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강 불본행경佛本行經
지안 스님/ 조계종승가대학원 원장
부처님의 생애를 다룬 경전으로는『불본행경』과『불본행집경』그리고『불소행찬』등이 있다. 이들 경은 모두 불전문학의 중심이 되는 경으로『불본행경』과 『불소행찬』은 운문체로 되어 있고『불본행집경』은 산문체로 되어 있으며 내용이 가장 길게 설해져 있다. 본행이라는 말은 성불이전의 행적을 가리키는 말로 때로는 과거생의 수행도 본행으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본생(本生:jataka)의 이야기가 된다. 위의 3경외에 본행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경전이 여럿 있다.『보살본행경』,『불본행찬경』,『불본행약경』,『불본행찬전』등이다. 『불본행경』은 편찬자는 밝혀지지 않고 번역한 사람이 송나라 때 보운寶雲이라고 되어 있으며『불소행찬』은 마명보살이 지었다고 알려져 있고,『불본행집경』은 사나굴다가 번역한 것으로 되어있다.『불본행경』은 7권 31품으로 되어 있는데 언제 편찬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학자들은 여러 가지 사항을 검토한 결과 1세기를 전후해 편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부처님의 생애를 설명하는 도본圖本적인 이야기가 8상도八相圖 이야기이다. 이는 부처님 일생을 8장면으로 설명하는 이야기이다. 제1상을 도솔내의상이라 하는데 이는 부처님이 인간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욕계 제4천인 도솔천에 있다가 인간세계로 내려왔다는 것이다.『불본행경』에는 제3<강태품>에 이야기 가 설해져 있는데 이에 의하면 전생에 도솔천에서 보살로 있던 석가모니 부처님이 고통 받 는 중생 들을 구제해야 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인간 세상에 태어나기를 결심한다. 그리하여 자기 시중을 들고 있던 월맹에게 자기가 인간 세상에 가서 어느 집안에 태어나면 좋겠느냐 고 묻는다. 그러자 월맹이 여러 왕의 집안을 소개하다가 마지막에 석가족의 정반왕 가문이 제일 좋다고 한다. 이리하여 보살이 도솔천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정반왕비 마야부인의 태 에 들어간다.『불본행집경』에는 제5권~7권에 <상탁도솔품>과 <부강왕궁품>에 도솔내의상 의 이야기가 설해져 있다. 제2상 비람강생상은 부처님이 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로 태어나는 장면을 나타 낸다. “그때 부처의 별이 달과 마주쳐 상서로운 징조 있어 오른쪽 옆구리로 나오니 구름이 걷히고 해가 솟아난 듯 어둠 속에 밝은 빛 환히 비쳤네.” 『불본행경』<여래생품>에는 위와 같이 부처님의 출생을 칭송하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이렇게 말을 한다. “다시는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으리. 감옥 같은 배속에 드는 일은 면하리라. 이제는 도를 닦고 깨달아 부처가 되어 모든 중생 이끌어 깨우치리라.” 『불본행집경』<수하탄생품>에는 해산일이 가까워 오자 친정으로 가던 마야부인이 초봄 2월 8일 룸비니 꽃동산에서 바라차나무 가지를 오른손으로 휘어잡고 있었는데 오른쪽 옆구리로 태자가 저절로 출생하였으며, 왕비인 마야부인의 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한다. 태어나 자마자 이것이 자기의 마지막 나고 죽는 윤회의 길이라고 선포를 하고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이다. 오늘부터 나는 윤회의 길을 벗어났다.” 고 외친다. 보살의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나고 온 대지가 물 위의 배처럼 흔들거렸다 한다. 『불본행경』<여래찬탄품>에는 “성인의 모든 지혜 다 합쳐도 부처님의 큰 지혜는 당하지 못한다. 아무리 말 잘하는 변사의 언변으로도 부처의 공덕은 다 말할 수 없다.”라고 찬탄하고 있다. 제3상 사문유관상은 태자 고오타마 싯달타가 성의 동서남북 네 문을 통해 나들이를 갔다가 보고 느낀 일들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이것을 계기로 태자가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 이전 에 태자는 부왕의 배려로 궁중에서 한때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며 향락에 빠져들기도 한다. 또 태자가 배필을 구하여 결혼하는 장면도 묘사되어 있다. 『불본행집경』<각술쟁혼품>에는 태자가 배필을 구하는 이야기가 있다.태자가 19살이 되자 부왕이 세 개의 궁전을 지어 철따 라 태자가 머물도록 한다.수많은 궁녀들이 안마를 해주고 몸에 기름을 발라주며, 머리를 빗 겨주고 목욕물을 데워 주고 거울을 비쳐주며, 눈에 약을 넣어주는 등 각기 거드는 사람을 따 로 두었다. 또 왕은 태자의 신부감을 고르기 위해 모든 귀족에게 명령을 내려 가문의 처녀들 을 모조리 정한 날짜에 태자 앞으로 와 선물을 받아 가도록 하였다. 태자 앞에 나타난 모든 처녀들은 태자의 위엄에 눌려 감히 고개를 들지도 못했는데 마지막으로 나타난 야수다라만 이 도도하게 부끄럼을 타지 않고 태자 앞에 섰다.이때 태자는 나눠줄 선물이 다 떨어져 할 수없이 자기가 끼고 있던 반지 하나를 빼 주었다. 정반왕은 야수다라의 아버지 마하나마 대 신에게 청혼을 한다. 그러나 태자가 연약하다고 선뜻 청혼에 응하지 않고 무술 경기를 하여 태자가 우승하면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무술대회가 열리고 이때 난타와 데바 달타등도 무술대회에 참가한다. 그러나 우승은 결국 태자에게로 돌아온다. 왕은 좋은 날을 잡아 야수다라를 정식으로 태자비로 맞아들인다.『불본행집경』<상식납비품>에는 태자가 구 다미라는 두 번째 태자비를 맞아들이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태자는 끝내 출가를 결행한다. 동쪽 성문 밖으로 나갔다 노인을 보고 남쪽 성문 밖에서는 병든 환자를 보고 서쪽 성문 밖에서는 죽은 사람을 그리고 북쪽 문밖에서는 출가 사문 을 만났다 한다.『불본행집경』의 <출봉노인품>과 <도견병인품>, 그리고 <로봉사시품>이 사문유관의 내용을 설하고 있다. 제4상 유성출가상은 태자가 부왕이 시켜 감시하게 한 궁녀들의 감시를 피해 밤중에 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이다.『불본행집경』의 <사궁출가품>과『불본행경』의 <출가품>에 출가하 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태자의 하인 차익에게 도움을 청해 성을 빠져 나와 산속으로 들어 간다. 또 <차익품>에는 태자와 차익이 헤어지면서 주고 받는 대화의 장면이 있다. “너는 나를 섬기느라 수고 참 많았다. 헤어진 후에도 내 생각 잊지 마라. 이젠 그만 이 말을 끌고 돌아가거라. 나 홀로 이 숲에 남으리라. “이미 뜻을 정하여 집을 버렸으니 다시 돌아가자 아뢸 수도 없으나 태자님 떨어져 어이 살아가리오. 태자님 그리는 이 마음 몰라주고 어찌 차마 돌아가라 하오리까. 태자님 숲 속에 홀로 버리고 어떻게 저 혼자 갈 수 있겠나이까?” “너는 다만 내 말을 끌고 가거라. 