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병기
시인, 1963년 경북 영양 출생, 현대자동차(주) 연구개발본부(15년 근무), 자동차부품 관련 회사 임원(10년 근무), ‘아름다움 멋을 느끼며 살자’를 가훈으로 삼았다. 소박하고 따뜻한 인정을 쫓는다.
소록도
우 병 기
남쪽 바다에 작은 사슴 엎드려 있다
아득한 섬마을
순한 눈빛은 멀리멀리
바다 건너 항토 벌판에
연두빛으로 드리워진 보리밭
그리워할까
피아노를 잘 치며
현해탄 건너 일어판 시집도 출간하고
때때로 그림 전시회를 열며
막걸리도 좋아하시는
노장의 기운 펄펄 넘친다
팔순이 훨씬 넘으신 노 작가
은자隱者의 모습을 하고
은자들을 혼내는 열정이려나
그 분을 만나면 절로 유쾌해진다
툭툭 던지는 농담은
풀밭을 뛰는 사슴의 뜀박질
처음 뵙던 날
글 쓰고 문학하는 사람은
술도 한 잔 씩 해야 감수성이 더 부푼다며
연거푸 따라 주시던 살가운 응수에
술잔의 응대가 행복했었다
작은 사슴 닮은 먼 섬마을
사슴 눈으로 사슴처럼 계시는
그 분을 생각하면
이제는 아득하지 않다
막걸리 잔에 지긋한 미소마저 담기면
파도소리 물든 농담 더욱 맛깔나겠지.
*소록도에서 파도소리 들으며 피아노를 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시며
막걸리도 마시고 계실 강선봉 선생님을 떠올린다.
오빠 생각
고등학교 담임이셨던 은사님이
며칠 전에 반달 동요 가사를 보내시더니
오늘은 또다시 오빠 생각 가사를 보내셨다
동심을 더 품어라 하시는 넌지시인가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수 떨어집니다
오빠가 월급을 타면 우체국 전신환으로
얼마씩 보냈던 돈을 엄마 심부름에 찾으러
이십 리 길 면소재지 우체국에 다녀왔다던
두 여동생 중학생 시절 생각이 나면
가끔씩 눈물 글썽이었지
저희 둘 손잡고 신작로 먼 길을 걸어가며
오빠 생각을 했었다던 동생들
오늘 비포장 강둑길 걷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또 울먹이고 말았다
벌써 둘 다 오십이 훌쩍 지나버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