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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말고 결혼] 03
S#1. 기태 집 화장실 안 N
욕실 밖으로 축 늘어진 기태의 팔. 쿵...!
S#2. 기태 집 현관 밖 N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쿵쿵 두드리는 장미. 쿵...!
S#3. 기태 집 거실 N
황급히 싱크대에서 식칼을 집어 드는 장미. 쿵...!
S#4. 화장실 안 N
쿵!!! 문 밀고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장미.
욕조에 죽은 듯 축 늘어져있는 기태.
화장실 바닥에 챙그랑....! 떨어지는 식칼.
장미 : 공기태...!!!
S#5. 타이틀 <연애 말고 결혼> “제3회. 혼자서도 행복하기, 아니 살아남기”
(칠판에 분필로 써지는 글씨. ‘행복하기’ 썼다가 슥슥 지우고 ‘살아남기’)
S#6. 장미 집 앞 N
얼음동상처럼 꼿꼿이 서있는 신봉향, 매서운 눈빛으로 낙후된 동네 분위기며 낡은 주택의 상태 등을 살핀다.
그때, 대문 열리며 나서는 나소녀.
나소녀 : (혼잣말로 장단 넣어 툴툴대는) 에유 지긋지긋한 거.. 에유 지겨운 거..
신봉향 : 실례합니다. 주장미씨.. 어머님 되시나요?
나소녀 : (일단 경계하며 퉁명스럽게) 그런데요? (누구지? 쳐다보면)
신봉향 : (품위 있는 미소)
마주 선 두 여자 위로 자막 “사건 발생 2일 전”
S#7. 도로, 달리는 기태 자동차 N
이리 저리 차들을 추월하며 서둘러 달리는 기태 자동차.
장미 : 솔직하게 다 털어놓는 거죠?
기태 : 내가 알아서 할게요.
장미 : 일 더 크게 만들지 말자구요.
기태 : 알아서 한다니까.
장미 : 어른들 기분 안 상하게 잘..
기태 : (자르고) 글쎄 나한테 맡겨요. (홱 핸들 틀면)
S#8. 장미 집 거실 N
주방에서 쟁반에 주스를 받쳐 들고 나오는 나소녀, 퉁명스럽던 얼굴 간 데 없고 과하게 상냥한 미소.
나소녀 : (신봉향 앞에 주스 놔주며) 대접해드릴 게 아무것도 없네요.
신봉향 : 실례인 줄 알면서 이렇게 갑자기.. 정말 죄송합니다.
나소녀 : 평소 같음 가게 나가 있을 시간인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게으름을 피우고 싶더라구요 아랫배도 싸르르 아프구.
이게 다 사부인 만나라고.. 호호호.
신봉향 : (사부인...?)
나소녀 : 아무튼 잘 오셨어요. 장미 얘가 결혼할 남자 데려온다고 큰소리 뻥뻥친 게 언젠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어서,
저도 참 답답하고 궁금했거든요.
신봉향 : 이거 참.. 죄송하네요.
나소녀 : (웃으며 손사래) 아유 사부인이 죄송할 게 아니라..
신봉향 : (칼 같이 차갑게 자르는) 아니요. 제가 죄송합니다. 우리 애가 결혼 생각이 ‘전혀’ 없거든요.
나소녀 : (설레고 들떴던 마음에 찬물) 결혼 생각이.. 전혀...? 그치만 우리 애는..
신봉향 : 네, 댁에 따님은 나름대로 기대하는 바가 있었을 겁니다.
두 사람.. 입에 올리기 부끄러운 곳에도 종종 드나드는 모양이더군요.
나소녀 : 예에..? (무슨 의민지 잠깐 생각하더니) 뭐라구요? (눈에 확 불이 붙는데)
신봉향 : (정중하게) 죄송합니다. 모든 것이 제 잘못입니다.
나소녀 : (신봉향의 정중한 태도에 말문이 막히고)
신봉향 :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일 텐데, 내버려 뒀다가는 남의 집 귀한 따님 쓸데없이 나이만 먹고 혼기 놓치는 게 아닐지.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어서.. 부끄럽지만 용기내 찾아왔습니다.
나소녀 : 글쎄요, 나는 좀, 이걸 고맙다고 해야할지.. 솔직히 황당하네요!
결혼 생각이 없으면 어떻게든 생각이 들도록 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신봉향 : 왜 아니겠습니까. 해볼 수 있는 방법은 전부 동원해봤습니다만.. 이제는 댁에 따님도 결혼 욕심 내려놨더라구요.
그렇게라도 관계는 유지하고 싶은지.. 안쓰럽게도.
나소녀 : (기막혀 힘 빠지고) 이놈의 기집애, 지 혼자 좋아서 김칫국이었던 거야?
신봉향 : 저도 참 참담하네요. (고개 숙이며)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신봉향, 단아한 자태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그 때, 안으로 들이닥치는 장미와 기태.
신봉향 : ...! (보면)
기태 : (조용히 보며) 어머니,
장미 : (일단 꾸벅 인사하는) 오셨어요?
나소녀 : (벌떡 일어나 잡아먹을 듯) 이놈이 그 레스토랑 사장이니??
신봉향 : ? 지금 뭐라고...?
나소녀 : 아 실례. 근데 이 상황에 놈 소리 안 나오면 엄마도 아니죠!
신봉향 : 그게 아니라 방금 레스토랑 사장이라고..
나소녀 : 왜, 뭐 잘못 됐어요?
신봉향 : 제 아들 녀석은 의사.. 성형외과 의사..입니다만...?
나소녀 : 의사...요?? (어리둥절 장미를 보고)
신봉향 : (눈 가늘게 뜨고 기태를 보면)
장미 : 그게요.. (하는데)
기태 : (불쑥) 장미씨 생각이었습니다. 거짓말한 거.
장미 : (잉? 발끈) 뭐요??
기태 : 장미씨가 워낙 자기주관이 뚜렷해서요. 본인 마음에 확신이 먼저다, 부모님 개입은 원치 않는다,
그러니까 저에 대해선 일절 비밀로 하겠다..
장미 : (왜 저래?)
나소녀 : 건 또 무슨.. 무슨 확신?
기태 : 그러게 말입니다. 대체 무슨 확신이 더 필요하다는 건지. 좋아한다, 사랑한다, 행복하게 해주겠다,
아무리 조르고 매달려도 그 놈의 확신이 필요하다고.. (능청맞게 하소연까지) 저 진짜 힘들었습니다.
나소녀 : 그럼...
기태 : 진작부터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라도 뵙게 돼 영광입니다, ‘장모님!’ (나소녀 앞에 넙죽 큰절 올린다)
나소녀 : ??? (장모님? 얼떨결에 어정쩡한 자세로 절 받고)
장미 : (왜 이래? 미친 거야??) 공기태씨...!
기태 : (일어나서) 알아. 알았어. 내가 더 잘할게. 확신 준다고.
신봉향 : (부글부글) 얘, 너..
기태 : 어머닌 제가 장미씨한테 목매다 나이만 먹고 혼기 놓칠까봐 이렇게 불쑥 찾아오신 모양인데,
불편하셨더라도 이해해 주십쇼. 이만 모시고 돌아가겠습니다. 그럼. (정중하게 인사하고 신봉향을 떠밀 듯 나간다)
나소녀 : (뭐가 뭔지 정리가 안 돼 멍한 얼굴, 만면에 차츰 퍼지는 미소) 어머, 어머, 어머머.. (좋아 죽는) 말도 안 돼! 거짓말...!!!
S#9. 달리는 기태 자동차 안 N
얼음장 같은 침묵이 흐르는 자동차 안.
기태 : (앞만 보고 운전하고) ......
신봉향 : ...... (그 옆에 꼿꼿하게 앉아 정면만 응시하다가 툭) 거짓말.
기태 : (무뚝뚝) 뭐가요.
신봉향 : 언젠 그 애가 결혼하자고 덤빈다며, 고모랑 통화할 때 너 분명히 그랬다.
기태 : 그 말이 거짓말이었죠. 내가 매달린다 그럼 어머니 자존심 상처날까봐. 자존심이 곧 목숨이시잖아요.
신봉향 : 그래서 그 집에서 날 묵사발 만들었니? 나 사망시키려고?
기태 : 그러게 왜 그 집에 가세요. 그냥 좀 지켜봐 달라고 부탁드렸잖아요.
신봉향 : ...
S#10. 호프집 N
문 활짝 열어젖히고 안으로 달려 들어오는 나소녀,
나소녀 : (너무 들뜬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여보!!! (해놓고 헙!)
장미 : (뒤따라 들어오며) 내 얘기 좀 들어봐요.
나소녀 : (얼른 새침하게 장미에게) 니 아빠 좀 불러봐.
주방에서 주경표, 주문서에 뭐라고 휘갈겨서 턱! 내놓는다.
나소녀 : (주문서 집어 들어 보면 “차라리 나오지 말지” 쓰여 있고)
주경표E : 차라리 나오지 말지.
나소녀 : (주방쪽을 곱게 흘기더니, 핸드폰으로 문자 보내는 E) 집에 손님 왔었음. 장미 예비시어머니.
장미 : (나소녀 옆에서 핸드폰 들여다보고) 진짜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는..
문자 확인하더니 눈 휘둥그레 주방에서 달려 나오는 주경표.
나소녀, 주경표는 보지도 않고 계속 핸드폰으로 문자 찍고 있다.
주경표 : (장미에게) 니 예비시어머니가 왔었다고?
장미 : 엄마가 잘못 안 거예요.
주경표 : (띠링.. 문자 메시지 확인하면)
나소녀E : 남자도 왔음.
