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수원화성박물관과 행궁을 돌아본다.>
<화성의 전체윤곽을 관광안내도로 알아본다.>
화성은 조선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우리나라 성곽문화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둘레가 5.7km에 달하고, 정조 때인 1794년부터 1796년에 완성되었다.
다산 정약용이 설계 계획하고 채제공의 총감독하에 각도의 장인과 백성들을 모집하여 축성하였다.
강제 부역이 아닌 품삯을 지급하는 방식의 모역제(募役制) 방식으로 실시하여 10년 계획한 것을 3년이내에 완성시키는 대토목공사였다.
<수원화성박물관에서 화성의 축성의의등과 같은 전체적인 내용과 축성방법, 자료 등을 배경지식으로 행궁과 화성을 보면 답사에 유익하다.>
<성곽 축성시 사용되던 무기류를 볼 수 있다. >
<성곽 축성과정은 석재부분, 전돌부분, 목재부분, 옮기기. 쌓기 등의 과정등을 그림으로 볼 수 있다.>
<화성 행궁의 입구 신풍루 .>
< 신풍루 앞에서는조선시대 무예 24기가 시연되고 있다.
옛날의 무기인 창 칼 활 방패 등을 가지고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조가 뒤주속에서 죽은 비운의 아버지를 그리며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베풀면서,
오래 사시라는 뜻으로 지은 봉수당 건물>
<봉수당 안에는 회갑연시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헌수하는 장면 모형이 완쪽에 있고 중앙칸에 왕의 자리, 오른쪽방에서는 경서를 읽는 것으로 꾸며져 있다. >
<수원유수가 사용하기도 하고, 왕의 행차시 왕의 집무공간으로 사용되던 곳>
<유일하게 원형으로 남은 낙남헌(洛南軒)
:건립당시 화성 행궁은 600여 칸의 정궁(正宮) 형태로 지어졌다. 봉수당, 복내당, 유여택, 신풍루, 남북군영, 우화관, 득중정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일제시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정책으로 다 헐리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 낙남헌이다.
<낙남헌의 돌계단의 무늬: 구름 문양과 삼태극 - 복원 건물의 원형이다.)
<낙남헌은 온돌형식의 난방방식을 이용했는데 마루가 깔려있는 것이 오늘날 아파트 난방방식을 연상케한다.>
왕궁에서는 나무를 때지 않고 숯(백탄)을 사용했다. 그름을 내지 않기 위해서다. 굴뚝이 따로 오른쪽에 있다.
<정조대왕의 어진을 모셔놓은 곳 : 화령전이다.>
<화령전의 운한당은 아름다운 고건축이다.>
< 운한당안의 정조대왕의 어진: 군복차림이다.>
<정조가 창덕궁에서 이곳 화성의 사도세자묘인 현륭원까지 행차도; 6천여 명의 인원, 단원 김홍도가 그린 그림
아래 그림은 혜경궁 홍씨가 탄 가마고 이어서 뒤에 정조가 말을 타고 따른다.>
<행궁안 터에 아직도 자리잡고 있는 신풍초등학교 건물: 핸드볼 골대 뒤로는 일제시 건축물 양식의 건물이 보인다.>
(*일제는 경복궁 근정전 앞에다 총독부를 짓고, 창경궁에 동물원을 두고, 화성 행궁도 다 헐어버리리고, 전국 곳곳의 관아터는 대부분 보통학교를 짓고 그렇게해서 없애 버렸다. 길지에있는 우리의 사당은 헐고 일제 신사를 짓고, 아는지 모르는지 초등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소리지르며 뛰어논다.)
*화성성곽은 다음에 소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