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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의 싸움, 기다리는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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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숙 |
| 얼마 전, 동호회 회원이 손수 빚었다는 다기 술잔 몇 개를 사진으로 보았다. 처음 해본 것이라는데 이런저런 문양과 나름대로 투박한 멋이 있는 그림들을 보니,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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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리게 건너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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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숙 |
| 하동으로 옮긴 후 그릇을 만드는 일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작년 봄, 화개의 어느 도예공방에 들러 수강을 조르다 차를 따는 시기가 지나야 수강생을 받을 수 있다는 주인장 말씀에 흙 두덩이만 사들고 왔다. 집에서라도 조물거리다 그 공방 가마에 구워달라고 졸라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꿈만 부풀린 시간이 벌써 1년이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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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살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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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숙 |
| 귀농을 꿈꾸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다. 정호경 신부님의 <손수 우리집 짓는 이야기>를 읽고부터 안성에 있는 부모님 농장 한 귀퉁이의 사과창고를 흙집으로 개조해 내 집, 내방을 꾸미고 싶은 욕심을 키워왔다.
내가 시골로 들어가는 것 자체를 반대하던 아버지의 만류에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연세도 많고 건강도 나빠진 아버지는 오랜 세월 정성으로 돌본 7천여 평의 땅을 떠나 도시의 아파트로 옮기셨다. 그 때만 해도 시골로 완전히 옮기는 것은 자신이 없었으므로 주 중의 반만 안성을 드나들며 아버지 곁에서 이것저것 익히고 싶었는데... 하지만 아직도 시골로 들어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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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과 '굽'의 오묘한 흐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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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숙 |
| 충북 증평의 염색 선생님 소개로 오창의 도예 선생님을 만났다. 매주 증평과 오창을 교대로 넘나들며 시간을 나누고 쪼개 바삐 뛰어다녔고, 시골로 가기 전까지는 일하는 짬짬이 진천에 다니며 손맛을 조금 익혔을 뿐이다. 실로 흙의 손맛을 느낀 때는 오창의 도예 선생님을 만나서 작업한 때였으리라. 1년에 서너 번 장작가마에 불을 지피는 작가는 극히 드물다 생각한다. 장작가마 뿐아니라 가스가마도 수시로 돌리는 선생님 곁에서 도예의 참맛을 깨달으려면 아직도 멀었다. ‘전’과 ‘굽’의 오묘한 흐름, 지금도 손끝에서 그 느낌이 꿈틀거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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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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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숙 |
| 흙을 만지는 일, 흙집을 짓는 일, 흙을 주물러 내가 쓸 그릇을 빚고 내가 입을 옷을 황톳물에 조물거릴 날만 머릿속에 채운 채 앞만 보고 내달린 시간들. 시골 살이 3년차에 접어들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아직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평생 질리지 않고 즐길 놀이감’으로 선택한 ‘도예와 염색’ 두 가지 가운데 염색이라도 즐기며 몰두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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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을 빚어 세월을 빚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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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숙 |
| 자투리 천을 이어 내 손으로 빚어 구워낸 찻잔, 들꽃이 담긴 화분, 촛대 같은 소품들이 올라앉을 다포를 만들 때면,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희망을 생각한다. 푸른 하늘 아래 흙을 이불 삼아 뜨겁게 달구어져 새롭게 태어날 그릇들, 나의 온전한 터가 생기면 반드시 ‘노천 소성’에 도전하리라는 희망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