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특성만을 소재와 주제로
金芝娟(소설가)
특정지역의 한 공간에서 공기와 바람을 함께 쐬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을 더불어 상식하고 그곳만의 풍습에 젖어 어우러져 살아온 사람들은 특별한 인연이다. 무한의 우주속, 지구라는 행성의 한 변방 작은 반도에, 그것도 남단의 내륙에 위치한 특정 고을에 하필이면 당신과 나 머리 맞대고 살았다는 사실이 예사스런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5년 전, 그 특정지역에서 감수성 예민하던 청소년 때 문학이란 거창한 명제를 품고 동아리 모임을 갖던 옛 문우에게서 반가운 전화가 왔었다. 출향문인 향우회를 만들고자 하니 동참하라는 내용이었다. 마음 먼저 반가워서 그러겠다고 선뜻 대답했다. 그러다 다섯 해가 지난 후에사 처음으로 모임에 나갔다. 보고싶은 사람들, 남강과 소싸움, 말티고개, 큰들 딸기밭, 뒤벼리 처녀골, 선악재 화장터, 너우니 모래찜질, 영남예술제, 논개와 삼장사, 비봉산과 의곡사, 옥봉동 권번의 늙은 기생, 예술제 전날 밤의 조촐한 유등놀이, 명절날 동네마당에서 ‘작으나 크나 내 동무야 치나친치나네’ 어우러져 추던 흥겨운 춤놀이 등 진주의 옛 이미지가 머리 속에 버무러져 설레었다. 그러나 일면 뺨이 붉던 10대에 어우러졌던 사람들을 50년 넘어 만나자니 노쇠한 몰골이 민망스럽고, 마음과는 달리 뒤늦게 참여한 것도 편치만은 않아 조심스러웠다.
물론 너도 나도 희끗희끗한 모습들로 반갑게들 맞아주어 고마웠지만 그러나 머리 속에 가득찼던 50여년전 진주 이미지의 향수는 마음속의 그리움으로만 남았다. 긴 세월 서로간의 소통도 없었으면서 처음부터 진주 맛의 무엇을 기대했던 자신에 자조를 머금었다. 다만 모임의 진행에 진주 특유의, 남성 중심의 권위적 분위기로 시종된다는 느낌은 상긔도 있었다.
그러나 설레었다. 사춘기 전후, 문학이란 명제를 내걸어 당당하게 남학생과 어울려 볼을 붉히던 그때 그 소년들을, 이제 세월의 세파에 휘둘려 쓸쓸한 모습들이 되었다 해도 지척에서 그들을 재회함에는 뭐라 형용키 어려운 흥분이 따랐다.
더욱이 옛소녀의 늙어버린 모습을 안타까워 한 정재필 시인의 즉흥시 ‘봄날은 간다’ 가 바리톤의 멋진 음성을 타고 읊어지자 설렘은 감동으로 이어졌다. 순수했던 그 시절의 감성이 때절고 질겨진 노탁의 감성을 건드렸던 것일까. 참으로 오랜만에 맑고 아름다운 감성의 정화(淨化)를 겪은 듯 벅찬 기분이었다.
진주의 농염한 맛은 정작 ‘남강 문학’에서 맛볼 수 있었다. 매호 마다 빠짐없이 읽으면서 향수에 흠뿍 젖었다. 그토록 그립고 즐겁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편편마다 유년 소년 청년 적의 익숙한 삶이 책속에 무르녹아 연신 웃음을 머금게 하고 그리움을 솟구치게 하고 편안하고 짠한 울림이 갈피마다 있었다. 어느 문학지가 이토록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혼자 뻐근했다.
물론 특정지역 진주와 언저리의 동향인이 아니면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으나 그러나 진정 크고 깊은 본연의 순수함은 어디에도 통한다고 했었다.
문득,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노벨문학상을 겨냥해보려 모두들 안간힘 쓰듯남강문학을 감성을 울려주는 한국 제 1의 출향작가 문학지로 발돋움 시켜봄은 어떨까도 싶었다. 우리들의 유별한 특정지역 진주의 특성만을 소재와 주제로 다루는 문학지로, 여느 흔한 종합지 스타일과 전혀 다른 차별화를 두었으면 싶었다.
첨단 문명으로 하루가 다르게 진주의 고유한 맛과 멋이 사라져 가고 있는 때에, 출향작가들이 친목을 도모하고 위안을 얻고 힘을 충전하는 향소(鄕所)로서의 의미도 크지만, ‘남강문학’은 더 이상의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가능성을 책을 독파하는 내내 떠올려 보았다.
김지연 약력
경남 진주 출생, 1967년 <매일신문> 신춘 문예 당선 등단, 한국소설문학상, 남명문학상, 펜문학상,손소희문학상,채만식문학상 등 수상, 장편소설<산정>, <산울림>, <야생의 숲>, <아버지의 장기>,<살구나무 숲에 드는 바람>, <히포크라테스의 연가>, <어머니의 고리> 등, 한국여성문학인회 제22대 회장 역임.
첫댓글 타관서 모르는 사람들한테 신경 쓰면 뭐 합니까. 고집불통이고 소박한 고향 문우들이 좋지요.
저는 초지일관 진주 냄새나는 수필만 쓰려고 작정한 사람입니다.
진주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걸 ..아름답게 피어나는 고향의냄새 ..
진주냄새 진주사람 진주여고 ..석라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냅니다 안병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