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전쟁_이·팔 전쟁의 뿌리는 침략주의
창세기 21:8-14
8. 아기가 자라나 젖을 뗄 때가 되었다. 이사악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9. 그런데 사라는 이집트 여자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아준 아들이 자기 아들 이사악과 함께 노는 것을 보고
10.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그 계집종과 아들을 내쫓아 주십시오. 그 계집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11. 이 말을 듣고 아브라함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이스마엘도 자기 혈육이었기 때문이다.
12. 그러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그 애와 네 계집종을 걱정하여 마음 아파하지 마라. 사라가 하는 말을 다 들어주어라. 이사악에게서 난 자식이라야 네 혈통을 이을 것이다.
13. 그러나 이 계집종의 아들도 네 자식이니 내가 그도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14.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양식 얼마와 물 한 부대를 하갈에게 메어주며 아이를 데리고 나가게 하였다. 하갈은 길을 떠나 얼마쯤 가다가 브엘세바 빈들을 헤매게 되었다.
작년 오늘 159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유가족은 물론 다수의 생존자와 시민들에게도 큰 트라우마를 남긴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미증유의 사회적 참사로 별이 되신 분들과 유가족 등 소중한 사람을 잃은 분들에게 위로를 정합니다.
오늘 2시부터는 이들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추모식이 개최됩니다. 사전행사로 4대 종교 기도회 이어 시민추모행진이 이태원역에서 출발, 용산 대통령실을 거쳐 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 도착하여 시민추모대회를 엽니다.
유가족들 간곡한 요청에도 참사의 발생과 수습에 가장 책임이 큰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해 여당 지도부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의 본성 중 침략주의라는 게 있습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는 것을 주요 정책으로 삼는 주의를 말합니다. 이 침략주의의 근간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더 많이 지배하고 누리려는 욕망이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탄생 이래 이 경향성은 점점 증폭되어왔습니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것이었겠지만 경제와 군사력이 커져가면서 지배와 약탈이 목적이 된거죠. 이 침략주의는 결국 제국주의로 발전합니다.
제국주의(帝國主義, Imperialism)란 한 국가가 무력으로 다른 국가를 제압하여 정치적·경제적 지배권을 다른 민족·국가의 영토로 확대시키려는 충동이나 정책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역사학에서는 유럽 강대국들과 미국, 일본이 19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식민지 팽창을 벌였던 시기를 신제국주의(新帝國主義Neoimperialism)시대라고 구분합니다. 이 시기는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해외영토 강탈의 시대였습니다. 신제국주의 국가들은 급속히 발전한 신기술을 동원하여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식민지의 자원을 착취하는 거대한 제국을 세웠죠. 신제국주의 조류는 강대국 간의 경쟁과 새로운 자원 시장을 확보하고자 하는 경제적 욕구, 그리고 소위 ‘문명화 임무’라는 정신에 의해 추동되었습니다. 이 시기 식민지가 된 지역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불완전한 형태이지만 대부분 독립합니다.
요즘 3차대전의 도화선이 될지도 모르는 이스라엘-팔레스틴간의 전쟁은 그 뿌리가 4천 년에 이르는 매우 복잡한 분쟁입니다. 이 뿌리는 유대인들의 역사적, 종교적 신념에 근거하고 있죠. 그 긴 여정을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팔레스틴이란 지역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팔레스틴은 고대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통해 차지한 땅과 그 주변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흔히 자신의 나라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삿20:1)"라고 말했는데 남북으로 직선거리 약 240km인 이곳이 팔레스틴인 것이죠. 팔레스틴 지역은 서쪽으로 지중해가 동쪽은 요단강이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은 높은 산맥이 뻗쳐있고, 남쪽은 불모의 황무지가 전개되어 있습니다. 팔레스틴은 서쪽 해안평야 지대, 중앙 산악지대, 요단 계곡지대, 요르단 고원지대 등 전혀 판이한 4개의 지역으로 나눠지는 특이한 환경을 이루고 있죠.
팔레스틴 지역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세 대륙의 중심지에 있어 고대에는 북동쪽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서남쪽의 이집트 문명 그리고 후에는 에게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런 지리상의 잇점 때문에 강대국간 세력의 각축장이 되기도 하였죠,
그래서 이곳의 역사 변천은 급격하고도 다채롭습니다. 아시리아 제국, 바빌로니아 제국, 페르시아 제국, 로마 제국, 오스만 제국 등 수 많은 제국들이 이 지역을 통치했죠.
