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선사및 원시미술..
"미술(ART)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미술가(ARTIST)가 있을 뿐이다."
공감하는 곰브리치의 글 옮겨보면서 서양 미술사 개괄을 시작하기전 저의 생각부터 나열하고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미술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관점이나 기준이 틀리며, 광의의 정의로는 회화뿐아니라 조각 건축 구성도 미술의 일부입니다.
미술에는 또한 철학적이거나 사회적인 요소들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 글을 통한 의미의 전달이 아닌 시각적인 의미로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세월의 흐름에도 인간 본성의 욕구는 크게 변한것이 없어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일반 대중들의 취향 또는 편견이 시대의 정신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합니다.
화가들이 살아 생전 동시대 사람에는 인정받지 못하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인정 받는것도 이런 인간 근본 속성의 잔인함에 따른 영향인지도~~
개인의 기호에 따른 다양성도 무궁무진하여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는 작품을 보기는 힘들지만
시각만으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다양한 화풍들이 지속적으로 변화의 기류속에 등장하였기에 본인만의 선호에 따라 취사선택하여 감상하더라도 시대적 배경과 화가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는 알아야 유익한 감상의 시간을 가질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시대구분에 따른 미술사의 정리라는 버거운 명제의 글을 적고 있기에 제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미술사관을 피력하고 시작합니다.
선사시대의 역사적인 분류로는 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 때로는 철기시대를 포함한 문자가 없이 유물이나 주거 환경으로 유추하는 시기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문헌과 사료가 나타나는 시대는 지역에 따라 현저하게 다르고, 또 아프리카 등에서는 실제로 무문자 사회가 있기 때문에 선사시대 미술의 양상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되며 인류가 주거를 한 유럽, 아프리카, 인도, 오세아니아, 아시아등 대륙의 각지에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대부분 돌등 자연적인 재료에 묘사를 하였습니다.
서양의 미술사이니 선사시대도 서구 위주로 자료를 정리하여 제가 아는 범위내에서 간략하게 소개하려고 합니다만 후술하듯이 학술사라고 하는 것이 고리타분하고 제가 예술을 공부한 전문 학자가 아니기에 간단하게 "간"만 보고 대표적인 유적을 소개하면서 갈무리하려고 합니다.
유럽의 선사 미술의 태동은
구석기 시대 미술이며 기원전 3만~1만년의 시대로 학술적으로 올리냑, 솔류트레, 마들렌으로 분류되는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아래의 3종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1)동굴미술: 동굴내부의 암벽에 그려진 채화나 각화(암면화).
(2)바위그늘미술 : 햇빛이 들어오는 바위그늘의 암벽에 새겨진 부조.
(3)동산미술: 독립된 돌이나 뼈·흙으로 만들어진 환조 등에 입힌 채화, 각화, 부조이며 운반이 가능한 유물~~
선사 미술 유적은 전유럽을 거쳐 시베리아의 바이칼호 부근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분포하는데, 특히 유적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 남프랑스와 북스페인의 칸타브리아 지방이기 때문에 유럽의 구석기시대 미술은 프랑코·칸타브리아 미술이라고도 불리기도 합니다.
유적이 발견된 이래(동산미술은 1833년, 동굴미술은 1879년) 학자들은 제작 목적에 대하여
*모방 충동
*사냥의 여가에 유희 충동 *장식적인 동기등 다양한 "카더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우아하게 당시 사람들의 생활에서 밀접하게 의존하고 있던 동물이나 자연에 대한 주술적 동기 내지 토테미즘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의견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소수 의견으로 유일신앙이라든가 남녀 양성신화에 기초한다는 의견을 수렴하는 추세입니다.
인문학은 말빨 강한 사람이 여러가지 자료를 인용하여 이론을 만드는 학문입니다..ㅎ
주술적 동기를 제시하는 근거..
1)동굴벽화가 모두 동굴 안쪽에 있으며, 주거용으로 사용된 입구 부근에는 없다.
2)전혀 살아본 흔적이 없는 동굴에도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동굴 안쪽의 특정 장소에 여러 동물이 덧씌워져 장식적 효과가 무시되고 있다.
3)산천초목등의 자연현상을 그리는 시도가 전혀 없고, 식용으로 포획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소, 말, 바이슨, 염소, 사슴 등이 즐겨 나타나며 쉽게 포획할 수 있는 물고기, 새, 조개의 표현이 극히 드물다.
4) 임신한 암컷의 표현이 많으며 2마리 이상의 동물이 조합되는 경우는 대부분 암수 한 쌍인 것.
5)화살이나 창을 몸에 지닌 동물이나, 함정 또는 함 穽를 나타낸 도형을 볼 수 있으며 동굴벽화에 인간이 그려지는 경우는 동물 형상으로 가장한 모습을 취하고, 바위그늘부조나 동굴 조각의 인물은 대부분 여성나상이며 유부, 복부, 둔부등이 현저하게 과장되는 표현되며
단독으로 나타나는 사람은 여자 또는 남자의 생식기가 중심으로 표현된다.(프랑코 칸타브리아 미술)
이런식으로 카더라는 "귀신 신나라 까먹는 소리"를 장황하게 펼쳐놓는 것이 인문학의 보편적의 속성~~
어떻게 언어가 탄생했는지 추정만 할뿐 알지 못하는 것처럼 미술의 탄생도 알지 못하면서 세계 각처에서 발견되는 현존하는 유적들을 보면서 추정할 뿐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그림은 결국 문자(상형문자)로 진화하니 탄생부터 그림과 문자는 불가분의
연결 고리를 가졌다고 봐야합니다.
