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문학동네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지난해 겨울 '빨강머리 앤'이 그려진 손가방과 함께 이 책을 선물로 받았다. 철없던 나를 책의 세계로 입문시킨 친구는 삼십년이 흐른 후에도 책으로 나를 자극시켰다. 좋은 친구가 좋은 책이 되는 것을 불현 듯 알게 되었다.
저 유명한 <공산당 선언>을 패러디한 것 같은 <개인주의자 선언>, 제목부터 이미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어딘가로 부터 훌훌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이탈의 두려움만큼이나 구속의 안온함을 즐기는 양가감정을 지닌 존재. 남을 의식하던 오래된 불치병에서 이제는 걸어 나오라는 주술사의 주문 같기도 했다. 누군가 이런 지시를 내려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 내 깊은 어딘가에 나도 모르게 자라던 염증이 시원하게 까발려진 기분, 그것은 내 인생의 화두였다.
무엇보다 쉽게 풀어 쓴 글쓰기는 우리 사회 권력의 최상층이라는 법조인의 글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개인의 소시민적 성향을 넘어 사회의 문제로, 나아가 미래를 연대하는 주제의식까지 확장하는데도 친숙한 어조를 유지했다. 사실 소설 쓰는 판사는 우리 사회에 얼마나 낯선 사례인가. 그러면서도 영화나 책 같은 감상적인 분야에서는 직업의 객관성을 적절히 구사한 덕분에 신뢰감을 높였다. 그가 추천한 책이나 영화, 음악 이야기까지 무엇 하나 솔깃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 책을 추천한 손석희 앵커의 말처럼, 그냥 그런 책들 속에 묻히지 않기를 충분히 바랐으니 책을 선물한 친구의 마음까지 덤으로 알았다.
책을 알기 전에는 이 법조인의 이름을 알 턱이 없었다. 살아온 내력이 그 분야와 친숙할 수도 없었지만, 의외의 분야에서 저자를 접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지금 우리 사회를 들끓게 하는 검찰 성추행 사건. 소위 낮에는 정의를 부르짖고 밤에는 불의를 저지르는 법조인의 추한 이면이 만천하에 알려진 대한민국 권력의 민낯을 확인한 사건이었다. 외신에서 비롯된 '미투(Me Too)'운동을 넘어 차라리 '미 퍼스트(Me First)'운동을 제안한 사람이 바로 문유석 판사였다.
"나부터 그 한 사람이 되겠다.... 앞으로는 더 노골적으로, 가혹하게, 선동적으로 가해자들을 제지하고, 비난하고, 왕따시키겠다. 그래서 21세기 대한민국이 침팬지 무리보다 조금은 낫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겠다"는 글을 자신의 sns에 게재하였다. 참고로 인간과 침팬지의 야만성을 비교한 대목이 책의 말미에 등장한다. 영장류 중 가장 포악한 종으로 알려진 침팬지를 인간의 본성이 90%나 닮았다는 대목이다. 우리 인간이 인류 문명이라는 허울을 벗었을 때 얼마나 쉽게 그 야만성을 드러내는지를 경고한 내용이었다. 특히 '이 야수를 문명의 굴레에서 풀어준 것은 무소불위의 정치권력'이라고 한 마지막 대목은 현 세태에 대한 놀라운 선구안으로 비쳤다.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집단 우선의 사회 분위기가 군대의 수직적 가치관을 모델로 하였다는 사실 확인은 간명하였다. 오랜 세월 체화되었기에 당연하게 받아들인 현상을 오히려 쉽게 정의내린다는 것이 어려울 것임에도, 막연하던 것을 구체적으로 콕 집어내는 집도의처럼 생생히 전달해주었다. 획일화와 서열화는 외관이 실질을 좌우하는 사회를 낳았고, 약자 우위에 서기 위한 ‘갑질’과 남들 눈에 비치는 내 모습에 대한 집착이 집단주의의 병폐라는 지적이었다. 남을 의식하는 것이 소심한 인간의 당연한 심리라 생각해오던 사고의 한계를 발견함과 동시에 마음이 놓였다. 한 개인의 치부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내력이라는 사실이.