갔다가 다시 와서 나를 찾아라. 품은 뜻을 성취하면 다시 돌아가겠지만 성취하지 못하면 죽음 밖에 없으리.” 제5상 설산수도상은 출가한 태자가 설산에 들어가 도를 닦았다는 이야기이지만 이 설산이 히말라야(Himalaya)라는 범어 어원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산에 들어가고 행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출가한 태자가 고행을 하다가 마가다국의 왕 병사왕(Bimbisara)을 만났을 때 병사왕이 태 자에게 환속을 권유하는 장면도 있다.『불본행경』의 <병사왕문사품>과『불본행집경』<권수 세리품>에 병사왕이 자기 영토의 절반을 떼어 줄 테니 같이 왕 노릇을 하자는 권유를 하는 장면도 있다. 또 태자가 환속해 왕이 되면 병사왕이 신하가 되어 주겠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불본행집경』<고행정진품>에는 태자가 왕궁을 떠난 지 6년이 되는 해의 봄에 태자가 굶어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정반왕이 대성통곡을 하면서 사신을 급히 보낸다. 사신이 태자를 찾아갔을 때 태자는 죽지는 않았으나 숨이 넘어가는 목소리로 “내가 만약 도를 이루지 못 하고 이곳에서 죽으면 시체를 메고 카필라성으로 돌아가 끝까지 도를 닦던 태자의 유골이라 고 전해 달라.”는 말을 한다. 또 극도의 고행으로 쇠약해진 태자가 우유죽을 얻어먹고 회복 하는 장면도 있다. 제6상 수하항마상은 성도를 방해하던 마군을 항복 받고 도를 이루었다는 내용이다.『행집 경』의 <보살항마품>과『본행경』의 <항마품>에 보리수 아래서 마왕 파순을 물리치고 생사 의 이치를 밝힌 12인연의 도를 깨닫고 부처된 이야기가 설해져 있다. <성무상도품>에는 새 벽에 샛별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제7상 녹원전법상은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설법을 시작한 것을 말하는데 부처님 생애에서 가 장 중요한 중생을 교화한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행경』<도오비구품>에는 5비구에게 설법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법을 설하여 도를 깨닫게 하였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도보칭품>에는 보칭이라는 도사를 비롯하여 가섭형제들과 목 건련, 수달을 교화한 이야기가 설해져 있으며, <광도품>에는 부처님이 여러 나라와 여러 지 방을 다니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교화한 이야기가 있다. 왕사성에서 수달을 교화한 후 병 사왕과 그의 족속들 8만의 무리를 교화하고 이어 부자인 용맹과 의원인 기역을 교화한다. 그리고 수제라는 나라로 가 명문거족의 바라문을 교화하고 대택이라는 마을에서 동자 배수 를 교화한다. 또 유야리성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 나찰을 교화하고 엽이란 악귀를 교화하 는 장면도 나온다. 부처가 교화한 대상은 바라문, 외도, 비구, 왕족, 부자, 의원, 점쟁이, 귀 신, 동자 등 여러 신분의 사람들이 나온다. <현대신변품>에서는 부처님이 크게 신통변화를 나타내는 장면이 있다. 바라문 스승들이 부처님을 시기하여 부처님의 명예를 깎아내리려고 논쟁을 걸다가 부처님의 신통력에 의하여 격파당하는 장면이 있다. 『행집경』에는 부처님의 범천의 권청을 받아들여 법을 설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전묘법륜품>에는 부처님의 도를 이룬 보리수 밑을 떠나 녹야원으로 가다가 길을 막는 파순 의 방애를 받는 장면이 있고 나루터에 다다랐을 때 뱃사공이 삯을 내라하자 “세상의 모든 재물이 조약돌로 보이는데 무슨 무욕이 있어 돈을 가지고 다니겠는가?” 하면서 기러기처럼 날아서 강을 건너는 장면도 있다.『행집경』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출가하는 이야기들이 나 온다. <부루나출가품>을 비롯하여 제자들의 이름이 나오는 출가품이 있다. 나라타, 사비야, 가섭, 우파사나 등이 차례로 출가해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 또『본행경』에는 부처님이 도리천궁으로 올라가 어머니를 위하여 설법하는 장면이 나온다. <승도리궁위모설법품>이라는 품 이름이 어머니를 위해 도리천으로 올라가 설법했다는 말이 다. <조달입지옥품>에는 부처를 여러 차례 시해하려했던 데 바닷타 조달이 지옥에 떨어지는 장면도 있다. <현유포품>이란 품에는 다시 부처님이 신통을 발휘해 산을 옮겨주는 장면이 있다. 부처님이 유야리성을 떠나 구이 나갈성에 머물고 계실 때 이곳 출신 500명의 힘센 장 사들이 성 가운데 있는 산을 떠 옮기려다 옮기지 못하고 마침내 지나가던 부처님의 힘을 빌 려 옮기는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이 어머니의 젖을 먹던 때의 힘을 쓴 것이라 하여 <현유포 품>이다. 제8상 쌍림열반상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일을 나타내는 이야기이다. 『불소행찬』에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의 전후 일을 네 품으로 나누어 설하고 있다. <열반품>, <대반열반품>, <탄열반품>, <분사리품>에 설해진 내용을 보면 부처님이 바이살 리를 떠나자 리차족 사람들이 부처를 흠모하면서 노래를 부른 이야기와 파파성에서 부처님 이 열반에 들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다. 또 부처님이 열 반에 들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제일 먼저 달려온 수발타라는 바라문이 부처님의 마지막 법 문을 듣고 싶어 한다. 그래서 부처님이 그에게 8가지 바른 도를 설해주었다. 그때 수발타는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가 먼저 죽어야 한다면서 자결을 해버린다. 부처님은 이 마지 막 제자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비구들에게 공양을 하게 한다. 가섭과 아나율을 비롯하여 인천 의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의 열반을 탄식하며 덕을 칭송하는 장면도 있다. 『본행경』<대멸품>에는 사라쌍수 밑에 아난에게 자리를 펴라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열반에 들 때가 되었다. 나는 육신의 목숨을 버린다.”하고 숨을 거두는 장면이 묘사되 어 있다. 첫새벽에 부처님이 열반한 것으로 되어 있다.『행집경』에는 열반하는 장면이 설해 져 있지 않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화장을 해 사리를 분배하는 이야기도 설해져 있다. 여덟 왕이 사리를 분배해 갔다 하였다. 부처님의 생애를 이야기한 이상의 경의 내용들은 다분히 허구적이고 과장된 수법으로 부처 님의 생애를 미화시켜 놓고 있다. 부처님의 초인간적인 위력과 신비스러운 공덕을 설하여 부 처님에 대한 인간 이상의 탁월성이 있음을 부각시켜 놓은 것이다.
