寫經은 글자 풀이 그대로 성인이 깨달은 진리의 말씀을 담은 경전을 서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경을 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修行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경전을 서사하는 과정에서 성인의 덕화를 입고 진리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返照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경은 수행이자 서예 창작행위이며 이렇게 서사된 작품은 그대로 수행의 결과물이자 지고지순한 예술작품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의 사경은 불교 경전의 서사를 의미했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고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한역의 경전이 주가 되었던 관계로 한글이 창제되기 전에는 한문사경이 널리 행하여졌다. 따라서 寫經은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는 불교 경전을 옮겨 서사하는 행위와 서사된 經卷을 의미했다.
그러나 조선초 세종대왕에 의해 한글이 창제되고 널리 보급됨으로 인하여 한문사경 일변도에서 벗어나 한글사경도 출현하였고, 梵字사경(주로 佛像의 복장에 납입되었던 다라니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도 많이 사성되었던 관계로 우리나라의 사경은 서사하는 문자에 따라 한문사경, 한글사경, 범자사경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다양한 종교가 전래되어 다양하게 신앙이 되는 관계로 불교의 경전뿐만 아니라 모든 성인의 말씀과 종교의 聖典을 서사하는 행위와 서사된 작품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경의 내용에 있어서는 다양한 종교 경전이 그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사경의 시작은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공인된 해인 372년이니 약 1,700년의 장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문화와 예술의 전통은 그저 형성된 것이 아니다. 역사의 진전에 따른 문명의 발달과 문화의 변천 속에서 지식의 축적에 힘입어 인간의 지능이 발달하고, 개성적인 표현의 욕구가 확대되면서 최상의 상징성과 미감을 표현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왔다. 특히 성인의 말씀인 진리를 서사하는 관계로 최상의 청정함과 엄숙함, 장엄함을 추구하는 전통의 바탕 위에서 보다 발전하고 아름다운 예술 영역을 형성함으로써 인간의 성정과 심미감을 최대한 고양시키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수립된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조상들이 축적한 전통사경의 학습과 연구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즉 전통에 바탕을 두지 않고서는 새로운 창작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 전통은 비유하면 굳건한 뿌리와 줄기라 할 수 있다. 뿌리가 튼실하지 못하면 줄기가 튼실할 수가 없고, 줄기가 튼실하지 못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전통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이 없이는 새로운 창작 예술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의 학습은 서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서예를 시작할 때 과거 명필들의 필적에 대한 끊임없는 임서와 연구, 수련, 거기에 이론적인 배경까지 포함하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학습의 바탕 위에서 비로소 개인의 창작 서풍이 형성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말까지 이어진 찬란했던 사경 사성의 전통은 조선초까지는 희미하게나마 명맥을 유지하다가 그 이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통사경에 대한 계승은 차치하고라도 관심과 깊이 있는 연구가 진행되지 아니한 관계로 승려나 서예가들에 의해 주먹구구식으로 사경의 사성이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서예계는 물론 종교계, 학술계 등에서도 아직껏 사경의 기법에 관한 단 한 편의 논문, 단 한 권의 기초 입문서조차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본 연재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진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외길 김경호님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