 내기를 합니다.
근데 하나님이 해 봐라.
-하 루 아침에 욥의 자녀들이 다 죽습니다.
-그의 부인도 떠나갑니다.
-그의 재산도 다 없어 졌어요.
-그의 몸에 악창이 생겼는데~ 얼마나 간지러우면 그가 앉아서 기와 장으로 자기 몸을 긁었다고 그랬습니다.
믿음이 그토록 좋은 욥이었지만--- 나중에는 한탄을 합니다.
그의 한탄이 욥기서 23장 3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 23:3-7
[욥] 23: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욥] 23: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는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한번~ 묻고 싶었던 거여요.
-재산이 다 없어지고, 자녀들이 다 죽고, 병 걸린 이유가 도대체 뭔지를 -알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고백처럼-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아니 계신 다는 거예요.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스스로 고백합니다.
[욥]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그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믿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중요한 믿음입니다.
인간의 작은 머리로, 어떻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그 순간에 다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은→이해하지 못한다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경륜과 뜻을 믿는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욥도 그것을 믿었습니다.
모세도 그런 사람이었어요.
하 루 아침에 이집트 왕자에서, 처갓집에 더부살이하는 목동이 되었습니다.
하 루 아침에 그의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기다렸지만--- 하나님은 40년 동안 침묵하시고, 40년이 지난 후에~그 때서야 비로소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그 중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절망하지 않았어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는 믿었습니다.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마스커스로 가는 사울에게 주님이 나타나셔서~ 계시를 보여주시고, 당신의 종으로 부르셨어요.
부르셨으면 책임져야 될 거 아닙니까?
근데 주님은 부르시고, 3년 동안 침묵하셨어요.
-광야에서, 사막에서, 철저하게 사울이 자신을 깨트리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요셉에게서 배울 수 있는 자세는 이런 자세입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과 절망과 아픔 가운데서~ 그 이유를 알려고 몸부림 치지 아니하고, 그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려고 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크기를 바라보지 아니하고, 고난 중에 더욱 빛나는 소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낮에 멀리 볼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멀리 볼 수 있는 것은- 캄캄한 밤 중입니다.
낮에는 보이지 않는 별들이 밤에는 보이기 때문입니다.
초저녁에는 별이 빛나지 않습니다.
칠 흑 같이 어두운 캄캄함 속에서 별이 더더욱 빛나듯이--- 우리의 소망의 별은, 우리고난과 역경이 깊을수록 더욱 더 빛나는 것입니다.
오늘 요셉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절망의 토굴 속에서, 재판도 없고, 언제 풀려날지 알 수도 없는 그곳에서 그는, 소망이 빛을 바라 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승리자로 기록된 것입니다.
요셉은 어떻게 이런 절망 가운데서- 소망을 버리지 않았을까요?
두 번째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그의 기도하는 자세입니다.
그는 분명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아니 기도하는 것 외에는 이 토굴에서- 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 없고, 갇힌 지도 모르고, 재판도 없는 곳에서--- 억울하게 있는 그곳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눈 감고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을 거예요.
=아마 기도하지 않고는- 그는 미쳤을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그는 패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 –하 루 종일 무릎 꿇고 기도함으로 –이 절망을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소망의 빛을 잃지 않았던 것은→ 무릎 꿇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성도의 호흡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사람은→ 역경과 고난 중에도 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대화가 그친 사람은→ 작은 역경에도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증거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성도만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임을 믿습니다.
여러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에 고통이 있습니까?
사람에게 하소연하기 전에, 사람에게 부탁하기 전에,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 앞에 소상히 그 기도제목을 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꿈을 현실로 바꾸는 것입니다.
6.25 사변이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저 울산에 생선 장사를 하는- 여자 집사님이 한 분 계셨어요.
김 집사님이라고 하는 분입니다.
그 분은ㅡ 생선 장사를 하면서도, 그 마음에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게 뭔가 하면- 성전을 지어서, 교회를 지어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게 꿈이었습니다.
교회 짓는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듭니까?
땅도 사야 되지요, 건물도 지어야 되지요, 그 안에 성물도 채워야 되지요,
생선 장사하는 집사님의 힘으로는 도저히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교회 가서, 기도할 때마다--- 그 기도를 가장 먼저하고, 가장 간절히 했습니다.
