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에 첫눈 소식 있거들랑 주저 말고 영동선 열차를 타러 가요
겨울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곳인 양 올해도 어김없이 대관령과 봉화가 일기예보에 나란히 등장 했고 이제 봉화는 전국에서
춥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 돼버렸다. 계절이 급변하는 이즈음해서 첫눈 소식이라도 있을라치면 외딴 산골마을 어딘가에
어쩌면 함박눈 펑펑 내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열차타고 떠나고픈 마음 간절해진다.
해서 오늘은 ‘눈’하면 떠오르는 곳, 바로 승부역으로 협곡열차와 함께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를 소개할까 한다.
분천역에서 출발하는
백두대간협곡열차를 타고 승부역에서 내려 강길을 따라 분천역까지의 트레킹코스는 아름다운협곡과
산골마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멋진 비경길이다.
승부에서 양원역까지는 5.6km, 양원역에서 비동승강장까지는 2.2km, 비동승강장에서 분천역까지는 4.6km 이다. 그러니
승부역에서 분천역까지 강길 따라 걸으면 약 13km거리로 4시간정도 소요된다. 물 따라 길 따라 걷는 이 길은 계절을 보내고
맞는 이즈음 걷기에도 좋고 눈쌓인 겨울에도 아름답다. 분천역에서 협곡열차를 타고 승부역까지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환상적인 그림 같다면 승부역에서 분천역까지의 트레킹은 그 환상적인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오감으로 느낄 수 있으니
땀 흘려 얻는 즐거움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 영암선 개통기념비
협곡열차를 타고 승부역에 내리면 기대했던 것과 달리 앞뒤 산으로 꽉 막힌 곳에 덩그러니 작은 역사하나가 전부라는 것에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곳 승부역이 있기까지는 많은 아픔이 따랐다. 1950년, 영주에서 시작해 철암을 잇는 영암선
으로 당시 봉화와 춘양을 거쳐 올라오던 공사가 중단되고, 철암에서부터 시작해 내려오던 철길 역시 석포를 지나면서 공사가
중단 돼 승부역은 세상밖에 알려지기를 거부했었다.
높은 산과 기상천외한 협곡으로 이루어진 이 구간은 당시 우리기술로 철길을 놓기에 무리였지만 1955년 12월 30일 마침내
숙원사업이었던 영암선은 개통됐고 당시 수많은 인부들이 공사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런 이유로 출발역인 영주역도,
종착역인 철암역도 아닌 이곳 승부역에 ‘영암선 개통기념비’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초대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친필로 쓴 ‘영암선 개통기념비’를 세워 이들 희생자의 영혼을 위로했다고 한다.
▲ 김찬빈 역무원의 시비
첩첩산중 낮보다 밤이 길고, 계절의 반이 겨울인 이곳 승부역을 유명하게 한 김찬빈 역무원이 1963년 부임해 오게 되는데
‘하늘도 세평이요 /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라는 짧은 시로 승부역을 가보고 싶은 오지역의
대명사로 만들어 주었다.
이 시는 첩첩 산으로 둘러싸여 숨이 콱! 콱! 막힐 것 같은 산중에서 수송의 동맥을 지켜가는 자긍심이 고스란히 시 속에 묻어
있다. 지금도 철길 옆으로 김찬빈 역무원이 일구던 꽃밭에 하얀 페인트로 직접 쓴 시와 ‘일초여금(一秒如金)’ 글씨가 남아있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이곳에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은 금’이라고 바위에 써둔 까닭이 궁금하기도 하다.
첫눈이 오면 이듬해 봄이 올 때까지 녹지 않을 만큼 추운 승부의 겨울은 내린 눈 위에 또 쌓이고 쌓여 마을이 온통 새하얗다.
온통 새하얀 설경위로 눈을 뒤집어쓴 기차가 달리니 사람들은 이를 보고 ‘눈꽃열차’라 불렀고 1998년부터 ‘환상선 눈꽃열차’가
운행되면서부터 승부역은 세간에 더 많이 알려져 관광명소가 됐다.
협곡을 따라 달리는 눈꽃열차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산골마을의 설경을 한 번 상상해보라! 쉼 없이 일만 해 온 도심 속
지친 사람들이라면 이곳 승부역에 발을 내리는 순간 머물고 싶은 충동을 절로 느낄 것이다.
이야기 많은 승부역 플랫폼을 빠져나와 좌측 산모롱이를 돌아서면 강길 따라 승부역과 양원역을 잇는 ‘비경길’이 펼쳐진다.
경쾌하게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 비경길을 걷다보면 시선이 멈추는 곳마다 절경 아닌 곳이 없으니 ‘비경길’이란 이름이 퍽이나
잘 어울린다.
강물은 흰
바위틈을 급하게 흐르다가 강폭이 넓어지면 호수처럼 잔잔하게 숨을 고르고 멈춘듯하다가 다시 또 격하게 흐르니
물살의 속도에 맞춰 발걸음은 저절로 빨라졌다, 느려졌다 반복하게 된다.
▲ 각금마을 입구
강길 따라 한참을 걷다 길은 ‘각금’마을로 접어든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각금
마을은 허물어진 폐가와 당시 주민들이
마시고 버린 빈 술병만 남아 그 옛날 삶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철저하게 고립되어 살아가던 주민들에게 영암선 개통과 함께
이 마을 앞으로 달리던 기차는 바깥세상으로 이어주는 또 다른 삶의 길이 되었다. 주민들은 이런저런 사연으로 고향을 떠나
버렸고 지금은 빈집만 덩그러니 남아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다 허물어져가고 있다.
