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걷기 예찬
김재근
싱그러운 초여름 날씨, 초록이 세상을 물들이는 상쾌한 날이다. 무작정 어디라도 걷고 싶은 충동이다. 걷는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기본이다.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걸으면서 세상을 터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처럼. 발로 걸으면서 세상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감상할 수 있다. 문명이 발달한 요즈음이야 자동차나 비행기 기차 등 온갖 이동 수단이 있어 걷기가 조금 불편해도 멀리 갈 수가 있지만 인간의 원초적인 이동 수단은 걷기부터 시작한다.
필자는 요즈음 걷기와의 전쟁 중이다. 평소에는 걷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걷고 뛰어다니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나이 60에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여 4시간 22분의 기록으로 몇 번 완주한 기록도 있다. 3월 초, 아직은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추운 날씨에 서울 광화문에서 남대문 청계천 종로와 천호대로 그리고 잠실대교 석촌 호수등을 거쳐 잠실운동장까지 42.195km 동아 국제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기록이다. 머리에서 땀이 나서 머리카락에 고드름이 달려 있어도 모를 만큼 석촌호수까지 약 37km 구간은 엔도르핀이 흐르는 상쾌한 코스였다. 이후 대명고 부근에서는 점점 힘이 들어 내가 스스로 왜 이리 괜히 고생을 하는가 싶었는데, 잠실 운동장 약 2km를 남겨두고 거리의 응원이 기운을 차리게 했다. 다시 완주해야 하겠다는 의욕이 충만하고 기운이 재충전 되어서 드디어 잠실운동장 스타디움 결승선에 골인을 했다.
그리고 약 6개월, 첫 번째 걷기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유럽 10여 일 해외여행을 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10여 시간 동안을 갑자기 허리가 아파서 앉지도 서 있을 수도 없는 극심한 통증으로 고통을 당해야 했다. 집에 와서는 5m도 걷지 못하는 환자가 되었다. 매일 달리던 사람이 걷지도 못하는 절망감으로 변했다. 남들이 일상으로 그냥 걸어 다니는 게 얼마나 부러운지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그로부터 정형외과 신경외과 한의원 체육관 등 허리 치료에 좋다는 곳을 수소문해서 다니기를 4, 5년이 경과되었다. 어떤 곳은 써먹을 만큼 써먹었으니 집에 있으라는 정형외과 의사도 있었다. 병원에서 MRI 촬영을 하니 허리의 신경이 완전히 막혀 있다며 척추관 협착증이라고 했다. 꼬리뼈로 시술을 받았으나 고통은 그대로였다. 어느 곳에서 처방된 약을 먹고 아파도 이를 악물고 걷고 또 걸었다.
10m, 20m, 100m, 1km, 2km, 이런 식으로 늘려갔다. 고덕에서 천호동을 돌아 다시 고덕으로 돌아오는 훈련도 하고 고덕에서 일자산을 돌아 고덕까지 오는 훈련도 했다. 산악회를 따라 설악산, 오대산, 지리산 등을 다닐 수 있었다. 지리산 둘레길 285km도 걸었다. 약을 먹고 다녔으나 걷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서울 둘레길 156.5km를 65회 완주까지 했다. 여럿이 혹은 혼자서 걷는 일이 많았다. 시간이 나고 배낭 하나면 그냥 산으로 오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걷기는 일상화되었고 어느 곳이든지 자신이 있었다.
우리 동네는 봉화산이 있다. 옛날 봉수대가 있던 곳, 해발 160m의 그야말로 뒷산이다. 숲으로 이루어진 맑은 공기와 서울을 볼 수 있는 전망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고려시대 시인 이조년의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라는 시조비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허리에는 드문드문 배나무 농장도 있고, 근래에는 옹기테마공원이란 이름도 얻었다. 옹기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고, 테마공원 중턱에는 카페도 있고, 정상까지 데크로 만들어져 있어 장애인도 오르기에 부담이 없도록 되어 있는 곳이다. 이런 곳을 필자는 요즈음 4번 이상 쉬어야 오를 수 있다. 왜냐하면 2025년 11월, 갑자기 발바닥이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의 통증으로 걷기가 불편한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는 두 번째 걷기와의 전쟁인 셈이다. 약 500m를 걸으면 다리와 발바닥에 힘이 없고 쓰러질 듯한 느낌으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 병원에도 다니고, 몇 시간 소모하면서 한의원에도 다닌다. 신경이 잘못되어 치료에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와 완치가 어렵다는 말을 듣는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면 모든 걸 내려놓고 버려야 한다고 했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라고. 필자도 그런 각이다.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치료를 하고 걸어야 한다는 각오다.왜냐하면 인간은 걸어야 하고 걸어야 하는 숙명을 지닌 인간이니까. 걸으면 생각이 나고 생각을 하려면 걸어야 하니까. 필자가 혼자 산에 올라서 명상을 하거나 걸을 때는 잊었던 기억을 다시 찾을 수도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동기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숲이나 길을 혼자 걸으면 오감이 발동하여 시상도 떠오르고 글을 쓸 수 있는 소재도 발견되기도 한다.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평생을 걸었다. 프랑스의 '자르빌'에 걷는 랭보의 동상이 있다. "난 그저 걸 다니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라며 걷다가 일생을 마친 시인이다. 장 자크 루소도 "걸어야만 정말로 생각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걷는다는 건 행복의 근본이다. 자신의 몸이 건강한 사람은 걷는 행복을 잊고 지낸다. 단지 운동이나 이동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몸이 불편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요즈음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휠체어를 탄 사람이 지하철을 타던지 다른 운송 수단을 이용하려면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이상의 불편함과 수고로움을 겪는다. 병원 침상에 며칠만이라도 누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걷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안다.
싱그러운 산에 가고 싶다. 배낭 하나 메고 서울 근교의 산을, 6개월 전에 다녔던 도봉산의 신선대, 북한산의 백운대, 그리고 서울 둘레길 각 코스를 오늘부터라도 마음대로 다니고 싶다. 숲이 주는 넉넉한 정과 순수한 마음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
김재근
2014년 수필과비평> 수필 등단, 2017년 <인간과문학>한국문인협회, 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저서: 수필집사람은 길을 내고 길은 역사를 쓴다」, 「걸으며 생각하며」시집 「삶의 의미」, 「문사동 가는 길」, 「아침을 여는 형사의 이메일: jkime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