주경표 : (장미에게) 레스토랑 한다는 놈? 드디어 인사 온 거냐?
나소녀 : (레스토랑 아니야! 말하고 싶지만 자존심에 말은 못하고 손만 휙휙 젓는)
장미 : 아니에요.
주경표 : ?? 아니야...?
장미 : 사실은 내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좀 했거든. 그 사람은..
나소녀, “성형외과 의사” 문자 메시지 쓰는데 마음 급해 자꾸 오타 나고.
나소녀 : (에라 모르겠다! 핸드폰 치우고 확 질러버리는) 의사래!!!!!!
주경표 : (나소녀 보고) 의사? (장미 보며) 그런데 왜 그런 거짓말을..
장미 : (뭔가 말하려는데)
나소녀 : 그것도 성형외과 의사!!!
주경표 :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장미 : 잠깐만요.. (끼어들어 보려는데)
나소녀 : 생긴 것도 아주 멀끔해!!
주경표 : 성품이 좋아야지.
나소녀 : 반듯해! 싹싹하고! 시어머니자리도 살짝 오해는 있었지만 사람 점잖고!
장미 : (이 분들이 왜 이래?) 저기요? 두 분 지금 말 섞고 계시거든요...?
주경표 : (나소녀를 향해 성큼 다가서며) 자세히, 차근차근 좀 말해 봐.
나소녀 : (주경표를 향해 성큼 다가서며)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냐면 말이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썰렁한 얼굴로 바라보는 장미.
장미 : ...
S#11. 호텔 레스토랑 N
훈동 : (테이블에 턱 괴고 멍하니 앉아있다) ......
앞에 놓은 음식 손도 안 댄 채 그대로 놓여있고 맞은편에 앉은 현희, 혼자 조용히 식사하다가.
현희 : 안 드세요? 맛있는데.
훈동 : (퍼뜩 정신 차리고) 아.. 생각할 게 좀 있어서. (포크 들고 깨작깨작 몇 입 먹다가 또 멍해진다)
flashback insert> 1부 봉 위켄드
장미 “사랑도 나 혼자 했구나.. (눈물 한 방울 툭..) 나만 사랑이었구나...!
현희 : 나 쫌 뻘쭘하다. (일어나며) 그만 일어날까요?
훈동 : (얼른 붙잡으며)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자꾸.. 생각이 나서...
현희 : (도로 앉고) 생각만 하지 말고 얘길 해 봐요. 나 얘기 듣는 거 좋아해요.
훈동 : 장미한테.. 미안해서요.
flashback insert> 2부 호텔 야외풀
풀에 빠져 덜덜 떨던 훈동의 손을 잡아주던 장미 “나가자.”
훈동 : 나는 한 번도 날 버리면서까지.. 누군가를 잡아본 적 없거든요.
현희 : 네에.. (끄덕끄덕 공감하는 표정으로 들어주더니) 근데 장미언닌 성형외과 의사랑 잘 되가는 거 같던데?
flashback insert> 2부 호텔 실내 일각
장미 “그래도 한 때는 나, 너한테 진심이었으니까.”
훈동 : 기태한텐 진심 아니에요. 진심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미라면 그런 게 진심일 리 없다구...!
(감성 폭발하는 멜로주인공)
현희 : 아 네에.. (어린 아이 달래듯 끄덕끄덕 귀 기울여주며 피식..)
S#12. 장미 방 N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장미, 이리 누웠다 저리 누웠다.. 심란하다.
flashback insert> 2부 호텔 야외풀.
장미 앞에 무릎 꿇고 구두를 신겨주던 여름..
그 장면 떠올리며 심란했던 얼굴에 배시시 번지는 미소.
그 때 띠링.. 핸드폰에 도착하는 문자메시지. 손을 뻗어 확인해 보더니.
장미 : ......!!! (무슨 벌레라도 본 듯 흠칫 핸드폰 툭 놔버린다)
그 위로 자막 “사건 발생 1일 전”
S#13. 백화점 라커룸 (아침)
장미 : 봐봐! (현희에게 핸드폰을 보여주면)
훈동이 보낸 문자메시지 “자니?”
현희 : (헐..) 이훈동? (장미 눈치 힐끗 보며) 뒤늦게 미련생기나?
장미 : 미련은.. 괜히 찔러보는 거지. 나만 쑤시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막.
파티에서 웬 여자한테 명품선물까지 하더라. 게다가 우리 브랜드던데?
현희 : (옷 갈아입다가 멈칫)
flashback insert> 2부 호텔 야외풀
여자에게 명품 로고 선명히 찍힌 커다란 쇼핑백을 건네는 훈동.
훈동 “(현희에게 쇼핑백 주며) 일부러 여기까지 와줬는데.. 미안하네요.”
현희 : 아.. (혼자만 아는 미소.. 배식)
S#14. 기태 집 침실 (아침)
침대에 잠들어있는 기태. 현관에서 삑삑삑삑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뜬다.
기태 : ?!
S#15. 기태 집 거실 (아침)
안으로 들어서는 신봉향, 날카로운 눈빛으로 안을 슥 둘러보는데.
기태 : (자다 깬 차림으로 방에서 나와서) 또 시작이세요?
신봉향 : (못마땅한) 여태 잠자리니? 씻어라.
신봉향,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뒤지더니 캔맥주, 냉동식품, 인스턴트 따위 전부 끄집어내 쓰레기통에 버린다.
기태 : 그 여자 데려가면 이 집은 제 집이라면서요. 데려갔잖아요.
신봉향 : (그 말에 돌아보더니) 이 집을 지키는 거, 그게 니 목적이야?
기태 : (태연하게) 제가 지키고 싶은 건 주장민데요.
신봉향 : 니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그 말을 믿으라고? (싱크대 뒤져 라면도 전부 쓸어내고)
기태 : 믿기 힘드시겠지만 그 여자 여기도 드나들어요. 사생활은 존중해주시죠. 삼대독자 종손 장가 좀 가게.
신봉향 : (부드럽게 미소) 난 부엌만 봐도 안단다. 넌 이 집에 아무도 들이지 않아.
기태 : 오늘은 수술 있어서 컨디션 조절하느라, 어머니가 운이 좋으셨던 거구요.
이렇게 아무 때고 불쑥 오시다가 원치 않는 장면을 보시게 될 거예요.
신봉향 : (가볍게 코웃음) 나이 꽉 찬 아들놈 반항, 기막혀 더 못 받아주겠다.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이제 좀 벗어나도록 해.
기태 : 어머니야말로 이제 좀 벗어나시죠.. 그 일에서.
신봉향 : (못들은 척) 저녁에 다시 오마. 사람이 먹을 음식이 하나도 없구나. (라면을 쓰레기봉투에 처박는다)
기태 : ... (조용히 한숨)
S#16. 봉 위켄드 D
창가 테이블에 턱 괴고 멍하니 앉아있는 훈동,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자니?” 문자 보냈지만 답이 없는 장미.. 그 뒤로도 “좋은 아침” “장미야...” “뭐해?” “바쁘니?” 줄줄이 보냈다.
훈동 : 왜 답이 없지? 이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고개 들다가 멈칫)
창밖으로 자전거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오는 장미가 보인다.
훈동 : (그럼 그렇지, 씩 번지는 미소) 저 봐.
머리 옷매무새 매만지면서 괜히 책 하나 펼쳐 잡고 폼 잡는 훈동.
장미가 안으로 들어오면 나이스하게 미소 지으며 손을 들어 인사하는데.
장미 : (보자마자 대뜸) 한여름은?
훈동 : 어...? (손 든 채 얼음) 주방에..
장미 : 잠깐 들어가도 되지? (주방으로 쌩 간다)
훈동 : ...?
S#17. 봉 위켄드 주방 D
감자치즈 그라탕(그라탕 도피누와)을 만들고 있는 엄셰프. 얇게 썬 감자에 생크림과 우유를 붓는 모습.
여름, 주방 구석에 선 채로 간단한 파스타 종류로 대충 끼니 때우면서 엄셰프가 요리하는 모습을 기웃거린다.
여름 : 생크림이랑 우유 비율은 몇 대 몇이에요?
엄셰프 : (퉁명스레) 알아서 뭐하게 새꺄. 서빙이나 잘해.
그래도 굴하지 않는 여름, 파스타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깨작거리면서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우는 모습.
장미 : (들어와서 보더니) 밥 먹는 거야?
여름 : 어!! (살짝 반기는 듯하더니, 금세 시선 도로 엄셰프에게) 어쩐 일로?
장미 : 어제 빌려줬던 옷.. 고마웠어. (쇼핑백에 담긴 재킷 건네면)
여름 : (엄셰프의 레시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 떼지 않으며) 거기다 둬요.
장미 : (안쓰러운) 밥을 왜 서서 그러고 먹어..
여름 : 늘상 이래.. (대충 받으면서 눈은 엄셰프에게 고정)
장미 : 그러지 말고 잠깐 못 나가? 나랑 밥 먹기로 했잖아..
여름 : 난 다 먹었는데?
장미 : 어...? (썰렁) 꼭 밥을 먹자는 게 아니라.. (여름 앞에서 시야를 가리면)
여름 : (얼른 휙 비켜서 엄셰프의 요리에 집중하며 성의 없이) 나중에..
장미 : 내가 그쪽 전화번호를 몰라서..
여름 : 내가 알아요. 연락할게.
장미 : ... (뻘쭘.. 머쓱해져서 나가면)
엄셰프 : (그라탕에 치즈 얹으며) 맥주병 들고 난리치던 스토커지? 넌 잡식성이냐?
