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학년도 대학 修學能力試險의 결과를 두고 全國이 마치 敎育당국에 대한
聲討場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이 시험의 근본 目的인 學力의 평가에 대해서는
말이 거의 없다. "단군이래 最低 學力이 되었다"면서도 이상한 일이다. 비난의 焦點이 시험문제가 작년 것보다 많이 어렵기 때문에 점수가 크게 낮아졌다면서
앞으로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가 두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 문제는
학력의 급격한 轉落이며 이것을 드높이는 對策이 무엇인가에 있다.
이 대책의 첫 대상인 국어 교과서를 검토하자.
1. 出題 책임자의 엉뚱한 解明
이 시험은 그 名稱대로라면 대학교육을 받을 능력의 소유자를 가르는 資格試
驗이다. 그러나 실제는 자격시험이 아니라 지원자 사이에 序列을 매기는 選拔試
驗이다. 그것도 대학의 定員이 고등학교 졸업자 수와 맞먹는 상황 아래서, 일부
특별한 학교, 특별한 학과를 제외하고는 경쟁률이 0에 가까운 상태에서 실시하
는 것이다. 따라서 성적순보다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런데 교육당국의 책임자가 이에 대하여 解明한 것을 보면 핵심을 크게 벗
어나 있다. 조선일보가 전해준 두 경우를 보자.
* [안희수 출제위원장은 "출제과정에서 수험생들의 학력저하는 고려하지 않았
다"며 "매 학년 수험생들의 능력수준에 맞춰 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11월 9일)
* [<다음 날 국회에서> 韓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었고, 암기식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이었다"고 解明한 뒤 "수험생
과 학부모들이 아픔을 느낀 데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며 사과했다. 한 장관은
"작년에 너무 쉬웠다는 평가를 수용해 다소 어렵게 하되 재작년보다는 더 쉽게
하라고 지침을 내렸지만, 예상외로 어려웠다는 것에 대해 나 자신도 굉장히 충
격"이라며 "과외 열풍이 일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2. 언어영역 出題委員長의 稚拙한 反論
같은 신문의 時論(11. 12)에서 언어영역 출제위원장이었던 K 교수가 "修能이
어려웠다고?"라는 제목 아래 힘주어 다음과 같은 요지의 反論을 하였다.
① ['이번 수능'은 작년 수능이 '오답이 똘똘 뭉쳐 정답을 왕따 시키는 문제'라
는 반성에 기초하고 있다. 평가원에서도 이미 수 차례 밝힌 바대로, 답지만 보고
고를 수 있는 문항은 거의 출제하지 않았다. 이번 수능은 고차원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기 위한 문제라는 일선 교사들의 평가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② [입시는 점수가 아니라 석차에 의해서 결정된다. …. 점수 하락은 하등 문
제가 될 것이 없다. 전체 백분위 등수가 떨어지지 않았으면 되는 일이다.]
③ [프랑스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정의는 윤리에 앞서는가?' 라는 문제가 나왔
다. 이 문제가 쉬운 문제인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어렵다고 프랑스
국민들이 호들갑을 떨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④ [<결론 부분> 수능 문제의 질을 놓고 甲論乙駁(갑론을박)하는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지문으로 출제된 杜甫(두보)의 '강촌'이나 '상춘곡'을 보면서 직
장 동료끼리 소주잔을 기울이며 학창 시절의 추억을 곱씹는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①은 도대체 변명인지 자랑인지 통 알 수가 없다.
②는 入試는 점수가 아니고 席次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석
차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시험 성적 아닌 무엇이 또 있다는 것인가?
③은 국민들을 쓸데없이 호들갑 떠는 것으로 보았는데, 例가 도무지 당치 않
는 것일 뿐 아니라 眼下無人이요 妄發이다.
④는 杜甫의 詩를 감상하고 술이나 마시라는 충고인데, 傲慢하며 無責任하다.
어떻게 해서 이런 사람에게 언어영역 출제위원장이라는 중대한 직무가 맡겨졌는
지 의문스럽다.
3. 學力 無視는 국어 교과서의 陰謀
국어 교과서는 學力의 增强에 결정적 역할을 해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反對作用을 하고 있다. 표면으로 나타내지 않고 밑바탕에서 서서히 조직적인 陰
謀를 진행시키고 있다.
제도적 運用面과 內容面으로 나누어 보겠다.