제 2 강 숫타니파타
『숫타니파타(Sutta_nipata)』는 불경 가운데 가장 먼저 이루어진 경으로 초기 경전을 대표하는 경이다. 숫타(sutta)는 팔리어로 경經이란 말이고 니파타(nipata)는 모음(集)이란 뜻으로 부처님 말씀을 모아 놓은 것이란 뜻이다. 이 경은『법구경』등과 같이 성립된 시기를 인도의 아쇼카왕(마우리야 왕조 3대왕 재위 B.C 268~232)이전으로 보고 있다. 모두 5품(5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제4 의품義品 속에 들어 있는 8편의 게송과 제5 피안도품彼岸道品이 먼저 이루어진 것으로 5품의 내용이 별행 되다가 어느 시기에 함께 모아져 합집된 것으로 본다. 원래 이『숫타니파다』는 팔리어로 된 남전장경에 속한 경이다 그러나 한역 장경 속에도 이 경의 제4품 <의품>에 해당되는『불설의족경佛說義足經』2권이 번역 포함되어 있다. 이는 서북 인도 출신의 지겸支謙이 중국으로 와 오吳나라 때 3세기 중엽에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숫타니파타』는 무엇보다도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해 역사적 인물로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경이다. 물론『아함경』등에도 부처님의 역사적 행적을 찾아볼 수 있는 점이 많이 있으나『아함경』보다 이 경이 먼저 이루어진 경이므로 부처님의 육성이 제일 먼저 더 생생하게 담겨 있는 경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은 불교의 종교적 신앙색채를 거의 띄고 있지 않으면서 단순하고 소박한 말씀으로 수행의 길을 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한 말씀 한 말씀에 부처님의 자상한 인간미가 배여 있으며, 지혜롭고 자비로운 부처님의 이미지가 경문을 통하여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한다. 원래『숫타니파타』의 경문은 운문인 시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제자들이 부처님 말씀을 읊으면서 기억하도록 했던 것이다. 마치 우리가 시를 외우며 읊으면서 시를 감상하는 것처럼 부처님 말씀을 읊으면서 음미하도록 했다는 말이다. 물론 중간 중간에 산문체의 긴 글귀가 나오기도 한다. 또 같은 말이 반복해 설해지고 있는 곳도 꽤 많다. 제 1장 곧 사품蛇品이라는 뱀의 장에서는 12개의 소제목을 가지고 221개의 짤막한 운문체의 글이 설해져 있다. 처음 뱀이 허물을 벗는 이야기를 비유로 들어 수행자는 이 세상 저 세상을 다 버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모두 세속적 경계를 모두 버리는 수행자의 근본정신에 대해 설해 놓은 이야기다. “무화과나무 숲속에서 꽃을 찾아도 얻을 수 없듯이 모든 존재를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보는 수행자는 이 세상 저 세상을 모두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는 것처럼.” 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후렴이 붙어 있는 말들이 계속해 나오는 대목도 있다. “모든 생명체에 대하여 폭력을 쓰지 말고, 모든 생명체 그 어느 것이라도 괴롭히지 말며, 또 자녀를 갖고자 하지 말라. 하물며 친구이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러한 말들은 출가 수행자가 어떠한 정신에서 출가 수행자가 되는가를 밝혀주는 말들이다. 오직 스스로의 독립과 자유를 찾아 어디에도 매이는 인연을 만들지 말라 하였다. 사람에게 그리움을 가져서도 안 된다 하였다. 연정에서 우환이 생긴다는 것을 일깨워 사람을 사귀어 정을 붙이지 말 것도 강조하였다. 대장장이 아들 춘다가 부처님께 질문을 한다. “위대하고 지혜로운 성인, 눈을 뜬 어른, 진리의 주인, 애착을 떠난 분, 인류의 최상자, 뛰어난 마부께 저는 묻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되는 수행자가 있습니까?” 부처님은 대답하기를 “춘다여, 네 가지 수행자가 있다. 도로써 이긴 자와 도를 말하는 자와 도에 사는 자, 그리고 도를 더럽히는 자이니라.” 자비를 실천할 것을 강조하는 이야기도 있다.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아끼듯이 모든 생명체에 대해 한없는 자비심을 내라.”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이나 가까이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모두 행복하여라.” 그리고 서 있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언제나 자비심을 굳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인생을 살면서 파멸의 길을 가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도 있다. “번영하는 사람도 알아보기 쉽고 파멸로 가는 사람도 알아보기 쉽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번영하고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망한다.” “자기는 풍족하게 살고 있으면서 늙어 쇠약한 부모를 돌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는 파멸의 문이다.” “여자에게 미치고 술과 도박에 빠져 버는 족족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이는 파멸의 문이다.” “자기 아내로 만족하지 않고 매춘부와 놀아나고 남의 아내와 어울린다. 이는 파멸의 문이다.” “술과 고기 맛에 빠져 돈을 헤프게 쓰는 여자나 남자에게 집안 살림의 실권을 맡긴다면 이는 파멸의 문이다.” 천한 사람이 되지 말라 하여 어떤 사람이 천한 사람인가 설명하는 대목도 있다. “화를 잘 내고 원한을 품으며, 간사하고 악독해서 남의 미덕을 덮어버리고, 그릇된 소견으로 음모를 좋아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천한 사람이라 한다.” “나쁜 일을 하면서 아무도 자기가 한 일을 모르기를 바라며, 숨기는 사람 이런 사람은 천한 사람이다.” “남을 괴롭히고 욕심이 많으며, 나쁜 욕망이 있어 인색하고, 덕도 없으면서 존경받으려 하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은 천한 사람이다.” “태어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이 되고 행위에 의해서 귀한 사람이 된다.” 제2장 <소품>에는 ‘진리에 의해 행복하여라.’는 부처님의 축복이 나오는 대목이 있다. 수행하여 얻은 진리가 이 세상의 보배며 이 보배에 의해 모두가 행복해지라는 축원의 말씀이 자상하게 설해진다. 그리고 과거 부처님으로 등장하는 가섭불의 가르침이라 알려진 ‘비린 것’ 이야기가 있다. 비린 것이란 살생 등 악업을 짓거나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은 비린 냄새에 비유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체를 죽이는 일, 때리고 자르고 묶는 일, 훔치고 거짓말 하는 일, 사기치고 속이는 일, 그릇된 것을 배우는 일, 이런 것이 바로 비린 것이지 육식肉食은 그렇지 않다.” “성 잘 내고 교만하고 고집스럽고, 반항심․속임수․질투․허풍․극단적인 오만, 불량배와 어울리는 일, 이런 것이 바로 비린 것이지 육식은 그렇지 않다.” 부처님은 인생의 행복에 대하여 설하면서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불교의 행복론이라 할 수 있는 법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고 어진 이를 가까이 하며, 존경할만한 사람을 존경할 줄 아는 것, 이것이 위없는 행복이다.” “분수에 맞춰 살고 공덕을 쌓으며, 스스로 바른 서원을 세우는 것, 이것이 위없는 행복이다.” “부모를 잘 섬기며, 처자를 사랑하고 보호하며, 일에 있어 질서가 있어 혼란하지 않은 것, 이것이 위없는 행복이다.” “존경과 겸손과 만족과 감사와 때로는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 위없는 행복이다.” “세상일에 부딪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걱정과 티가 없이 안온한 것, 이것이 위없는 행복이다.” 제자들에게 경책하면서 정진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말씀도 있다. “일어나라. 앉아라. 잠을 자서 너희에게 무슨 이익이 있느냐? 화살을 맞아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잠이 웬 말이냐?” 부처님은 친아들이었던 라훌라에게 이렇게 물어 보기도 한다. “라훌라야, 늘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너는 어진이(賢者)를 가볍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니냐? 모든 사람을 위해 횃불을 비쳐주고 있는 사람을 너는 존경하느냐?” 