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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태을도(太乙道) 수원법소(水原法所) 원문보기 글쓴이: 충정(忠正)
1부 : 봄편
천지부모님의 심법과 하나 되라
솔로몬의 재판 중에 서로가 자기의 아기라고 주장하는 두 여자를 재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솔로몬이 아기를 절반으로 잘라 나누어 주라고 했을 때 진짜 엄마와 가짜 엄마의 심법이 드러납니다. 진정한 어머니의 마음, 부모의 마음, 주인의 마음은 시비를 초월해 자식을 살리고 잘되게 하는데 있고 소인의 마음은 자신이 옳고 자신이 이기는 것에 있습니다. 내 종교가 옳고 다른 종교는 그르다 하며 배척하는 것은 이미 그 목적의식의 한계를 보여 줍니다. 천지의 도는 생명을 살리고 자라고 성숙하게 하고 열매맺게 하는 마음입니다. 천지의 도를 용사하는 상제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더라도 내가 오해를 받더라도 잘되게 해주려는 마음씀이 진정한 주인의 마음이요 천지의 마음이요 상제님의 심법인 것입니다. 포용하고 사랑하고 키워주고 아껴주는 그런 마음이어야 합니다.
나라는 벽을 치고 나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씀은 상대방을 힘들게 하고 상대방도 그렇게 닮아가게 합니다. 부족한 부모는 가르치려하고 자식과 자존심 싸움을 벌이지만 성숙한 부모는 자식의 입장을 헤아려 본인 부터 말을 가리고 행실을 가립니다. 자신의 출세가 목표인 직원은 경쟁 직원을 이기고 올라서려는 마음으로 소모적인 경쟁을 하지만 큰 뜻을 가진 직원이나 사장은 일의 성취를 통한 모두의 성공을 위해 화합하고 묵묵히 자신을 낮추며 업무에 집중합니다. 친구를 만나서 하는 말 한마디에도 나를 포장하고 나를 드러내려는 말이 있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고 뭔가 도움이 될까하는 배려의 말이 있습니다. 나의 말과 행실에 묻어 나오는 나의 심법을 스스로 자각하고 바로잡아가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판밖의 남모르는 공부
세상은 ‘판안에 드러나는 공부’로 돌아가는 듯해 보입니다. 정치판, 회사판, 학계판, 종교판 등 대중들의 눈에 주목을 받는 판안에서 지식자랑 세력자랑을 하며 영향력을 키워가는 공부가 ‘판안의 드러나는 공부’라면 ‘판안의 남모르는 공부’는 외형적으로 드러나 주목받으려는 공부가 아니라 온전한 심법, 완성된 인간으로서의 마음공부를 말합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그리고 마음공부를 해보면 자명해지듯이 판안에서 좌충우돌 세력싸움으로 자신의 의지와 생각대로 세상을 바꾸어 보려는 시도는 상대의 저해를 받아 잠시 성공하는듯 보이고 큰 일하는 듯 보여도 결국 용두사미로 흐지부지 되고 맙니다. 모두가 아닌 자신이 성공하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행위는 결국 반복되는 분란과 쟁투를 유발하며 끝없이 상극의 화염을 옮겨 붙이며 번져 갑니다.
상제님께서는 ‘판밖의 남모르는 공부’를 해 두라고 하셨습니다. 너의 그 상극적 마음을 잘 되돌아 보고 그 심법을 잘 반성하고 참회해서 천지의 심법을 회복하지 않으면 상생의 후천세상으로 넘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령스런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스스로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방법이 없기에 당신께서 인간의 몸으로 모범보이시고 말씀과 행적으로 남기신 그 상생의 모습들을 후인들이 그 마음을 챙기고 그 행실을 배워서 완성된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야 도수에 돌아 닿는대로 펼쳐지는 상생세상의 주역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개벽과 도통을 외치며 주목을 끌며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을 알려왔던 판안공부의 역할이 있었고 이제는 백여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상제님에 대한 성숙된 이해를 바탕으로 심법공부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하늘에서 받아나온 인간 본연의 마음자리가 잊혀지면 세상은 어지러워지고 그 마음을 회복하면 세상은 다스려지고 편안해 집니다. 수행과 공부를 통해 안심안신을 통해 그 천심을 회복해 그 마음자리에서 우러나오는 편안함으로 주위를 감화시켜 병든 상극의 마음들을 고쳐가라는 것이 상제님께서 후인들에게 내리신 천명이라 할 것입니다.