여름 : 그거 그뤼에르 치즈죠?
엄셰프 : (아 귀찮아!) 넌 여자 요리나 해!
S#18. 봉 위켄드 D
장미, 썰렁한 얼굴로 레스토랑을 나서려는데 그 앞을 가로막는 훈동.
훈동 : (안쓰럽게 바라보며) 안 그래도 되는데.
장미 : 뭘...?
훈동 : 괜히 이 핑계 저 핑계 만들어서 나 보러 오는 거.. 그러지 말라고. 내가 보고 싶으면 그냥 보러 와. 이제 그래도 괜찮아.
장미 : (얘가 왜 이래? 쳐다보면)
S#19. 봉 위켄드 건물 앞 D
퇴근하는 기태, 건물 안에서 나오는데 핸드폰에 문자메시지 온다.
공미정E : 신여사님 출동. 정보료 5만원 입금해라.
기태 : (아 귀찮아.. 하는 얼굴로 문자 확인하는데)
안에서 나오는 장미. 그 뒤로 훈동 따라 나오며.
훈동 : 이번엔 나도 진심이야. 진심으로 니가 짠하고 안쓰러워서..
장미 : (걸어 나오며) 야 고맙다!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네!
훈동 : 괜히 날 세우지 말고. 나도 널 다시 마음에 담도록 노력해 볼 테니까..
장미 : (어이없어 홱 돌아보며) 누구 맘대로 니 마음에 나를 담아?
기태 : (끼어들며) 그러게. 주장미 내 여잔데. (장미 어깨에 척 팔 걸치면)
장미 : !
기태 : (장미 어깨 감싸 데려가며) 그만 가자. 오늘 우리 집에 가기로 했잖아.
장미 : 어...? (잠깐 멈칫했다가 얼른) 어어, 그래! 가자!!
훈동 : 집...?
기태와 장미 차에 타고 출발하면, 멍하니 서있던 훈동도 황급히 자기 차에 올라타면서.
훈동 : 잠깐 기다려!!!
S#20. 도로 / 기태 자동차 안 D
기태 자동차를 바짝 뒤쫓아 오는 훈동의 자동차.
기태가 차선을 바꾸면 악착같이 따라붙는 훈동.
장미 : (기겁해서) 왜 저래? 계속 쫓아와요!
기태 : 성공했네, 복수.
장미 : (씁쓸한 얼굴로 한숨.. 그닥 달갑지 않은)
S#21. 기태 집 앞 D
기태 자동차가 먼저 와 서고 그 뒤에 바짝 붙어서는 훈동 자동차.
후다닥 차에서 내리는 훈동, 안으로 들어가려는 기태와 장미를 막아선다.
훈동 : 니들 쇼하는 거지?? 나 때문에, 나 보여주려고!
장미 : (살짝 뜨끔하는데)
기태 : 보여주기 싫어서 집으로 온 건데? (장미 어깨 감싸 안으로 데려가면)
훈동 : (졸졸 쫓아오며) 말이 안 되잖아, 기태 니가 집에 사람을, 그것도 여자를 데려가? 그것도 주장미를??
나더러 그걸 믿으라고???
하는데 정말 건물 안으로 나란히 들어가 버리는 장미와 기태.
훈동 코앞에서 쿵 닫히는 자동문.
훈동 : (허!!! 웃어버리며 애써 현실부정) 아 놔, 주장미 나한테 밀당하네...!
S#22. 기태 집 앞 복도 D
장미 :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먼저 끝장낸 게 누군데, 버리자니 아깝나?
기태 : 우리 거래 끝내자더니, 버리자니 아까웠어요? 우리 집까지 따라 오구?
장미 : ... (힐끔) 이훈동 저러는 거 정리될 때까지만 좀 도와줘요.
기태 : 훈동이도 나한테 그랬었는데. 주장미 좀 떨어트려 달라고.
장미 : (머쓱) 입장 바꿔 보니까 알겠어요.. 스토커로 고소당해도 싸다 싸!
기태 현관 문 열고, 장미 먼저 들어가라고 문 잡아주면.
장미 : (살짝 망설이다가) 그럼 이훈동 갈 때까지만..
S#23. 기태 집 거실 D
장미 : (안으로 들어서며 휘둥그레) 미혼남 집이 뭐 이렇게 깨끗해?
기태 : 미혼이 아니라 비혼. 미혼은 결혼을 ‘못’ 한다는 뉘앙스가 강하거든. 난 ‘안’ 하는 걸 선택한 사람이고.
장미 : 사람 사는 집 맞아? (이리저리 구경하며 주방으로 가면)
기태 : 아무거나 건드리지 마요.
장미 : (냉장고도 벌컥 열어보고) 아무것도 없네. 비혼남은 밥도 안 먹나?
기태 : (곤두서는) 건들지 말라니까. (냉장고 쿵! 닫으면)
장미 : (선반에 진열되어 있는 고가의 으리번쩍한 커피 핸드밀 집어 들고) 커피라도 좀 줘 봐요.
기태 : (뺏어서 제자리에 각 잡아 정돈하며) 쓰는 물건 아니에요, 보는 물건이지.
장미 : (뭔가 발견하고 쪼르르 거실 쪽으로 가며) 우와! 이런 것도 있네??
한쪽 구석에 장식용으로 놓여있는 골동품 턴테이블. 그리고 소장용으로 포장도 뜯지 않은 레코드판.
장미 : (레코드판 집어 들고) 의외로 이런 취미도 있고?
기태 : (얼른 쫓아와 뺏어서 제자리에 정돈) 눈으로만 보라니까!
화려하게 꾸며놓은 해수어 수족관.
장미 : 니모다! (해수어 수족관을 손끝으로 톡톡 건드리며) 니모야 안녕?
기태 : 니모가 아니라 흰동가리! (수건으로 장미 손가락자국 문질러 닦고)
장미 : (어우 깐깐하게.. 흘겨보더니 저쪽으로 가고)
기태 : (수족관 박박 문질러 닦고 돌아서면)
안마 의자에 앉아서 꿀렁거리고 있는 장미.
장미 : (삑삑삑삑 버튼 눌러 강도를 마구마구 높인다)
기태 : 딱 맞게 설정해놓은 건데.. 무조건 센 게 좋은 게 아니라구 이 아줌마야!
장미 : (양말까지 벗어던지고 맨발 집어넣는다) 영 느낌이 안 오니까 그러죠.
기태 : (헉!) 무좀 있는 거 아니죠?
장미 : (꿀렁꿀렁) 하루 종일 구두 신고 서있어 봐요. 안 생기나.
기태 : 당장 내려와요!!
장미 : (꿀렁꿀렁) 너무 구박하지 말아요. 그쪽 비혼을 위해서 애써준 사람한테..
내가 얼마나 큰 희생을 했는지 알아요? 분위기 딱 좋았는데...!
flashback insert> 2부 호텔 야외풀
장미와 기태의 핸드폰이 동시에 요란하게 울리고.
“미안, 밥은 다음에” 여름에게 다급하게 말하고 뛰어가는 장미.
“미안하다. 급한 일이 생겨서.” 세아에게 툭 던지고 장미 따라 뛰는 기태.
“같이 가요!” “빨리 와요!” 하면서 나란히 뛰어가는 장미와 기태.
썰렁하게 바라보는 여름과 세아.
장미 : 좋았던 분위기 박살낸 게 누구냐고! 다 그쪽 때문이잖아!
기태 : 내가 아니라 우리 어머니죠.
그 때, 삑삑삑삑!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
장미 : 어? 누구..
기태 : 누구겠어요. 또 분위기 깨러 오신 거지.
장미 : (괜히 당황스러워서 안마의자에서 벌떡 튕겨져 일어나며) 어머니??
기태 : 따라와요. 숨겨줄 테니까. (장미 손목 붙들고 침실로 끌고 가더니)
S#24. 침실 D
기태, 장미를 침대 위로 휙 밀어 넘어뜨리고 그 위로 휙 이불을 덮는다.
엉겁결에 이불 속에 납작 엎드리는 장미.
장미 : (이불 속에서 어리둥절) 뭐지? 내가 왜 숨지?
S#25. 기태 집 거실 D
반찬통 싸들고 들어서는 신봉향, 현관에 놓여있는 여자 신발에 멈칫.. 천천히 안으로 들어오더니 확 일그러지는 얼굴.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구겨진 양말...!
S#26. 침실 D
장미 : 잠깐만..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기태 : (티셔츠 벗어던지며) 쉿! (장미 머리 꾹 눌러 집어넣고, 발치 쪽 이불 들춰 맨발과 종아리 내보이게 만들면)
S#27. 기태 집 거실 D
치미는 열을 꾹 누르며 후우.. 심호흡하는 신봉향, 반찬통 싱크대에 내려놓고 그대로 돌아서서 나가버리려는데
침실에서 나오는 기태.
기태 : (웃옷 벗은 채 태연한 얼굴로) 어머니 오셨어요? (일부러 슬쩍 안이 보이도록 몸을 비키면)
신봉향 : (무심결에 침실 쪽을 보고)
열린 문틈으로 들여다보이는 침대, 이불 밑으로 삐죽 나온 장미 맨발.
신봉향 : !
장미 : (이불 밖으로 고개 내미는데)
기태 : (얼른 쿵 침실 문 닫고) 그러게 오지 마시라고 했잖아요. 이런 모습 보여드리기 정말 싫었는데..
신봉향 : (흔들리지 않으려고 안간힘) 글쎄. 난 아무 것도 못 봤는데. (홱 돌아서서 가버리고)
기태 : 안 나갈게요. (목적은 달성했지만, 내심 씁쓸한..)
