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왕 대축일 강론
교회는 연중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을 그리스도왕대축일로 거행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마지막 날에 왕으로서 다시 오실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성서말씀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중심임을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피조물의 중심이며 백성의 중심이고 역사의 중심임을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물보다 앞서 계셨고 당신 안에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으며 당신의 피로 온 세상을 구원하시고 사랑으로 돌보시는 우주만물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콜로 1,15~16a.18)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시어 우리들 중의 하나로 찾아오심으로써 친히 낮추어 우리의 형제가 되시고 우리를 당신과 한 가족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우리와 하나가 되실 뿐만 아니라 맏이가 되시어 인류의 여정에 함께 해주십니다. 십자가의 피로써 죗값을 대신 치르시어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심으로써 우리를 당신과 하나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다윗에게 왕이 되어줄 것을 청하며 말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역시 우리의 왕으로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고백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2사무 5,1)
모든 사람들을 위한 십자가의 죽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왕이 되셨습니다. 가시관을 왕관으로 쓰시고 못에 박혀 매달리신 십자가를 왕좌로 삼으셨습니다. 목숨을 내주심으로써 백성을 돌보시고 만물을 당신 안에서 화해시켜주셨습니다. 당신 안에서 우리 모두 한 백성이 되어 같은 운명과 여정을 나누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20)
세상의 왕들은 백성이 불복할 때에는 군대를 보내어 진압하고 벌을 주지만, 하느님께서는 인류가 당신을 거슬렀음에도 천사를 보내어 징벌하시기보다는 오히려 당신의 외아들을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희생 제물로 내주셨습니다. 세상의 왕들은 백성들에게 세금과 충성과 여러 가지 많은 것을 요구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많은 것을 주고 또 내주십니다. 하지만 당신의 선물을 힘으로 강요하지 않고 우리에게 자유롭게 놔두십니다. 그분은 힘과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다스리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화려하고 영광스런 행적으로가 아닌 무기력하고 나약하며 초라한 모습으로 모든 이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예수님께서 사랑의 왕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루카 23,38)
하지만 십자가 주위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그리스도 왕으로 고백하지 않습니다. 얄팍한 세속의 힘과 권세를 가지고 있었기에 예수님을 조롱하는 지도자와 군인이 있었고 고통 속에서 자기 잘못을 뉘우치기보다는 오히려 원망하며 모욕하는 죄수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루카 23,39)
우리 신앙인의 여정은 하느님과의 충만한 만남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갈망하는 하느님 나라의 행복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여정 동안에 성령께서 우리를 정화하고 들어 올려주시어 성화시켜주십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알아보고 맞으려면 매일의 삶속에서 그분의 삶을 기억하며 닮아 살려는 훈련을 시작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용서를 위해 기도하심으로 용서의 왕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닮아 이웃의 용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기심과 애착으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삶속에서 치유를 청해야 합니다. 단죄하기보다 자신이 용서받았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용서를 전해줘야 합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예수님을 왕으로 알아보고 고백하기 위해서 섬김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섬기러 오셨으며 섬김의 왕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닮아 이웃을 존중하며 섬기는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자신보다 못나고 가난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며 소홀히 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배척하기보다 먼저 이해하려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
예수님을 왕으로 맞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보다 앞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시며 사랑의 왕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닮아 사랑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걸어놓고 바라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하느님을 위하여 먼저 양보하고 희생하는 아픔 속에서 부활의 꽃을 피워야 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자의 삶의 주인이며 왕이 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그리스도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삶을 이루는 기쁨과 희망과 슬픔과 고뇌를 주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중심이 되어주신다면 비록 삶이 가장 어두운 순간일지라도 착한 강도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를 비추시어 우리에게 희망을 주실 것입니다. 평생을 잘못 살아서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매달려죽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회개의 기회를 부여잡은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약속해주십니다. 우리도 삶의 여정에 어둠의 순간도 있고 실수를 저지르고 죄를 짓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도 착한 강도처럼 예수님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해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착한 강도에게 주신 예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을 가져다줍니다. 용서하고 섬기며 사랑하려 노력하는 우리에게도 낙원을 약속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항상 우리가 당신에게 청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그러우시기에 청하는 것보다 항상 더 많이 베풀어주십니다. 우리도 기억해주기를 청한다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나라로 이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우리의 기쁨과 구원의 원천이시며 바람의 중심이십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