2부 여름편
시천주 봉태을의 길
수화금목 대시이성 수생어화고 천하무상극지리
선천은 불기운이 좌우하고 후천은 수기운이 좌우합니다. 건곤이라는 우주정신은 현실계에서 불(리)과 물(감)이라는 속성으로 작용하며 생명현상을 영위합니다. 불(리)라는 것은 목화로 작용하여 따뜻하고 더워서 생명의 성장과 분화 발산 발육과정을 주관하며 물(감)이라는 것은 금수로 작용하여 발육을 멈추고 수렴 결실하고 다음 싸이클을 위해 동면하는 과정을 주관합니다. 분화 발산의 시절을 거쳐 어느덧 그 경험을 통해 열매맺고 다시 수렴 결실하는 과정으로 들어서야 새로운 싸이클을 준비해 영원한 음양의 조화가 반복될 수 있습니다. 때가 되면 그 반대의 과정으로 들어서 한방향으로 치우쳤던 과거를 다시 온전한 균형잡힌 모습으로 변화해야 하는 때가 있기에 때를 만나 그 온전함을 이루게 됩니다.(대시이성). 발산에 치우쳤던 선천 화기운이 역방향으로 수렴과정으로 돌아설 수 있는 것은 토라는 수화금목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균형잡힘 천지공심의 마음자리가 완성되어야 오행을 온전히 조율할 수 있습니다.
때가 되어 인간으로서 완성된 마음자리를 갖춘 천주를 통해서 그 천주의 마음을 기준으로 닮은 수많은 천심자, 시천자들이 결실되어 나옮으로써 수생어화하는 상생의 순환이 완성되어집니다.
토는 시천의 마음자리요, 금은 어짐(仁)의 열매인 의(義) 태을체이기에 시천의 마음과 태을주 수행을 통해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하는 수생어화의 상생싸이클이 완성이 됩니다. 상극을 상생으로 돌리는 것은 마음닦고 태을주를 읽음을 통해서입니다.
자기 점검을 철저히 하자
도의 길은 한순간의 노력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실천의 시간을 통해 성숙되어 가는 것입니다. 내 마음 훈련이 안되어 있고 내 마음 점검이 안되어 있으면 아무리 개벽을 외치고 도통을 외쳐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후천은 서로의 마음을 아는 지심대도술의 시대이기에 마음 훈련을 하지 않으면 행세를 할 수가 업습니다. 내 마음 점검을 통해서 자기가 자기를 배워가는 과정이 도의 과정이요 홀로서기의 과정입니다. 홀로서기를 포기하면 급살병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조용하게 몸과 마음을 닦아 나가면 날이 갈수록 마음이 맑아지고 달이 갈수록 성품이 익어가며 어느 날짜에 기약도 없이 갑자가 도가 찾아 오는데 더욱 힘써 닦아 가면 공덕이 쌓여서 자연스럽게 야릇한 조화의 힘이 생기리니 덕이 지극하면 복도 함께 따라오게 되는 것이 하늘의 법칙이니라.” (중화경)
“정성스러운 마음이 없으면 진기도 생겨나지 않고, 정성스러운 마음이 있어야만 진기가 생긴다. 지극한 정성으로 쉬지 않고 닦아 나가면 진기가 많이 생기지만 어찌하여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는 못한다. 지극한 정성으로 진기를 작용하면 천지와 하나가 되어 오래도록 계속하면 도통의 경지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니.”(중화경)
“지극히 착한 것은 마땅히 행하여야 하는 도리이고 지극한 덕성은 스스로 도를 닦아서 얻어지는 것이다. 성인의 마음이 나의 마음에 감화할 때에 얕기도 하고 깊기도 하고 느리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여 드러나는 것이 다를지라도 나의 마음이 그의 마음과 감응한 상태를 오랫동안 키우고 길러 가면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을 순간도 있으나 감응한 마음을 놓치지 않고 보존하는 것이 도통에 드는 관문이다. 이 마음이 바로 만물을 낳고 살리는 오묘한 힘이 생기게 한다.” (중화경)
“성인의 말씀은 천지의 도리를 밝히고 무궁한 이치를 알게 함으로써 마음이 즐거워지고 도리에 익숙하게 하려는 것이니 천하의 많고 많은 도리가 성인의 말씀에 있는지라 성인의 입이 도통에 드는 문이 되니 옛 성인이 말한 이치를 풀어가면서 사람들을 교화하라.” (중화경)
“공부하는 사람이 덕을 심고 악한 생각을 제거하는데 힘써 먼저 할일과 뒤에 할일의 차례와 가볍게 처리할 일과 중요하게 처리할 일의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도리의 본말이 모두 갖추어지며 안과 밖이 서로를 길러서 날마다 하는 일이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계속하다가 어느날 갑작스럽게 도를 깨닫게 되리니 도를 닦는 공부법은 이것이 전부이다.”(중화경)
제3부 가을편
분노를 자비로 돌려라
자신의 마음을 볼 줄 알아야 분노를 삭일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치우치고 중심을 잃었기에 분노하게 되고 증오하게 됩니다. 깃발의 움직임도 바람의 움직임도 결국 내 마음에서 인지를 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각자가 각자의 노릇을 하고 각자의 길을 갑니다. 의도적이든 우발적이든 나에게 피해가 오더라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분노하게 되기도 하고 덤덤하게 넘기기도 합니다.
