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름 찾아 떠나는 여행 19>
미꾸리 · 미꾸라지
우리나라 관련 문헌에 처음 미꾸라지가 등장한 것은 1123년(고려 인종 1) 예종의 조의(弔儀)를 위해 고려를 방문한 북송의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입니다. ‘귀인은 육고기(양, 돼지 등)를 먹고 가난한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 미꾸라지, 전복, 조개, 왕새우 등은 귀천이 없이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농촌에서는 추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논에서 물을 빼주고 둘레에 골(도랑)을 내는 작업을 하는데, 이를 ‘도구 친다.’고 합니다. 그때 진흙 속에서 겨울잠을 자려고 논바닥으로 파고들어간 살이 오른 미꾸라지를 잔뜩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가을걷이가 끝난 농가에서 살찐 미꾸라지를 잡아 탕을 끓여 보양 절식(節食)으로 먹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은 ‘미꾸라지를 성균관 부근 관노들과 백정들이 즐겨 먹는다.’고 기록했습니다. 점잖은 양반들은 추어탕을 먹지 않았던 서민의 음식이었습니다. 조선시대 한양에는 청계천 꼭지, 복청교 꼭지. 염천교 꼭지 등이 다리 밑에서 살고 있었는데, 이들 조직은 한양 포도청에서 인가하는 관인(官認) 거지 집단으로 그 우두머리를 ‘꼭지딴’이라 했습니다. 이들은 걸식을 할 때 밥만 빌고 건건이(반찬)을 빌면 안 된다는 철칙이 있어 꼭지 일부가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 걸식해온 밥과 함께 먹었다고 하는데, 이 추어탕이 ‘꼭지딴추어탕’ 또는 ‘꼭지딴해장국’으로 장안에 소문난 해장국이었습니다.
시골 농가에서는 매년 살찐 가을 미꾸라지로 국을 끓여 잔치를 열었는데 이를 ‘갚음 턱’ 또는 ‘상치마당’이라고 했습니다. 상치(尙齒)는 노인을 숭상한다는 뜻입니다. 어렵게 살다 보면 어른들로부터 많은 덕을 보고 사는데, 그 덕에 보은한다는 뜻에서 베푸는 잔치여서 ‘갚음 턱’이라 했던 것입니다. 미꾸라지로 보은하려 했던 것은 그 효능 때문입니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에는 ‘배를 덥히고 원기를 돋우며 양기에도 좋고 백발을 흑발로 변하게 한다.’고 했으며, 동의보감에는 ‘맛은 달고 성질이 따뜻할 뿐 아니라 독이 없어 비위의 기능을 보해주고 설사를 멈추게 한다.’고 했습니다. 성분을 봐도 단백질, 칼슘, 철분, 비타민 등의 함량이 높고 지방은 적습니다.
미꾸라지는 잉어목에 속하는 민물고기로 연못, 논, 도랑 등 물의 흐름이 약한 곳에서 서식합니다. 진흙 속의 유기물을 먹고 자라며 초여름에 산란을 하고 다 자란 미꾸라지의 길이는 20cm 안팎이 됩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탕이나 숙회로 식용해 온 친근한 물고기로 특히 가을에 맛이 난다고 하여 추어(秋魚)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미꾸라지를 한문으로 ‘추(鰍)’라 하는데, 이는 물고기를 의미하는 魚와 미꾸라지가 우는 소리인 ‘추(秋)’를 합성한 것입니다. 가을에 먹는 미꾸라지가 맛이 좋다 하여 붙여졌다고도 합니다.
미꾸라지를 진흙에 산다고 하여 ‘이추(泥鰍)’라고도 하고, 진흙을 찾는 습성이 있다고 하여 ‘습(鰼)’이라고도 합니다. ‘본초강목’에서는 ‘추어(鰌魚)’라 부르는데, 미꾸라지의 성품이 뛰어나게(酋: 두목 추) 튼튼하고 잘 움직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추어인 미꾸리와 미꾸라지는 논메꾸리, 매꾸라지, 미구라끼, 미꼬랭이, 미끄러미, 미끄리, 밑구리 등의 방언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미꾸리의 이름은 미끌미끌한 몸(비늘)을 갖고 있어서 미꾸리, 미꾸라지로 불리었다는 설도 있지만 미꾸라지의 어원은 '밑 구리다'입니다.
미꾸리와 미꾸라지는 물속에 산소가 적어지면 물 밖으로 입을 내밀며 숨을 쉬는데 이 산소를 장에 저장해서 간직합니다. 이것을 장호흡이라고 하는데 이 때 산소가 항문으로 나오면서 방귀처럼 공기방울이 나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미꾸라지가 들이마신 공기를 항문으로 내보내는 것을 옛 사람들은 방귀를 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밑이 구린 물고기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밑 구리다’에서 ‘미꾸리’가 된 것입니다. 미꾸리의 또다른 특징으로, 비가 오면 활발하게 헤엄을 치는데 그것을 보고 비가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여 ‘기상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미꾸리와 미꾸라지는 모두 추어라 부르지만, 실제 두 종은 다른 종입니다. 미꾸라지는 일반적으로 꼬리 부분이 납작해서 ‘납작이’로 불리는데, 미꾸리보다 커서 150mm 안팎의 것들이 많고 200mm가 넘는 것들도 흔히 발견되고 있습니다. 미꾸리는 미꾸라지에 비해 작고 몸이 동글한 원통형의 모습이어서 ‘동글이’라고도 불립니다, 미꾸리는 대부분 100-170mm로, 200mm가 넘는 것은 극히 드뭅니다. 둘 다 입가에 수염이 있지만 미꾸라지가 수염이 훨씬 길게 나 있습니다. 추어탕 감으로 미꾸라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더 빨리 자라기 때문인데, 미꾸리보다 맛이 떨어집니다.
미꾸라지가 몸을 지키는 데는 미끈미끈한 점액질이 큰 역할을 합니다. 물 밖에서는 몸이 마르지 않게 하고 적에게 공격을 받으면 몸을 미끄럽게 하여 재빨리 도망을 칩니다. 진흙 속의 유기물, 식물, 지렁이 등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 것도 미꾸라지의 뛰어난 생명력을 뒷받침합니다. 못된 사람이 악한 일을 하는 경우를 빗대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놓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그것은 진흙을 좋아하고 흙탕물을 좋아하는 미꾸라지의 속성 때문입니다. 미꾸라지는 웅덩이 안에 사는 생명체들에게 숨통을 트여 주고 물을 정화시키는 이로운 동물입니다. 또 미꾸라지 한 마리가 하루에 천 마리의 모기 유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탁월한 모기 방제 효과도 있습니다.
*** 중국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바다 깊은 곳에 사는 몸길이가 수천 리 되는 미꾸라지의 숨결이 썰물과 밀물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이 바다 미꾸라지가 죽어 뭍으로 나온 것을 한 백성이 먹고 갈비뼈로 다리를 놓았다가 큰 화를 불러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미꾸라지를 신성시하고 공양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