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령 6월 생태탐방이다. 우리팀은 7명이 출발했다
오늘은 4대강 사업으로 인하여 가장 생태 파괴가 심하다는 내성천으로 간다
영주에 들려 영주시의회관앞에 차를 세워두고 근처 영주시를 잠시 구경할 수도 있었다.
시내는 아니지만 시골냄새가 물씬 풍기고 양반도시답게 여러곳들이 깔끔하게 다듬어 져 있다.
소수서원이 있는 선비촌에서는 한국선비문화축제가 벌어지는곳이고 부석사등 많은 유적이 존재하는곳이기도 한다
점심은 시골할머니가 해주는 청국장을 먹으러 갔다
30년을 넘도록 식당을 했다는 노부부는 우리가 식당 예약을 9시가 넘어 했는데도 불구하고 30명이 넘는 식구의 밥을
그처럼 차려낼 수 있는지....허리를 구부리고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그처럼 하고 계셨다.
이것 저것.... 앉아 받아 먹기 거북스러웟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어야 보답한다는 생각
영주시의 골목길집 깔끔한 시골집이다
물이 말라 풀이 나고 인제는 버드나무까지 수북하게 자라나고 있는 내성천을 따라
영주댐으로 갔다. 영주댐은 2009년 10월 착공되어 2014년 완공 예정이였다고 한다.
낙동강 수질 개선과 내성천 유역의 홍수피해를 줄이고 경북지역의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댐건설을 반대하고 있는곳이라고 한다
많은 유적들이 수몰되고 이전되었지만 지금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이산면 두월리에 있는 덕산 고택과 괴현고택을 찾았다
이곳 소유자가 이주단지 조성을 위한 토지 수용을 이번 5월 26일 했다한다.
이삿짐을 쌓기 위해서인지 짐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모습도 보인다
이 덕산고택은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덕산공 김경집이 1756년 두암에서 옮겨와 지은 집이며 지금모습은 1905년 그의 현손인 의금부도사 희연이 중수하였다
조선 중기 사대부가의 생활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문화재 자료 529호라고 한다
괴현고택은 1779년 조선 정조 때 소쿠리형의 명당터에 지은 집으로 건축 당시 가옥의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한다
특히 일제 강점기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다락 은신처와 성주단지 등은 당시의 생활상과 민속 등을 잘 보여 주는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요 민속자료 제 262호로 되어있다
괴헌고택을 들어가 자세히 둘러볼 수 있었다
이 고택들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제대로 재현될 지는 의문이다
이 내성천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고자 구석구석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본다
아직 담수되지 않은 영주댐
97%가 완공되었지만 3%을 못하고 1년 넘게 그냥 있다고 한다
3%의 못이룸은 댐 건설에 큰 문제점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한다
댐 자리 지반에 크나큰 문제점이 있을거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댐 옅에 담수되어 있는곳에서 계속 물이 나오고 있다한다
수많은 생태 탐방을 다니며 안내하고 계신 기자분은 울분을 토하신다
이곳은 면사무소였고 이곳은 초등학교였고. 이곳은 누구네집....하시며 아쉬움을 드러내신다
많은 이주민의 한과 슬픔을 가지고 수몰되어질 영주댐은 그것도 제 역할을 아직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이라도 문제점이 있다면 원상복구하는것이 맞다고 하신다
영주댐을 거쳐 내성천이 태극모양으로 흐르는 무섬을 찾아갔다
수도교를 건너면 한옥의 기와지붕과 초가지붕의 전통가옥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곳이다
바남박씨와 선성김씨의 양성들만이 살았던 이곳은 중요 민속 문화재 278호로 지정되어있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마을 동쪽 500미터 지점에서 합류하여 마을 전체를 태극 모양으로 한 바퀴 휘감아 돌고 있어
마음이 마치 물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고 해서 무섬이라 했다. 수도리라 부르는 전통마을이다
안동의 하회마을과 예천의 회룡포, 영주의 무섬마을이 같은 형태로 되어있다
반남 박씨 박수께서 1666년강건너 '모룸에서 이 곳에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여 터전을 이루고 그 후 박수 선생 손자의 사위인 김대(신성김씨)께서 영주에 있는 삼판서 고택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살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50어가구가 고색찬연한 모습과
고즈넉한 모습으로 옛반가의 삶을 느껴볼 수 잇다
마을앞 외나무 다리. 무섬의 상징이다. 8월이면 매년 외나무다리축제를 하기도 한다
외다리로 가다가 중간쯤에 비껴다리가 있어 그곳에서 기다리며 맑은 내성천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던곳이였겠지만
지금은 얕은 물에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오듯하다
접시꽃들이 아름답게 온 마을을 수놓고 있다. 접시꽃은 사람들이 말할때 모두들 '접시꽃당신'이라고 한다.
한 시인의 힘이다. 그래도 지금 그 시인의 모습은 조금은 실망스럽긴 하다
한창 농익은 보리수도 따먹으며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간다
이곳에선 전통한옥체험장도 있다. 이곳 주민들의 생활은 어떨가 생각도 되지만 마을전체가 지정되어 있으니 달리 생계 수단은
있지 않아도 될성 싶다
낮 달맞이의 모습. 달맞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자주달개비 꽃
마을 가장 위에 있는 정자
돌로 되어있던것은 빨강 색을 칠해 세멘트처럼 되어있다
무섬에는 먹거리를 없애(작은 가게 하나) 깨끗한 마을으 유지하고 있어 더욱 많은 사람이
꽤적하게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좋다
저녁 숙식은 학가산 산림욕장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