내 스스로가 좁은 인식과 의식의 테두리로 세상을 보면 자연히 타인들에 대해 적대적일 일이 많아지게 되고 내 스스로가 큰 생각고 큰 마음으로 살아가면 자연히 포용하고 도와주고 화합하게 됩니다. 큰 사람을 만나고 큰 생각들을 접하다 보면 자연히 그렇게 동화되어 가는 것이고 소인배를 만나 자잘한 이해관계로 부딪히다보면 자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줄 알게 됩니다. 스스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인연을 만들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갑니다.
나를 찾아가는 성숙한 신앙
내 스스로 자립하려 하지 않는 사람은 자연히 누구에겐가 기댈 수 밖에 없습니다. 종교인에게 기대고, 전문가에게 의지하고, 조직에 소속되어 무리에 섞여 안정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다 보면 또 자연히 남탓을 하게 됩니다. 남에게 의지하기에 남탓을 하게 됩니다. 남탓을 하기에 미워하고 증오하게 됩니다. 홀로서기를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립니다. 모든 것은 내 책임이고 내가 책임질 수밖에 없습니다. 책임이 커지는 만큼 큰 사람이 되어갑니다.
후천은 진리의 주도권이 인간에게로 넘어오는 인존시대입니다. 신성을 깨친 인간이 인존신이고 그 인존신에 의해 세계일가가 이루어지고 다스려집니다. 무한한 책임을 감당할 만큼 성숙한 사람이 되는 길이 태을도인의 길입니다.
제4부 겨울편
언덕을 베풀어 치천하하라
“각기 십만명에게 포교하라.” 하시고 또 “평천하는 내가 하리니 치천하는 너희들이 하라. 치천하 50년 공부니라.”
어지럽고 제각기인 천하의 수많은 국가와 사람들을 고르게 하는 평천하를 한다는 것은 전세계를 하나의 국가로 통일해 하나의 법안에서 모든 민족과 국가와 사람들을 평등한 국민으로 만들어 다툼없이 평화롭게 살게 하는 것이겠지만 그 평천하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전쟁과 살육과 원한과 원망을 낳게 되어 비록 일시적으로 통일천하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오래 지속되기가 힘듭니다. 또한 국가간 민족간의 언어가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우열이 다르니 비록 한 나라로 통일이 되어서도 분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통해 여러 공사를 보시어 국가간의 벽을 허물고 봉건적 신분질서를 타파하면서 국가간 지역간 계층간의 차별이 많이 줄어들고 과학기술 발달에 힘입은 손쉬운 교류로 인해 세상은 많이 동질화 되어감으로써 후천 통일 국가를 위한 기반 작업들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
러면서 어느 시점엔 정치적으로도 한반도의 남조선이 주도하는 세계통일국가 대시국이 건설이 되어지는데 그것은 또한 전쟁과 투쟁을 통한 원한쌓인 통일이 아니라 병겁의 과정을 통해 생명을 살려준 은혜에 감복해 기꺼이 승복하고 감사하는 모습의 세계 통일국가가 이루어지도록 상제님께서는 평천하의 틀을 짜 놓으셨습니다.