S#28. 기태 집 복도 (저녁)
가늘게 떨며 걸어오는 신봉향, 비틀.. 벽에 기대선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의 시선에 얼른 흐트러진 몸가짐 다잡고 도도하게 다시 걷는다.
꼿꼿하게 걸으려 애쓰는 모습.
S#29. 기태 집 거실 D
장미 : (씩씩거리며) 너 뭐야! 무슨 짓 한 거야 너!
기태 : (티셔츠 입으며) 별로. 괜히 서로 어색할까봐 숨겨준 건데.
장미 : 옷은 왜 벗냐구!!
기태 : 먼저 벗은 건 그쪽이잖아. (양말 주워 던져주면)
장미 : (노려보며) 이러려고.. 어머니 쫓아내려고 날 데려온 거구나...? 기껏 반찬까지 싸들고 오신 분을..
이거 진짜 못돼쳐먹은 놈이네!!
기태 : (씁쓸하게 픽..)
장미 : 나 당장 이 짓에서 손 뗄래! 어머니께 솔직히 말씀드려, 나도 우리 집에 전부 다 털어놓을 테니까!
기태 : (의외라는 듯) 아직 말 안했어요?
장미 : (끙.. 살짝 기 꺾여서) 말 할 거야.
기태 : 어머니 나한테 푹 빠지셨구나? 내가 어른들한테 좀 먹어주거든.
장미 : (버럭) 말 할 거라구우!!
S#30. 호프집 N
웬일로 북적북적한 손님들, 동네 주민들과 이웃 가게 사장들이다.
다 같이 술잔 부딪히며 건배하고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모습.
나소녀와 주경표, 안주 접시를 나르면서.
나소녀 : (환히 웃으며) 많이들 먹어요, 조만간에 청첩장 돌릴 테니까 꼭 오구.
주민1 : 아유 그렇게 좋아? 고만 좀 웃어, 주름 생겨!
주민2 : 성형외과 의사 사위가 평생 팽팽하게 펴줄 텐데 뭐가 걱정이야?
문 앞에 서있는 장미, 꿀 먹은 벙어리 표정이다. 어떻게 말하지...?
나소녀 : (좋아서 웃다가 문 앞에 서있는 장미를 발견하고) 어머나! 장미 왔구나!
주경표 : (장미 자리로 데려오며) 왔으면 와서 인사드려야지. 왜 그러고 서있어?
주민1 : 그래, 와서 신랑 자랑 좀 해 봐, 잘 생겼어?
주민2 : 나이는?
주민3 : 병원은 어디야?
장미 : (흐.. 어색하게 웃으면)
S#31. 호프집 근처 거리 N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장미,
장미 : 아 술 땡겨... (핸드폰 꺼내들고) 현희랑 상의 좀 해볼까? (전화 걸고) 어 현희야, 우리 술 한 잔 할래?
현희E : 오늘은 집에 일이 좀 있어서.. 미안해요 언니.
장미 : 아니야 미안하긴, 그래 알았어 내일 보자. (전화 끊고 시무룩) ...
flashback insert> 봉 위켄드 주방
장미 : 내가 그쪽 전화번호를 몰라서..
여름 : 내가 알아요. 연락할게.
장미 : (핸드폰 째려보며) 대체 언제 연락한다는 거야...!
S#32. 봉 위켄드 밖 N
몸을 잔뜩 낮춘 장미, 한쪽에 몸을 숨긴 채 레스토랑 쪽 동태를 살핀다.
장미 : 이훈동한테 들키면 안 되는데.. (눈만 빼꼼 내밀고 보면)
얼굴은 보이지 않는 여자와 마주앉아 대화 중인 훈동.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더니 그녀에게 건네준다.
장미 : (헐..!) 명품선물에 카드까지...?
S#33. 봉 위켄드 N
훈동 맞은편에 앉아있는 여자, 현희다!
현희 : (훈동의 신용카드 받고) 지갑 스무 개 환불처리 해드릴게요.
훈동 : 내가 백화점으로 가도 되는데, 직접 여기까지 와주고..
현희 : 장미 언니가 아무래도 좀 불편할 거 같아서요.
훈동 : (멈칫) 장미가 나 불편하대요? 에이.. 마음이 아픈 거겠죠..
현희 : (픽 웃고) 문자.. 다 씹혔죠?
훈동 : (끝까지 현실부정) 밀당하는 거예요.
훈동이 대화에 열중하는 사이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와 보는 장미, 홀 어디에도 여름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장미 : 주방에 있나...?
여름을 찾아 살금살금 주방 쪽으로 이동하는 장미.
훈동 : 장미 밀당 같은 거 모르는 여자였는데.. 고개만 돌리면 곁에 있었는데..
(하면서 짐짓 괴로운 얼굴로 시선 돌리다가 흠칫!!) 주장미!!!!!!
자세 낮추고 살금살금 주방으로 가던 장미, 그 자세 그대로 얼음!!
장미 : (젠장 걸렸다...!)
훈동 : (자리에서 일어나며) 너.. 돌아왔구나...!
장미 : 오해하지 마 너 보러 온 거 아니니까. (허리 펴고 이쪽을 보더니, 멈칫!!)
현희 : (살짝 당황) 언니...!
장미 : ......! (멍한 얼굴로) 두 사람.. 언제...
훈동 : 저기, 장미야.. (다가오는데)
장미 : (뒤통수 얻어맞아 멍한.. 휙 돌아서 뛰쳐나간다)
훈동 : 장미야! (따라가려는데)
현희 : (훈동을 붙잡고) 그냥 두세요.
훈동 : (돌아보면)
현희 : 장미언니가 먼저 시작한 밀당이잖아요. 눈에는 눈. 밀당에는 밀당.
훈동 : (그런가...?) 나 때문에 현희씨 미움 받는 거 아냐?
현희 :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면 난 괜찮아요. 오해는 풀면 되고.
훈동 : (착한 사람이구나.. 새삼 현희를 보는 시선 달라지고)
현희 : (착한 얼굴로 배식..)
S#34. 봉 위켄드 밖 N
정신없이 빠져나오는 장미, 그 앞으로 와 서는 고급 외제차. 여름이 내린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장미,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린다.
여자1 : (2부 파티 5백만원 낙찰녀, 장미에겐 자동차 창 너머로 목소리만 들리는)
덕분에 평생 웃을 거 오늘 다 웃은 거 같아. 고마워.
여름 : 그 정도 서비스는 해드려야지, 나 때문에 쓴 돈이 얼만데.
장미 : ......!!! (가슴에 쿵 떨어지는 바윗돌)
여름 : ? (왠지 서늘한 한기가 느껴져 돌아보면)
장미 : (흔들리는 눈으로 여름을 본다)
여름 : (어? 하는 순간)
장미 : (여름이 붙잡을 겨를도 없이 홱 돌아서 달려간다)
여름 : ... (시선에서)
S#35. 호텔 실내 수영장 N
자유형으로 나란히 물살을 가르는 기태와 세아. 피니쉬 라인에 간발의 차로 먼저 도착하는 세아.
기태 : (물안경 벗고) 더 빨라졌네?
세아 : 내가 남자라고 봐주는 거 봤어? (물 밖으로 올라가면)
기태 : (피식.. 물 밖으로 나가면)
두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는 한밤중의 호텔 수영장.
테이블에 두 사람만을 위한 식사가 차려져 있다.
기태 : 천만원짜리 데이트라 나름 신경 썼다.
세아 : (생색은?) 사람 많은 데 싫어하는 건 너지.
시간 경과>
간단하게 가운 등을 걸치고 식사하는 두 사람.
세아 : 사람 없으니까 조용하고 좋긴 좋다.. (와인 마시고) 난 또.. 니 취향이 바뀐 건가 했지, 시끌벅적 요란하게.
기태 : ...? (보더니) 주장미 말하는 건가?
세아 : 심심하면 나랑 놀아. 엄한 데 장난치지 말고.
기태 : (픽 웃더니) 누가 그래? 장난이라고?
세아 : 3년 전에 우리 결혼 접으면서 확인했잖아, 너나 나나 깊이 관계 맺는데 부적합한 인간들이라는 거.
괜히 다른 사람한테까지 민폐 끼치지 말고 고독하게 살자고, 어?
기태 : ... (씁쓸하게 웃더니) 그만 일어나자.
세아 : 신데렐라 집에 갈 시간이구나? 하여간 칼이다.
기태 : (일어나는데)
세아 : (툭) 나 니네 집 가도 돼?
기태 : ...! (살짝 당황)
세아 : (풉! 웃어넘기며) 쫄지 마. 안 가. (흘기며) 혼자 집에 있는 거 참 좋아해.
S#36. 장미 집 마당 N
팩소주에 빨대 꽂아 쪽쪽 빨며 안으로 들어오는 장미. 비틀.. 비틀..
S#37. 장미 집 거실 N
비틀.. 비틀.. 안으로 들어서는 장미, 한기가 느껴지는 불 꺼진 집안. 컴컴하고 적막하다.
장미 : 아... 혼자 있기 싫다..
insert> (과거)
5살 어린 장미가 불 꺼진 집에 혼자 우두커니 서있다. 인형 꼭 끌어안고 안절부절 흐느끼며.. “엄마아... 아빠아...”
현재>
장미, 우두커니 서 있다가 그대로 돌아서서 나가버린다.
S#38. 기태 집 침실 N
어둡고 조용한 집. 침대에 누워 혼자만의 평화를 누리는 기태.