이에 라훌라는 결코 가볍게 보는 일이 없으며 언제나 존경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소품>의 뒷부분에는 수행자의 편력遍歷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부질없는 생각을 하지 않고 깨끗한 지혜를 가져 모든 변화하는 현상의 영역을 벗어나 있으면 그는 바르게 세상을 편력할 것이다.” <소품> 마지막 부분에서는 우포사다(Uposadha:齋戒)를 닦으라고 권하고 있다. 이에는 율장에 나오는 5계 10계의 내용이 설해져 있다. “첫째, 살아 있는 생명체를 해치지 말라. 둘째, 주지 않는 것을 가로채지 말라. 셋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 넷째, 술을 마시지 말라. 다섯째, 부정한 짓인 음행을 떠나라. 여섯째, 밤에는 음식을 먹지 말라. 일곱째, 화환을 걸치지 말고 향수를 쓰지 말라. 여덟째, 땅 위에 펼친 자리에만 자라. 이것이 여덟 부분으로 된 우포사다이다. 괴로움을 없앤 부처가 가르친 바이니라.” “법답게 얻은 재물을 가지고 부모를 섬기라. 올바른 장사를 하라. 이와 같이 열심히 살고 있는 재가자는 죽은 후에 저절로 빛이 나는 세상에 태어나리라.” 제3 <대품>에는 먼저 출가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이 대목에서 마가다국의 왕이었던 빈비사라왕과 대화 나누는 장면이 있다.『불본행집경』에는 빈비사라와(漢譯:洴沙王)이 출가 수행하는 고오타마 태자를 영토의 절반을 줄 테니 환속하여 임금이 되라고 권하는 장면이 있으나 <대품>에서는 왕사성에 탁발 나온 부처님을 누각에 있던 빈비사라왕이 보고 점잖은 거동에 마음이 끌려 신하를 보내 그가 가는 곳이 어딘지 알아오라 한다. 고오타마가 판다바산에 사는 수행자임을 알고는 왕이 수레를 타고 판다바 산으로가 고오타마를 만나 태생을 묻는 등 대화를 나눈다. <대품> 중간에 ‘바라문이 아님을 알아라.’ ‘그는 나를 바라문이라 부른다.’라는 말이 후구後句로 붙여 있는 가르침의 말들이 상당 부분 나온다. “인간 가운데서 여러 가지 기능인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기능인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아라.” “인간 가운데 사고파는 것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장사치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아라.” “모든 속박을 끊고 겁내지 않으며, 집착을 초월해 붙잡혀 있지 않은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연꽃잎의 이슬처럼, 송곳 끝의 겨자씨처럼, 온갖 욕정에 더럽혀지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여기서 바라문이란 용어의 사용에 대해 주의할 점이 있다. 원래 바라문이란 인도의 사성계급 가운데 최상위 신분인 바라문교의 전권을 가지고 있는 사제司祭를 지칭하는 말이나 불교의 초기 경전에는 이 용어가 수행의 완성자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숫타니파다』에서는 이 바라문이 위의 <대품>의 후송에는 수행의 완성자를 뜻하는 말로 쓰였지만 다른 곳에서는 외도 수행자 범지梵志로 등장하는 대목이 있다. 바라문과 부처님이 문답을 주고받는 장면도 나온다. <대품>에서는 사람의 행위를 중시한다는 말이 여러 차례 나온다. 이는 불교의 기본 교의라 할 수 있는 업(業:karma)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태생의 의해 바라문이 되는 것이 아니다.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되고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안 되기도 하는 것이다.” 행위에 의해 농부가 되고 행위에 의해 기능인이 되며, 행위에 의해 장사치가 되고 행위에 의해 고용인이 된다. 행위에 의해 도둑이 되고 행위에 의해 무사가 되고 행위에 의해 제관이 되고 행위에 의해 왕이 된다. 현자는 이와 같이 행위를 사실 그대로 본다. 그들은 연기緣起를 보는 자이며, 행위와 그 과보를 알고 있다. 세상은 행위로 말미암아 존재하며, 사람들도 행위로 인해서 존재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행위에 매어 있다.” “그 어떤 업業도 멸하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되돌아온다. 업을 지은 임자가 그 과보를 받는다.” 초기 경전이 다 그러하듯이 악惡을 징계하는 말이 자주 나온다. 사소한 말 한마디의 실수라도 바른 수행자는 스스로에게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이 태어날 때 그 입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자는 욕설을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마는 것이다.” 제4 의품義品은「욕망」,「동굴」,「본노」등 여덟 편의 게偈 곧 시구가 설해져 있다. 이 가운데 ‘동굴’ 장章은 인간의 육체를 동굴에 비유하여 설한 유명한 이야기로 사람이 집착을 벗어나기 어려움을 설하고 있다. “동굴 속에 머물러 집착하고, 온갖 번뇌에 덮이어 미망迷妄속에 빠져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집착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 세상 욕망은 참으로 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번뇌의 화살을 빼라는 말도 있다. 사람의 몸뚱이에 번뇌의 화살이 박혀 있다는 뜻이다. 늙음을 주제로 하여 인생의 무상을 노래한 대목도 있다. “아, 짧도다. 인간의 생명이여. 백 살도 못되어 죽고 마는가?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결국은 늙어서 죽는 것. 이를테면 잠이 깨어 눈을 뜬 사람은 꿈속에서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듯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만날 수가 없는 것이다. 제아무리 명성이 높던 누구라고 하던 사람도 한 번 죽은 후에는 그 이름만 남을 뿐이다.” 제5 피안도품彼岸道品에는 16명의 바라문 학생들이 부처님께 질문을 하고 이에 답해주는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존자 아지타가 물었다. “세상은 무엇으로 덮여 있습니까? 세상은 무엇 때문에 빛나지 않습니까? 세상을 더럽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커다란 공포는 무엇입니까?” 아지타여, 세상은 무명에 덮여 있다. 세상은 탐욕과 게으름 때문에 빛나지 않는다. 욕심은 세상의 때이며, 고뇌는 커다란 공포라고 나는 말한다.” 『숫타니파다』에는 부처님을 눈 뜬 사람이라고 표현 한 말이 자주 나온다. “눈 뜬 사람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이『숫타니파다』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본 것이다. 이 경을 달리 제목 하여 '지혜와 자비의 말씀'이라 하였다. 짧은 한 편 한 편에 일련번호를 매겨 모두 1149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계․정․혜 삼학과 4성제 12인연 등의 근본교의가 사변적인 이론을 내세우지 않은 채 소박하게 설해져 있다.
제 3 강 백 유 경(百 喩 經)
불교경전의 내용을 서술 형식이나 설한 동기에 따라 12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는 십이부경(十二部經) 또는 12분교(十二分敎)라는 말이 있다. 여러 경전에 따라 그 내용설명의 순서에 차이가 있으나 보통 부처님의 말씀을 산문체로 정리해 놓은 것을 ①경(經:sutra) 혹은 계경(契經)이라 하며 때로는 법본(法本)이라 하며 음사하여 수다라(修多羅)로 표기하기도 한다. 이 수다라의 산문 내용을 요약하여 운문체로 다시 설해 놓은 것을 ②기야(祇夜:geya)라 하며 번역한 뜻으로 응송(應頌) 또는 중송(重頌)이라 한다. 그리고 산문의 내용과 관계없이 4언 또는 5언, 7언으로 된 운문을 ③가타(伽陀: gatha)라 하며 번역하여 풍송(諷頌) 또는 고기송(孤起頌)이라 한다. 이상의 셋은 문장의 구조적 형식을 가지고 구분한 것이다. 다음 부처님이 경전에서 문답을 하여 뜻을 설명하고 제자들에게 성불을 예언해 주는 것을 ④수기(授記:vyakarana)라 한다. 또 부처님의 설법이 부처님 자신이 누구의 질문에 의해서가 아니고 부처님이 스스로 자청해 설하는 것을 ⑤우타나(優陀那: udana) 곧 무문자설(無問自說)이라 한다. 『아미타경』 같은 경전이 이에 속한다. 또 부처님을 만나 법을 들은 인연 등을 말하는 것을 ⑥니타나(尼陀那:nadana) 곧 인연(因緣)이라 한다. 또 비유로써 은밀한 교리를 설해 놓은 것을 ⑦아파타나(阿波陀那: avadana) 비유(比喩)라 한다. 또 부처님이 제자들의 과거 생의 인연에 대하여 설해주는 것을 ⑧이제왈다가(伊帝曰多伽: itiarttaka), 번역하여 본사(本事)라 한다. 또 부처님 자신이 지난 과거 생에 행했던 보살행에 대하여 설해 놓은 것을 ⑨사타가(奢陀伽: jataka) 번역하여 본생이라 한다. 고차원적인 광대하고 방정(方正)한 이치를 설해 놓은 것을 ⑩비불략(毘弗略), 방등(方等)이라 번역한다. 부처님이 불가사의한 신통력을 나타내는 것을 (11)아부타달마(阿浮陀達磨: adbhutadharma) 번역하여 미증유(未曾有)라 한다. 또 교법의 뜻을 논의하여 묻고 답하는 형식을 (12)우파제사(優波提舍), 논의(論議)라 한다. 