이러한 집단조직에서 개인주의야말로 어쩌면 불온한 사상처럼 여겨질 법하지만, 근대 계몽주의, 합리주의와 함께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룬다는 것으로 충분히 설득력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교과서적인 나열보다 가장 공감하고 싶은 부분은 개인주의자가 곧 ‘자유주의자’라는 시각이었다. ‘마왕 혹은 개인주의자의 죽음’에서 신해철을 향한 그의 오마주는 대중음악인이기에 앞서 한 ‘자유주의자’에 대한 추모의 성격이었다. ‘훌륭한 사람보다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행보를 기억하는 동시대인으로, 꼰대보다는 자유로운 마왕으로 살다간 그의 후일담은 어찌 그리도 아름다운 것들뿐인지. 자신의 자유를 존중받으려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는 관용의 정신과 팔리든 말든 내 나름의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론이 일직선상에 놓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기 계발의 함정’에서는 언젠가 본 영화 ‘위플래시’를 소재로 예술적 광기에 도달하기 위해 정신적 폭력을 가하는 인간의 가학성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맹목적 노력보다는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정당한 노력이 보상받지 못할 때에는 구조에 대해 분노하라는 주문을 잊지 않았다.
비단 개인주의자의 행복뿐 아니라 집단주의의 병폐 속에 혼재한 모순된 사회를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설명하였다. 좋은 의도가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처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서늘한 조언도,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을 때 자신의 처지에 만족한다’거나 ‘철저한 비관에서 출발하면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느껴봄직한 문구들이 적잖은 경험을 내포한 듯 보였다. 특히 국어학의 커리큘럼에 소개된 권장도서 목록들이 시대를 해석하지 못하는 실정언급은 필요해 보였다. 냉정한 ‘팩트’ 집합으로 보이는 신문기사보다 주관적인 내면고백 덩어리인 문학이 실제 인간이 저지르는 일들을 더 잘 설명한다는 ‘문학의 힘’은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루키는 픽션을 읽어본 경험의 부재가 엘리트 과학도를 광신도로 만들었다’하였던가.
일명 ‘좌우자판기’를 철거해야 한다는 중립적 가치관도 꼭 필요한 핵심이라 할만 했다. ‘이념 문제 아닌 것을 이념 문제화하는 강박증’을 지적한 것이었다. 실제적으로 필요한 토론과 의사결정을 방해한다는 것과 삼인성호설 등이 근거로 제시되었다. ‘이념 코스프레’야말로 이념의 꼬리표에 불과하고 문제보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저의 자체를 의심하는 사회를 지극히 냉정한 시각에서 좌우를 비판하였던 것 같다.
한국사회의 윤리관을 두고 조폭의 의리 수준이라 말한 대목에서는 우리 안에 내재된 힘의 논리에 따라 나쁜 짓을 해도 끝까지 나를 배신하지 않는 공범의 사회를 직시하게 했다. 더욱이 소시민들이 가당치도 않게 조직의 보스에 동일시하고 동정하는 웃픈 세상이란 것. 제보자는 진실을 밝히는 계기일 뿐, 한 점 티끌 없이 고결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냉철한 안목에서 내부고발자야말로 권력을 긴장하게 하는 감시자의 자세라 하였다. 눈먼 의리와 비난을 감수할 용기 사이에 개인의 잣대가 놓일 것이다.
흑인 밀집지역 사회를 통해 인종간 계층간의 괴리를 내다본 ‘케임브리지 다이어리’를 통해서는 아메리칸 드림의 위기를 넘어 단일민족 순혈주의가 붕괴된 우리의 근미래상을 고민스럽게 내다보았다.
☞ ‘인간사회는 참 묘해서 교과서처럼 정의가 늘 승리하지도 않고, 거기 앞서 무엇이 정의인지도 정의하기 어렵고, 분명히 선의에서 비롯한 정책이 오히려 사람들의 고통만 심화하기도 하고, 인간의 능력과 노력에는 슬프지만 많은 격차가 있고, 빈곤과 불평등에는 사회가 책임질 부분도 있지만,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책은 참으로 다채로운 사건들을 전시하였다.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교수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는 오랜 역사를 거듭하는 동안 인간의 폭력성을 제어하며 평화와 공존을 모색했다는 진보성을 제시했고, 인도네시아 대량학살 사건을 다룬 다큐멘타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에서는 무지와 야만이 공존한 인류문명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하였다. 오랜만에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에세이를 읽은 후의 감상이 이와 같을 것이다. 이기적 개인주의자가 아니라 합리적 개인주의자라면 나와 세상의 거리를 적절히 유지하라는 조언으로 받아들인다. 책의 후반부로 가면 핀란드 인의 언행일치에 대한 예를 드는데, 어딘지 어눌한 유머가 인상적이었다.
☞ 핀란드인 두 명이 코냑 열 잔 정도를 침묵 속에 비우며 백야에 지평선 따라 움직이는 태양을 구경한다. 마침내 한 명이 중얼거렸다. “하늘 멋지군.....” 그러자 다른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여기 술 마시러 왔지 종일 수다 떨려고 왔나!”
‘이 책 지극한 개인주의자 되려고 읽었지, 집단주의자 확인하려고 읽었나!’ 그러나 한 꼭지씩 읽다 올려다본 하늘은 정말 멋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