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부는 필자의 종택 일박 체험기를 쓰야 겠다.
광산 김씨 종택에는 칠흙 같은 어둠이 깔렸다. 필자가 배정 받은 "후조당" 침실을 서둘러 찾아 갔다. 명색이 방장이라 7명의 동료 숙소 배정을 살피려 안내를 받은 곳에 가 보니 , 오전에 왔을 때 장작이 쌓여 있는 옥외 화장실을 앞에 둔 별체 한옥이다. 2인용 조거마한 별체중에 작은 독실과 그 옆에 4인실로 보이는 일자 방이 전부인고 유난히 마루가 크고 넓다. 막상 찾아 올라온 사람을 보니 모두 8명이다. 7명인줄 알았던 식구이면 어떻게 구겨서라도 자 볼가 했는데 8명에 침구는 모두 여섯 벌 뿐이다.
하는 수 없이 이총무를 불러 안내인을 불러 왔다.
"배정이 잘 못 되였네요. 여기는 6인 침실 입니다. 다른 거처가 많이 있으니 두 사람은 다른데로 옮기 시지요."
결국 필자와 김영기가 2인실, 오명식, 오진태, 김경락, 전중호 가 4인실로 남고 김제덕과 권영해는 딴 방으로갔다.
김영기 왈 "2인실은 호젓하니 방장과 내가 오붓하게 잘 잘수 있을 같으니 잘 된거이다."
그러나 막상 이불을 깔고 잠옷으로 바꾸어 입은 필자는 크게 잘못 된 사실을 알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2인실 별체 독방을 살펴보니, 사방 7자 정도의 아담한 별실인데, 사면이 모두가 문으로 꾸며 있다. 모든 문이 한지로 가린 두 짝 문으로 입구 출입문을 빼고 잠긴체 바람구멍없이 밀봉 해 놓았지만 전부 한대에 노출되어 있다.
100년만에 찾아온 4월 저온 한파가 날이 저물면서 냉기를 더 해가는데 미리 두꺼운 내의를 작만 했는데도, 방안에 앉은 필자는 한기를 느낀다.
부실한 몸에 무척 추위를 타는 필자는 여름철에도 두꺼운 이불을 쓰고, 돌 침대로 몸을 덮히는 약골인데 4월 특수 한파 골방에서 진퇴 양난이 되었다.
이 방을 살펴보니 여름한철 피서용 방으로 만들어 진 구조다. 유난히 마루가 넓고 크다. 얼마나 우풍이 심하면, 전기 장판으로 요를 깔아논 밑은 무척 뜨거운데 요만 벗기면 금세 냉골이 된다.
" 한옥은 원래 우풍이 심한기라, 그래도 한지는 공기 소통이 원할해서 습도는 잘 조절 된다."
김영기는 별로 걱정이 없어 보인다. 양치를 하고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 보았으나 밑은 따끈한데 코가 씨리다. 얇은 이불 위로 손을 내 놓을 수가 없이 방 공기는 차다. 불을 끄고 잠을 청해도 잠을 잘수없이 이생각 저생각 잡생각만 꼬리를 문다.
왜 최신 아파트가 베란다가있고, 페어 글라스 유리창에 방한제 넣은 두꺼운 벽체에 커탠 까지 치고 사는지 실감이 난다. 옆 자리 김영기는 소리 없이 잘도 잔다. 차라리 4인실 방을 택했으면 정면 한 면만 한대이니 좀 나으련만, 젭싸게 2인실 차지한게 잘못 된 것이고, 우선 부실한 몸이 문제이고, 방배치에 운이없었고, 무엇보다 특수 한파가 문제이지, 그래서 ---, 별생각이 나면서 점점 화가난다.
"세상에 화장실 가려면 가파른 디딤돌을 재주넘듯 내려가서 마당을 건너 열기도 힘든 여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선 환기가 되지않아 악취가 나면서, 순간 온수기는 고장이 난채 얼음 같은 찬물에 어디 휴지가 눈에 보이나, 타올이 있나, 그나마 방안에는 거울 하나 달려있지않고, 외등은 문풍지를 통과하여 방안은 불 켜노은듯 환하게 밝고,... 이렇고도 방문객 침실 제공이라 하겠나. 내일 아침에는 관리인 한테 싫은 소리 한마디 하든가, 이 회장에게 볼멘소리 한마디라도 해야 겠다."