이상의 12분교는 한 경전 속에 고루 들어 있는 수도 있고 한 경전이 하나의 부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백유경』은 순전히 비유로 이루어져 있는 경전이다. 백가지 비유를 담고 있는 경이라 해서 『백유경』이라 하나 실제로는 짤막한 이야기로 엮어진 98가지의 비유가 있다. 4권으로 되어 있는 이 경은 5세기 무렵 인도의 승가사나(僧伽斯那: Shanghasena)가 저술한 것이고 그의 제자 구나비지(求那毘地: Gunavrddhi)가 492년에 한역한 것으로 되어 있다. 승가사나는 인도의 대승논사로 알려진 인물로 이 『백유경』을 지어 인도의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 인도의 유명한 고전인 소마데바(Somadeva)가 지은 설화집『카타사릿사가라(Kathasarit-Sagara)』에 수록된 내용과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솝우화』의 내용과도 닮은 것들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비유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백유경』의 우화들은 모두 어리석음을 풍자한 이야기들로 결국 인간이 지혜로운 행동으로 선업을 닦아서 좋은 과보를 얻도록 해야 한다는 인과응보의 이치를 설해 놓은 내용들이다. 인간의 행위가 죄와 복을 낳는다는 불교의 기본 윤리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점을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은 품수의 구별이 없이 하나 하나의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제1권에는 소금만 먹는 사람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21편의 짤막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남의 집에 가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음식이 싱거워 맛이 없었다. 싱겁다고 하자 주인이 이 사람의 음식에 소금을 넣어 주었다. 그는 소금을 넣어 준 음식을 맛있게 먹고 소금이 음식을 맛있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소금만 먹으면 더 맛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소금만 자꾸 먹었다. 결국 입안이 헐어 오히려 병을 얻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단식을 하여 도를 얻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무리한 단식을 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비유해 놓은 것이다. 또 어리석은 사람이 소젖을 짜지 않고 한꺼번에 짜려하는 어리석은 이야기도 있다. 어떤 사람이 날을 잡아 손님들을 초청하여 우유를 대접하려 하였다. 그는 매일 소젖을 짜던 것을 손님들을 초청한 날 한꺼번에 짜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어미 소와 새끼소를 떼어 놓고 어미 소의 젖이 소 몸 안에 많이 저장되기를 기다렸다. 한 달이 지나 잔치를 베풀려고 손님을 맞이하였다. 그는 소를 끌고 와 젖을 짜려 하였다. 그러나 소젖이 말라 나오지 않았다. 그때 손님들은 화를 내면서 그를 비웃었다. 보시를 하지 않고 핑계가 내가 재물을 많이 모는 다음에 한꺼번에 하겠다는 사람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 사람들이 일신의 명예나 이익을 위하여 불도를 닦지 않고 부처의 덕을 훼손시키는 것을 반 푼의 빚을 갚기 위하여 빚진 이를 찾아 강을 건너 먼 길을 가면서 네 푼을 손해보고, 오가는 길에 피곤함만 당하는 어리석음에 비유하였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려고 강가에 왔다. 그러나 그는 강물을 다 마실 수 없다고 물을 마시지 않고 있다. 이 이야기는 그릇된 소견에 집착한 외도들이 부처님의 계율을 다 지킬 수 없다 하여 계를 받지 않는 것을 비유한 이야기이다. 옛날에 어리석기 짝이 없는 한 미련한 부자가 있었다. 그가 어느 날 이웃의 다른 부자 집에 가보니 삼층으로 지어진 누각이 있었다. 웅장하고 화려하며 무척 시원해 보였다. 그는 무척 부러워하는 마음이 되어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저 사람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 나만 못한 저 사람이 이렇게 좋은 누각을 지어 가지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좋은 누각을 짓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는 곧 목수를 불러 말했다. “저 집처럼 좋은 누각을 지을 수 있겠는가?” 목수는 대답했다. “저 누각은 바로 내가 지은 것입니다.” “내게도 저와 같은 누각을 지어다오.” 이에 목수는 땅을 고르고 벽돌을 쌓아 누각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벽돌을 쌓아 누각을 짓기 시작하는 것을 와서 보고 갑자기 의혹이 일어나 목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누각을 지을 것인가?” “1, 2층을 먼저 짓고 나중에 3층을 지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부자는 엉뚱한 주문을 하였다. “나는 아래 두 층은 가지고 싶지 않다. 맨 위층인 3층만 지어다오.” 목수는 대답하기를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아래 1층을 짓지 않고 어떻게 2층을 지을 수 있으며, 2층을 짓지 않고 어떻게 3층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고집을 부리며 “내게는 아래 두 층은 필요 없다. 반드시 맨 위층인 3층만 지어 다오.”라고 하였다. 이때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비웃으면서 말하기를 “어떻게 아래층을 짓지 않고 위층만 지을 수 있겠는가?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 하였다.” 위의 이야기는 10번째 이야기로 비유하면 이렇다. 부처님 제자들이 부지런히 삼보를 공경하여 정진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면서 도를 얻으려 하는 것, 곧 노력 없이 결과만 바라는 어리석음을 풍자한 것이다. 제2권에는 참깨를 볶아서 심는 이야기 등 20편이 실려 있다. 옛날에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참깨를 복아서 먹어 보고 날 깨보다 맛있는 것을 알고는 밭에서 맛있는 참깨를 바로 수확하고자 날 깨를 볶아 땅에 심었다. 볶은 참깨가 싹을 낼 수가 없었다. 이는 대승의 보살행을 닦지 않고 외면 오히려 아라한의 소승을 믿어 빨리 복덕을 누려보려는 조급한 생각을 비유한 것이다. 또 자기 부인의 못생긴 코를 베어내고 남의 여자 코를 베어와 붙이는 이야기도 잇다. 어리석은 사람이 엉뚱한 짓을 하다가 집안을 망치게 한다는 이야기이다. 제3권에는 2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배가 고파 떡 7개를 먹으려 하였다. 6개 반을 먹자 벌써 배가 불렀다. 그는 갑자기 화를 내고 후회하면서 제 손으로 자기를 때리면서 말하였다. “내가 지금 배부른 것은 이 반개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에 6개를 공연히 먹었구나.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앞에 먹은 6개는 먹지 말고 반개를 먼저 먹어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도 이와 같다. 원래부터 즐거움이란 항상 있는 것이 아닌데, 어리석고 뒤바뀐 생각으로 제멋대로 즐겁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떡 반개에 배부르다는 생각을 내는 것과 같다. 세상 사람들은 무지하여 부귀로 즐거움을 삼지만 부귀란 구할 때 매우 괴롭다. 얻은 뒤에도 지켜 간수하기가 또 괴롭다. 잃은 위에 슬퍼하는 것 또한 괴로운 것이다. 이 경우에 즐거움이란 전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옷과 밥을 겸하기 때문에 즐겁다고 하지만 그것 때문에 고생하면서도 제멋대로 즐겁다는 생각을 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는 안락이 없어 모두 큰 괴로움뿐인데 범부들은 뒤바뀐 생각으로 미혹하여 제멋대로 즐겁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옛날 어떤 큰 부자 장자가 있었다.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그의 마음을 얻으려고 온갖 공경을 다하며 아첨을 하였다. 장자가 가래침을 뱉을 때에는 좌우의 모시는 사람들은 서로 앞서 발로 그것을 밟아 문질러버렸다. 어떤 어리석은 한 사람은 동작이 느려 그것을 밟지 못하자 이렇게 생각했다. “만약 땅에 뱉으면 다른 사람들이 먼저 밟아 문질러 버린다. 나는 그가 뱉으려 할 때 먼저 밟으리라.” 그때 장자가 막 가래침을 뱉으려 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얼른 다리를 들어 장자의 입을 밟아 입술이 깨어지고 이가 부러졌다. 