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둘이먹다가,,..서이죽어도 모리는거,....쩝쪕!~~
안동 ‘까치묵’집 ‘태평초’
김치-돼지고기 볶아 눈물 한방울 섞어 ‘자박자박’ 거칠지만 포근한 할머니 정에 뜨끈한 ‘아랫목 맛’ 멸치와 다시마로 우린 육수에 새빨간 김치를 넣은 김치찌개가 맛있을까? 아니면 비계가 넉넉하게 붙은 돼지고기를 왕창 넣고 끓인 김치찌개가 맛있을까? 담백한 맛과 얼큰한 맛의 대결이다. 사람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입맛도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만약 이 김치찌개에 메밀묵이 들어간다면? 경상북도 안동, 영주, 예천 등지엔 예부터 묵이 들어간 김치찌개가 있었다. 이름하여 ‘태평초’다. 들에 피는 풀이름이 아니다. 태평초는 김치찌개는 아니지만 우리네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온갖 것들이 묵과 함께 들어간다. 주로 묵 전문점의 차림표에 등장하는 음식이다. 어딘가 늘어지게 ‘태평’스러운 이 요리는 어디서 시작한 먹을거리일까? 탕평채가 태평초 되었을까 <동국세시기>(조선 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가 지은 세시풍속서)에는 “녹두포(청포묵)를 잘게 썰고 돼지고기, 미나리, 김을 섞고 초장에 무쳐서 서늘한 봄날 저녁에 먹을 수 있게 만든 음식을 탕평채라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전통음식연구가들은 이 탕평채가 경상북도에 전해지면서 태평초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탕평채는 ‘골동채’ ‘묵나물’이라고도 불렸고 양반네들이 주로 즐겼다. 청포묵은 메밀묵이나 도토리묵보다 만들기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서민들은 청포묵대신 메밀묵이나 도토리묵을 넣어 ‘태평초’를 완성했다.
‘태평초’ 만드는 과정을 귀 쫑긋 세우고 들으면 금세 이해가 된다. ‘탕평채’와 비슷하다.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까치묵집’ 주인 김언늠(70) 할머니와 그의 따님, 이경미(42)씨가 자박자박 만드는 법을 설명해준다. “김치와 돼지고기를 들기름에 볶다가 익으면 육수(멸치, 무, 다시마, 콩나물 등으로 우린 물)를 부어요.
그 다음에는 고추를 썰어 넣고 소금과 마늘로 간을 하지요. 메밀묵과 채소(양파, 미나리, 버섯, 쑥갓 등)를 넣고 더 끓이고 마지막에 고춧가루와 김가루를 뿌려 먹어요. 어릴 때 먹었던 ‘태평초’는 물이 거의 없었어요. 마치 볶음요리 같았지요. 지금도 옛날 맛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은 물이 너무 많다 하고 젊은 사람들은 너무 없다고 말하네요.”
논두렁 사이로 호젓하게 있는 까치묵집은 시골집이다. 김 할머니의 묵 만드는 솜씨는 젊었을 때부터 동네에서 유명했다. 한 솥 만들면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의 묵을 얻으러 줄을 섰다. 평범한 시골 아낙네였던 할머니는 2000년부터 할아버지가 아파서 몸져눕자 5년 전 이 집을 열었다. “자식들에게 기대기가 싫었다. 내 밥벌이는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결심을 하게 된 속내에는 손자에 대한 사랑이 녹아 있다. 슬하에 3남2녀를 둔 할머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국민들이 흘렸던 눈물만큼 진한 슬픔을 가슴에 담고 있다. 둘째 아들 때문이다.
그는 젊은 날 외지에서 죽고 달랑 손자 한 명을 남겼다. 할머니는 그 손자를 애지중지 첫 돌 때부터 키웠다. 그 손자를 당당하게 키우고 싶어서 할머니는 묵집을 열었다. “집에서 해먹던 대로 해요. 좀 짜게 할 까봐 딸이 늘 걱정하지요. 된장이나 채소 모두 우리가 농사지은 것예요”라고 말한다.
죽은 아들 소식 물어 오는 까치 많아 ‘까치묵집’
할아버지는 3년 전 세상을 뜨셨다. 일부러 “외진 곳에 있는 우리집”을 찾아오는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다보면 할아버지 생각도 저만치 사라진다. 이경미씨는 “처음에는 공치는 날도 많았어요. 이제는 조금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찾아오네요”고 밝은 미소를 짓는다. 처음 1년간은 할머니 혼자 이 집을 운영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그때 이야기를 꺼내자 할머니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할머니는 둘째 딸인 이씨가 돕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편해졌다. 할머니의 주름진 손에서 뚝딱 탄생한 ‘태평초’는 바짝 긴장하다가 나른하게 풀어지는 맛이다. 매운 김치와 쫄깃한 돼지고기를 마구 젓가락으로 파헤쳐서 한 입 먹으면 순간 입안은 긴장한다. 바로 그때 보드라운 묵이 그 복잡한 맛 사이로 퍼지면서 모든 긴장을 없애버린다. ‘긴장’과 ‘풀어짐’을 반복하는 우리 세상살이와 닮았다. 이 집이 ‘까치묵집’이 된 사연은 까치들이 둥지를 많이 짓기 때문이다. 이씨는 “젊은 나이에 외롭게 죽은 아들이 하늘에서 행복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싶은 어머니의 소망”이 담겨있는 이름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우리 인생사, 먹을거리에 모두 녹아있다. 그 절절한 이야기가 담긴 할머니의 ‘태평초’는 그래서 다른 곳과 다르다. 거칠지만 포근하다. (오전 10시30분~오후 8시/매달 둘째 월요일 쉰다.
태평초 5천원, 메밀묵밥 4500원, 검정콩칼국수와 들깨칼국수 5천원, 묵무침 7천원. 054-852-7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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