가. 제도적 運用면의 음모
(1) 다양성을 철저히 排除하는 데 全力을 다 하고 있다. 光復 후 지금까지 國
定 한 가지 뿐이다. 이것이 마치 절대 불가침의 聖典인 것처럼 가르치고 배우고
있다. 일체의 비판을 받지 않는다. 獨占, 獨善이 잘 된 것을 본 일이 없다.
(2) 불과 몇 사람에 의하여 편찬되고 있다. 한글전용을 절대적인 命題로 알고
있는 사람들 손에 의해서다. 투명한 심의과정과 牽制장치 없이 편견이 판치고
있다.
(3) 한글전용은 光復 당시 12세 이상인 사람 77.8%가 한글을 모르는 문맹자
였기 때문에 당면한 최대 시책의 하나로서 시작된 것이다. 3년여의 참혹한 전쟁
을 치르고도 문맹율이 1956년 10.2%, 1958년 4.1%로 낮아졌다.(한국 현대 국어
정책 연구, 허만길, p.65). 문맹자를 없애는 기준이 한글을 읽고 이해하는 수준이
었다. 그래서 몇 週의 講習 또는 低학년에만 적용을 해도 충분히 目的이 달성되
는 것이었다. 교과서 전부를 한글로만 표기하게 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당초
목적이 완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글전용이 무턱대고 계속되었고 이로써 한국
어가 單純化 無力化 되어 갔다.
(4) 그 후 60년대에 와서는 시작의 잘못과 엄청난 폐단을 직면하게 되어 漢字
와의 混用으로 한국어를 정상화하려는 당국의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것
이 영구집권을 하려는 維新政治의 陰謀에 밀리어 挫折되고 말았다. 寃痛한 일이
다.
(5) 현재 維新政治는 없어졌지만 교육에서만은 어찌 된 까닭인지 한글전용이
라는 그 基調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유신 당시 제정한 國民敎育憲章이 폐지
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며 名分도 實益도 잃어버린 한글전용이 계속 강행되고 있
다.
(6) 敎育課程이라는 제도가 또 큰 벽이다. 교육과정은 본래 각급 학교에서 만
드는 學習指導要領이 主다. 중앙에서는 그것을 조정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로 된
것인데 이것이 지나치게 세밀한 규제를 만들어서 전체적 통제를 하며 교육 전반
에 걸친 質의 관리를 하겠다고 해서 不必要한 混亂을 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각종 교과서가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일제히 새로 나오고 있다. 2004년에는
모두 마친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글전용에 관한 재검토는 제8차(?)에 가서나 고
려하게 될 것인지? 앞길을 아주 어둡게 하고 있다.
나. 內容面의 음모
(1) 국어 교과서의 구석구석에서 한글의 우수함과 漢字의 弊端에 대한 과장된
공격이 깔려 있다.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 漢字亡國論을 펼치고 있는 것이
다. 또 漢字語는 外來語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우리말, 우리글"
이라는 구호를 되풀이 외치고 있다. 여기서 우리말은 고유어, 우리글은 한글을
가리킨다. 또한 25%에 불과한 고유어만으로 고등교육을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
고 장담하고 있다.
(2) 言語는 도구에 지나지 않으니 쉽게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言
語道具說이다. 하지만 언어가 자동차와 같이 意味(槪念)를 실었다 내렸다 하는
도구가 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언어가 인간의 일반 認識能力과는 다른 獨自
的 自律的인 체계가 될 수도 없다. 그리고 다른 도구처럼 자유롭게 바꾸고 자유
롭게 사용할 수는 없다. 이 잘못된 도구설을 새삼스럽게 등장시키는 뜻은 문자
에도 적용하여 漢字이건 한글이건 자유롭게 변경하고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착
각을 일으키게 하기 위한 것이다.
(3) 漢字폐지를 50여년 강제 집행하였으면서도 교과서 안에 漢字語가 한글로
덮인 채 가득하다. 그러면서 한글로 쓴 것이면 누구나 그 의미를 다 알게 된다
고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자는 음성의 그림자, 즉 音寫일 뿐이라고 주장
한다. 이것은 음성 爲主의 西歐 언어학의 주장을 무조건 따른 것이다. 그러나 글
자 속이나 음성 속에 의미(개념)가 물리적으로 들어가 있을 리가 없다.