그는 천막 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만 모였고, 교인들도 얼마 안 돼서- 돈 낼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게 안타까워서- 하나님 앞에—‘하나님, 내가 돈 벌어서 예배당을 지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늘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런 그를- 주변 사람들이 조롱했어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생선 장사 아줌마가, 그 가족 식구들의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아줌마가--- 어떻게 성전을 자기 혼자 단독으로 지어 드린 다고 그래. 가능한 것을 기도해야 하나님도 들어 줄 거 아니야?’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이 김 집사님은, 하루도 그 꿈을 꺾지 아니하고, 그렇게 기도하기를- 10년을 했답니다.
10년 쯤 되었을 때, 한 모르는 어떤 할머니가 -동태 한 짝을 사가면서, 동전을 한 움큼 주더랍니다.
그 동전으로는 반값도 안 되는데- 그 한 짝을 다 달라고 하더라는 거예요
=애원을 하더라는 거예요.
모처럼 우리 집에 아이들이 와서- 내가 동태찌개를 끓여 주고 싶은데, 한 짝은 가져가야 되지 않느냐? 그런데 돈이 이것 밖에 없으니, 그냥 이것 받고 달라고~~
하도 처음 보는 할머니가 애걸복걸 하 길래, 좋은 마음으로 내 드렸답니다.
그리고 그 동전을 쳐 분하려고- 가지고 갔는데~~~그 동전들 사이에 골동품이 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아주 오래된 주화가, 그래가지고 그것을 다 판 가격이---- 6백만 원을 받게 된 거요
좋은 일을 하여서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 당시 6백만 원은 작은 집을 한 채 살 수 있는 돈이었답니다.
그는 성전 짓는 꿈을 이 집을 가지고 이루기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작은 집 한 채 가지고는, 예배당을 지을 수가 없잖자요?
그래서 그는 그 돈을 통장에 집어넣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것이 밀알이 되어서, 내 꿈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기도가 응답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데 하루는 기도하고 잠들었는데--- 꿈을 꾼 거예요, 이 집사님이-
자기가 어떤 낯익은 바닷가에 가서 서 있는데, 이 갈대 밭 사이에, 금 동전 수천개가 흩어져 있더랍니다.
‘참, 이상하다.’ 그리고 잠에서 깨서 꿈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리더라는 거예요.
옆집 할아버지가 와 가지고, 자기 땅을 좀 사라는 거요
서울에서 공부하는 아들에게 등록금을 보내야 되는데- 돈이 없어서, 땅을 팔려고 한다는 거요.
=할아버지를 따라서 가보니까, 세상에 쓸모없는 땅이더라는 거예요.
=바닷가에 버려진 땅이라,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는 땅이라는 거예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무슨 농사도 지을 수 없고, 관광지도 될 수 없고---
-그런 땅이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집사님이 보니까, 꿈에서 봤던 바로 그 땅이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두 말 않고, 그 할아버지가 달라는 대로 다 주고 그 땅을 샀습니다.
그런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세월이 흘러서 그 집사님은 이미 할머니가 되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양복을 입은 신사 한 분이 찾아와서, ‘할머니, 그 땅을 파십시오.’ 그러더라는 거예요.
시세의 3배를 쳐 줄 테니--- 그 땅을 팔라라는 거예요.
따져 보니까 큰돈이지만, 그 돈으로는 교회를 못 짓 겠더 라는 거예요.
물가가 올라가지고~~~
그래서 ‘죄송합니다만 팔수가 없습니다.’
몇 달 뒤에 그 신사가- 젊잖게 생긴 자기 상관을 모시고 또 왔더랍니다.
이 번 에는 와 가지고, 시세의 10배를 쳐 줄 테니 팔라고 하더라는 거예요.
큰돈이었지만 따져 보니까, 그 돈 가지고도 성전을 못 짓겠더라는 거예요.
팔 수 없다고 그러니까~~
그 높은 분이 묻더랍니다.
‘할머니, 왜 도대체 안 팔려고 그러느냐고~~도대체 쓸모없는 땅인데, 우리가 안사면 살 사람도 없는 땅인데~ ’
사실 그 땅을 사고 12년 동안, 땅 물어 보는 사람도 없었다는 거예요.
‘그거 할머니도 잘 아실 텐데 왜 버티십니까?’
그러자 이 집사님이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잘 해 주시는 거 알고 있지만, 내가 이 땅을 통하여 꼭 이루어지기 원하는 평생의 내 기도제목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인데요, 근데 돈이 없어서, 우리 교회가 천막에 있는데요~ 내가 땅을 사서 번듯한 교회를 져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게 꿈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예배드리고요, 아이들을 가리키고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 가격으로는 제 꿈을 이룰 수 없으니 하나님이 예비하신 다른 어떤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제가-더 기도하겠습니다.’