이스라엘 문명사의 출발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세기 12:1)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브라함은 고향 우르를 떠나 비옥한 초생달 지역인 이곳 팔레스틴으로 이주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을 시조로 종족을 번성시킵니다. 그중 이삭의 아들 야곱의 자손들은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이주했고 이스마엘의 자손들은 그곳에 남습니다. 이집트의 종살이로부터 탈출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삭의 후손과 남아있던 이스마엘의 후손들 사이에는 전쟁이 벌어지고, 결국 승리한 출애굽 유대인을 중심으로 12지파 동맹이 만들어집니다. 통일왕국과 분열왕국 시대를 거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앗시리아와 바빌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죠.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로마와의 2차에 걸친 전쟁으로 나라를 완전히 잃고 유랑민(디아스포라)이 됩니다. 로마시대에 디아스포라가 되어 유럽으로 쫓겨간 유대인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주변 아랍인들과 어울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을 중심으로 무함마드(570~632)가 아랍 부족들을 통일하면서 이슬람교를 만들게 되죠, 무함마드는 40세 때(610년 경) 알라의 계시를 받고 이슬람교를 창시합니다. 이후 팔레스틴 지역에 남아있던 지역민들은 이슬람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오늘날 팔레스틴의 비극은 이스라엘 건국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유럽으로 이주해간 유대인들은 1,800여년 간을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기독교도들이 예수님을 죽게한 유대인들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중세시대 생존을 위해서 그들이 택한 직업은 고리대금, 좋게 말해 금융업이었습니다. 특히 제국주의 시대 그들은 전쟁을 위한 자금을 대주면서 큰돈을 벌게 되죠. 그들은 수전노라는 별명을 얻으며 유럽인들에 의해 멸시의 대상이 됩니다. 그렇게 유럽 내의 반유대주의가 커져가죠. 결국 히틀러에의한 600만 명의 유대인이 살해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유럽계 유대인들 사이에는 시오니즘 운동이 싹트게 되죠.
시오니즘은 성경에 언급된 '약속의 땅' 시온(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유대국가를 세우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운동을 구체화 시킨 것은 영국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길어지자 영국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미국의 참전을 원하였죠. 그리고 로스차일드 등 미국에 영향력 있는 유대인들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그 가운데 나온 것이 영국 외무장관 벨프어의 선언입니다. 벨푸어선언(1917년)은 미국내 유대인들이 영국을 도와주면 팔레스틴 안에 유대국가를 건설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선언입니다.
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은 1920년부터 1948년까지 국제연맹으로부터 위임받아 팔레스틴을 통치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학살을 겪으며 유대인들 사이에는 시오니즘 열풍이 불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유대인들은 영국에 벨푸어선언을 지키라며 팔레스틴 땅으로 대규모 이주를 감행하여 정착촌을 건설해 나갑니다. 물론 이들 뒤에는 미국 영국 등 서방의 지원이 있었습니다.
이주한 유대인들은 1948년 5월 14일 팔레스틴 땅에 이스라엘 국가를 출범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에 반발한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 중동 5개국은 텔아비브를 공격하죠. 제1차 중동전쟁이 일어난 겁니다. 이 전쟁이 1949년 2월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면서 이·팔 분쟁은 이스라엘 우위로 기울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예루살렘을 비롯한 중요한 성지를 두고 양측의 종교적, 역사적 요인으로 인해 끊임없이 격화되었습니다. 여기에 제2차, 3차, 4차 중동전쟁 등이 더해져 분쟁은 복잡해졌고, 주변 이슬람 국가들도 갈등에 개입하면서 국제적인 차원으로 확대되었죠.
갈등이 격화되면서 국제사회는 해법에 고심합니다. 1993년, '오슬로 협정'을 통해 '2국가 해법'이 발표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에 양보하기로 합의한 거죠. 하지만 1995년, 오슬로 협정 당사자인 이스라엘 라빈총리 암살과 일방적인 유대인 정착지 건설로 이 해결책은 무시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약 530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난민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착지 건설과 군대 배치를 강행했습니다.
