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사유의 귀족
철학을 하는 순간 사유의 귀족이 된다.
나의 경험상 고대 그리스(希臘) 철학을 하면 상층특권지배계급의 사유의 반열에 오른다.
플라톤 급으로 사유를 하면 모든 사유가 나에게서 나오고 다시금 나에게로 돌아온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회·정치철학까지 한다면 모든 군단과 재벌을 나의 정신적 무리로 재단(裁斷)할 수 있는 절대 정신의 힘을 홀로 느끼게 된다.
즉 나 혼자 사유의 절대 권력자가 된다는 뜻이다.
사유의 귀족으로 신(神,God)에 대한 사유로 알아보자.
철학에는 오성적으로 세 종류의 신이 국면적으로 있다.
첫째는 과학적 신이다. 일명 기계론적 유물론이다.
둘째는 계시종교로서의 신이다. 일명 화학론적 창조주이다.
셋째는 범신론적 자아의 신이다. 일명 목적론적 영혼적 신이다.
과학적 신에는 종국적으로 자연의 로고스를 느끼게 된다.
창조조의 신에는 맹신을 하야 하니까 무신론과 직결된다.
범신론의 영혼적 신에는 자아의 충만감을 목적으로 느낄 수 있다.
정신철학에서 신을 논리적 단계로 보면 예술과 계시종교를 거쳐 철학적 단계에서 신을 찾을 수 있다.
오성적 사유로 신에 대한 사유를 철학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절대적 정신에서 신(神,God)은 예술과 계시종교를 넘어 마지막 고양(高揚)의 단계이다.
감성적인 예술과 이성적인 종교보다 오성적인 철학에서 우리 인간을 신을 사유함으로서 자아로서의 나의 인간적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유의식에 대한 구제적인 정치 인식은 두 번째인 화학론적 단계에서 나온다.
그래서 자유에 대한 실제적인 인식과 적용, 이해 등이 태도와 겹쳐 무척 난해하고 어렵다.
자유(自由)는 누구나 본능적으로는 즉시 매번 바로바로 느끼지만 그 다음의 책임의 단계에서는 수많은 난관들이 갑자기 크게 생겨난다.
이는 나의 현실적 국면에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교육적, 도덕적 등등 끝이 아예 없다.
2010년경 1층 교무실에서 일을 보는데 4층 교무실에서 업무 차 내려온 나를 보고 여교사 몇이 나를 위한 환영의 뜻으로 철학에 대하여 객담을 해 주었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지만 농담 차원이라서 그냥 듣고만 있는데, 갑자기 옆에 있는 교감이 철학보다는 기독교의 신이 더 앞선다고 진담으로 응수를 했다.
안티노미로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낮은 교양의 수준이 보인다.
그런데 이 자(者)는 교무실에서 성경을 틈틈이 타이핑하는 자이다.
대개 부드러운 소리가 나야하는 컴퓨터인데도 타자 소리의 음결이 투박해서 깨끗하지 못하다.
기독교인으로 수시로 기도까지 한다. 능력도 있고 말도 잘 한다. 결정적인 순간 책임감은 없어 보인다.
누구든 보다 더 나은 사유로 귀족의 반열에 들려면 신에 대한 인식은 자유에 대한 오성적 인식을 거치고 왔으면 한다.
타자에 대한 배려로 도덕과 정신적 교양으로 자유의 지성이 더불어 있었으면 한다.
노력과 업적 등이 아무리 좋고, 혹여 아니면 개인적 공부를 남보다 더 많이 했어도 정신적 교양에서 나와 남의 자유에 대한 판단 결손이 행동화하여 있으면 있는 그만큼 자신의 큰 허물이 되는 것이다.
특히 조직의 지도자(leader)들은 항상 정신적으로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돈도 별로 들지 않는다.
그 수준이 칸트(Kant)나 헤겔(Hegel)까지 간다면 그는 자기 분야에서 세계적 제왕이 될 자격이 있는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