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의 학이 이같은지라 (저들)스스로가 물을 부리기는 하되 물에게 부림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약에 돈 한푼을 주어도 곧 그것을 어찌할 줄을 모른다면 이는 그일이 이상하지 아니한가 ?
그런즉 하늘이 사람을 낳아 만물의 영장이 되게하고 재성(財成)과 보상(輔相)의 직책을 부여함이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 그 말이 반복되어서 두서가 비록 많으나 간단히 요약하면, 우리는 심과 리가 하나라고 본 것이요 저들은 심과 리가 둘이라고 본것이며 저들은 마음이 공함으로써 이치도 없다고 보았고 우리는 비록 공하더라도 만물이 모두 이치를 갖추었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우리 유가는 하나이고 불가는 둘이며 유가는 연속이고 불가는 간단인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하나이니 어찌 저들과 우리가 같고 다름이 있겠는가 ? 다만 사람의 보는 바가 옳으냐 그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네가지 큰 원소로 된 몸 가운데에 어느 것을 주(主)라하고 육근(六)의 번뇌속에 무엇을 정(精)이라 하리오 ?
(地(뼈) 水(피) 火 (온기) 風(호흡) 이 네가지 큰 원소가 화합하여 하나의 몸이 되었으나, 그 사대를 따로 떼어내면 본래 주가 없고 色, 聲, 香, 味, 觸, 法 이 여섯가지 번뇌가 서로 대경되어 생기지만 그 육근을 별도로 떼어내면 본래 정이 없으므로 거울 속의 현상처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캄캄하고 멀고 아득한 땅에서 눈을 떠보라. 종일 소리는 들려도 형체는 볼 수 없구나.
(지혜로써 용에 비추면 비록 어둡고 아득한 땅에서 눈을 떠 보아도 그 어둠속에 빛이 있나니 거울 빛이 어둠속에서도 빛을 냄과 같은 것이다.)
이는 석씨가 그 마음을 체험한 것이다.
있다고 한들 어찌 자취가 있으며 없다한들 다시 무엇이 있으리오? 오직 물에 응하여 수작할 즈음에 다만 통달하여 본근을 본다. 주자의 시(詩)이다.
이는 우리 유가가 그 마음을 체험한 경지이다.
또 도심(道心)은 본래 형체가 없는데 소리가 있겠는가 ? 또한 이 이치를 마음에 보존하여 두어 수작의 근본을 삼아야 할 것이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일상생활을 하는 사이에 이 마음이 발현되는 곳에 나아가서 그것을 체험하고 궁구하면 피차간의 동이와 득실을 스스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자지설로써 거듭하여 말하건데, 마음이 비록 일신의 주가 되나 그 체의 허령함은 족히 천하지리를 주관할 수 있고 리가 비록 온갖 사물에 흩어져 있으나 그 작용의 묘미가 실로 人之一心을 벗어나지 아니하니 애초부터 어느 것이 안팎이고 정(또 도심(道心)은 본래 형체가 없는데 소리가 있겠는가 ? 또한 이 이치를 마음에 보존하여 두어 수작의 근본을 삼아야 할 것이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일상생활을 하는 사이에 이 마음이 발현되는 곳에 나아가서 그것을 체험하고 궁구하면 피차간의 동이와 득실을 스스로 알 수 있을 것이다.)하고 조(粗)함을 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혹 이마음의 신령함을 알지못하여 이를 보존함이 없다면 곧 어둡고 뒤섞이어서 모든 이치의 묘함을 알지 못하여 궁구함이 없으면 편협되고 막히어서 이 마음의 온전함을 다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그 理와 勢의 서로간 需用이라서 또한 필연한 것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이 가르침을 베푸시어 사람들로 하여금 이 마음의 심령함을 묵묵히 알아 단정하고 엄숙하고 정일한 가운데에 간직하여 이 이치를 궁구하는 근본으로 삼게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이치의 묘함이 있음을 알아 베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변하는 즈음에 궁구하여 마음을 다하는 공을 이루어 크고 작음을 서로 흐뭇하도록 하고 동함과 정함을 서로 길러 갈 뿐, 애초부터 어느것이 안팎이고 정하고 조함을 택하지 않게 하나니, 진실로 오랫동안 힘을 쌓아 활연히 꿰뚫음에 미치면, 또한 혼연일치를 알아서 과연 내외와 정조함이 없음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반드시 이것을 천근(淺近)하고 지리(支離)하게 여겨 형체를 감추고 그림자를 숨기면서 따로 일종의 궁벽하고 황홀하고 까다롭고 막힌 논리를 만들어 배우는 자로 하여금 막연히 그 마음을 문자와 언어의 밖에 두도록 힘쓰게 하고 말하되, "도는 반드시 이같이 한 후에 얻을 수 있다."하니 이것은 근세 불씨학의 피음사둔(피,淫,邪,遁)이 더욱 심한 것인데 이를 옮겨와 옛사람의 명덕과 신민의 진실된 학문을 어지럽히고자 하니 그 또한 오류이다. 朱子의 말이 이 모든 것을 반복 논변하여 친절히 밝혔으니 배우는 자는 이에 잠심하여 스스로 얻어야 할 것이다.
이하
佛法入中國
事佛得禍
舍天道而談佛果
事佛甚謹秊代尤促
闢異端辨
등은 생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