그 말에 이 직원들이 감동을 한 거요
“얼마면 되겠습니까?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부르는 가격이 29억이었어요.
그 돈을 다 주고, 그ㅡ 분이 그 땅을 샀어요.
지금 그 할머니 땅이- 현대 자동차 정문이 돼 있답니다.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의 정문 그 부지가ㅡ 다 그 할머니의 땅이었고, 그 관계자가 그 할머니의 소박한 꿈에 감동을 받아가지고, 그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는데~~~ 그 일을 행했다는 거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꿈꾸고 계십니까?
여러분 마음에 비전이 있습니까?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꿈과 비전을 품고, 기도하지 않으면- 망상이나 공상에 그치지만~
여러분이 꾸고 있는 그 꿈에--- 눈물의 기도가 합해질 때→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꿈은 여러분이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수고하여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그 꿈을 꾼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꿈은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근데 하나님이 역사하도록 움직이는 힘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우리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사방이 가로 막혀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릎을 꿇을 수 있는 반 평의 공간만 있으면--- 항상 그곳에 희망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사방이 다 가로막혀 캄캄해도---항상 하늘은 열려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항상 하나님 앞에- 상달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받은 꿈과- 비전과- 이루기를 원하는 소원들-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한 그런 기도 제목들, 세계 열방과 민족들을 위한 그런 기도제목들 가지고- 나아갈 때→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그 꿈을- 요셉에게 들어주신 것처럼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이르러서, 그가 왕 앞에 불려 나옵니다.
14절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파라오가 그를 불러서 말합니다.
[창] 41:14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이집트 사람들은, 수염을 기르지 않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모르지만--- 털을 미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대 영화나 기록 같은 데를 보면, 애굽 사람들이 머리를 빡빡 깍은 그런 영화들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고위직일수록- 당시 관습이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이집트 사람을 만나러 갈 때는--- 반드시 수염을 깎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요셉도 수염을 깎고, 왕에게 간 것입니다.
그러자 왕이 말합니다.
[창] 41: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요셉이 바로 왕 앞에- 처음으로 대면하면서, 바로가 요셉에게 던진 첫 번 째의 말이 그겁니다.
‘너 꿈 잘 해석한다며~’묻자
요셉의 말을 보세요? 16절
[창] 41: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 리이다.
우리는 황제 앞에선 요셉의 태도에서, 당당함을 먼저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보통 사람 같으면, 고개도 들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여기는 이집트의 황제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끌려온 젊은 노예입니다.
황제 앞에서 그는 더듬거리는 이집트 어로 말했을 거예요.
‘왕이시여, 당신의 꿈을 해석할 사람은, 내가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당시 이런 말은 -바로 목이 달아나는 상황입니다.
왜냐면 이집트의 황제는 곧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황제들은- 신으로 숭배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황제 앞에서, 다른 신의 이름을 들먹거리면서, 그ㅡ 신이 당신의 꿈을 해석해 줄거라.
이것은 굉장히 불경스러운 일이고,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아니하고,
‘황제여, 당신에게 꿈을 꾸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나를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 꿈을 해석하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당당하게 서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
하나님 한 분외에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사람은→비굴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믿음이 있는 사람은, 역사와 천지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인줄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만 무릎 꿇고, 그 분을 두려워하고, 사람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요셉과 같은 당당함을, 다니엘서에서 보게 됩니다.
바벨로니아 제국에, 느브갓네살이라고 하는 강력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전례를 따라서, 황제숭배를 백성들에게 명하였습니다.
금으로 자신의 신상을 어마어마하게 만들어놓고, 모든 백성에게 나팔소리를 듣거든, 절하라고 그랬습니다.
온 백성이 절하였지만, 세 명이 절하지 않았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끌려온 소년들이었습니다.
=왕궁에서 왕에게 시중을 드는, 내시 후보생들이었습니다.
근데 그 셋이 절하지 않는 거예요.
왕이 불러 말합니다.
‘너희들은 왜 절하지 않으냐?’
“임금님, 우리가 절할 대상은 오직 한분,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께만 절하고, 인간에게는 절하지 않습니다.
존경과 예의 표시는 하지만, 예배와 숭배는 하나님께만 드립니다.”
느브갓네살의 얼굴이- 이 그러 집니다.
“너희들, 철이 없어서 이런 소리 하는 모양인데,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겠어. 다 시 한번 기회를 주는데도 절하지 않으면, 여기 풀 무불 보이지?