현재 팔레스틴은 UN에서 준국가로 인정받고 있는데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자치령으로 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틴은 팔레스틴 해방기구(PLO)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이 안의 두 정파인 파타당과 하마스 당의 내전으로 둘로 쪼개집니다. 결국 서안지구는 파타당이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통치하게 되죠. 서안지구의 파타당은 오슬로 협약의 이행을 요구하며 자치정부를 이어가길 희망합니다. 하지만 하마스는 이슬람 강경 근본주의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오슬로 협정을 거부하며 하나의 이슬람국가를 세우려고 하죠. 이들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시오니즘에 기초해 하나님이 준비한 팔레스틴 땅에 하나의 이슬람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는 지금 거대한 장벽으로 둘러싸인 감옥이 되었습니다. 가자지구 동쪽과 북쪽은 8m 높이의 콘크리트와 철조망 장벽으로 가로막혀있고, 남쪽은 이집트 국경, 서쪽은 지중해로 막혔습니다.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던 해안가마저도 2019년 ‘바다 장벽’ 건설로 막혀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다 위에 50m 정도 너비로 돌무더기를 쌓아 올린 뒤 그 위로 ‘스마트 펜스’라 불리는 6m 높이의 철조망을 세웠고 장벽 곳곳에 센서 및 지진감지기를 설치했습니다. 또 땅굴을 이용한 기습 침투를 막기 위해 길이 65km에 이르는 콘크리트 지하장벽도 만들었습니다.
바다 장벽의 완성으로 가로 10km, 세로 40km, 면적 360㎢,의 직사각형 가자지구는 사실상 하늘길을 제외하면 모든 통로가 막힌 ‘감옥’이 됐습니다. 가자지구는 세종특별자치시 정도의 면적에 거주하는 주민은 23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는데 16년째 이스라엘에 의해 봉쇄된 채로 생필품과 의약품 부족으로 죽지 못해 사는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열국(列國)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의 두 아들에게서 유대인과 아랍인, 두 민족이 나왔다고 암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이주한 지 10년이 되었을 때 아들이 없던 사라는(창 16:1) 당시의 관습을 좇아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아들을 얻게 했죠.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 86세였습니다(창 16:3). 아브라함은 언약의 후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의 강권에 하갈을 통해 아들을 얻은 것입니다(창 15:1-5; 17:18).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었는데 광야에서 고통당하던 하갈의 호소를 들으셨다는 의미였습니다(창 16:11-16).
이스마엘은 13세에 할례를 받았고(창 17:25). 16세 때에 사라의 질투로 어머니 하갈과 함께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납니다(창 21:8-10, 14). 아브라함은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주어 이스마엘과 하갈을 내보냈죠. 그들은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며 탈진합니다. 하갈은 이스마엘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물을 얻게 해주고,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이전의 약속을 다시 확인해 줍니다(창 21:17-20).
이후 이스마엘은 바란 광야에서 활 쏘는 자가 되었고, 하갈이 그를 애굽 여인과 결혼시킵니다(창 21:20-21). 아브라함이 늙어 죽자 이스마엘은 이복동생 이삭과 함께 부친을 막벨라 동굴에 장사하였습니다(창 25:9). 이스마엘은 열두 아들과 한 딸을 두었으며, 그의 딸은 이삭의 장자 에서의 아내가 되었죠(창 28:9). 이스마엘은 137세까지 살았습니다(창 25:17).
아브라함의 차자 이삭을 낳은 사라의 질투로 장자 이스마엘이 쫓겨났다는 증언은 미래에 이들의 후손이 반목할 것을 암시해 줍니다. 이스마엘과 하갈의 추방에 대해 사라와 아브라함의 입장 차이가 오늘 본문에 드러납니다.
이삭이 자라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날 사라는 이삭이 이스마엘과 노는 것을 보다가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요구하죠(8-10). 사라의 이 요구는 이삭이 이스마엘과 상속을 나누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10).
사라의 요구에 아브라함은 갈등합니다. 이스마엘도 자기 혈육이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그 이유를 달고 있는데(11), 이는 사라의 요구가 아예 상속자의 자리 즉 혈통에서 제거해 달라는 요구였기 때문입니다.
사라라는 이름은 아브라함이 99세 되던 해 야훼께서 그에게 나타나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리라는 계약을 맺으며 바꿔준 이름입니다(창 17:15). 사라의 원래 이름은 사래였고 아브라함의 원이름도 아브람이었죠. 그리고 사라가 내년 이맘때에 아들 이삭을 나을 것이라고 약속해 줍니다.