(4) 언어란 글자의 형태와 소리 그리고 의미의 統合된 머리 속의 主觀的 통합
된 觀念으로 이해되고 있다. 생각과 거의 같이 쓰인다. 아무튼 누구에게 있어서
나 언어는 그것이 客觀的으로 表出된 음성과 문자를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다.
음성은 音聲, 문자는 文字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물론 주관적인 言語
를 직접 보거나 들을 수 없어 객관화된 음성과 문자를 통해서만 파악이 되기 때
문에 여전히 소중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5) 한글전용은 "알고 있는 한국어를 문자로 표기할 때 한글로만 하자는 것"
이다. 과학적 학문적 근거 없이 덮어놓고 우선 실시해보자고 해서 시작된 것이
다. 언뜻 생각하면 문자만의 문제인 것처럼 알기 쉬우나 실제는 言語와 非言語
활동 전체, 문장과 생각과 意志 등 광범위한 인간의 인지와 표현의 문제인 것이
다. 고유어의 사용 頻度가 높고 고유어만으로 일상 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는 사
실만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니다. 漢字/漢字語를 한글로 덮고 지금 당장 쓰지 않
게 하면 모든 사회활동이 停止되고 말 것임을 확실히 알기 바란다. 한글로 덮은
것이 덮지 않던 경우와 언제나 같이 쓰인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6) 교과서의 편찬 및 시험문제를 만드는 전문가들이 대개 예술계인 文學 전
문가라고 한다. 본래 文學이라는 飜譯語 자체가 적절치 않는 것이다. 想像의, 感
性의 세계인 예술에 속하는 것이니 文藝라고 부르는 것이 옳았다. 따라서 사실
(fact)이 공상(fiction)에 밀리는 시험환경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되어 왔던
것이다.
(7) 중·고등학교에서 漢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을 가지고 漢字/漢字語 學習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우기고 있으나 實效性이 없는 눈가림이다. 그리고 漢字는
電子的 정보처리를 함에 있어서 不適切하고 不利하나 한글은 영어 알파벳처럼
대단히 효율이 좋다고 주장한다. 중국과 일본의 컴퓨터 단말의 화면에서 漢字가
어떻게 잘 나타나 있는지를 보거나 듣지도 못한 사람이 교과서를 편찬한 모양이
다.
(8) 세계문자는 그림문자에서 표음문자로 변천되어 왔다면서 漢字도 필경 없
어질 문자이라고 강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어의 기본 音韻이 音節임에
도 불구하고 서구의 알파벳처럼 音素라고 기술되어 있다. 文法도 한국어와는 크
게 다른 서구어의 문법을 무리하게 적용시키고 있다. 한국어를 西歐語와 형식상
같아지고 있다고 인식시키고 싶은 음모다.
(9) 漢字가 이 땅에 도입됨으로써 고유어가 위축되고 발전하지 못했으나 이제
漢字가 추방되었으니 고유어가 그 많은 漢字語를 대체할 것이고 고등교육도 더
잘 되는 등 한글문화가 드디어 피어나게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것은 幻像이
다.
(10) 국어 교육의 목표를 固有語와 文學의 둘에 局限한다고 宣言하였다. 새
국어 교과서의 맨 앞 첫 장에 그렇게 당당히 선언하고 있다. 다른 분야에서 필
요한 언어적 理解와 표현 등에 대해서는 해당 분야에서 알아서 가르치라고 한
다. 바꾸어 말하면 국어과는 단지 '固有語의 교육'과 '정서적인 文學 작품에 대한
감상'만 하겠다는 것이다. 책임을 벗어 던지는 동시에 자신의 국민공통 기본학과
라는 위치를 벗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11) 言語의 기본인 單語를 音聲으로 한정하고 문자는 음성을 적는 형태일
뿐이며 意味는 음성에 따라붙고 있다고 한다. 이 주장은 소리가 文字(單字 또는
2자 이상의 文字列)의 表記와 意味(또는 개념)와 함께 3位一體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否認하는 것이다. 漢字를 '악마의 글자'라고 하기도 한다는 서구의 이론
그대로다. 漢字의 우수성을 무시하기 위해 특히 강조하고 있다.