세아E : 그 집이 왜 그렇게 좋은데? 뭐 좋은 거 숨겨놨어?
insert> (과거)
초등학생 어린 기태가 침대에 혼자 누워있다.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평온한 얼굴로 살며시 잠드는 모습.
장미의 과거와 달리, 포근하고 평화로운 기억.. 그때, 분위기를 깨는 초인종 소리.
현재>
딩동! 딩동! 초인종소리에 눈을 뜨는 기태.
기태 : (귀찮은 얼굴로) 어머니...?
S#39. 기태 집 거실 N
기태, 불 켜고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어주는데, 문 앞에 서있는 장미.
기태 : 뭐야...! (멈칫하는데)
장미 : (서슴없이 밀고 들어오며) 라면 사왔어요.. 먹을 게 아무것도 없길래.
기태 : (막아서며) 다신 안 볼 것처럼 가더니, 왜 다시 왔냐고!
장미 : (배식 웃으며 혀 꼬부라진) 누구나 그런 날 있잖아요. 혼자 있기 싫은 날.
기태 : 난 없는데 그런 날.
장미 : 하긴 그러시겠죠. (얼굴 바짝) 어머니도 집에 못 오게 하는 싸가지께서.
기태 : (냄새 맡더니) 아 술 냄새...!!
기태를 밀치고 주방으로 가는 장미, 뒤적뒤적 냄비 찾는다.
기태 : (후.. 한숨 뱉고) 좀 나가줘요, 미안하지만.
장미 : 내가 더 미안하죠.. 술이 너어무 취해서요.. (냄비에 물 받는데)
기태 : (냄비 뺏어 물 버리고 냉정하게) 택시 불러줄게요.
비틀비틀 거실로 가는 장미, 해수어 수족관에 찰싹 달라붙더니.
장미 : (수족관에 볼 찰싹 붙이고 손바닥으로 짝짝! 두드리며) 그럼 라면 말구 매운탕...! 얼큰하게 청양고추 팍팍 썰어 넣고...!!
기태 : (핸드폰 들고 택시 부르려다 헉!!!! 달려오며) 뭐하는 거야!!
장미 : (수족관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휘저으며) 싱싱한 놈으루 딱 한 마리만!
기태 : 이 여자가 미쳤나!! (장미 떼어놓으려고 애쓰는데)
악착같이 들러붙어서 기어코 물고기 한 마리 건져내는 장미.
장미 손을 빠져나와 바닥에서 파닥거리는 흰동가리.
기태 : (허걱!!!) 니모야!!!! (기겁해서 흰동가리 고이 수족관으로 넣어주면)
장미 : (배시시 웃으며) 니모 맞네..
기태 : (분노 폭발! 버럭) 당장 나가!!!
장미 : (그 말에 울컥 설움!) 너무해.. 밥도 못 먹구 빈속에 깡소주 부었는데.. (입술 삐죽삐죽하더니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린다)
기태 : (돌겠네...!!) 여우 쫓으려다 웬 호랑이가...!
시간 경과>
계량컵에 물 딱 맞춰 냄비에 붓는 모습.
끓는 물에 면과 스프를 넣고 매뉴얼대로 쿠킹 타이머 맞추는 모습.
그렇게 라면 끓여주는 기태 옆에서, 장미 주절댄다.
장미 : (많이 진정된 모습) 그럴 거면 구두는 왜 건져줘? 밥은 왜 먹자 그러고, 연락은 왜 한다 그래서 사람 헷갈리게 하냐구요!
기태 : 한여름의 진짜 속마음이 궁금해요? 내가 가르쳐줘?
기태, 책 한 권 가져와 아일랜드 식탁 위에 툭 내려놓는다.
장미, 무슨 책이지? 보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장미 : (흥!! 가스 불 탁! 끄면)
기태 : 아직 타이머 안 울렸어요, 2분 더 끓여야.. (하는데)
장미 : (냄비 내리며) 사람 일이 다 매뉴얼대로만 되는 줄 아나.
기태 : 최소한 사람심리 정도는 알고 접근하라고. 무식하게 혼자 앞서가지 말고. (냄비받침 가져오는데)
장미 :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책 위에 냄비 턱! 내려놓으며) 책으로 연애 배웠다가 큰일 나요.
기태 : (얼른 냄비 받침 위로 옮기며) 누가 누구 걱정을?
장미 : 그쪽은 왜 그렇게 결혼이 싫어요?
기태 : 댁 같은 진상한테 잘못 걸려 평생 고생할까봐.
장미 : (칫...) 그럼 강세아라는 여잔..? 그냥 친구 아니죠? 얘기 들어보니까 과거가 어쩌고 하던데, 무슨 사이에요?
기태 : (무심한 말투로)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이죠.
장미 : 완벽하네!
기태 : 결혼 따위를 하기엔 너무 아까울 정도로 완벽하죠.
장미 : 뭔 소리래? 하여간.. 머리에 든 게 많은 것들은 괜히 어렵게 살아.. (냄비에 얼굴 들이대고 라면 후루룩~)
기태 : 아 드럽게.. 좀 덜어서 먹지!
장미 : (김치 아삭아삭 씹으며) 음! 그쪽 어머니 김치 죽인다!
기태 : 가져가서 먹든지. 어차피 쉬어서 다 버릴 텐데.
장미 : (으이그.. 철없는 놈.. 하면서 다시 라면 냄비에 얼굴 들이대는데)
기태 : (손끝으로 장미의 이마를 콕 밀어낸다)
장미 : 아 뭐예요!
기태 : (라면을 그릇에 덜며) 함부로 선 넘지 마요. 그쪽은 이게 문제야.
장미 : (보면)
기태 : (라면 그릇을 장미 앞에 놔주며) 니 감정은 니 감정, 내 감정은 내 감정. 니 감정이 내 감정과 다르다고 울고 짤 거 없고,
배신당했다고 파르르 할 것도 없고, 각자 감정은 각자 알아서 처리하는 거라고 깔끔하게!
장미 : (시무룩) 난 그냥.. 사람을 믿은 거죠..
기태 : 믿은 게 아니라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한 거지. 알아보지 못한 죄가 제일 커요,
한여름 SNS에 순 음식 사진으로 도배했던데 뭐. 그거 다 혼자 먹었을 린 없고..
(옆에 놓인 장미 폴더폰을 흘끗 보더니) 연애하고 싶으면 스마트폰부터 사든가.
장미 : 스마트폰이 얼마나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건데. 그 뭐냐, 현대인의 고독!
기태 : 그쪽은 좀 고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실연당한지 얼마나 됐다고..
남자 남자로 잊으려고 하지 말고, 이참에 혼자만의 시간을 좀 가지라고!
장미 : 혼자 있는 거 너무 좋아하지 마요. 그러다 고독사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기태 : 지나친 남 걱정은 민폐예요.
장미 : 사람이 소통을 해야 사람이지!!
기태 : 여태 2G폰 쓰는 고집불통이 무슨 소통을 한다고!!
그때 벨 울리는 장미 핸드폰.
장미 : 2G폰으로도 얼마든지 소통하거든요? (보란 듯 전화 받고) 여보세요! (눈 휘둥그레) 한여름...? (멈칫) 지금.. 나오라고?
기태 : 혼자 좀 있으라고!
S#40. 봉 위켄드 앞 N
여름 : (핸드폰 들고 나오며) 옆에 누구 있나? (가볍게 툭) 남자 목소리네?
S#41. 기태 집 거실 N
장미 : (살짝 당황) 아니 텔레비전 소리야!
기태 : 사람을 가전제품 취급이야?
장미 : (핸드폰 들고 화장실로 후다닥 달아나며) 어우 아니야 정말 나 혼자야.
기태 : (일부러 더 큰소리) 라면 불어!!!
S#42. 봉 위켄드 앞 N
여름 : (핸드폰 들고) 아까 나랑 같이 있었던 여자는 누군지 안 궁금해? 돈 많고 착한 여잔데.
S#43. 기태 집 화장실 N
장미 : (핸드폰 들고 썰렁) 돈 많고 착한...?
여름E : 좋은 일에 쓰라고 5백만원도 척척 내놓고 말이지.
장미 : (입가에 번지는 미소) 아 자선파티 데이트 경매...! 그랬구나, 난 그런 줄도 모르구.. 어, 어,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전화 끊고 화장실 문 여는데, 안 열린다.
장미 : 어? (문고리 잡고 덜컹덜컹) 이봐요, 공기태씨! 문이 안 열려!
기태E : (문 밖에서) 혼자만의 시간 좀 가지라고.
장미 : 허! 나 가둔 거야?
기태E : 혼자 행복한 사람이 둘이서도 행복하다는 말, 못 들어봤나?
장미 : 장난하지 말고 열어!
S#44. 화장실 문 밖/안 N
기태 : (문고리 꽉 붙잡고 서서) 진지하게 하는 말이니까 잘 들어요. 남잔 0 아니면 1이야. 좋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아니라고.
장미 : (문 안쪽에서) 뭔 헛소리야! 열어! (문 잡아당기는데)
기태 : (단단히 붙잡고) 그 중간 어디쯤이라고 느껴진다면 그건 그냥 0이야!
장미 : (당기고) 0에서 1이 돼가는 중일 수도 있잖아!
기태 : (붙잡고) 부른다고 쪼르르 달려가는 여잔 죽었다 깨도 1이 못 돼!
장미 : (당기고) 문 열어어어!!!
기태 : (붙잡고) 내 말 들으라고!!!
화장실 문을 사이에 두고 실랑이 하던 두 사람.
여름을 만나러 가겠다는 일념으로 혼신의 힘을 다 하는 장미, 문고리 우지끈! 망가지며,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다.