“평천하는 내가 하리니 너희들은 치천하 공부를 하라. 치천하공부 50년이라. “
세계통일 국가가 이루어졌어도 그 다스림이 치우치고 차별하고 원망을 짓게 되면 또 다시 분열이 생기고 다툼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병겁의 과정을 통해 통일국가를 만든 사람들이 지배계층이 되어 차별과 원망의 마음을 불러 일으키면 시간의 문제이지 또 다시 분열과 분쟁의 세상이 오고 맙니다. 지도자들이 언덕과 배려와 화합과 포용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평생 실천해 가는 모습을 통해서 만이 후천 오만년의 조화선경이 건설이 되고 유지가 될 수 있습니다.
치천하 50년 공부라는 것은 사실 평생의 삶의 모습을 통해 시간을 통해 모범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가라는 말씀에 다름이 아니겠습니다. 남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실천으로써 스스로 감화되어 가는 것이 무위이화하는 치천하의 모습이 됩니다.
그런 상생의 귀감을 실천하는 심법의 사람들이 준비가 되고서야 병겁도 통일국가도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아무리 평천하를 잘해 놓아도 병겁으로 통일천하를 만들어 놓아도 다스릴 사람들의 심법이 올바로 갖춰지지 않으면 오만년의 안정된 상생세상이 지속될 수가 없습니다.
치천하 공부는 상처를 주고 원망을 주고 불평을 주어 척과 살을 쌓아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관계를 벗어나 서로 손을 잡고 보듬어주고 서로 안아주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합하고 포용하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내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나다
세상이 분화되다 보니 세상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나는 그저 나의 방식으로 돈벌이를 하기에 시간이 모자라고 나머지 분야들은 외부의 전문가들에게 돈으로 해결을 합니다. 밥은 외식업체에, 건강은 의사에, 애들 교육은 학교에, 종교는 교회에….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은 누군가 어느 철학자가 고민해 써놓은 책 하나 사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또 돈벌이에 바쁘게 살아갑니다.
살아가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저 서로에게 비춰지는 모습을 의식하며 맞춰가느라 바쁘기만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해 살아가기에 모두가 불구덩이로 걸어들어가도 대오를 빠져나올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누군가 알아서 하겠지 누군가 아는 사람이 있겠지 하면서 서로에게 미루며 살아갑니다. 사후의 문제는 교회를 다니면 예수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지, 교회 다니면 천국가겠지하는 생각으로 그저 현실논리에 맞춰 살아갑니다.
그런 삶이 충만하고 만족스러운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한 평생을 대중속에서 가족속에서도 공허해하고 방황을 하다가 마지 못해 죽음을 맞이할 뿐입니다.
후천개벽기는 선천 오만년을 방황해 왔던 사람들에게 생명의 근본이 밝혀지고 삶의 비밀이 드러나는 시기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 오셔서 그 모든 것을 드러내 주시고 앞으로 다가올 좋은 운수를 알려 주셨건만 이끗에 묻혀 화려한 문명의 자극에 묻혀 들리지도 와닿지도 않습니다.
완성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신 증산상제님께서 후인들에게 남기신 말씀은 “내가 너희를 구원해 주겠노라”가 아니라 “너희가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면 나도 너희를 구원하지 못한다” 였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스스로 완성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천심을 회복한 온전한 인존신이 되어 현실세계속에서 완성된 삶의 모습을 구현해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유불선 서도의 성인들에게 매달려 구원해 달라고 애걸해 왔듯이 하느님인 나에게 매달려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의 종복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보를 뜯어 고쳐 나의 어진 벗이 되어 세상을 사회를 개조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방벽에도 기대지 말고 물 한그릇도 남에게 헛된 의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학자를 믿고 철학자를 믿고 종교인의 말을 믿고서 진리를 찾아가는 길을 도외시하지 말고 스스로 공부하고 사색하면서 자신의 노력으로 근본을 찾고 자신의 정성으로 진리를 찾아 인간으로 완성되는 길을 가라는 말씀입니다.
후천은 원시반본하는 때입니다. 원시반본이란 나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나의 참모습을 찾는 것입니다.
난 무엇인가 ? 나를 완성시키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야 방황을 멈추고 안정을 찾습니다.
도의 길은 나를 찾는 길이고 홀로서는 길이고 내가 완성이 되는 길입니다. 외로움과 고독속에서 나를 찾고 내 근본을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홀로설수 있고 내가 완성이 되어 갑니다.
내 마음을 깊이 파서 나를 찾아가는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