이런 생각이 세벽 2시 소피보러 갔다온후 잠못이룬 시간에 머리 속을 해멨다. 댓돌위에 신발을 보니 모두가 네 켤레 밖에 없다. 생각 해 보니 4인실 두 사람이 밤중 원정 놀이게 참가한듯 하다. 4인실 두 사람만 땡을 잡았겠다.
가까스로 잠이 들었을가 웬 휘파람 소리같은 전자음이 귀를 괘롭힌다. 이 소리는 김영기도 듣고 잠을 깼다.
"세벽 기상을 알리는 알람 소리인가 보지"
김영기의 말이다. 이 소리는 30분이나 지속 되었다. 문을 열고 밖에나와 불빛에 시계를 보니 세벽 5시다. 알람 같은 소리는 고택 온 마당에 울려 퍼지고 있는데 방마다 인기척은 전혀 없다, 공기는 저녁보다 더 차다. 고통스런 화장실을 한번 더 쓰고 방에오니 잠은 멀리 달아났고, 앉아 있으려니 소파에 앉든 버릇이라 허리만 아프고 더 춥다. 벗어논 양말과 옷을 다시 주어 압고 버티는데, 테레비죤이나 라디오가 있으면 몰라도 동 틀 때까지 기다리기는 생 지옥이다. 옆자리 사람 께울가봐 꼼짝도 할 수 없다. 가까스로 6시 반이 넘어 깨어난 김영기와 먼저 옆방 상황 확인차 들어 갔다. 오명식은 돌아와 자리에 누어 있으나 김경락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잠 자리에서 일어난 오진태의 첫 마디는
" 아이구 잘 잤다. 어제는 허리에 통증이 있었는데 밑바닥이 어찌나 뜨거운지 아픈 허리가 싹 나섰네."
"무슨 소리야 , 저방은 우풍이 심해서 몸이 꽁꽁 얼어 붙었는데."
"우풍은 좀 심했지만 넓은 방에 찜질 한번 잘 했네."
필자는 할 말을 잃었다.
세수하러 화장실에 얼음물로 고양이 세수를 하는데, 다른 별체에서 나온 대구 최희장 동문과 몇몇이 그래도 불평하는 필자를 편들어
"이건 너무 하다. 얼음 물로 세수하고, 냄세나는 화장실 이라니, 아무리 한옥 체험이라도 너무 부실하구먼."
"나는 우풍이 심한 방에서 몸이 얼어 붙었어."
"그방이 보아하니 특별하구만, 여름 철 젊은 부부나 껄어안고 자면 몰라도."
김 영기도 한마디 거들었다.
식당에 간 필자는 전혀 다른 침실 분위기에 잠잤던 친구들이 서로 잘 잤느냐는 인사를 주고 받는데 필자만 우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역시, 사방 창문 달린 방이 문제이고 , 특별 4월 한파가 문제이지 다른 문제는 없는것"으로 간주하고 싶었으나
식후 종손과의 대담에서 옛 것을 보존만 할 것이 아니고 활용하고 현대적인 환경으로 손님 맞이에 신경을 쓴다는 말을 듣고, 내 체험 담을 종택 관리인이 들어보라고 한글자 써야 겠다고 마음 먹는다.
"몸약한 내가 체험했으니 망정이지, 건너 별체에서 보이던 일본인 가족들이 후조당에서 기거 하게되었으면하고 상상하니 끔직하다."
식후 종손과의 대화에서 시설 유지 관리를 넘어 활용하기위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다.
참 좋은 생각이라고 여겨 지고 예산상의 문제가 있기는 하나, 요세 여행히는 사람들은 비대 화장실에 샤워박스 없으면 곤란 것을 알고, 고택의 화장실은 견본만 전시하고 별도의 화장실은 진입하기 좋은 복도를 별도로 만들드라도 개선하지않고는 숙박을 시키지 말아야한다고 말 하고 싶었다.
후조당에서 국보급 유물이 나와 전시실도 만들었고, 본래 후조당 건물이 너무 호화로와 퇴계선생이 현판 글만 쓰주고 말없이 나와버렸다는 고사가 있을 만큼 후조당의 고택은 가치가 있고 보존해야할 건물이다. 그러나 여기에 필자는 악몽같은 숙박 체험을 했으니 복인지, 악운인지.
후조당 어른은 동료 일초 형의 15대 할아버지 이시니 후조당 별체 체험은 필자에게 뜻이 있었다고 자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