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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월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온 순례자의 무리들 속, 나귀를 탄 예수에게 종려가지와 올리브 가지를 들고 있는 군중들은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마태,21.10)라며 크게 환호한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으로, 유다인들의 정치적인 수도이며, 그리스도의 수난이 일어난 곳이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영원한 도시, 즉 그리스도교적인 천국의 성도(聖都)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당당히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이 사건은 예수 수난의 시작이며, 동시에 죽음을 통한 그의 승리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은 4대 복음서 모두에서 그 내용을 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즈카르야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즈카, 9,9)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길을 열었던 수녀 에게리아(Egeria)의 기록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은 동방교회에서는 이미 4세기부터 성지주일(Palm Sunday)의 장엄한 의식으로 거행되었고 한다.
황제의 행렬처럼
 이미지로 묘사된 [예루살렘 입성]은 4세기부터 나타난다. 359년에 제작된 유니우스 바수스(Junius Bassus)의 석관에 묘사된 입성의 장면에는 나귀를 탄 그리스도, 예수가 지나가는 길에 망토를 깔고 있는 사람, 나뭇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가지를 흔드는 이가 등장한다. 그리스도는 수염이 없는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이는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두 다리를 벌리고 나귀에 올라탄 자세이다. 그리스도를 마중하는 사람들은 짧은 튜닉을 입고 있고, 배경에 나타난 나무는 종려나무가 아니라, 로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낙엽수이다. [예루살렘 입성]의 화면 구성은 로마 황제가 도시 밖의 군대를 방문하고, 로마 시내로 들어오는 행렬(Adventus)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는 10세기 비잔틴에서 제작된 상아 조각에서 더욱 자세히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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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루살렘 입성] 유니우스 밧수스의 석관, 359년
바티칸, 그로테 바티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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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루살렘 입성] 10세기
상아 부조, 18.4cmx14.7cm, 베를린, 국립미술관 |
나귀를 탄 그리스도의 머리 뒤에는 십자가가 있는 후광이 나타나고, 나귀에 앉아 있는 그리스도의 자세에 주목하면 양다리를 한쪽으로 모으고, 안장에 걸터앉은 아마존 자세이다. 이는 서방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동방지역의 특징이다. 나귀 뒤에는 제자들이 따르고, 그를 환영하는 군중들이 있다. 군중들 속에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들은 종려가지를 흔들기도 하고, 나귀 아래 겉옷을 깔기도 하며, 나무에 올라가기도 한다. 배경으로 눈을 돌리면, 화면 왼쪽 그리스도 편에는 바위처럼 묘사된 올리브 산(the Mount of Olives)이, 오른편에는 예루살렘을 묘사한 건물들이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환호하는 군중과 그리스도와 그 뒤를 따르는 제자들의 비중을 화면을 반으로 나누어 균형 있게 표현했지만, 1140-1180년 로마네스크 성당의 린텔에 묘사된 입성 행렬은 환호하는 군중보다 그리스도 뒤를 따르는 제자들의 행렬에 더 초점을 두어, 예루살렘 입성의 장엄함을 나타낸다. | |

[예루살렘 입성] 서측 입구, 왼쪽 출입문의 린텔 ca. 1140~1180년 프로방스, 생 쥘-뒤-갸르
겸손의 상징, 나귀
 중세에는 예루살렘 입성이라는 내러티브에서 나귀를 탄 그리스도만을 따로 떼어 팔메젤(Palmesel)이라고 하는 나무 조각상을 만들었는데, 아예 바닥에 바퀴를 달아 끌 수 있도록 했다. 독일에서는 종교개혁 이전까지 이 나귀를 탄 그리스도상을 만들어, 성지주일 전례에 사용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려했던 중세 인들의 종교적 열망을 엿볼 수 있는 일례이다. 나귀는 예루살렘 입성 뿐 아니라, 예수 탄생이나 이집트로의 피신에서도 등장하는 동물인데, 가장 비천한 동물로 겸손을 상징한다. 서두에 언급한 즈카르야의 예언대로 어린 나귀를 탄 그리스도는 가장 비참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또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수가 타고 온 나귀가 암컷이고, 새끼가 따라왔다고 기록되어 있어, 토리노 필사본에서처럼 어미 나귀와 새끼 나귀가 함께 그려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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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메젤, 13세기 경 나무, 파리, 클뤼니 미술관 |
팔메젤, 14세기 경 나무, 슈투트가르트 주립 박물관 |
[예루살렘 입성] c. 1409년 채색 필사, 토리노, 시립박물관 |