기태 : (망가진 문고리 붙잡고 헉...!)
장미 : (씩씩거리며) 1은 어떻게 되는 건데? 하늘에서 1이 떨어질 때까지 방구석에 혼자 틀어박혀 있음 1이 되는 거야?
기태 : 내 말은..
장미 :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 있어. 난 죽어도 혼자 있긴 싫어. (가다가)
기태 : ...
장미 : (도로 들어오더니 힐끔 눈치보며 신봉향의 김치통을 주섬주섬 챙긴다)
가져가라니까 이건 가져갈게요.. 버릴까봐 아까워서.. (후다닥 가면)
기태 : ... (허.. 혼자 덩그러니 남은)
S#45. 공원 N
나무테이블 위에 쿠킹호일을 덮은 그라탕 그릇을 내놓는 여름.
쿠킹호일 열면 엄셰프 어깨너머로 배운 감자치즈 그라탕이다.
장미 : 이거...! (눈 휘둥글) 직접 만든 거라고?
여름 : 흉내만 냈어.
기태E : SNS에 순 음식 사진으로 도배했더라고.
장미 : 음식 만드는 거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섭섭했던 마음 사르르 녹는다)
S#46. 기태 집 거실 N
불어터진 라면을 혼자 꾸역꾸역 먹고 있는 기태.
기태 : (생각할수록 괜히 기분 더럽다. 젓가락 턱! 내려놓고) 올 때도 제멋대로 갈 때도 제멋대로!
괜히 사람 시간 낭비하게 만들고.. (분노의 라면 흡입. 후루룩!! 후루룩!!! 왠지 쓸쓸한 기태의 뒷모습)
S#47. 공원 N
장미 : (그라탕 먹으며) 와 죽인다!
여름 : (흡족한 얼굴로 본다)
장미 : 참! 나도 너 줄 거 있는데.. (신봉향의 김치통을 꺼내 펼친다)
여름 : (보더니) 김치? (시큰둥) 난 김치 별론데..
장미 : 먹어봐. 집밥의 맛이야. (그라탕 한 입 먹고 김치 와작와작)
여름 : (으엑!) 뭐하는 거야!
장미 : 우와! 완전 환상 궁합!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어! (수저에 그라탕과 김치 섞어서 여름 입에 들이밀며) 먹어 봐!! 자 아!!
여름 : (질색하는데) 아 싫어!
장미 : (억지로 쑤셔 넣는다)
여름 : (슬쩍 씹어보더니) 오..
장미 : 괜찮지?
여름 : (의외로 괜찮다.. 계속 먹으며) 오오...!
장미 : (그런 여름을 물끄러미 보더니) 우리 밥친구 할래?
여름 : (보면)
장미 : 맨날 주방 구석에서 대충 때운다며.. 사람이 밥을 먹는다는 게 뭔데.. 혼자 밥 먹기 싫을 때 같이 먹자. 어때?
여름 : (픽 웃더니) 그러든지.
장미 : (헤에... 쑥스럽게 웃는 얼굴 위로)
장미E : 그래, 조급해 하지 말고 0에서 1까지 천천히 가는 거야.
핸드폰 시계가 자정을 가리키는 위로 자막 “사건 당일”
S#48. 공씨네 전경 D
S#49. 공씨네 거실 D
스마트폰 화면에 몰래 찍은 파파라치컷. 백화점에서 일하는 장미 모습들.
신봉향 : (소파에 앉아 조용히 사진 넘겨보면)
공미정 : 백화점 판매직원이더라구요.
신봉향 : (불편한 심기) 무슨 생각으로 이런 여자를..
노점순 : (옆에 와 앉으며) 지 에미랑 정반대인 여자한테 끌릴 법도 하지. 난 충분히 이해한다.
신봉향 : (눈썹 꿈틀)
노점순 : 집 뺏는다 협박에, 미행에, 염탐에, 가족끼리 그게 다 뭐냐! 그동안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 가만히 지켜봤는데,
더는 못 봐주겠다. 에미가 그러니 기태가 혼자 살겠다고 고집이지!
공미정 : (신봉향 눈치 살피며 말리는) 엄마..
신봉향 : (낮고 부드럽게) 네, 어머님 말씀이 맞습니다. 모든 게 제 탓이지요.
노점순 : (내심 뭔가 찔리는지 헛기침 흐음!)
신봉향 : 어머님께서 나서주신다면 저 역시 마음이 놓일 것 같아요.
노점순 : (멈칫) 나더러.. 나서라고?
신봉향 : 이 녀석이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좀 알아봐 주세요. 어머님께라면 기태도 마음을 열겠죠.
노점순 : 암, 나한텐 마음 문을 아주 활짝 열어젖히지, 그러엄! (장담하는데서)
S#50. 공기태 성형외과 건물 앞 D
택시에서 내려서는 노점순.
노점순 : (핸드폰 들고) 기태야, 할미다. 지금 좀 볼 수 있겠니?
기태E : (단칼에) 아니요. 안 되겠는데요.
노점순 : 응...? (멈칫) 얘야, 나는 니 편이야. 그러지 말고 내 말 좀..
기태E : 나중에요. (전화 뚝 끊긴다)
노점순 : (전화 얼굴에 댄 채 그대로 얼음) ......
노점순의 썰렁한 얼굴 위로 툭, 툭..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S#51. 공기태 성형외과 원장실 D
기태, 핸드폰을 책상에 내려놓고 돌아서면,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 앞에 앉아있는 나소녀.
나소녀 : 미안해서 어쩌나. 우리 공서방 바쁜가 보네.
기태 : 괜찮습니다. (웃어 보이고) 그런데 무슨 일로..
나소녀 : 그냥 궁금해서 와봤어요. (흡족한 얼굴로 둘러보며) 장사가 제법 되네.. (얼른) 아니, 저기, 환자가 많다고.
물어보니까 예약환자가 꽉 찼다대?
기태 : 아 네에..
나소녀 : 그래서 그런가 얼굴이 푸석하네. 눈도 띵띵 부은 것 같고.
기태 : 그게, 어젯밤에 라면을 좀..
나소녀 : 간밤에 울다 잠든 거 아니고? 우리 장미가 맘고생 시켜서? 호호호..
기태 : (피식) 네 뭐, 따지고 보면 장미씨 때문이죠.
나소녀 : 장미 이 기집애 마음은 내가 돌려놓을 테니까 염려 붙들어 매! 알았죠?
성형외과 의사 얼굴이 그래서 쓰나. 웬만하면 라면은 끊고!
기태 : 네. 끊으려구요. (어금니 꾹 물고 미소 짓는)
S#52. 공기태 성형외과 원장실 D
기태 : (핸드폰 들고) 어머니께 다 말한다더니, 말 안 했어요?
장미E : 그게.. 사정이 좀 있었어요.
기태 : 무슨 사정이길래 병원까지 가르쳐드린 건데? 병원에 찾아오셨더라구!
S#53. 백화점 명품매장 D
장미 : 나중에 다 얘기할게요. 여기도 누가 좀 찾아오셔서. (서둘러 전화 끊고)
장미, 전화 끊고 돌아서면, 그 앞에 서있는 노점순.. 비에 젖어 가늘게 떤다.
장미 : (수건 가져와 빗물 닦아주며) 어떡해요, 감기 걸리시겠어요.
노점순 : (물기를 닦아주는 장미의 손을 꼭 붙잡더니) 나한테 시간 좀 내줄래요?
장미 : 지금요? (곤란한데)
노점순 : 비 오는 날 파전 부쳐준다면서.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장미 : (어쩌지...?)
S#54. 기태 집 현관 밖 D
막걸리와 파전 재료를 사들고 기태 집 앞에 서있는 장미.
장미 : (현관 앞에 서서 주저하며) 주인 없는 집에.. 괜찮을까요?
노점순 : 괜찮으니까 열어요. 수시로 드나드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장미 : (긁적) 저, 비밀번호를 모르는데..
노점순 : 그러니까 아직 비밀번호까지 튼 사이는 아니구먼? 우리 기태가 어릴 적엔 그저 할미한테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애라,
분명히 내 생일.. (비밀번호 누르는데 삐빅! 아니다. 머쓱..)
아아, 내 핸드폰 뒷자리구만.. (비밀번호 누르는데 삐빅! 아니다. 끄응..)
장미 : 공기태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 같은데. 자기 생일 아닐까요?
노점순 : 그럴 리가 없는데.. (삑삑삑삑 눌러보면 맞다. 철컥, 열리는 문)
장미 : (헤에..)
S#55. 기태 집 거실 D
지글지글 익어가는 파전. 능숙하게 파전을 휙 뒤집는 장미.
노점순, 그런 장미를 흐뭇하게 지켜본다.
S#56. 공기태 성형외과 원장실 / 공씨네 거실 N
기태 : (핸드폰 들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공미정 : (핸드폰 들고) 할머니 못 만났어? 너 만난다고 혼자 택시 타고 나섰는데, 여태 깜깜무소식이다? 전화도 안 받고.
기태 : (창밖을 내다보면, 촤아아!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 ......!
S#57. 공기태 성형외과 밖 N
굵은 빗줄기 속으로 달려 나오는 기태. 황급히 이리저리 주변을 살핀다.
대체 어디로 가신 거지...? 핸드폰 꺼내들면.
S#58. 기태 집 거실 N
저만치 소파에 파묻혀 지잉 지잉 진동 울리는 노점순의 핸드폰.
짠! 부딪히는 막걸리 담긴 밥공기.