사래(Sarai)란 이름은 ‘여왕’, ‘여주인’이란 뜻을 가지고있는 말입니다.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도 사라는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서 사라의 요구에 아브라함은 자기 소신을 밝히지 못합니다. 다만 괴로워할 뿐이었죠. 아브라함에게 자기 혈육을 버리는 정당성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13절에 “이 계집종의 아들도 네 자식이니 내가 그도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양식 얼마와 물 한 부대를 하갈에게 주는 것이었습니다(14).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시대의 유대민족과 출애굽 이후의 유대민족은 그 기질에 있어 매우 다른 차이를 보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시대에는 형제간의 갈등이 있고 부당한 일이 있어도 서로 간의 연대의 끈은 살아 있었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도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를 함께 치룰 정도로 왕래가 있었다는 것이죠. 에서도 장자권을 빼앗아간 야곱과 극적인 화해를 합니다(창 33:1-20).
그에 반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430년 후 노예 생활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 그곳에 살고 있던 족속들과 전쟁을 하죠. 그것도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명분으로 그곳 거민의 씨를 말려버리는 살육을 저지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정복한 이후에도 팔레스틴 땅을 차지하려는 전쟁은 끊이질 않죠.
약속의 땅을 사이에 둔 분쟁은 구약성경에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팔레스틴은 히브리서 11장 9절에 '약속하신 땅', 출애굽기 3장 8절에는 '아름답고 광대하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니 구약성서를 믿는 유대인과 이슬람교인들 모두에게 이 땅은 조상들의 땅이자 반드시 차지해야 할 땅인 겁니다. 이 땅은 이스라엘 통일 왕국부터 로마에 의한 멸망까지 1000년은 유대교,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 등 500년은 기독교, 나머지 1300년은 이슬람교가 지배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75년 전 영구 등 서방세력을 등에 업고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팔레스틴 땅에 들어온 것이죠.
이·팔 분쟁의 근본 원인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라는 자기 아들인 이삭에게 모든 권리와 재산을 상속 받게 하려고 배다른 형인 이스마엘을 혈통에서 쫓아냅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은 팔레스틴에 기근이 계속되자 이집트로 이주하죠. 출애굽한 유대인들은 팔레스틴 땅에 살고 있던 이스마엘의 후손들과 전쟁을 벌입니다. 가나안 땅이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이라는 명분으로 침략전쟁을 강행한 것입니다.
팔레스틴 땅을 차지한 유대인들은 1000년 동안 그곳에서 살다가 AD135년 로마제국에 의해 멸망당하고 뿔뿔이 흩어지는 신세가 되죠. 1,800년 후 유대인들은 또다시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이라며 팔레스틴을 침공합니다.
지난 75년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의 일부는 주변의 레바논과 요르단 등으로 내쫓기고 일부는 거대한 수용소 또는 감옥이 된 가자지구 그리고 요르단 서안지역에 밀집되어 가난과 공습, 계속 축소되는 영토의 압박으로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독일 나치 정권의 대학살의 희생자였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바로 그 나치가 되어 가두고 죽이고 쫓아내고 빼앗는 괴물이 되고만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참극의 본질은 너무도 명백합니다. 이스라엘은 침입자이며 강탈자이고 팔레스타인은 피해자이며 희생자들이죠. 그런데 서방세계는 이스라엘의 무력 사용은 테러응징이고,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테러라고 합니다. 한국 정부와 언론도 서방 세계의 일방 주장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기만이고 속임수입니다.
지난 26일 발표를 보면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으로 가자지구 내에서 어린이 2913명을 포함해 적어도 7023명의 팔레스틴 사람들이 숨졌으며, 하마스의 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 사망자는 약 1400명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부터 공중과 지상을 통한 총공격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작전 목표는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틴 사람들을 완전히 몰아내는 인종청소입니다.
오늘이 이태원 참사 1주기인데 이 참사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가자지구 주민들의 참사와 꼭 닮아 있습니다. 참사 발생 1년이 지났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정부와 여당의 그 누구 하나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유가족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집권여당의 당대표와 정책위원장은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활동이 북한의 지령이라고 주장합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공세와 막말, 특별법 제정 외면으로 유가족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틴에게 하는 범죄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를 두고만 보지 않으실 것입니다. 세계의 양심을 일깨우고, 우리 국민들의 눈을 뜨게 하셔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팔레스틴 사람들과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눈물이 씻기고 진상규명과 합당한 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예수의 뒤를 따라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