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수업 : 텍스트 6장
1) 소유하려면, 모두에게 모두 주어라
1
모든 훌륭한 교사처럼, 성령은 그대가
지금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러나
성령은 오직, 그대를 성령 자신과
동등하게 만들기 위해서만, 가르친다.
그 이유는,
그대가 이미 진리가 아닌 것을
믿고는,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완벽함을 믿지 않았다.
신께서는, 그대의 마음이 온전하다고 아시는데, 그대가 분열된 마음을 만들었다고 가르치실 수 있겠는가?
신께서 아시는 것은, 그분의 소통
채널들이 그분께 열려있지 않아서,
당신의 기쁨을 전해 주실 수도 없고,
당신의 자녀들이, 전적으로 기뻐하고
있음을 아실 수도 없다는 것이다.
신께서 기쁨을 전해주시고,
당신의 자녀들이 전적으로
기뻐하고 있음을 아시는 것은,
시간이 아닌, 영원 안에서
계속 진행 중인 과정이다.
온아들이,
신과 하나로서 소통하지 않을 때,
그분의 완전하심은 그대로이지만,
외부로의 확장은 가로막힌다.
그래서
신께서는, “나의 아이들이 자고 있으니
깨워야겠구나.”라고 생각하셨다.
2
아이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서,
단지 밤이 지나고 빛이 왔다고,
상기시키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깨우는 것보다,
그대가 어떻게 아이들을 더 잘,
그리고 더 다정하게 깨울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대는 아이들에게,
그들을 그토록 무섭게 만든 악몽이,
실재가 아니라고 알려 주지는 않는데,
아이들은 정녕 마법을 믿기 때문이다.
그대는 단지 아이들에게, 그들이
지금 안전하다고 안심시켜 줄 뿐이다.
그런 다음 그대는, 아이들이
자는 것과 깨어있는 것의 차이를,
인식하도록 훈련시킨다.
그러면
아이들은, 꿈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런 후 악몽이 오면, 그들은
스스로 빛을 불러 쫓아낸다.
3
현명한 교사는
회피가 아니라, 접근을 통해 가르친다.
그는 해(害)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강조하지 않고,
기쁨을 갖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더 강조한다.
이것은 심지어
세상의 교사들에게도, 해당되는 사실이다.
아이가 “이것은 너를 해치고
안전하지 않게 할지도 모르니, 하지 마라.
그렇지만 저것을 하면, 너는 해로부터
벗어나 안전할 것이며, 따라서 두려워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을 들을 때,
경험할 혼란에 대해 고려해보라.
이 모든 말은,
“단지 이것만 해라!”라는
단 세 단어
안에 포함될 수 있다.
이 간단한 말은,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며,
쉽게 이해될 수 있고,
아주 쉽게 기억될 수 있다.
4
성령은 결코 잘못을,
조목조목 거론하지 않는다.
지혜가 없는 자가 아이이며,
성령은 결코 아이들을 무섭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령은, 아이들이
부르기만 하면 언제나 응답하며,
그의 믿음직함은 아이들을
더욱 확신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정말로
환상과 실재를 혼동하며, 그 차이를
알지 못하기에 두려움에 떨고 있다.
성령은, 꿈들을
전혀 구분하지 않는다.
성령은 단지 빛을 비추어,
꿈들을 쫓아버릴 뿐이다.
그대가 그동안 무슨 꿈을 꾸고 있었든,
성령의 빛은, 언제나 깨어나라는 부름이다.
꿈속에는
지속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신으로부터 오는 빛으로
빛나는 성령은, 오직 영원히
지속되는 것만을 위해서 말한다.
5
그대의
몸과 에고와 꿈이 사라질 때,
그대는, 그대가 영원히
지속될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것은
죽음을 통해 성취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죽음을 통해 성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죽음은 정녕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생명을 통해 성취된다.
그리고 생명은,
마음의 것이고
마음 안에 있다.
몸은,
생명 자체인 그대를
담아둘 수 없기에,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우리가
같은 마음을 공유한다면,
내가 죽음을 극복했기에,
그대도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
죽음은,
뜻을 전혀 내지 않음으로써,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에고가 시도하는,
다른 모든 불가능한 해결책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효과가 없을 것이다.