14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인간 예수가 겪는 수난이 강조되면서 수난의 시작인 예루살렘 입성이 즐겨 다루어졌다. 지오토가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채플에 그린 예수의 일생 중 [예루살렘 입성]에서 그리스도는 비록 비천한 나귀를 타고 있지만, 매우 당당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리스도는 순교의 색인 붉은 옷을 입고 (프레스코가 훼손되어 희미하지만) 푸른 망토를 걸치고, 축복을 주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오토는 화면 좌측, 예루살렘 성문을 모뉴멘탈 하게 묘사했으며, 그리스도를 환영하러 나온 사람들은 존경을 표시하고, 또 길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망토를 깔았다. 특히 지오토는 망토를 벗는 장면을 아주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 |

지오토 [예루살렘 입성] 1304~0306년 프레스코화, 200cmx185cm, 스크로베니 예배당, 파도바 |
기념비적으로 묘사된 이 예루살렘 성문은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갈 때도 다시 지나가게 된다.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머리 뒤에 그려진 황금색 후광에 관하여 언급하면, 그리스도의 후광에만 십자가를 사용할 수 있다. 이 후광은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의 중요도를 감지하는 중요한 싸인(sign)이다. 지오토는 비잔틴 미술에서 자주 나타나는 종려가지를 그리지 않고, 올리브 나무와 그 가지를 흔드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올리브 산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올리브는 로마시대부터 승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죽음으로부터 승리, 곧 그리스도의 부활을 암시한다. 올리브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꺾으려는 아이들로 인해 화면은 더욱 생기가 넘친다. | |
키 작은 자캐오
 1308-11년 두치오가 시에나 대성당 대제단화 뒷면에 그린 그리스도의 일생 중 한 장면인 [예루살렘 입성]에는 예루살렘 성곽을 둘러싸고 환호하는 인파가 더욱 증가하였다. 비잔틴 전통을 계승한 두치오는 지오토와 달리, 배경을 황금색으로 칠했으나, 화면 전경에 성곽과 문을 그림으로써 지오토의 [예루살렘 입성]보다 입체적인 화면을 구성했다. 또 화면 왼쪽 상단 예루살렘을 암시하는 건물들은 당시 시에나의 건축물이다. 두치오도 종려나무 대신 올리브 나무를 그리고 있는데, 지오토는 올리브 나무에 올라간 이를 모두 아이들로 표현한 반면, 두치오는 그리스도 바로 뒤의 나무에는 자캐오를 등장시킨다. 사실 성서 텍스트를 근거로 하면, 자캐오는 예루살렘 입성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다. 루카복음에 등장하는 자캐오라는 인물은 세관장이고 또 부자로, 예수가 예리코에 들어갈 때, 자신의 작은 키로는 군중에 가려 예수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자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간다. 지리적으로 예리코는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36Km 정도 떨어져 있으므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 일행은 거의 목적지를 코 앞에 둔 상황이라, 자캐오의 일화를 예루살렘 입성 안에 충분히 삽입할 만하다. 이러한 이유로 자캐오는 이미 6세기부터 비잔틴에서 제작되는 예루살렘 입성에 주요 모티브로 등장한다. 반면 라틴지역에서는 나무 위에 올라간 어린이의 모습이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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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치오 [예루살렘 입성] 1308~1311년
시에나,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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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피에트로 로렌제티 [예루살렘 입성] 1335~1336년
아시시, 성 프란시스코 바실리카 |
피에트로 로렌체티가 1335-6년,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코 바실리카에 그린 [예루살렘 입성]에도 올리브 나무에 올라가는 작은 아이가 자캐오를 연상시킨다. 이 행렬에서 흥미로운 점은 예수의 뒤를 따르는 12제자들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는데, 예수 바로 뒤에 있는 노란 겉옷을 입은 베드로 옆에 스승을 배반할 유다가 등장한다. 유다의 머리에만 황금색의 후광이 없다. 군중들은 종려가지를 들고 환호하는데, 종려가지는 올리브 가지와 마찬가지로 로마에서 전통적으로 승리의 상징이었는데, 그리스도교에 흡수되면서 죽음을 극복한 순교자의 승리를 상징하여 순교자의 지물이 된다. 요한복음은 “축제를 지내러온 많은 군중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말을 듣고서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 ‘호산나! 이스라엘의 임금님은 복되시어라’“(요한 12,12-13)라고 외쳤다고 적고 있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환대를 받지만, 이제 서서히 수난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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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정은진 / 문학박사 | 서양미술사
- 중세 및 르네상스 미술사 전공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강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가르친다.
발행일 2011.03.25
이미지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Wikipedia, Yorck Projec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