뜨끈뜨끈 김이 오르는 파전을 놓고 마주 앉은 장미와 노점순. 벌써 막걸리 병 몇 개나 비워져 있다.
노점순 : (막걸리 쭉 마시고 카아...!) 우리 기태.. 어떻게 생각하나?
장미 : 자기밖에 모르는 싸가지요. (나오는 대로 뱉어버리고 꾸벅) 죄송합니다.
노점순 : (너그러운 미소) 겉보기엔 차가워도 알고 보면 잔정 많고 푸근한 아이야.
장미 : 글쎄요.. (노점순의 빈 공기에 막걸리 채워주면)
노점순 : 그 녀석한텐 아가씨처럼 솔직한 사람이 꼭 필요해. 잘 좀 부탁해요, 응?
장미 : ... (죄송한 마음에) 공기태는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하던데요.
노점순 : 그래 나도 알아요. 기태 녀석 쉽지 않아. 우리 집도 쉬운 집 아니고.
장미 : (마음 약해져서) 그래서가 아니라, 사실은...
노점순 : (자르고) 다 나 때문이다! (막걸리 쭈욱!)
장미 : (보면)
노점순 : (빈 공기를 내밀어 흔들며 한 잔 더 따르라고 손짓)
장미 : (막걸리 따라주며) 천천히 드세요..
노점순 : 기태가 집을 뛰쳐나간 것도.. 저 혼자 살겠다고 버티는 것도.. (눈가에 번지는 회한의 눈물) 다아 나 때문이야...!
장미 : ...?
노점순 : 지은 죄가 깊어 밤에 잠을 못 자.. 겨우겨우 잠들면 악몽이고..
늙으면 그저 죽어야 되는데.. 조상님 뵐 낯없어 죽는 것도 두렵고..
장미 :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짠해서) 그런 말씀 마세요..
노점순 : (눈물 훔치고) 내가 얼른 죽어야해...! (막걸리 쭉 마시고) 죽어야지 암...!!
말을 마치자마자 픽.. 옆으로 쓰러지는 노점순. 와장창 쏟아지는 막걸리와 파전 접시.
장미 : ! (놀라서) 할머니!!! (얼른 노점순을 부축해 끌어안고) 괜찮으세요?
노점순 : ...... (축 늘어져 반응이 없고)
장미 : 할머니! 할머니! 눈 좀 떠보세요!!! (노점순을 흔들며) 할머니이...!!!
S#59. 달리는 기태 자동차 N
빗길 위, 비상등 깜빡이며 천천히 달리는 기태 자동차. 운전하면서 두리번 두리번 점순을 찾는 기태.
장미에게서 걸려오는 전화.
기태 : (받자마자) 나중에 통화하죠. (하는데)
장미E : (격앙된 목소리) 지금 집으로 와요! 빨리!
기태 : 이제 아주 오라 가라.. 내가 그쪽 집엘 또 왜 갑니까?
장미E : 우리집이 아니라 공기태씨 집이요!
기태 : (멈칫) 왜 거기 있어요? 거기서 뭐하는데!
S#60. 기태 집 거실 N
장미, 한 손으로 노점순의 이마에 얼음주머니를 대주면서.
장미 : (어깨에 핸드폰 끼고) 따지지 말고 좀 와요!! 할머니 쓰러지셨어요!!!
S#61. 기태 자동차 N
기태 : ......!!! (액셀 밟아 차 속도 올리면)
S#62. 기태 집 거실 N
119 구급대원들이 들것에 노점순을 눕힌다.
장미, 발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모르는데.
기태 : (안으로 뛰어들어오며) 할머니! (집안 꼴을 보고 멈칫)
바닥에 나뒹구는 빈 막걸리 병들. 한 판 거나하게 벌인 흔적들.
장미 : 미안해요. 나 때문에..
기태 : (기막혀) 이 여자가 대체 무슨 짓을...!
장미 : 비에 쫄딱 젖어서 백화점에 찾아 오셨더라구요, 그냥 돌아가시라고 할 수가 없어서,
몸도 좀 덥히셔야 할 것 같고, 약속한 것도 있고 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는데)
기태 : (싸늘하게) 됐어요. 가 봐요.
기태, 구급대원들과 함께 황급히 나가고.
장미 : ... (황망히 서 있다가 걱정되는 마음에 부리나케 따라나선다)
S#63. 병원 응급실 앞 N
사이렌 울리며 달려와 서는 구급차. 안에서 기태 뛰어내리고, 구급대원들이 들것에 실린 노점순을 옮긴다.
저쪽에서 달려오는 신봉향과 공미정.
공미정 : (호들갑) 엄마!!! 엄마!!! 엄마 이게 무슨 일이야!!!! (들것에 실린 노점순 따라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고)
신봉향 : (침착하려 애쓰며 기태에게) 어떻게 된 거야?
기태 : 술을 좀 과하게 드셨어요.
신봉향 : 술...? (믿기지 않는) 어디서, 누구하고?
기태 : 저하구요. (응급실로 들어가고)
신봉향 : (그럴 리가 없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병원 앞에 택시 와 서고, 허둥지둥 내리는 장미. 응급실까진 차마 들어가지 못한 채 이리저리 서성댄다.
장미 : 어뜩해.. 어뜩해..
S#64. 응급실 N
평온한 얼굴로 누워서 링거를 맞는 노점순.
의사 :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호흡 맥박 체온 혈압, 다 별 무리 없으세요.
공미정 : 그런데 왜 의식이 없어요? 혼수상태 아니에요? 네? (공미정 흔들며) 엄마! 엄마아! 눈 좀 떠봐요 조옴!!
그러자 노점순 크허어엉 푸휴우우.. 코를 골기 시작한다.
공미정, 신봉향, 기태, 썰렁한 얼굴로 보면.
의사 : 근래 잠을 잘 못 주무셨나요?
신봉향 : 불면증이 있으세요.
의사 : 억지로 깨우지 마시고, 푹 주무시게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가면)
공미정 : 아휴우.. 심장이야. 노친네 때문에 십년감수했네 아주 그냥.
신봉향 : (한시름 돌리고 낮은 한숨.. 밖으로 나가면서 기태에게) 나 좀 보자.
기태 : (말없이 따라 나가고)
공미정 : 너무 또 뭐라 그러지 마요 네? (오지랖 발동해서 따라 나가면)
S#65. 응급실 앞 N
응급실 앞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서성대는 장미.
신봉향 굳은 얼굴로 앞서 나오고 그 뒤로 기태와 공미정이 따라 나온다.
신봉향 : (장미를 발견하고 멈칫)
기태 : (여긴 또 왜..!)
장미 : (쪼르르 다가와서) 할머닌 좀 어떠세요? 깨어나셨어요??
신봉향 : (빤히 보고)
공미정 : 어우 술냄새...! 기태랑 마신 게 아니라 아가씨랑 마신 거였어?
장미 : (꾸벅) 죄송합니다.
공미정 : 술집 딸이라 스케일이 아주 남다르네, 블록버스터 급이야!
장미 : ... (더 깊이 꾸벅) 정말 죄송합니다.
신봉향 : 설명이 좀 필요한 것 같은데.
공미정 : 그래 말 좀 해봐요! 왜,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닦달하는데)
기태 : (장미 손목을 확 잡아채고) 이리와. (장미 끌고 가버린다)
공미정 : 어머 얘! 잠깐!
신봉향 : (저 녀석이..!)
S#66. 병원 근처 일각 N
장미 손목을 거칠게 붙잡아 끌고 오는 기태.
장미 : (끌려오며) 아! 아파..!
기태 : (손목 놓고, 화난 얼굴로) 가라니까 어딜 따라와!
장미 : 걱정돼서..
기태 : 선 넘지 말랬지. 사람 사이 거리 조절 못하고 자꾸 선 넘어오는 거 처음 한두 번만 귀엽지 그 이상은 진상이야!
훈동이한테 그 진상 떨다 스토커 전과까지 달았으면서.. 참 한결 같네!
장미 : ...말이 좀 지나치다..!
기태 : 애초에 내가 너랑 손잡은 목적이 뭔데, 혼자 조용히 살고 싶어서야.
근데 어떻게 된 게 엮이면 엮일수록 시끄럽고 번잡해지냐고!
장미 : 나도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기태 : 그럼 대체 의도가 뭐야? 혹시, 나랑 진짜 결혼이라도 하고 싶어진 건가? 그래서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멋대로 드나들고!
할머니 자기 편 만들려고 술 퍼먹이고! 병원에 찾아가 봐라 어머니 등 떠밀고!
장미 : 우리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 못한 건.. 미안한데 그건..
기태 : 꿈 깨.
장미 : (보면)
기태 : (매몰차게) 결혼할 생각도 없거니와, 너 같은 여잔 딱 질색이니까.
장미 : ...... (기막혀 멍하니 쳐다보다가 픽 웃어버리며) 알았다. 진상 떨어서 미안하다.. 꺼져줄게...! (돌아서서 가버린다)
멀어지는 장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있는 기태. 누구에게인지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오른다.
기태 : ... (시선에서)
S#67. 병원 근처 거리 N
터벅터벅 걸어오는 장미. 분하고 억울하고.. 서럽다.
S#68. 응급실 N
뒤늦게 부리나케 달려 들어오는 공수환.
공수환 : (허겁지겁 옷을 걸쳐 입고 달려왔는지 흐트러진 옷차림) 어머니!!
신봉향 : 쉿!
공수환 : 어떻게 된 거예요?
신봉향 : (대꾸도 없이 공수환의 흐트러진 옷차림을 바로잡아준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쿨쿨 달콤한 숙면을 취하는 노점순.
