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빤 강남스타일"은 왜 뜨는가?
- "오빤 강남스타일"의 사회학
최근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떴다는 소식입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뮤직비디오가 1개월(2012.7.15~2012.8.15) 만에 30,000,000 번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것입니다. 대략 일평균 10만 번 정도 재생된 셈입니다. 하루가 8만6천4백 초이니까 평균 1초에 1번 이상 재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K-Pop 열풍이 주로 아이돌 그룹 위주였기에 싸이의 선전은 단연 돋보입니다.(*조연으로 출연한 현아는 논외로 함)
무엇이 이런 현상을 가능케 했을까요?
1. 뮤비의 내용적 측면
우선 싸이의 뮤직비디오는 시작에서부터 고정관념을 비틀어댑니다. 비치파라솔 아래 선글라스를 끼고 폼잡고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싸이가 있는 곳은 알고보니 동네 어린이 놀이터 모래밭입니다. 또한 멋진 여성들과 어깨동무하며 카메라쪽으로 다가오다가 날라오는 휴지를 덮어쓰거나 눈내리는 효과 소품인 비누거품을 온통 얼굴에 뒤집어쓰게 되는 장면이나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나는 뭘 좀 아는 놈 유노와람생(you know what I'm saying)" 하며 잘난 척 하는 싸이가 사실은 화장실 변기에 바지를 벗은 채 앉아 있는 장면 등은 뮤직비디오의 상투적 장면을 비틀어 놓은 것입니다. 이런 장면들은 싸이의 작은 눈과 둥그런 얼굴, 익살스런 표정과 어우러져 매우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연출되어 보는 사람에게 웃음을 안겨줍니다.
경쾌한 리듬과 익살스런 뮤직비디오(이하 '뮤비')의 모습은 사실 가사와도 관련 있습니다. 낮에 따사롭고 여유있는 여자와 사나이('남자'가 아님!)가 밤이 되면 "놀 땐 노는" 여자와 사나이로 바뀐다는 설정은 일에 바쁜 낮과 놀기 바쁜 밤의 강남과도 겹쳐집니다. 그런데, 이런 "반전"있고 "감각"적인 여자는 현실적인 존재라기보다는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인 "나"가 꿈꾸는 대상일 뿐입니다.
사실 "나"의 현실적 모습은 그리 멋진 "사나이"가 아닙니다. 동네 놀이터, 경마장, 지하주차장, 동네 목욕탕, 관광버스, 한강시민공원, 동네 체육관, 엘리베이터, 화장실, 지하철을 늘 오갈 뿐인 그저 평범한 청년, 아저씨, 할아버지일 뿐입니다. 따라서 뮤직비디오의 배경은 모두 평범한 곳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멋진 여자를 만나는 꿈을 꿉니다. 그 꿈 속의 나는 "놀 땐 노는 사나이"이고 "밤이 오면 심장 터져버리는 사나이"입니다. 그곳에서 반짝이 의상을 입고 멋진 여성과 어울리는 싸이는 현실 속에서도 언제나 멋진 변신을 꿈꾸는 "나"를 표상합니다. 그리고, 멋지게 나오다가 망가지는 반전은 꿈과 현실이 결국 구분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답답한 현실에서 늘 광란의 밤을 꿈꾸는 "나"는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만큼 "뭘 좀 아는 놈"입니다. 즉, 현실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나"는 정말 멋진 "강남스타일" "오빠"입니다. 그리고 뮤비는 이러한 꿈을 시각화합니다. 놀이터의 낮잠일 수도 있고, 지하철의 단잠일 수도 있는 그 꿈이 마치 구운몽의 한 장면처럼 이어집니다.
