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현관을 나서니 거추장스러운 옷 하나를 벗어 던진 것처럼 몸이 가볍다. 올려다보면 103, 106, 107, 108동이 모서리가 터진 ‘ㅁ’자 모양으로 치솟아 하늘은 네모로 좁아 보이지만 그래도 유일한 중앙 정원 겸 어린이 놀이터를 지나면 이이들의 기가 이어지고 호흡도 걸음도 새롭게 느껴진다. 눈부신 양지와 음지의 옅은 어두움을 생생하게 느끼며 108동을 받친 기둥 사이로 난 보도를 통해 축대 사이로 난 계단을 내려가 근린공원 농구장을 지나서 송도 병원 주차장을 가로지른다. 병원 후문을 나와 동부 초등학교 쪽으로 향하면 하남시의 명물인 골목길이 시작된다.
좁은 길이 이어진 하남시 구시가지는 요즈음 새 아파트 단지를 그리는 것 같다. 여러 군데,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을 원하는 주민들의 목소리, 현수막이 시선을 끈다. 하지만 요즈음 들어서 나는 뒤늦게 골목길의 정취를 느낀다. 다세대 주택으로 이어진 길을 걸으면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갈 때와 다르게 삶의 막장을 현장 답사한다고나 할까, 삶 깊숙이 들어와 뭔가를 새롭게 음미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문 밖 좌판에 몇 가지 떡을 늘 진열해 놓고 안에서는 고추, 참기름, 들기름 , 소금 , 쌀, 잡곡 등을 파는 낙원 떡방앗간, 공중전화 박스보다 조금 큰 공간에서 프레스 일을 하는 아주머니, 수제 구두를 만드는 아저씨, 간판 가게 앞에 늘 모여 이야기하는 전파사 주인아저씨, 그리고 체육관 아래층에 있는 경로당 옆 정자에는 항상 모여 앉아 각자의 개성적인 얼굴은 지워 버리고 흰 머리와 주름지고 땅을 향해 처진 얼굴로 화폭을 가득 채운 그림처럼 그들만이 만들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할머니들과 덕풍 전통 시장의 장날 풍경, 박스를 실은 손수레를 끄시는 분 등 언제나 거리에는 볼거리가 많다. 가장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건 도로의 기능을 약화시키며 주차된 자동차들이다. 마치 입맥으로 연결된 잎사귀 같은 두 동네, 광주 가는 2차선 도로 양쪽에 붙어 있는 신장동과 덕풍동은 서 있는 차들로 인해 더욱 비좁다. 한창 더울 때는 그늘을 찾아서 걸으려고 해도 뜨거운 차에 앉기를 싫어하는 차 주인들이 그늘진 쪽 주택에 바짝 붙여 놓아서 해를 피해 걸어 다니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내가 화가라면 그림의 소재로 선택하지 않을 것 같은 평범한 거리 풍경이지만 조용한 가운데 생존 경쟁이 치열하다. 좁은 길 양쪽에는 다세대 주택이 주로 이어지지만 드문드문 상가를 이루어 건물에 비해 큰 간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벽에 고정되어 있지만 저마다 큰 글자가 되려고 몸부림을 친 흔적이 남아 있고 항상 깃발을 흔들어 시선을 끌려는 주인의 마음이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손님들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가끔 생기어린 소리가 나는데 그것은 젖먹이 아기의 울음소리와 어린이집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리이다. 반갑지 않은 건 오토바이와 자동차 소리다. 매연을 뿜고 지나가면서 편안한 걸음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가끔, 늘 다니던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서면 이런 길도 있었구나 하며 다시 한 번 보게 되는 경우도 있고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 돌아 나온 적도 몇 번 있는데 아직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는 어려워 아는 길로만 다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공간 중 들릴 곳은 거의 없고 가게도 요즈음은 대형 마트를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마련이다.
골목길을 벗어나 내가 가는 곳은 음악을 꿈꾸는 곳, 평생 여러 가지 문제들과 씨름하고 살아 왔지만 다른 세상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공간이다. 정해진 시간에 맞추려고 부지런히 걷는다. 길을 따라 닫혀 있던 투명한 자동 미닫이문이 계속해서 열린다. 열린 문으로 지나노라면 내 생각이나 감정의 방에 '쨍'하고 해가 비쳐 눈이 부시지만, 새로운 것을 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평소에 주로 쓰던 한정된 어휘에서 벗어나 쓰지 않던 단어도 떠오르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후회와 실망이란 단어도 사랑과 희망이란 단어도, 아니 모든 단어들이 제각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글자들의 획이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이어질 수 있고 넓게 쓰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모든 어휘는 한 획으로 연결된 큰 덩어리와 마찬가지이지만 그 중에서 제한된 단어-모든 어휘를 이은 긴 획에서 극히 짧은 선분만 익숙하게 쓰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둠 속에서 탐조등을 비추면서 보이는 게 ‘모두 다’라는 사고방식으로 살면 안 되지 않을까. 세상은 내 생각만으로 비춰 보기에는 얼마나 넓은가. 어떻게 보면 모든 생각이나 감정이나 그것을 표현한 단어는 각자 별천지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덩어리가 아닌가. 같은 사람이 같은 두뇌를 통해 생산한 것이 아닌가. 어휘는 초서(草書)처럼 연결·압축되어 있는데 일부만 손쉽게 꺼내 쓰니 다양성을 잃은 것이리라.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그 말은 '원수'와 '사랑' 사이에 있는 수많은 빛깔, 그 감정의 폭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철저하게 미워하되 그 어두운 감정에만 치우쳐 살지 말고 밝은 면도 마음껏 만끽하며 폭넓게 살라는 말은 아닐까. 나는 어느 한 쪽에 막다른 골목길을 만들어 놓고 게으르게 앉아 있기를 좋아한 것은 아닐까. 문을 활짝 열고 새로운 세상을 맛보고 싶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제 답답한 마음에 문을 두드리듯이 건반을 두드린다. 두드림은 잠가진 문을 열기 위해 도저히 암기할 수 없는, 긴 비밀번호를 누르는 일인데 작곡가마다 부여한 번호가 다르기도 하지만 아직 미숙하여 번호를 잘못 누르기도 하고 아니면 다 맞았다 해도 박자나 강약에 문제가 있는지 문이 활짝 열리는 시원함도 없고 아직은 새롭고 아름다운 소리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첫댓글 머릿 속에도 큰 길이 있고 골목길이 있어요. 선생님 글을 보고 사색을 기회를 가져봅니다. 감사합니다.
멋진 글 자주 자주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