멀찍이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기태. 조용히 돌아선다.
S#69. 기태 집 거실 N
난장판이 된 집안을 둘러보며 혀 쯧..! 차는 기태. 정리하고 치우고 설거지하는 모습 짧게.
S#70. 기태 집 화장실 N
히노끼 욕조에 앉아있는 기태.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다. 원하던 대로 혼자가 됐다.
기태 : 아...! 겨우 혼자가 됐네...! (뜨거운 물에 목까지 푹 담그고) 좋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이다. 뭐지 이 기분은? 아무리 털어내도 털어지지 않는 찜찜한 기분..
끙.. 욕조에서 일어서는 기태, 가운 걸치고 나가려는데, 문이 안 열린다. 문고리 이리저리 돌려봐도 헛돌기만 할 뿐.
기태 : 왜 이래...? (문득 떠오르는 장면에 헉...!)
flashback insert>
장미와 실랑이하다가 우지끈! 망가지던 화장실 문고리.
기태 : ......!
알몸으로 혼자 화장실에 감금되고 만 기태!
망연자실 서있는 기태 위로 자막 “공기태 화장실 감금 사건 발생”
S#71. 장미 방 N
침대에 털썩 드러눕는 장미.
장미 : (축복 같은 저주) 혼자서 행복하게 자알 살아라!
S#72. 기태 오피스텔 화장실 N
문고리에 달라붙어 낑낑 용쓰는 기태, 하지만 열리지 않는 문. 몸으로 부딪혀 보고, 발로 세게 차도 꼼짝도 않는다.
기태 : (있는 힘껏 고함치는) 이봐요! 누구 제 목소리 안 들려요? 여기 0000홉니다!! 제가 화장실에 혼자 갇혔거든요!!
누구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아무라도 좀...!!!! (그러다 피식 헛웃음이 나온다. 뭐 이런 시트콤 같은 상황이...!)
제발 좀 와달라고... (낮게 중얼거리며 픽 웃어버린다)
S#73. 백화점 옥상 D
장미 : 안 가! 다시는 그 집에 가나 봐라!!
난간에 혼자 기대 서있는 장미.
장미 : ... (내심 노점순이 걱정되고 궁금해져서) 할머니는 좀 어떠신가...?
S#74. 기태 집 거실 D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기태의 핸드폰에 띠링! “할머니 괜찮으셔?” 장미의 문자메시지 뜬다.
배터리 방전되면서 핸드폰 전원 꺼져버린다. 그 위로 자막 “사건 발생 15시간 경과”
S#75. 버스 안 N
버스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장미. 아무런 답도 없는 기태가 야속하다. 냉정한 놈! 싸가지 없는 놈!
flashback insert>
기태 : (싸늘하게) 됐어요. 가 봐요. /
공미정 : 어우 술냄새...! 기태랑 마신 게 아니라 아가씨랑 마신 거였어?
현재>
장미 : 날 감싸주려고.. 그랬던 건가...?
용기 내 기태에게 전화를 걸어보는데, 전원이 꺼져있다.
씁쓸하게 한숨 쉬는 장미 위로 자막 “사건 발생 24시간 경과”
S#76. 공기태 성형외과 D
울리는 전화 받는 손.
코디 : 공기태 성형외괍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선생님께 급한 사정이 좀..
빼꼼 들여다보는 장미.
장미 : (급한 사정?) 공기태.. 출근 안 했나요..?
코디 : (수화기 손으로 막고) 네, 어제부터 연락이 안 되시네요.
(전화기에 대고)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수술날짜 다시 잡아드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전화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고)
장미 : (병원도 연락이 안 돼...?)
S#77. 백화점 명품매장 D
한쪽에 서서 핸드폰 만지작거리는 장미. 전원 꺼져있는 기태 핸드폰에 부질없이 전화 걸어보며 걱정스러운 얼굴.
안으로 또각또각 들어오는 손님.
장미 : (화들짝 핸드폰 치우고 반듯하게 꾸벅)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세아 : 여기서 일해요?
장미 : (멈칫, 보면)
세아 : (싱긋 웃는데)
장미 : (대뜸) 혹시 공기태랑 연락 되세요?
세아 : 네...?
장미 : 전화도 꺼져있고 병원에도 없고..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세아 : 훈동이한테 한번 겪어봤으면서 몰라요? (툭) 남자가 잠수타는 이유.
장미 : 아.. (머쓱 뻘쭘) 아아..
세아 : (싱긋 웃고, 나만큼 기태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듯) 그 친구 혼자 있고 싶으면 종종 그래요.
그럴 땐 혼자 있게 배려해주는 편이 나아요.
장미 : 아 네에.. (아무 말 못하고)
세아 : (핸드백 가리키며) 나 이것 좀 보여줄래요?
장미 : 네.. (장갑 낀 손으로 진열대에서 핸드백 내리면)
S#78. 기태 집 화장실 D
기태 머리 위로 하나씩 떠올려 보는 사람 얼굴 (CG)
기태 : (신봉향 얼굴 떠오르면) 내가 못 오시게 했고.. (신봉향 사라지고) (훈동과 세아 얼굴 떠오르면) 올 리 없고.. (사라지고)
(장미 얼굴 떠오르면) 그 여자라면...! (한줄기 희망을 가졌다가) 그렇게 심한 말까지 했는데.. 오겠냐!
(장미 얼굴까지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지면)
가운을 여미며 힘없이 털썩.. 욕조에 드러눕는 기태. 파리한 안색. 그 위로 자막 “사건 발생 36시간 경과”
S#79. 장미 집 거실 N
불 꺼진 집안에 들어서는 장미. 온 집안의 불을 다 켜고 다닌다. TV도 켜고 볼륨 높인다.
혼자서도 아무렇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
씩씩하게 부엌으로 걸어가 컵에 물 따르려는데, 유리컵 바닥에 떨어져 쨍그랑!!!
insert> (과거)
부엌 바닥에 산산이 흩어진 깨진 유리컵 조각들.
5살 어린 장미, 깨진 유리 조각에 베여 손과 발바닥에 피가 나고..
냉장고에 손을 내뻗지만 닿지 않고, 다가가지 못하고 서성인다..
허기와 두려움에 떨며 서럽게 흐느끼는 어린 아이..
현재>
장미의 귓가에 울리는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 깨진 유리컵 조각을 치우다 말고 벌떡 일어나 허겁지겁 뛰쳐나간다.
S#80. 달리는 세아 자동차 N
밤길을 운전하는 세아,
장미E : 전화도 꺼져있고 병원에도 없고..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세아 : ..... (왠지 꺼림칙한 기분에 깜빡이 켜고 차를 돌린다)
S#81. 기태 집 현관 밖 N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쿵쿵 두드리는 장미. 아무 대답이 없자 비밀번호 누르고 문을 열어본다.
S#82. 기태 집 현관 안 N
현관에 놓여있는 기태 신발. 집에 불도 다 켜져 있고, 음악도 흘러나온다.
장미 : (문틈으로 고개 들이밀고) 공기태...! 안에 있어...?
기태E : 선 넘지 말랬지. 사람 사이 거리 조절 못하고 자꾸 선 넘어오는 거 처음 한두 번만 귀엽지 그 이상은 진상이야!
장미 :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신발신고 선 채) 대답 좀 해 봐...!
S#83. 화장실 안 N
욕실 밖으로 축 늘어진 기태의 팔. 그 위로 자막 “사건 발생 48시간 경과”
S#84. 기태 집 현관 안 N
장미 : 자꾸 귀찮게 해서 미안한데.. 너무 걱정이 돼서... 실은 나.. 다섯 살 때 혼자 집에서 죽을 뻔한 적이 있거든..
암튼 그래서 혼자 잘 못 있어.. 혼자 있는 사람이 괜히 신경 쓰이고.. 공기태...! 너 괜찮은 거야....?
(아무 대답이 없자 머리 벅벅 긁으며) 나 또 진상 떤 건가...?
S#85. 화장실 안 N
욕실 밖으로 늘어진 기태의 손가락이 꿈틀.. 움직인다.
S#86. 기태 집 현관 안 N
장미 : 내가 성형외과 의사랑 결혼한다니까 엄마 아빠 갑자기 사이가 좋아져서..
둘이 그렇게 다정한 건 평생 처음이라.. 내가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 암튼 이래저래 미안했다.
(좀 더 크게) 미안했다고오!!! 사람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끝까지 쌩까냐? 야! 공기태! 자냐??
살아있으면 대답 좀 해 봐!! 괜찮은지 확인만 하고 바로 꺼져줄 테니까!
그때, 화장실에서 가늘게 새어나오는 목소리 “여기...”
장미 : !!!
S#87. 기태 집 밖 N
세아의 자동차가 와서 서고, 세아 내린다.
S#88. 기태 집 거실 N
화장실 문고리 헛돌기만 하고 열리지 않는 문.
황급히 싱크대에서 식칼을 집어 드는 장미. 식칼로 화장실 문을 따고.
S#89. 화장실 안 N
쿵!!! 문 밀고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장미.
욕조에 죽은 듯 축 늘어져있는 기태.
화장실 바닥에 챙그랑....! 떨어지는 식칼.
장미 : 공기태...!!!
장미, 얼른 다가가 부축하면, 힘없이 늘어져있던 기태의 팔이 장미를 끌어당겨 매달리듯 안는다.
장미, 살짝 놀라서 몸을 떼어내려는데 장미 옷을 힘껏 움켜쥐는 기태 손.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으면..
기태를 안아 진정시켜주는 장미. 서로를 끌어안은 두 사람의 모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