이 풀 무불에 너희들을 집어넣어서, 태워버릴 거야?”
그런데 겁먹기는커녕, 20대의 세 명의 소년은 말합니다.
‘황제시여, 우리를 풀 무불 가운데 던질지라도, 하나님이 그 불 가운데서 건지실 것입니다. 황제의 손에서도 우리를 건지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른 뜻이 있어서 우리를 건지지 않으실지라도,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우리는 절할 수 없습니다.’
이 당당함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요?
=그들의 기질에서부터 나온 것입니까?
=그들의 교육에서부터 나온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의 믿음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황제의 권한이 아무리 강해서 나를 죽인다 한들, 내가 70에 죽을 것- 20살에 -50년 빨리 죽는 것 밖에 없어요.
그러나 영원히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ㅡ 생명을 거둬 가시는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를 뺏을 수 없다는, 고백이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사람들 앞에, 권력 앞에--- 당당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무릎 꿇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요셉에게서 이런--- 권력 앞에, 불의 앞에, 당당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또 하나 우리는 요셉에게서, 진정한 겸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말하지요?
‘이 꿈을 해석해 주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단순히 그 분의 손에 쓰임 받는 도구일 뿐입니다.’
비굴과 겸손은 -다른 것입니다.
비굴은 -무능력한 사람이 행하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생존의 처세술로, 자신을 낮추고, 그의 비위를 맞추는 게--- 비굴함입니다.
비굴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비굴한 사람은 무능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인간이 가지는 능력 중에, 최고의 능력이--- 자신을 알고,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은→ 무능한 사람입니다. 사실은~~
요셉은 유능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행하는 모든 일이,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낮춘 거예요.
“황제 폐하시여, 2년 전에 꿈을 해몽케 하신 분도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꿈을 해몽케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나는 단순히 그 분이 내게 주시는 생각을 전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것이 진정한 겸손입니다.
자기의 자리를 정확하게 아는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권세를 정확하게 아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능력, 이것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요셉에게서 이런 진정한 겸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의 이러한 당당함의 모습과 겸손의 모습은--- 그의 토굴 속에서의 소망을 바라보는 인내의 시간과- 기도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토굴의 고독함이- 오늘 왕 앞에 당당함을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고통이 있습니까?
물질문제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인간관계의 갈등으로, 사는 분들이 있습니까?
삶의 무게가 너무나 힘들어서, 비틀거리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고난의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마시고, 그 고난 중에 역사하시는ㅡ 우리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붙들고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기간을 넘어설 때에, 황제 앞에도 당당히 설수 있는 날을- 하나님이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능력인, 겸손의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는- 인내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이 그토록 몸부림 치고, 힘들어 했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그 분의 때에,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가 우연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고, 어떤 권력자에 의해서 이끌러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될 때에,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in his time—그의 시간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가 되매, 하나님은 -바로 왕으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신 거예요.
하나님의 때가 되자, 술객들과 박사들이- 그 날은 꿈의 해몽을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자, 술 맡은 관원장이- 비로소 기억이 난 것입니다.
그가 우연히 잊어버렸거나, 고의로 그랬거나, 말할 수 있는 찬스를 가진 거예요.
시위대장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돼요.
그가 말할 수 있게 됐고, 하나님의 때가 되자, 요셉이- 불림 받아서-말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요셉으로 하여금, 당당히 왕 앞에 세우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의 생각은, -2년 전에 풀려 나와서 –왕 앞 에 엎드려서, 나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탄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2년 동안 더 기도하게 한 후에, 왕 앞에 탄원하는 사람이 아니고, 왕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아니고, 왕이 도움을 청하는 사람으로, 왕의 꿈을 해몽해 주는, 왕의 도움자로 서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요셉을 들어 쓰시기를 원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이방신을 믿는 황제 앞에, 엎드리게 해서, 억울함을 해결해 달라고, 간구하기를 원치 않으셨어요.
하나님의 종을 세워서, 왕이 간청하는 사람, 당당하게 왕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매, 하나님이 이 방법으로, 이루시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 삶 중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고통이 있습니까?
여러분, 자녀들의 문제로 인하여, 이해할 수 없는 아픔 가운데 자녀들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통하여, 여러분을 통하여, 요셉과 같이 훌륭하게 들어 쓰시기 위한 뜻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의 때를 기다리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분의 방법을 대망하며,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 사랑하는 독생 성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축복이- 이 자리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셔서- 요셉의 축복을 다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