장자는 그에게 물었다. “너는 왜 입을 밟았느냐?” “장자님의 가래침이 입에서 나와 땅에 떨어지기만 하면 좌우의 아첨하는 사람들이 어느새 밟아버립니다. 나는 아무리 밟으려고 하여도 늘 따르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가래침이 막 입에서 나오려 하기에 다리를 들고 먼저 밟아 장자님의 마음을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무릇 어떤 일이라도 그 때가 있는 것이니, 때가 아직 이르기도 전에 억지로 애를 쓰면 도리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때와 때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제4권에는 33편의 이야기가 나온다. 입으로 배타는 법을 외우면서도 배를 몰지 못한 장자의 아들 이야기와 부부가 떡을 높고 말 안하기 경쟁을 하다가 도둑에게 집안 물건을 도둑맞는 이야기도 있다. 옛날 어떤 장자의 아들이 여러 장사꾼들과 함께 보물을 캐러 바다로 들어갔다. 장자의 아들은 바다에 들어가 배를 부리는 방법을 잘 외우고 있었다. 물이 돌거나 굽이치거나 물결이 거센 곳에서는 어떻게 배를 잡고 어떻게 바로하며 어떻게 머물러야 한다고 자랑삼아 말했다. 사람들은 그 말을 깊이 믿었다. 배가 바다 가운데 들어갔을 때 선장이 병이나 갑자기 죽었다. 그래서 장자의 아들이 대신해서 배를 몰아야 했다. 그는 배는 이렇게 잡고 이렇게 해야 한다 하고 배를 몰았다. 그러나 배는 빙빙 돌기만 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보물이 있는 곳에 이르지도 못하고 배 안의 모든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 이는 진리의 실천이 말로 되는 것이 아님을 비유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옛날 어떤 부부가 떡 세 개를 가지고 서로 나누어 먹고 있었다. 각기 한 개씩 먹고 하나가 남았다. 그래서 서로 약속을 하였다. “만약 말을 먼저 하는 사람은 이 떡을 먹을 수 없다.” 이렇게 약속하고 그 떡 하난 때문에 서로 말을 하지 않고 버텼다. 조금 있다 그 집에 도둑이 들어왔다. 집안의 물건을 마음대로 훔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떡먹기 내기 약속을 했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도둑은 그들이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남편 앞에서 그 부인을 범하려 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그것을 보고도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여자가 ‘도둑이야!’ 하고 외치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어쩌면 이 떡 한 개 때문에 도둑을 보고도 가만히 있느냐?” 이 때 남편은 손뼉을 치고 좋아하면서 “이제 이 떡은 내 것이다. 나 혼자 먹겠다.”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비웃었다. 범부들도 이와 같다. 조그만 이름이나 이익을 위해 거짓으로 잠자코 조용히 있지만 헛된 번뇌와 갖가지 악한 도적의 침입을 받아 선법을 잃고 게 갈래 나쁜 길에 떨어지게 되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세속의 출세만 구한다. 그래서 오욕락에 빠져 놀면서 아무리 큰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환란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백유경』 말미에는 저자 승가사나가 지어 놓은 게송이 있다. 내 이제 이 논을 지을 때 실없는 우스운 말을 한데 뒤섞어 진실한 말은 많이 해친 것 같지만 옳고 옳지 않은 이치를 본다. 마치 쓰고 또 독한 약물을 달콤한 석밀(石蜜)과 한데 섞으면 그 약은 온갖 병을 낫게 하는 것처럼 이 논도 또한 그와 같나니 바른 법 안의 실없는 웃음, 그것은 마치 저 미친 약과 같다. 부처님 바른 법은 지극히 고요해 이 세상을 밝게 비춰 주나니 토하여 내리는 약 먹은 것 같고 타락처럼 몸속을 부드럽게 한다. 나는 지금 이런 이치로 극히 고요한 것을 파헤치나니 그것은 마치 저 아가다 약을 나뭇잎에다 싼 것과 같아라. 약을 취해 상처에 바른 뒤에는 그 나무 잎은 도로 버려라. 우스개말은 잎으로 싼 것 같고 진실한 이치는 그 속에 있나니 지혜로운 사람은 바른 이치 취하고 우스개말은 버려야 한다.
존자 승가사나(僧伽斯那)는 어리석은 꽃목걸이를 지어 바친다.
제 4 강 아 함 경 (阿 含 經)
『아함경』은 불교경전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경전이다. 부처님의 육성이 가장 사실적으로 설해져 있는 근본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부처님 당시의 역사적, 시대적 배경이 대승경전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나 『아함경』을 중심으로 한 초기경전에서는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심술쟁이로부터 수모를 당하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잡아함경) 피곤에 지친 부처님이 등이 아파 제자 사리불에게 대신 설법을 하게 하는 장면도 나온다.(장아함 제9 중집경) 다시 말해 부처님의 인간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사람과 같이 겪는 일상의 모습들이 전혀 우상화 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두고 볼 때 대승경전에 등장하는 부처님 모습이 초시간적이고 초역사적이라면 『아함경』에 나오는 부처님은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배경을 가지고 등장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대승경전이 나오고부터 아함경을 소승경전이라고 간주하여 폄하하고 소홀히 취급한 대승위주의 그릇된 인식이 일부 남아있었으나 불교의 근본교리가 아함경에 설해진 부처님 말씀을 통해 정리된 것임을 두말할 여지가 없다. 아함이란 범어 아가마(阿伽摩:agama)를 음사한 말로 의역하면 전승(傳承) 또는 법귀(法歸)라 번역한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차례차례 이어 받아 전한다는 뜻이며 또한 부처님의 교법이 돌아가는 곳으로 그 교법의 근본을 지칭하는 말이다. 한역권 (漢譯圈)에서는 대승경전이 나오기 이전의 경전인 이 『아함경』을 소승경전이라 하였다. 『아함경』은 한역에서는 4가지가 있다. 4아함이라 하는 것으로 『장아함경』,『중아함경』, 『잡아함경』, 『증일아함경』이다. 이는 남전장경 곧 팔리어 장경 속에 들어있는 5니까야(nikaya)와 같은 내용이다. 처음 불경이 결집될 때 성문화 된 기록이 아니라 구전(口傳)된 것을 합송한 것이었으므로 4아함의 법문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설해지고 나중에 설해졌는지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하나 내용을 검토해 보면 대충 법문의 선후를 어느 정도 추측할 수가 있는 것이다. 보통 4아함 가운데 내용상으로 보아 『잡아함경』이 먼저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도 하며 『증일아함경』이 맨 나중에 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인도의 범본이 아쇼카왕 이후에 성립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아함경』이 나온 것은 적어도 불멸 후 200년 이후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아쇼카왕의 비문에 『아함경』 등에 관한 언급이 없는 점으로 미루어 본다. 참고로 『아함경』의 번역자와 번역한 연대를 밝혀 보면 다음과 같다. 1) 장아함경(법장부 소속) : 22권 30경 후진(後秦)때 불타야사(佛陀耶舍, Buddhayasa)와 축불념(竺佛念)이 413년에 공역. 2) 중아함경(설일체유부 소속) : 60권 224경 동진(東晋) 때 승가제바(僧伽提婆, Samghadeva) 가 397~398년에 번역. 3) 잡아함경(설일체유부 소속) : 50권 1362경 송(宋) 때 구나발타라(求那跋陀 羅,Gunabhadra)가 435년에 번역. 4) 증일아함경(대중부 소속) : 51권 472경 동진(東晋) 때 승가제바(僧伽提婆)가 397년에 번역. 위에서 보면 번역된 순서는 증일아함이 먼저고 잡아함이 맨 뒤이다. 이 외에도 이역(異譯)으로 역자 미상의 『별역잡아함경』16권 364경과 『잡아함경』 1권 27경이 있다. 한역 4아함의 분류는 경문이 긴 것을 장(長), 중간 것을 중(中), 짧은 운문체를 모아 섞어 편집한 것을 잡(雜), 법수(法數)에 따라 하나씩 더한 것을 증일(增一)이라 한 것이다. 1. 장아함경(長阿含經) 『장아함경』은 팔리어로 된 장부경전(長部經典: Dighanikaya)에 해당하는 경으로 22권에 30개의 소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캐슈미르 출신의 불타야사가 축불념과 함께 후진 홍시(弘始) 15년(413)에 번역 하였다. 