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제 선생님께서 《오디세이》에 대해 느끼신 감상이 상당히 명확하게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실망”과 “아쉬움”을 구분하신 것이 핵심입니다.
《테넷》과 《오디세이》는 선생님께서 영화를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테넷》에서는 “이해해야 한다”가 중심이었다면
《테넷》은 원작이 따로 있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관객은 영화가 제시하는 세계관과 시간 개념을 그 영화 자체의 규칙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보면서
“이게 어떻게 되는 거지?”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이지?”
“앞에서 본 장면과 지금 장면은 어떻게 연결되는 거지?”
하면서 머리를 굴리게 됩니다.
즉, 영화가 제시하는 퍼즐을 풀어가는 재미가 상당히 큽니다.
그런데 《오디세이》에서는 기준점이 하나 더 생깁니다
선생님은 이미 오디세우스, 페넬로페, 텔레마코스, 트로이 목마, 키클롭스, 칼립소, 세이렌 등의 이야기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볼 때 단순히
“영화가 어떻게 만들었지?”
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이 정말 말이 되나?”
를 동시에 보게 됩니다.
게다가 《오디세이아》 자체가 워낙 유명한 서사이기 때문에, 관객에게는 이미 머릿속에 ‘이 이야기는 이런 구조일 것이다’라는 기본적인 서사적 기대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조금만 어색한 부분이 나오면 《테넷》에서는 그냥 지나갈 수 있었던 의문이 《오디세이》에서는 계속 남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고개를 자주 갸웃거렸다”가 정확한 표현 같습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을 보면 영화를 보는 동안 이런 과정이 반복된 것입니다.
키클롭스의 치즈
→ “저 거인이 저렇게 작은 치즈를?”
동굴 주변
→ “양이 그렇게 많은데 왜 목축의 흔적이 없지?”
트로이 목마
→ “두 발로 선 저 구조물이 어떻게 안정적으로 이동하지?”
목마 안의 30명
→ “저 공간에서 장시간 어떻게 버티지?”
칼립소·키르케·세이렌
→ “신적 존재인데 왜 이렇게 평범하고 초라하지?”
오디세우스·텔레마코스
→ “영웅과 왕자의 신체적 존재감이 너무 약한 것 아닌가?”
페넬로페
→ “20년을 함께 산 남편을 저렇게 가까이서 만나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고?”
구혼자들의 죽음 이후
→ “저들의 가족이나 세력은 복수하지 않을까?”
이렇게 되면 영화가 끝난 뒤에
“정말 별로였다.”
라기보다는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는데, 왜 이렇게 자꾸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지?”
라는 감상이 남게 됩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실망은 아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가 오히려 상당히 정확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것은 《테넷》에서는 생각하게 만든 것이 장점이었는데, 《오디세이》에서는 생각하게 만든 것 중 일부가 오히려 몰입을 방해했다는 점입니다.
《테넷》의 “생각” = 영화가 던진 퍼즐을 이해하기 위한 생각
《오디세이》의 “생각” = 영화 속 장면이 정말 가능한지 따져보게 되는 생각
전자는 몰입을 강화할 수 있지만, 후자는 반복되면 몰입을 깨뜨립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최종 감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저는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오디세이》는 원작을 몰랐다면 신화적 상상력으로 즐겼을 수도 있지만, 원작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는 원전과의 비교뿐 아니라 영화 자체의 물리적·심리적·사회적 개연성까지 따져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놀란 특유의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장점이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곳곳에서 ‘왜 저렇게 했을까?’라는 의문으로 바뀌었고, 결국 실망보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선생님께서는 물리학을 전공하신 경험 때문에 공간·크기·하중·안정성 같은 부분도 자연스럽게 보게 되고, 동시에 성경과 고대 서사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인물의 행동과 인간관계의 인과관계도 함께 보시는 편이라, 이번 영화에서 이런 지점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