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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風流)와 도학(道學), 호남가단과 영남가단
홍영수 시인(jisrak)
2024. 7. 16. 20:44
오래전부터 여유 시간을 활용해 전국의 문화유적지를 답사했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럴 때마다 갔던 곳의 시대와 역사적 배경 등을 깊게 통찰하는 편이다. 20여 년 전, 담양지방의 소쇄원과 면앙정, 식영정, 서하당, 부용당 등을 안내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영남지방의 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외 많은 곳을 다녔었다. 그때 생각나는 것이, 호남지방은 정자(亭子) 문화가, 영남지방은 서원(書院) 문화가 발달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쩜 이러한 현상이 호남가단과 영남가단의 분별 적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가단(歌壇)의 형성은 문학, 특히 시조 문학을 사유하는 방식의 차이를 읽을 수 있다. 시조라는 장르는 세계를 자아화하는 특성의 개인적인 문학이다. 시조의 발생시기와 기원에 대해서는 학자의 견해에 따라 달리 해석한다. 이런 시조 문학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의 한 장르이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시인들에 의해 창작되고 있고 전승되어야 할 우리 고유의 시가 문학이다.
특히 가단의 형성 당시의 시조는 벼슬을 벗어나고, 도성을 벗어나 지방 향리에 머물면서 자연을 벗 삼아 심성을 갈고 닦을 때, 또한 문우들과 교류할 때 매우 중요한 문학의 한 장르였다. 이러한 흐름에서 소위 말하는 가단이라고 하는 것이 형성되는데 가단은 노래를 읊조리는 문인의 집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가단이 형성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자연환경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은 자연환경이 문학과 예술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영남지방에서는 강호에 노닐면서 사대부로서, 유학자로서, 선비로서 추구해야 할 도리를 찾고, 도학적 기풍의 시조를 지으며 강호가도의 길을 걷는 경향이 있었고, 또한 이러한 바탕에서 시조 창작을 했다. 대표적 인물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농암 이현보, <오륜가(五倫歌)>를 지은 주세붕, 그리고 그와 교류했던 퇴계는 강호에 노니는 즐거움을 찾으면서도 결코 완세불공(玩世不恭)에 빠지지 않은 온유돈후한 강호 한정의 내실을 거두었다. 그는 사물에 접하는 감응과 학문 수양에 대하는 자세와 마음을 노래한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은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이다. 예전에 답사했던 도산서원, 그곳에서 퇴계는 후진들을 양성하고 주자의 무이정사를 본받아 천석고황(泉石膏肓)과 강학, 사색으로 보냈던 세월 속에 문학성이 잘 드러나 있다.
영남가단과 달리 호남가단은 세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를 합리화하지도 않으면서 작품을 통해 감화를 드러내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했다. 특히 풍류 정신에 깃든 시조를 자연을 벗 삼아 창작했던 사림들이다. 그렇기에 영남가단의 도학적인 측면보다는 소재나 표현기법에서 규격과 정형화된 형식, 격식을 벗어나 천인합일, 즉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될 수 있는 학풍을 견지했다. 대표적 문인들이 면앙정 송순을 비롯해 서하당 김성원, 퇴계와 사단칠정 논쟁을 했던 고봉 기대승, 그리고 송강 정철과 백호 임제 등이다. 특히 면앙정 송순은 도리에 얽매이지도 않으면서 풍류적인 삶을 추구했다. 또한 그는 거문고도 타고 음악에 대해 깊이가 있었으며 일생을 시가와 풍류를 누리는 당대 최고의 풍류가객이었다.
十年을 經營야 草廬 한 間 지어 니
半間은 淸風이요 半間은 明月이라
江山은 드릴 업니 둘너 두고 보리라
- <면앙정가(俛仰停歌)>
특히, 필자가 좋아하는 그의 작품이 <면앙정가>이다. 초가삼간을 산속에 짓고, 그곳에 달과 바람과 한 몸이 되어 청빈한 삶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십 년을 계획해서 지은 집, 비록 초가집일지언정 자연과 강산을 두루 둘러보며 아름다운 경치에 몰입한 그의 심정, 그것이 바로 작품 속에서 면앙정이 추구하는 풍류의 도가 아닌가 한다.
영남가단을 대표하는 농암과 퇴계, 그리고 호남가단을 대표하는 면앙정과 송강, 이 두 가단은 같은 사람파이면서도 추구하는 방향은 달랐다. 영남가단은 선비로서 마땅히 실행해야 할 도리를 찾는 시조 창작에 의미를 두었다면, 호남가단은 영남가단과 달리 작품을 통해 감화를 나타내면서 도리에 충실하기보다는 풍류 자체를 즐기는 강호가도를 구현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영남가단은 비록 자연에 묻혀 있지만, 사대부로서 현실정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벼슬에서 멀어지는 것에 대한 한스러움도 묻어있다.
두 가단의 특징을 보면 호남가단은 자연을 즐기면서, 풍류적 가풍으로 규범적인 수사를 배격하고 직접 경험하는 것을 생동감 있게 드러내는, 비교적 짧은 시조 시 형식의 표현기법으로 창작했다면, 영남가단은 자연을 통해 심성을 닦으며 다소 도학적인 자세로 시문보다는 도학의 사상적 표현을 중시하는 태도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심에는 호남가단은 송순, 정철, 김성원, 임제 등이 있고 영남가단에는 이현보, 주세붕, 이황 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는‘가단(歌壇)이라는 동일성에서 두 가단(호남가단, 영남가단)이라는 차이성에 대해 우리의 감각과 사고의 영역을 넓혀보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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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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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俛仰停)' 오르는 길, 사진/홍영수 2007?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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