제1 <대본경(大本經)>에서 제30 <세기경(世記經)>에 이르기까지 짤막한 이야기로 되어 있거나 상당히 긴 이야기로 되어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두루 설해져 있다. <대본경>은 과거 칠불의 태어나고 출가하고 수도하고 성도하고 설법하는 등 부처님 생애들을 팔상(八相)으로 설명하고 있다. 『장아함경』 가운데서 두 번째 나오는 <유행경(遊行經)>이 가장 긴 경문을 가지고 있다. <유행경>은 부처님 열반 직전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아란과 함께 부처님이 마지막 유행길에 올라 이곳 저것으로 다니면서 설한 말씀이므로 <유행경>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아자타사투왕이 밧지족을 공격하려고 마음먹고 부처님께 승리의 가능성을 묻는 장면도 나온다. 이 때 부처님은 간접적으로 밧지국의 훌륭한 점들을 들면서 전쟁의 불가함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승가도 밧지족의 훌륭한 점을 본받아야 할 것을 설하고 있다. 바이샬리에서는 기생 암마빨리의 청을 받아 그녀의 망고 숲에 머물기도 하였다. 이때 암마빨리는 망고 숲을 승가에 기증한다. 부처님은 자신이 3개월 있다 열반에 들 것이라는 것을 아난에게 말하며 바이샬리를 떠나면서 바이샬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뒤돌아보기도 한다. 빠바에서 춘다의 마지막 공양을 받고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도 나오며, 쿠시나라의 사라수 나무 밑에서 열반에 들면서 “방일하지 말고 힘써 정진하라.”는 마지막 유훈을 남긴다. 제6 <전륜성왕수행경>에는 유명한 자귀의(自歸依) 법귀의(法歸依)의 법문이 설해져 있다 이는 흔히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이라는 말로 알려져 있는 『중아함경』에 들어 있는 <전륜왕경>의 내용과 같은 것이다. 또 사념처관(四念處觀)을 닦아야 할 것을 설해 놓았다. 제9, 제10의 <중집경(衆集經)>과 <십상경(十上經)>에는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대신 설법을 하게하는 장면이 나온다. 부처님이 파바성에 머물 때 등의 통증 때문에 자신은 쉬고 싶다며, 사리불로 하여금 설법케 한다. <중집경>에서는 자이나교의 마하비라가 죽은 후 자이나 교단에 일어난 분열이 설법이 잘못된 것으로, 제자들이 서로 중상모략을 하면서 다투는 것은 그 법이 참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며 부처님 열반 후에 불교 승가의 분열과 다툼을 막아야 한다는 요지의 설법을 하면서 여래의 법이야말로 참된 해탈의 법이라고 사리불이 여러 비구들에게 말한다. 2. 중아함경(中阿含經) 『중아함경』은 중간 길이의 형태로 이루어진 경이라는 뜻이다. ‘장아함’보다 짧고 ‘잡아함’보다 길다는 말이다. 원래 이경은 두 차례 번역되었다. 그러나 처음 담마난제(曇摩難提)가 번역한 것은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고 계빈국(罽賓國:Kasmira) 출신 승가제바가 번역한 것이 전해지고 있다. 승가제바는 설일체유부가 융성했던 북인도 카슈미르에서 사문 법화(法和)와 함께 낙양으로 들어와 4~5년을 머물며 중국말을 배우고 경전을 강의했다 한다. 그러다가 담마난제의 번역이 충분치 못함을 알고 다시 『중아함경』을 번역하고 또 『증일아함경』도 번역하였다. 전체가 60권 80품 222개의 소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아함의 내용상의 특징은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 등 근본 교리에 관한 설법이 나오고 있으며, 다른 아함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자세한 설명을 더하고 있다. 제17 <가미니경(伽彌尼經)>에서는 8정도를 제31 <분별성제경(分別聖諦經)에서는 4성제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3세 모든 부처님의 정행설법(正行說法)이 바로 4성제라 하였다. 정행설법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모든 사람들이 닦아야 할 바른 행업(行業)에 대한 설법이란 말이다. 제221 <전유경(箭喩經)>에서는 독화살의 비유로 세상의 62가지 그릇된 형이상학적인 사견을 경계하고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4성제를 닦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98 <염처경(念處經)>에서는 4념처 수행에 대하여 설명이 나온다. 『중아함경』에도 부처님을 대신해 제자들이 설법을 하는 예가 여러 곳 나온다. 제79 <유승천경(有勝天經)>에서는 아니룻다가 4무량심에 대하여 설하고 <분별성제경>에서도 부처님이 사성제를 말씀하신 후 사리불이 다시 자세히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또 제131 <항마경(降魔經)>은 목련존자가 설법하여 마왕 파순을 교화한다. 제121 <청정경(淸淨經)>에서는 부처님이 사리불을 칭찬하면서 “너는 진정한 지혜를 성취하였다. 마치 전륜성왕의 태자가부왕의 가르침을 빠뜨리지 않고 그 전하는 바를 받아 숭배하고 다시 능히 전하는 것과 같이, 그처럼 사리자여, 내가 굴리는 법의 수레바퀴를 네가 다시 굴렀다.” 격찬을 하는 장면이 있다. 제116 <구담미경(瞿曇彌經)>에는 비구니 승단이 이루어진 과정과 비구니 스님들이 지켜야 할 8존사법(八尊師法)이 설해져 있다. 이 대목에 보면 부처님이 여성의 출가를 원하지 않았지만 대애도 고타미의 은혜를 생각해서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시되, 그 조건으로 비구니가 지켜야 할 8가지 존사법을 세우게 되었다. 8존사법의 여덟 번째 조항에 “비구니가 구족계를 받고 100세가 되었더라도 처음 구족계를 받은 비구를 향하여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공경하고 받들며 합장하고 문안해야 한다.” 말이 있는데 대애도 고타미가 이 조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부처님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여성의 출가로 부처님의 정법이 1000년 동안 지속 될 것이 500년으로 줄어들어 쇠퇴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 내용은 남녀 인권 차별이라고 비판 받기도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당시 시대배경을 놓고 볼 때 인도의 여러 종교 수행자 집단에서 어디에도 여성을 남성과 같은 수행자로 받아드리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불교에서 여성에게 수행의 문호를 최초로 개방했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제82 <지리미리경(支離彌梨經)>에는 지계의 참뜻을 설해 놓은 말씀이 있다. 계를 지닌다는 것은 허물을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허물을 범하지 않으면 후회가 생기지 않고, 마음이 편안하고 기쁘며, 나아가 안락을 얻어 선정에 들게 되고, 선정에 들면 ‘있는 그대로를 보고(見如實), 있는 그대로를 알게(知如實) 된다.’ 하면서 계를 지키는 것이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첫걸음이라 하였다. 계는 나무의 뿌리와 같아서 계를 지키지 않으면 해탈과 열반의 열매를 얻을 수 없다 하였다. 『중아함경』에는 재가 수행자들에게 설하는 내용들로 된 별도의 소경(小經)들이 몇 개 있다. 제126 <행욕경(行欲經)>에는 재가자가 재물을 구하고 쓰는 열 가지 형태를 설하고 있으며, 바람직한 재물 관리법은 정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구해야 하며 절약하여 쓰고 만족할 줄 알며, 부모형제나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유익하게 써야 하며, 참다운 사문을 위해 공양하고 재물에 대한 집착을 가지지 말 것을 설해 놓았다. 또 제128 우바새경(優婆塞經)>에는 5법을 지키고 4증상심(四增上心)을 얻은 재가자는 수다원과를 얻어서 천상과 인간에 7번 태어난 뒤 반드시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5법은 5계를 말하고 4증상심이란 불· 법· 승· 계를 굳게 믿고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제202 <지재경(持齋經)>에는 재가 수행자들이 계를 지킴에 있어 8관재계(八關齋戒)>를 닦을 것을 권하고 있다. 높고 큰 평상을 사용하지 말고, 갖가지 장신구나 화장품 등으로 몸을 치장하지 말고,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일종식을 지키는 세 가지를 5계에 더해 8재계를 설하고 있다. 이를 하루 만이라도 지킬 것을 권하고 있다. 제15 <사경(思經)>에는 신· 구· 의 삼업과 4무량심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으며, 제133 <우바리경(優婆離經)>에는 자이나 교도인 우바리를 대상으로 의업의 무거움을 설해 주어 그를 설복시키고 마침내 부처님께 귀의하게 하여 제자로 받아드리는 장면이 설해져 있다. 제200 <아리타경(阿梨吒經)>에는 법을 구하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 설한다. 