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문예 사진·디카시 동아리 42차 탐방 후기]
팔월의 무더위는 역대급이지만 사진&디카시 탐방은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왔다. 서울 땅이 넓다는 것은 이번 탐방을 통해서 다시 확인이 되었다. 종로, 광화문은 많이 다녔어도 아직도 안 가본 곳이 많다 이번 탐방은 수표교, 전태일 기념관이다. 대한민국의 재단사이자 노동운동가. 1960년대 후반 평화시장의 봉제 공장에 취직하고 1970년부터는 재단사로 일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노력했다. 노동환경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박정희 정부와 자본기업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다가 시위 현장에서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이면서 근로기준법 법전과 함께 분신자살하여 22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흔히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역사는 전태일 열사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노동 운동 발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이처럼 전태일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만약에 전태일 열사가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현재 수준보다 대우를 받지 못하거나 대우받는 시기가 매우 늦어졌을 것이다. 전태일 열사 분신 사건 이후 노동자들에게 처한 열악한 현실에 대해 한국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하였고 지식인 계층, 대학생들, 당사자 집단인 노동자 계층이 그의 죽음으로 각성의 계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어머니 이소선 열사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평생을 노동자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운동가가 되었고 '노동운동의 대모(大母)' 로 불리게 되었다. 사후 그는 노동열사로 추서되었으며,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에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자료 백과사전} 위에 자료를 백과사전에서 옮겼다. 전태일 기념관은 3층으로 되어 있다. 당시에 사용되던 소품들이 있고 기념 이미지도 만들 수 있고 기념사진도 촬영이 가능하여 학생들 단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근로현장의 근대사를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문인이라면 한번쯤은 다녀오기를 바라는 곳이다. 전태일 기념관 방문 후 수표교를 관람한 뒤 청계천으로 내려가 발을 담그고 물놀이를 했다. 무릎까지 물이 올라오는 곳이라 먼저 온 이들이 발을 담그고 쉬고 있었다. 제법 시원하고 빠른 물살이라 조금 전 도시의 기온과는 상당히 차이가 났다. 가끔 지나다니며 사람들이 왜 발을 담그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직접 해보니 정말 좋은 피서 법이었다. 내년 여름은 필히 다시 발을 담그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번 탐방은 백덕순, 고응남, 신재미 셋이 탐방 후 식사를 하면서 차윤옥 주간님을 초청하여 함께 식사를 했다. 잠시지만 ‘번지 없는 주막’의 주인이 되어 낮에 풀지 못한 삶의 향기도 나누었으니 의미 있고 아름다운 탐방이었다.
일시 : 2024년 8월 27일 (화)오후 4시 탐방 : 수표교, 전태일 기념관 일대 초대 : 차윤옥 참석 : 백덕순, 고응남, 신재미 ------------------------------------------------------------------------ 전월이월금 : 307,800 수입 : 30,000 (백덕순, 고응남, 신재미) 지출 : 45,000 잔액 : 292,8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