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브런치>>
<덫> 外 53편
도서출판 북인
최지안 시인의 시편들에서 가장 주목하게 되는 것은 감각과 사유의 빛이다. 그래서 이 한 권의 시집은 계절마다 꽃이 바뀌며 피는 화원 같고, "파도의 목소리"(<너에게>)가 들려오는 해변 같다. 단 두 개의 시구를 예로 들어보자면, "여름은 냇물을 어루만지다 물러갔어요. 당신은 풀벌레 소리를 내며 가을 숲에서 울었어요"(<겨울엔 칠월을 데려 갈게요>)라고 노래할 때 우리는 여태껏 봉한 상태에로 있던 그 무엇이, 그 어떤 빛이 문득 개봉되는 듯한 산뜻한 느낌을 받게 된다.
시인의 작품들에는 '당신'이라는 시어가 자주 등장한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물결 무늬로 말라버린 압화"(<꽃의 지문>) 속에, 즉 옛 시간 속에 있기도 하지만, "아름답고 슬픈 고리"(<아름다운 고리들>)로 시적 화자 혹은 다른 생명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지금 여기에 살고 있거나 다가올 미래에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로도 표현된다.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이 중층적인 존재와의 안부의 유통을 감개 깊게 보여준다.
-문태준/ 시인
수요일의 브런치
꽃을 저장한 개나리 주유소
담장을 붙잡고 바람에 흔들립니다
이 꽃은 리터당 1,569원입니다
평일을 접으면 수요일에 주름이 집니다
월화는 지났고 목금이 남은 오늘
카페에 있습니다
주유소를 붙잡고 흔들리는 카페
이 커피는 350밀리리터에 3,500원입니다.
뜯어먹다 반을 먹고 남긴 빵 같은 수요일
물끄러미 봅니다
햇살을 만지작거리는 오전 11시
간밤에 두고 간 누군가의 안부가
아침이기도 점심이기도 한 이 시간에 식어가고 있습니다
올 것 같기도 하고 오지 않을 것 같기도 해서
수요일은 점점 미지근해지는데
확신할 수 없어서 아니라고 말할 수 없듯이
뒤집어봐도 별 볼 일 없는 일과에서
꽃이지만 꽃이 아닌
피어 있지만 피지 않은
남아 있지만 남아 있지 않은 수요일을 야금야금 먹습니다
나는 어쩌면 수요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