어리석은 아리타를 꾸짖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릇되게 이해하면 뱀을 잡을 때 머리 있는 쪽을 잡지 않고 꼬리를 잡아 오히려 뱀에게 물리는 결과가 되는 것과 같다 하였다. 또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려야 하는 것처럼 방편에 집착하여 그릇된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고 하였다. 3. 잡아함경(雜阿含經) 『잡아함경』은 가장 많은 수의 짧은 소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50권 1362개나 된다. 대체로 문장의 길이가 짧고 간결하여 게송과 산문이 혼합되어 있다. 이 경은 설일체유부에 속해 있던 경으로 4아함 중 가장 먼저 이루어진 경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번역은 맨 뒤에 번역되었다.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Gunabhadra A.D. 393~468)가 송(宋) 원가(元嘉)12(435)년에 광주(廣州)에 들어오자 송의 문제(文帝)가 사신을 보내어 건강(健康)으로 맞아들이고 와관사(瓦官寺)에 머물게 하여 경전을 번역하게 하였는데 이때 법현이 가지고 온 범본을 토대로 『잡아함경』이 번역되었다 한다. 『잡아함경』의 이역본에는 『별역잡아함경』을 비롯하여 1권으로 된 『잡아함경』도 있고 모두 19개의 별역본이 있으며 모두 34권에 이른다. 이 별역본들은 번역자가 알려지지 않았다. 『잡아함경』은 불교 근본교리에 해당되는 내용들이 가장 많이, 그리고 자세하게 설해져 있다. 가장 핵심적인 불교 교의라 할 수 있는 3법인을 비롯하여 4성제, 12인연법 등 연기설, 그리고 5온, 6입, 12처, 18계 등의 설법이 반복적으로 설해지고 있다. 이들 내용은 1362개의 소경들 가운데 경의 전반부에 설해져 있다. 그 다음 8정도를 위시한 4념처, 4여의족, 4의단, 5근, 5력, 7각지 등 이름바 37조품을 설하면서 해탈을 얻기 위한 실천 수행법을 여러 가지로 설하고 있다. 경의 후반부에 가서는 10선과 10악을 설하고 인과응보의 이치를 설하면서 3독을 끊고 열반을 얻는 법을 설했으며, 또 성문 4과에 대한 설법이 설해져 있다. 출가 수행자인 비구와 비구니의 항마에 대해서도 설해져 있다. 4아함에 공통적으로 설해져 나오는 근본 교리에 관한 여러 가지 설명 중 『잡아함경』의 설명이 가장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설해져 있는데 이것이 『잡아함경』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소경들이 뒤섞여 정리되지 않은 채 중복적으로 설해지고 있는 내용들이 많지만 부처님 당시에 있었던 이런 저런 일들의 소박한 모습을 보여 주는 점에서는 대승경전에서 볼 수 없는 사실적인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부처님 당시의 모습을 어느 정도 사실적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아함경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해야 할 것이다. 4. 증일아함경 『증일아함경』은 부처님 가르침을 법수(法數)에 따라 1법부터 11법까지 차례로 배열한 뒤 다시 각 품으로 구분하여 정리하였다. 하나씩 갈래를 더하여 이루어졌다는 뜻에서 증일이라는 말이 붙여진 것이다. 전체 51권 52품에 471개의 소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전 5니까야 가운데 증지부에 해당되는 경으로 알려져 있으나 팔리본과 일치되는 내용은 471개의 소경 가운데 151에 불과하다. 4아함 중 맨 나중에 이루어진 경으로 보고 있으며, 경문의 서술 양식이 다른 아함과 달리 대승적 색채가 나타나고 있으며 실제로 ‘소승이 알바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등 대승적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증일아함경』은 두 차례에 걸쳐 번역되었다. 첫 번째는 담마난제가 전진왕(前秦王) 부견(符堅) 때 건원(建元) 12년, 서기376년부터 요장(姚萇) 6년, 389년까지 13년에 걸쳐 장안에서 『중아함경』과 『증일아함경』을 함께 번역하였다. 이 때의 번역은 축불념(竺佛念)과 함께 번역하였다. 그러나 요장이 장안으로 쳐들어와 전란이 일어난 와중에 소실되어 없어져 전해지지 않고,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은 승가제바(僧伽提婆)가 번역한 것으로 두 번째의 역본이다. 승가제바는 설일체유부가 성했던 계빈국(罽賓國:Kasmira) 출신으로 전란이 끝난 후에 사문 법화(法和)와 함께 낙양으로 들어와 머물면서 중국어를 배우고 경전을 강의했다. 그러던 중 담마난제의 번역이 온전치 못하다고 여겨 융안(隆安)원년, 서기 397년 11월에 번역에 착수하여 이듬해 6월까지 7개월에 걸쳐 『중아함경』과 『증일아함경』을 개역하였다. 품수로 보면 처음 제1 <서품>에서 경이 설해진 인연과 경의 소개를 개괄적으로 해 놓고 제2 <십념품(十念品)에서 제52 <대애도열반품>에 이르기까지 1법에서 11법까지 법문의 수를 맞추어 짧은 경들을 배열해 놓았다. 4아함에 모두 공통으로 설해진 내용이 많기 때문에 각 아함이 별도의 내용을 특별하게 가지고 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증일아함경』은 대중부에 속해 있던 경전인 탓으로 대승사상의 편린들이 많이 나타나 있다. 부처님의 법신 상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며, 타방불토사상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물론 대승적 교리이론이 정연하게 설해져 있지 않고 단편적으로 조금씩 언급되어 있으나 다른 아함과 확실히 다른 점들이 눈에 띄는 것이다. <서품>에 보살수행의 실천 덕목이라 할 수 있는 6바라밀 이야기가 나오며, 제 26 <사의단품>에 “여래에게는 4가지 불가사의가 있다. 그것은 소승으로서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설해져 있다. 또 이 품에서는 사리불과 목련의 열반에 든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제10 <호심품>에는 보시에 대한 이야기가 설해져 있으며, 특히 부처님이 급고독 장자에게 보살의 마음으로 널리 보시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륵불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또 제3 광연품(廣演品) 1경에서 “여래의 본체는 금강(金剛)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고, 제48 <십불선품(十不善品)>2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 자신의 수명이 매우 길다 하면서 “이 육신은 죽지만 법신은 영원히 존재한다.”라고 말해 『열반경』에 설해져 있는 ‘불신상주설’과 같은 내용이 설해져 있다. 제36 <청법품(請法品)> 5경에는 불상조성에 관한 이야기가 설해져 있다. 부처님이 생모 마야부인을 위하여 설법하기 위해 도리천으로 올라가 지상에 계시지 않을 때 우전왕(優塡王)이 부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일어나 붉은 전단 향나무로 부처님의 상을 만들어 공양을 올렸고 또 바사닉왕(婆斯匿王)은 자마금으로 불상을 만들어 공양을 올렸다. 뒤에 부처님이 돌아와 불상을 만들어 공양 올린 공덕을 설하는 장면이 나온다. 『증일아함경』에는 다른 아함경에 나오지 않는 특유의 이야기들이 대승적 색채로 나오는 것이 있는가 하면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 일부가 특별히 소개되고 있는 장면도 있다. 제24 <고당품(高幢品)> 5경에는 가섭 3형제가 부처님께 귀의한 이야기가 설해져 있고, 부처님이 성도 하신 후 고향 카필라성으로 돌아가 부왕과 친척들을 만나 법을 설해주는 장면도 있다. 제34 <등견품(等見品)> 2경에는 카필라성이 멸망하는 최후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49 <방우품(放牛品)> 9경에는 제바닷다가 부처님을 살해하려 했던 5역죄를 법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제52 <대애도열반품(大愛道涅槃品)> 1경에는 비구니 승단을 대표하는 대애도 고타미와 5백 명의 비구니 열반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2경에는 가섭존자의 아내였던 바타 비구니의 이야기가 있다. 정치지도자의 올바른 정치에 관한 이야기도 제17 <안반품(安般品)> 11경에 설해져 있다. 정치지도자가 올바른 정치를 해야 백성이 편안하게 됨을 설하면서 마치 소떼가 물을 건널 때 길잡이 소가 바로 가야 하는 것처럼 왕의 법이 올바르지 못하면 백성이 고통을 받는다고 설해져 있다. 제12 <일입도품(壹入道品) 4경에는 부처님이 “병자를 돌보는 것이 나를 돌보는 것이다.”하면서 간병의 공덕을 설하고 있으며, 제44 <구중생거품(九衆生居品)> 7경에는 비구들에게 병든 비구를 간호하라 이르시면서 몸소 병든 비구를 간호하는 장면도 있다. 이와 같은 『증일아함경』의 이야기들은 사람 생활 속의 실제적 상황에 맞추어 나타나는 매우 인간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