▲ 곡식과 거름을 날랐을 리어커 틈새로 뿌리를 내린 나무
그들이 일구던 화전에는 하늘을 찌를 듯 나무들이 들어섰고, 집과 집을 이어주던
오솔길도,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비탈진
산길도 이제는 길손들의 또 다른 길이 되어주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각금(覺今)마을을
‘까끄미’라고 부르는데 심오한 한자이름도 좋고, 정겹게 느껴지는 ‘까끄미’이름도 좋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지만 각금마을을 걷다보면 형언할 수 없이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각금마을을 빠져나오면 울진군 서면 전곡리를 흐르던 골포천과 만나게 된다. 낙동강과
골포천이 합수되는 지점으로 강폭이
넓고 수심이 깊어진다. 오미산에서 시작된 골포천은 산천어와 수달 그리고 산양이 서식하고 있으며 계곡이 험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산과 산을 가르며 흐르는 강물은 어쩌면 인류가 터 잡기 훨씬 전부터 바위마다 강물의 흔적을
남기며 흘렀을 것이다.
▲ 낙동강이 얼어붙는 겨울이면 울진군과 봉화군을 하루에도 수 십 차례 넘나드는 이색적 체험도 가능하다.
승부역을 출발해 1시간 30분정도 걸어 도착한 양원역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좌측은 봉화군, 우측으로는 울진군이다. 울진군
원곡리와 봉화군 원곡리는 본디 한 마을 이였으나 강을 경계로 행정구역이 나뉘어졌다. 두 마을 중심에 있는 양원역은 행정
구역으로 결코 나뉠 수 없는 마을공동의식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내륙의 섬과도 같은 이곳 원곡리에 영동선이 개통되었지만 마을을 지나며 달리는 기차를 빤히
보면서도 이곳 주민들은 이웃
마을 승부역이나 분천역까지 걸어가서 기차를 이용해야만 했다. 행여 무겁게 장이라도 볼라치면 열차 밖으로 짐을 던져 놓고
승부역에서 내려 다시 이곳까지 걸어 와야만 하는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민들의 염원 끝에 영동선 개통
33년만인 1988년4월 작은 원곡마을에도 기차가 정차하게 됐다. 기차가 서게 되자 주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괭이와
삽을 들고 나와 직접 역사를 지었고 양쪽 원곡마을의 이름을 따 섭섭지 않게 ‘양원역’이라 이름 지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최초의 민간역사 양원역은 아름다운 이야기와 함께 두 마을 가운데 자리 잡게 됐다.
2013년 4월 협곡열차가 운행 되면서 시작된 양원역 먹거리 장터와 농산물 판매장은 양원리 주민들의 새로운 소득원이 되고
있다. 분천역과 철암역을 오가는 협곡열차가 양원역에서 10분간 정차하면서부터 온종일 사람구경하기 힘들었던 이곳이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니 놀랄만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10분간의 틈을 타 먹을 수 있는 잔 막걸리와 빨갛게 볶은 돼지껍데기
가 마치 이 마을 대표음식 인양 양원역하면 잔 막걸리와 돼지껍데기를 떠올리게 된다. 또한 감자, 옥수수, 군고구마 같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군것질거리가 있어 걷는 이들에게도 멋진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잠시 쉬었다 출발하는 다음 구간은 비동승강장까지의 약 2.2km거리의 구간인 ‘체르마트길’ 이다.
한국과 스위스 수교 50주년 기념으로 양원과 분천을 오가던 옛 산길을 정비해 만든 ‘체르마트길’은 짧은 거리를 편하게
걸을 수 있어 협곡열차와 연계해 걷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역 ‘양원역’을 출발해 폭신폭신한 산길과 숲길을 1시간 정도 걸으면 역사(驛舍)가 없는 비동임시승강장에
도착하게 된다. 비동승강장에서 협곡열차는 5분간 정차다가 출발한다. 비동승강장은 걷는 길손들을 태우고 내리는 말 그대로의
임시 승강장 역할을 하고 있다. 걷다가 만나는 분홍빛 저 열차를 타고 울긋불긋 단풍든 협곡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호사의 극치일 것이다. 계절마다 경관이 수려한 낙동강 상류의 협곡을 좌·우로 자유롭게 볼 수 있으니 보는 즐거움이 두 배가
될 것이다.
산도 보고 강도 보고 기차도 보며 걷다보면 어느덧 목적지 분천역에 도착 하게 된다. 교통문화의 혁명과도 같은 영암선 개통과
함께 70년대 들어 상업적 벌채가 성행하면서부터 질 좋은 봉화의 소나무들이 전국 각지로 보내지게 되고 목수들로부터 인정
받자 소나무 수요는 점점 늘어났고 이로
인해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게 됐다.
보통 마을들은 배산배수 라는 말처럼 남향으로 산을 등지고 앞으로 강이 흐르는 곳에
집을 짓는데 분천역 마을은 거꾸로
집들이 강을 등지고 산을 향해(기차역 방향) 있다. 그러니 기차역과 함께 마을이 형성 됐고 기차역이 마을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번화했던 시절도 잠시 80년대 들어서며 벌목사업이 산림정책에 따라 중단되면서부터 그 시끌시끌했던
분천역도 한산한 산골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고요하던 산골마을에 다시 한 번 그 옛날 번화를 다시 찾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협곡열차 개통과 함께 시작된다. 온통 콘크리트바닥이었던 분천역이 잔디광장으로 변했고 주변창고들은
갤러리로 리모델링했다. 이제 분천역은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 분천역 / 시도서관
분천역을 출발해 협곡열차를 타고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승부역에서 내려 다시 강길 따라 아름다운 협곡을 걸어서
도착한 분천역에는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음악공연을 듣고, 그림 전시회도 보고, 시도서관에서 시도 한 수 읽을 수
있으니 이제 일기예보에 첫눈 소식이 있거들랑 주저하지 말고 영동선 협곡열차를 타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