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학대회 참가자들에게 우리의 굿을 보여주기 위하여 금화당 당주 김금화 선생과 굿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를 상의한 적이 있었다. 2시간에서 1시간 이내에 보여주어야 할 것을 정해야 하였다. 김금화 선생은 해외공연과 국내공연의 경험이 많은 분이라 굿을 하는데 어려울 것은 없었다. 복떡 나누어주기, 인연 맺기, 작두타기, 대동 춤의 네 가지로 정했다. 이 네 가지를 하기 위하여 아침부터 굿을 시작하여야 하였다. 이 굿의 이름이 서해안풍어제이다.
6월 24일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김금화 선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노선생, 오늘 강화도로 꼭 와야 해요. 다른 데로 가지 말고.”
“김선생님이 오라고 시면 그리로 가지요.”
김선생이 의례적인 인사말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내가 그곳에 가지 않으면 아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가서 그 곳에서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투어 행사는 생극에서 소서노석상제막식을 시작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에서 행사를 끝내야 다음 행사지인 강화도로 갈 수 있었다.
이귀선씨가 마고 춤을 시작하기 전에 숙명여대에서 한국사를 강의하는 강영경 선생을 만나게 되어 내가 강화도 금화당으로 간다고 했더니 안동으로 가려고 했던 마음을 바꾸어 함께 강화도로 가게 되었다.
가이드 학생에게 물으니, 3번 버스가 강화도로 간다고 한다. 운전기사에게 내가 함께 가겠다고 말하고, 승객들이 다 타기를 기다려, 맨 앞자리에 앉았다. 차가 출발한 시간은 오후 5시 58분이었다. 너무 늦게 출발한데다가 중간 중간 차가 밀려 시흥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운전기사와 피로를 덜 겸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는 선생님을 처음 보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서로 만난 적이 없고, 오늘 인사를 나눈 적도 없는데, 그가 나를 보는 순간에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니,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에게서도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금화당에 도착하니 9시를 넘었다. 자지러지는 장구가락에 어우러지며 제자들이 굿을 하고 있었다. 당주께서 한복차림으로 손님들을 맞았다. 나를 보더니. “어쩐지.”하며 웃는다. 이 말에 무엇인가 드러내지 않은 뜻이 있었다.
금화당에서는 외국인과 내국인을 위하여 비빔밥을 준비하였다. 금화당의 1층 규모가 전면 5칸, 측면 3칸 반 정도 되므로 40명의 인원을 1층에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일을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들이 남녀 합하여 10여 명은 되는 것 같아 보였다.
준비한 반찬은 비빔밥에, 전, 삶은 돼지고기, 오이미역창국, 셀러드, 김치, 조개젓, 쌈 등이다. 외국 여자들이 젓가락질로 식사를 하는 것을 보니, 젓가락문화가 세계화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젓가락을 쓰는 나라는 우리, 일본, 중국이다.
시간이 너무 늦어 한 시간 정도만 공연을 보기로 하였다. 모처럼 보는 공연, 외국인으로서는 평생 한 번 볼 수 있을까말까 한 귀중한 공연인데 아쉽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을 마치고 공연장으로 내려갔다. 공연장은 금화당을 배경으로 동북쪽에 자연석을 세워 계단식의 돌좌석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무대를 내려다보게 되어 있었다. 악사들이 동쪽으로 자리를 잡았고, 풍어제를 알리는 깃발이 사방에 서있고, 아래에서 올라오는 계단이 끝나는 곳에, 솔문을 세웠다. 마지가 걸린 곳 바닥에 띠배도 만들어 놓았다. 조명을 밝혀 관람을 하는 데엔 지장이 없었다. 모기가 달려들어 물지 않았다.
김금화 무당이 손님들을 위하여 무복을 갈아입고 굿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외국사람들을 위하여 축원하고 韓中日의 평화와 번영과 공존도 기원하고, 마지막에 댕큐를 연발하니 외국 여자들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였다.
이어서 복떡을 나누어주는 거리로 들어갔다. 단상을 사람 크기보다 크게 만들고, 그 위에 떡을 담은 그릇에 동글동글한 흰 떡을 담아 놓았다. 몇 사람의 외국 여성들을 대표로 불러 접시를 논아주고 떡을 담게 하여 일행으로 참석한 외국 여인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하였다.
넙적한 떡은 둥근 반데기라고 하여 해를 상징하고, 둥근 공처럼 생긴 떡은 달을 상징한다. 네모난 직사각형의 떡은 땅을 상징한다. 이들 떡에 천지인天地人과 원방각圓方角의 의미가 있다. 원래 복덕 나누어주기는 만구대탁굿(만수대택굿)에서 일월마지행사로 하던 것이라고 한다.
다음엔 청실홍실을 꼬아 만든 실을 외국여성대표들에게 나누어주어 목에 걸게 하였다. 이승에서의 인연의 끈을 매어주는 것이다. 참가자들이 그 의미를 알고 나자 좋아하였다.
다음엔 작두타기이다. 드럼통 2개를 길이로 얹고, 그 위에 물동이를 놓고, 물동이 위에 말을 놓고, 그 위에 작두를 놓는다. 작두를 놓기 전에 무당이 작두의 성능을 실험한다고 한지를 갖다대면 썩하고 갈라진다. 이 칼날을 다리에 문지르고, 팔에 문지르고, 혀에 대어 사람들을 조마조마하게 한다. 그러나 상처는 나지 않고 말짱하다. 이런 위력을 보여준 다음에 작두를 설치한다.
당주가 대야에 발을 씻고 나서, 사다리 앞으로 뛰어간다. 사다리를 올라가서 작두를 탄다. 작두 위에 서서 먼저 오방기를 휘두르다 둘둘 말아서 외국인에게 뽑게 한다. 붉은 기를 뽑으면 참가자들이 좋다고 환호한다. 쌀을 뿌려 이를 받아먹게 한다. 터키 여자에게 공수를 주었는데 맞는다고 한다.
당주가 작두에서 내려와 상민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서, 신복 한 가지씩을 참석자들에게 나누어주어 입게 하고, 전립도 나누어주어 쓰게 하고, 가면도 나누어주어 쓰게 하고, 소고도 나누어주어 두들기게 함으로써 대동굿의 중요한 장면으로 넘어간다. 신나게 가락과 리듬이 나오고, 주무를 따라 신나게 춤추며 돌아간다.
한국사람이나 외국사람이나 춤을 즐긴다. 강영경 선생도 황색의 포를 입고 춤을 춘다. 나도 황색의 포를 입고 소고를 두드리며 춤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걸 추고 있다. 아쉽지만 정한 시간을 넘겨 끝을 내야 하였다. 0시가 다 되어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서울로 출발하였다, 나는 밤에 별을 보기 위하여 이곳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