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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나무를 바라보며
계룡산은 통일신라시대에는 오악 중 서악이었고, 고려시대에는 묘향산 상악, 지리산 하악과 더불어 3악 중 중악으로 일컬었던 명산이다. 갑사는 계룡산의 서편 기슭인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위치한다. 갑사는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고 하니 1,6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고찰이다. 통일신라 문무왕 19년(679)에 의상이 고쳐지었다고 한다. 그 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고치고 넓혀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갑사주차장에서 갑사로 올라가는 길머리에 거대한 고사목 한 그루가 있다. 지금은 태풍으로 부러져서 밑동만 남았다가 그마저 폭 주저앉아 새끼줄로 얼키설키 잡아매었다. 그런데 바로 이 나무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겨져 온 나무로 ‘괴목대신(槐木大神)’이라는 비석과 제단에 향로까지 놓여 있다. 갑사와 역사를 같이 하면서 1,600년을 살아온 나무로 이곳 괴목들의 우두머리 격이다. 매년 당산제가 지역축제로 열리고 있다. 이처럼 갑사는 입구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음을 예감하게 한다.
오월 말에 접어드니 어느덧 봄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예고 없이 서둘러 불쑥 찾아온 한낮 더위에 잔뜩 긴장을 하였었다. 어제는 그 동안 계절을 무시하고 너무 과열된 현상을 보이던 철 이른 더위를 식히면서 비가 내리고 심하게 바람이 몰아쳐 나무가 몸살을 앓았지 싶다. 몸이 휘어지며 유연한 동작을 보이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뻣뻣한 고목나무는 곤혹스러워 하였을 터다. 하지만 비가 그치고 바람이 멎으니 맑은 하늘에 언제 그런 날이 있었느냐 할 만큼 능청스럽다. 나무들도 그런 심란한 그림자를 씻어내고 오히려 푸른 윤기로 반들거린다. 이젠 완전히 풍성한 신록으로 뒤덮어 숲을 이루었다. 가까운 공주 갑사의 오리숲을 찾아 나섰다. 그곳의 고목을 보고 싶었다. 갑사는 같은 공주지방으로 이웃한 마곡사와 쌍벽을 이루며 흔히 춘(春)마곡 추(秋)갑사라고 할 만큼 풍경이 빼어난 곳이다. 사실 갑사는 굳이 가을이 아닌 봄이라도 손색이 없다. 눈부신 연둣빛 신록이 양산처럼 하늘을 가리면서 산사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떠나가는 봄을 아쉽게 한다.
고목나무 중에는 떡갈나무가 많으며 우람하다. 보통은 떡갈나무가 그리 크지 않지 싶은데 저토록 오래 살 수 있나 보다. 떡갈나무는 도토리나무 중 하나다. 도토리나무란 참나무과의 참나무속에 속하는 여러 수종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참나무란 말은 몽골을 고향으로 하는 나무로 몽골어로 위대한 나무라는 뜻이라고 한다. 참나무에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나무마다 도토리의 모양새가 다르다. 나무가 크다고 열매도 큰 것은 아니다. 강원도 두메산골에 굴피집이 있다. 굴피집은 굴참나무 껍질을 지붕에 얹어 지은 집이다. 굴피집은 햇볕을 쬐면 뒤틀리고 사이가 떠서 빗물이 샐 것 같지만 의외로 차분하게 가라않아 물이 새지 않는다고 한다. 여름에는 통풍이 잘되고 시원하고 겨울에는 쌓인 눈이 틈을 메워주어 보온효과까지 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새삼 돋보이는 대목이다. 굴참나무는 나무껍질에 유난히 코르크가 발달해 코르크를 채취하여 병뚜껑 만드는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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