요정도로 생략하고 시대별로 대표적인 유적 몇가지 나열하면서 마무리합니다.
*라스코 동굴..
라스코 동굴(Lascaux Caves)은 프랑스 남서쪽에 있는 동굴이다. 라스코 동굴 벽화는 1940년 마을 소년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뒤, 1979년에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동굴 내에는 기원전 17000년~15000년 경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후기 구석기 시대 그림들이 매우 유명하다.
동굴의 위치는 도르도뉴주의 몽티냐크 마을 근처에 있다.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한지 12년이 지난 1960년부터 푸른곰팡이가 기생하고 석회암 암벽에도 하얀 얼룩이 생기자 라스코 동굴은 1963년에 동굴 벽화의 일반 공개를 금지했다.
그 후로는 정부 기관의 추천장이 있는 전문가에 한해 하루 6명 이내로 동굴 벽화의 관람이 허용되고 있다. 일반 관람객 을 위해서는 동굴이 발견된 바로 옆 장소에 라스코 동굴과 똑같이 모방한 동굴을 만들어 공개하고있다.
*알타미라
알타미라 동굴(스페인어: cueva de Altamira)은 스페인의 세계유산으로서 문자 그대로 옮기면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전망"(high view)라는 뜻이다. 후기 구석기 시대의 유적으로서 야생 동물의 뼈와 사람들의 손으로 그린 암벽화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알타미라 동굴은 칸타브리아 지방의 도시인 산탄데르에서 서쪽으로 30km 떨어져 있다.
동굴의 총 길이는 296m이며 관람로가 설치되어 있다. 여러 방향으로 꼬여 있어 그 높이가 2m~6m 정도 차이가 있다. 카스트르 지형의 일종으로 비스피에레스 산 밑의 지형이 붕괴되면서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고고학자들의 연구 조사에 따르면 동굴 내부의 유적은 대략 18,500~14,000년 정도로 추정되는데 크게는 유럽의 후대 구석기를 지칭하는 솔류트레 문화의 일부에 해당한다.
이 기간에는 대개 야생 동물이 동굴에서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해안가에 접하고 산에 둘러싸여 있어 야생동물이 다수 분포했으므로 동물들이 머물렀던 흔적이나 잔해가 많이 남아있다.
대략 13,000년 전 산사태의 일종으로 동굴의 입구가 완전히 막히면서 흔적이 유지되었다.
인류가 머물렀던 흔적은 동굴의 맨 앞부분뿐이다. 원시인들은 숯이나 황토, 적철석으로 형상을 그리거나 자연 염료를 이용해서 채색 그림을 그렸다.
명암법이 드러나있어 일부 형상에는 3차원의 이미지가 나타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색채가 나타난 천정이 가장 유명한데 두 마리의 말과 큰 사슴, 수퇘지가 그려져 있다.
1879년 아마추어 고고학자이던 "마르셀리노 산즈 데 사우투올라"가 8살 딸과 함께 동굴 조사를 하게 된다.
그의 딸이 아버지에게 "알타미라!"(위를 보라!)라고 소리친 것이 동굴의 명칭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드리드 대학의 후안 비라노바가 함께 현장 조사를 하면서 구석기 시대의 유적임을 알아냈다. 프랑스의 가브리엘과 에밀 카흐탈리아 등이 고고학 전문가로서 현지를 방문했으며 사우투올라가 보관하던 그림을 보게 된다.
그들은 그림이 가짜라고 주장했으며 1880년 리스본에서 열린 선사 문화워크숍에서는 공개적으로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너무나도 뛰어난 그림의 상태 때문에 사우투올라는 심지어 사기죄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1902년이 돼서야 여러 선사시대 그림이 발견되면서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진가가 인정되기 시작됐다. 후에 에밀은 고고학저널에 공개적으로 그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나 정작 그림을 발견해 세상에 알린 사우투올라는 14년전에 죽어 어떤 명예도 누리지 못했다..ㅠㅠ
2020년에 방문을 했는데 코로나의 영향으로 폐쇄되었으며, 지금은 관광센타를 건립하여 그 장소만 일반인들에거 개방하고 있다고 합니다.
*폰 드 곰(Bears' Den)
폰 드 곰은 선사 시대 동굴 사자들의 서식지였던 또 다른 인기 있는 동굴입니다. 동굴 내부에는 곰 뼈 수천 개, 동굴 사자 화석, 인간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사진은 과거 호주 북부 다윈 방문시
카카두의 원주민들의 원시 벽화 지역 방문 사진~~
호주의 생활방식이 해안가 위주인 영향답게 내부까지 투시하는 형식의 물고기, 월라비의 채색 벽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만 호주 정부의 소극적인 홍보로 국제적으로 알려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구번호 국보 285호로 지정된 반구대 암각화가 있어서 과거 국보 답사시 적은 글 링크~~
https://band.us/band/812789
16/post/997
이 정도로 서양 미술사 대장정의 첫
걸음마를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