그런데, 뮤비는 이런 꿈을 꾸는 이가 결코 혼자만은 아니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즉,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후렴에서는 소위 군무(떼춤)가 펼쳐집니다. 첫 장면 이후 점점 늘어난 인원은 마지막에 화면을 가득 메웁니다. 이러한 군무는 전작 롸잇나우(right now)에서도 볼 수 있듯 싸이 뮤비의 특징이기도 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군중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어 공감을 얻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결국 뮤비의 내용은 평범한 "나"가 멋진 사나이가 되어 한 판 잘 노는 꿈으로 평범한 배경과 익살스러운 설정이 심리적 장벽을 낮춤으로써 공감대를 비교적 쉽게 얻어내게 해줍니다.
2. 리액션과 패러디
싸이 뮤비가 인기 있다는 것은 단순히 플레이 횟수때문만은 아닙니다. 뮤비를 보며 그 반응을 기록하여 유튜브에 올리는 소위 "리액션(reaction)"이 많은 것도 인기의 증거입니다. 상품으로 치면 일종의 "사용기"나 "개봉기" 또는 영상 "댓글"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좀더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장면에서 웃었는데 남들도 웃는구나 하며 공감을 하기 좋고 또한 리액션 비디오 자체도 하나의 즐길거리가 되기 때문에 "강남스타일" 뮤비에 대한 인지도가 더욱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패러디 역시 중요합니다. 뮤비의 일상적 배경은 일반인들로 하여금 비교적 쉽게 따라할 수 있게 해주어 패러디의 가능성을 높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패러디는 국내에서 "대구스타일"이나 "홍대스타일" 뿐만아니라 해외에서도 "미국스타일" 등으로 이어졌고, 여수엑스포2012나 예천곤충박람회 등의 행사홍보를 위한 "자봉(자원봉사)스타일" 등을 만들어내기도 하였습니다. 패러디가 유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오리지널 음원이 그대로 사용되었음에도 저작권 문제가 불거지지 않은 점도 중요합니다. 이는 기획사 입장에서 이러한 패러디가 가수의 홍보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아무튼 이러한 리액션과 패러디는 대부분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인기의 증거이자 상승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강남스타일"의 사회적 의미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결국 점잖은 이들의 내재된 욕망이 막상 현실화되었을 때 얼마나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우스꽝스러움에 대한 거리감이나 혐오감보다는 오히려 공감대를 얻어내는 데 성공하고, 현실의 다중성과 여유를 찾아내려 시도합니다.
때론 현실 도피적이지만 결국 현실에 발디딜 수 밖에 없음을 유쾌하게 비꼬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 꿈의 상징인 "강남"에 대한 강한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싸이의 뮤비는 모든 이들이 취직하고 싶어하고, 놀고 싶어하는 꿈의 공간 "강남"이 현실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그저 꿈일 때가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컨대, "강남"의 대표명소인 "강남역"에는 매일같이 "강남"을 향해 수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데, 실상 그들이 발견하는 것은 서로 똑같은 처지의 촌티 작렬하는 "강남스타일" 군중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욕망의 뒤틀기는 현실적 재인식으로 연결됩니다. 박정희 시대에 서울의 신도심을 표방하며 개발된 강남은 우리나라의 압축적 근대화와 한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공간이자 성공한 자본주의적 공간의 롤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으로부터 "강남"은 추억과 현실의 공간이 되기보다는 과거와 단절된 성공과 욕망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강남스타일"은 추억과 현실을 부정하는 대신 성공과 욕망을 추종하는 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강남스타일"은 "될 수 있는 것"을 부정하고 "되고 싶은 것"과 "되어야만 하는 것"을 추종합니다. 낮보다 밤을 더 좋아하고 일보다는 놀다가 미쳐버리는, 뭘 좀 아는 사나이가 "강남스타일"인 이유는 바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개발도상국을 벗어나 선진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어쩌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이런 "강남스타일"형 인간일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강남스타일"을 외치는 싸이 스스로가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것처럼, 욕망만을 지향하는 대한민국도 어쩌면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지도 모릅니다.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다면 우리가 웃어넘기는 그 장면 속 그 어딘가에는 분명 우리 스스로의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움이 숨어있지는 않은 지 돌아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