(12) 국어 교과에 6개의 독립된 영역이 설정되어 있다. 읽기, 쓰기, 듣기, 말하
기의 넷을 국어지식과 문학과 同格으로 세웠다. 상당히 과학적인 것 같은 인상
을 풍기고 있으나 이상하다. 언어는 그 넷은 독자적인 '入力, 處理, 出力의 과정'
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언어현상은 全的으로 腦 내부 신경세포 網의 構造와 機能
에 의해 진행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쓰는 것이 아
니다. 腦로 보고, 뇌로 듣고, 뇌로 말하고, 뇌로 쓰는 것이다. 따라서 이 넷은 각
각 독립시킬 것이 아니라 그 前처럼 言語技能으로서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옳으
며 효과적일 것이다.
4. 고유어만으로 學問하자는 외침이 있으나?
최근 새삼스럽게 고유어만 가지고 학문·전문 교육이 충분하니 한국어 속의
漢字語 사용을 완전히 禁止하는 한편 英語의 사용을 못하게 하자는 주장이 많아
졌다. 신문에 보도된 예를 3개 보자.
10월 9일, 한글날에 어느 著名한 한국어 학자 L교수가 신문 時論에서 [위대한
한글을 놔두고…]라는 제목 아래 왜 영어공용화론이 나돌고 있는가? 불행을 자
초하는 짓이다…라고 叱責하였다.
10월 25일, 학자 100여명이 "알기 쉬운 우리말로 학문합시다."에 뜻을 모았다
고 보도했다. "어려운 漢字·외래어 순화, 학술지 통해 대안 제시", "우리다운 사
고방식 세워야"라는 부제목이 있었다. 철학·문학·역사학·예술·고고학 등 학
자 100여 명이 동참하는 超 분과 학술운동단체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이 탄생
한다는 것이다. 네 사람의 사진과 함께 많은 이름이 소개되었다.
10월 26일, 철학자 한 분이 [남의 말로 학문해서야…]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국내 學界는 외국이론 식민지", "우리의 삶 이끌 지식 찾을 때"라는 부제목이
있었다.
이러한 주장이 저명한 학자들에 의하여 계속 제기되고 있으므로 여론이 형성
되고 있는 것처럼 비추어질 수가 있다. 이와 다른 견해가 같은 신문에서 실리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再論의 여지가 없는 듯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 고유어만 가지고 어떻게 그 많
은 분야의 전문 용어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예
컨대 지난 50여년 사이에 漢字語 및 영어의 전문용어를 대체한 고유어(造語와
발견을 포함한)가 몇이나 되는가? 영어에서는 해마다 약 2만의 新語가 나오고
있다고 하며 우리도 수많은 새 단어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주장을 한 분들 대다수가 한글전용으로 한국어를 침몰하게 한 主役들
이라고 한다. 單語와 文章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사람이 指導者요 愛
國者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5. 한글 絶對主義에서 벗어나야
필자는 平素 한글전용에 관한 論議가 文字의 次元에서 머물러 있으며 수많은
착각이 正論을 엎어버리고 있는 사태를 한심스럽게 보아 왔다. 전문가들이 한글
전용이 가져온 이 엄청난 폐해를 보고도 못 본 채 할 뿐 아니라 오히려 正當化
하고 있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한글 = 言語 = 民族]이라는 3位 일체적 等式에 의하여 교육과정이 작성되고,
교과서가 편찬됨에 따라 이 땅의 언어에 의한 意味 전달이 最惡의 상태에 와 있
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한국의 교육에 많은 쟁점이 있다. 당면한 것만 해도 이렇다. '중학 교사 자격
증 소유자의 초등학교 임용', '교원에 대한 성과금(보너스) 지급', '자립형 사립교
의 설립', '제7차 교육과정의 수정' 등이 있고 격론이 일고 있다. 하지만 그 어디
에도 학생들의 학력을 伸張 시키기 위한 方案은 없다. 敎育業界에 쓰일 정부예
산, 세금이 엄청나게 커진 사실도 확인하였다.
2001년의 정부예산 규모는 124조 4,614억원이다. 이 중 교육부 예산은 19조
9,130억원이다. 방위비는 16조 617억원이다. 그러니까 교육비가 방위비보다 약
24%나 많은 금액이다. 追加更正豫算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2002년 예산은 틀
림없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學力의 增强은 교육투자의 增大만으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 "結果平等主義, 낮
은 데로의 평준화"와 "한글전용의 固守"라는 가장 큰 벽을 무엇보다도 먼저 除
去해야 비로소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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