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이(1564~1642)가 지동설을 주장하다 로마의 교황청재판소에 불려간 후 지동설을 철회했지만 재판정을 나오면서 혼자 중얼거렸다는 이야기다.
갈릴레이는 르네상스 이후 과학혁명을 이끌어 근대과학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과학혁명의 과정에서 피사의 사탑에서 시행했다는 낙체실험이 항상 거론되고 있다. 16세기 후반 갈릴레이가 피사 사탑 위에서 큰 공과 작은 공을 떨어뜨려 동시에 땅에 떨어지는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작년 5월 이탈리아 여행 때 피사의 사탑을 방문했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사탑을 보면서 갈릴레이의 낙체 실험 이야기가 떠올랐다. 무거운 공과 가벼운 공을 사탑의 꼭대기에서 떨어뜨리니 두 공이 동시에 땅에 닿았다는 이야기다.
이로써 2천년 동안 세상을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뒤집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물체의 낙하 속도는 질량에 비례해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갈릴레이의 낙체실험을 생각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처럼 무거운 것이 빨리 떨어지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공과 가벼운 공이 아니라 아주 극단적으로 쇠구슬과 깃털을 떨어뜨리면 과연 동시에 땅에 닿을까? 갈릴레이가 했다는 실험이 도무지 수긍이 되지 않았다.
이런 의문은 최근에야 풀릴 수 있었다. 지난주 금요일 월례모임의 《서양철학사》(군나르 시르베크·닐스 길리에 저) 공부를 통해서 갈릴레이의 낙체실험이 사고실험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갈릴레이가 과학사에 남긴 중요한 업적 중 하나가 바로 사고실험이다.
사고실험은 실제로 실험을 수행하는 대신 머릿속에서 생각으로 진행하는 실험을 말한다. 이 실험은 단순화된 실험장치와 조건을 생각하고 이론에 따라 추론하여 수행한다.
낙체실험에서 갈릴레이가 생각한 단순화된 조건은 공기 저항이 없는 진공 상태다. 진공상태에서는 물체의 질량과 크기에 관계없이 동일한 높이에서는 동일한 속도로 낙하한다.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실제 실험을 통해 갈릴레이가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71년 아폴로 15호 선장이 공기가 없는 달 표면에 착륙하여 망치와 깃털을 떨어뜨려 이를 증명한 사건이다. 또 지구상에서도 진공 상태에서 볼링공과 깃털을 떨어뜨려 동시에 바닥에 닿는 실험을 한 바 있다.
(물론 공기가 있는 피사의 사탑 위에서 무거운 공과 가벼운 공을 떨어뜨리면 공기 저항 때문에 무거운 공이 간발의 차이로 먼저 떨어진다. 결코 동시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갈릴레이가 사고실험을 했던 것은 그가 수학 교수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대학 학위를 하나도 받지 않았지만 피사대학교와 파도바대학교 교수로 봉직하면서 수학을 가르쳤다.
수학은 논리적 사고만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경험적 현실 세계와 유리되어 있다. 피타고라스의 수와 플라톤의 기하학은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데아의 영역에 속한다.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직선이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계산된 덧셈이 현실과 같지 않다. 현실에서 직선은 어떻게 그리더라도 구불구불할 것이고 1+1을 아무리 해도 2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1+1이 2가 되려면 두 개의 1이 동일한 것이라는 전제가 필요한데 현실에서는 결코 동일한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수학 자체가 이상화된 조건을 전제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갈릴레이는 수학처럼 이상화된 조건을 상정하여 과학 실험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낙체 운동의 경우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은 무려 2천 년 동안이나 세상을 지배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일상적 경험과 일치해 단순하고 설득력이 있어서 사람들은 그의 이론을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갈릴레이는 수학 교수로서 이미 사장되었던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수학을 다시 살려 자연을 재해석했다. 그는 자연이 수학의 언어로 쓰인 책이기 때문에 모든 물음은 수학적 언어로 제기돼야 한다고 했다. 또 모든 변화 속에 존재하는 불변적인 것은 수학적 형식이라고 했다.
수학의 역할에 대한 갈릴레이의 공헌으로 우리는 당구를 칠 때 테이블 위의 당구공이 F=ma(F는 힘, m은 질량, a는 가속도)라는 공식을 따른다는 가설을 제안할 수 있다. 당구장 위에서 움직이는 공을 보고 어떻게 수학적 언어로 표현된 공식이 나오는가? 관찰 차원의 개념들로부터 추상 차원의 공식을 이끌어 내는 것은 개념의 도약으로서 ‘공식의 발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과학혁명을 집대성한 것은 뉴턴이지만 뉴턴의 업적은 갈릴레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서양철학사》에서도 뉴턴보다 갈릴레이편이 훨씬 더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처음에는 철학사 책에 과학사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 약간 의아했었다. 하지만 갈릴레이처럼 과학도 사고의 혁명으로 발전된다는 점에서 당연히 철학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문서(text)는 문맥(context)으로 읽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서양 사상의 전체 흐름을 통해서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