6
신께서는
몸을 만들지 않으셨으니,
몸은 파괴될 수 있고, 따라서
왕국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은 그대가, 그대라고
생각하는 것의 상징이다.
몸은 명백히
분리의 도구이며,
존재하지 않는다.
성령은 늘 그렇듯이,
그대가 만든 것을 취해서,
그대를 위한
배움의 도구로 전환한다.
마찬가지로
늘 그렇듯이,
에고가 분리를 위한
주장으로 사용하는 것을,
성령은 분리에 반하는
입증 자료로 재해석한다.
마음은 몸을
치유할 수 있는 반면에,
몸은 마음을
치유할 수 없다면,
마음이 당연히
더 강할 것이다.
모든 기적이 바로
이것을 입증해 준다.
7
앞에서 성령은,
기적을 일으키기 위한
동기부여
(motivation)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성령은 항상
그대에게, 오직 마음만이
공유될 수 있으므로,
오직
마음만이 실재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몸은 실로 분리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대의 일부일 수 없다.
한 마음이 되는 것은
정녕 의미가 있으나,
한 몸이 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마음의 법칙에 따라,
몸은 의미가 없다.
성령에게는
기적에 난이도가 없다.
지금은 그대에게, 이것이
충분히 익숙하게 들리겠지만,
아직 믿을만하게 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대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사용할 수도 없다.
8
우리가
이 핵심적인 개념을
그냥
흘려버리기에는,
왕국을 위해
성취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이 개념은
내가 가르치고 있으며,
그대가 가르치게 하려는,
사고체계의 진정한 초석이다.
그대가
이 개념을 믿지 않는다면,
기적을 행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완벽한 동등성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신의
동등한 아들들에게는,
오직
하나의 동등한 선물만이
제공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가치를
완전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범위가 없다면,
난이도는 정녕 의미가 없다.
그리고 너희가
서로에게 제공하는 것에도,
정녕 범위가 없음이 틀림없다.
9
신께로
이끄는 성령은,
궁극적으로 지각을
앎으로 전환하듯이,
소통을
존재로 전환한다.
에고는 몸을
공격과 쾌락, 자만을
위해 사용한다.
이런 지각은
제정신이 아니므로,
몸을 실로
두려운 것으로 만든다.
성령은 몸을 오직
소통 수단으로만 본다.
소통하기는
공유하기이므로,
몸은
영적 교감이 된다.
그대는 사랑과 마찬가지로,
두려움도 소통될 수 있으며,
따라서 공유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럴듯해도
사실이 아니다.
두려움을 소통하는 자들은,
공격을 조장하는데, 공격은
언제나 소통을 단절시키므로,
공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10
에고들도, 물론
일시적인 충성에 동참할 수 있지만,
언제나 각자가, 서로 별도로
얻을 수 있는 것을 위해서이다.
성령은 오직, 각자가 전체에게
줄 수 있는 것만을, 소통한다.
성령은, 그대가 그것을
간직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거두어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령의 가르침은,
다음의 교훈과 함께 시작한다:
“소유하려면,
모두에게 모두 주어라.”
11
이것은
지극히 예비적인 단계로서,
그대 스스로
취해야 할 유일한 단계이다.
심지어 그대는, 이 단계를
스스로 완성할 필요조차 없지만,
그대가 그 방향으로
돌아설 필요는 정녕 있다.
그 길로
가겠다는 선택을 함으로써,
그대는 그대 자신을 여정을
책임지는 위치에 두게 된다.
그곳에는
다른 아무도 없이,
오직
그대만 있어야 한다.
12
이 단계는 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악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 단계는
그대의 지각을 역전시켜,
바르게 세우는 데서,
시작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대가 아직 포기하지 않은,
위아래가 뒤집힌 지각과
갈등을 일으킨다.
그렇지 않다면,
방향의 변화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첨예한 갈등을
경험하면서,
이 단계에
아주 오래 머물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많은 이들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
갈등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갈등을 받아들이려 한다.
그렇지만
이미 첫 단계를 취했으므로,
그들은
반드시 도움을 받을 것이다.
그들이 홀로,
완성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한 이상,
그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ㅡ 기적수업 밴드ㆍ텍스트 6장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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