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장에서]
지도예찬전地圖禮讚展
김익하
팔월 열엿새 날밤, 스무엿새 만에 열대야가 한풀 꺾였다. 염천장(炎天場)에서 목숨을 건진 몸이 새벽녘에는 동풍에 발가락이 시리기까지 했다. 날씨도 하지 말아야 할 짓과 멈춰야 할 시기를 분별하니 미련스러운 위인보다 훨씬 낫다는생각도 든다. 고집의 한계를 깨달으니 말이다.
나갔던 정신이 육체로 돌아오니 뜨거운 볕에 섞인 시원한 바람 자락을 맞으며 외출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오늘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팔월 십사 일부터 열린 <지도예찬> 전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나는 지도에 많은 흥미를 느끼는 편이다. 지도는 나에게 여러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상상의 공간을 제공하여 무한한 이야기 움을 돋게해줌으로써 정서의 발원을 새로이 하기도 한다.
땅 위에 금을 그음으로써 형상이 나타나는 지도는 그것으로 무리의 동질감을 결속시키기도 하고, 같은 말과 문자와 풍습을 엮어내기도 한다. 예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땅의 모양새와 물 흐름의 근원을 알아야 백성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었다. 이민족을 치는데 손자병법이나 육도삼락, 오자병법을 꿰뚫고 있더라도 지리를 알지 못하면 병법은 허섭스레기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제아무리 눈썰미가 있는 자라도 지도와 지리지(地理誌)가 없으면 항로나 해로나 육로로 나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제 사는 곳을 모르면 눈앞이 두려워 한 발짝도 바깥으로 내디디지 못했다.
예로부터 인간은 각 분야의 필요에 따라서 지도를 만들어왔다.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적과 싸우기 위해, 길을 내기 위해, 특산물의 산지를 알기 위해, 명당자리를 찾기 위해, 하다못해 이웃과 담을 치기 위해서도 그것이 소용되었으니 지도에 근원이 닿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러기에 지도를 들여다보면 그곳에 어느 시대 어떤 사람이 살았는지 역사와 문화까지 소상히 유추해 읽어낼 수 있다. 혹자는 지리에 밝은 자만이 지혜롭 얻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회는 시월 이십팔일까지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주최한 이 전시회는 국립고궁박물관을 위시한 우리나라 관련 지도와 지리서를 소장하고 있는 열여섯 곳에서 출품한 260여 종이라 현존 조선 오백 년의 지도·지리서가 망라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전시장으로 오르는 계단옆, 폭염을 잠깐 식히며 가라는 듯 스프링쿨러에서 연무가 관람객의 마음을 적신다.
아직 시간이 일러 매표소 앞은 한산했다. 관람을 끝내고 밖으로 나설 무렵인 오후 1시경에는 제법 붐볐다.
예순다섯 이상이면 일반관 관람은 무료인데 기획전이라 4,000원만 내란다. 그래도 일반인이 6,000원이니 30%
할인을 받은 셈이다.
전시장에서 내가 유독 관심을 가졌던 몇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조선 왕국 지도>. 1790년 영국 로버트 세이어(1725∼1794)가 펴낸 한국과 일본 지도. 53.0 × 72.7㎝.
종이에 동판 인쇄. 중앙박물관 소장. 우리나라 해안선이 단조롭고 땅덩어리 또한, 반듯한 네모에 가깝다.
동해를 'COREAN SEA'로 표기했다.
소위 풍수설에 의해 제작된 <명당도(明堂圖)>인데, 목판 인쇄는 물론 청자로 구워내기까지 해서 당시의
매장문화의 관습을 보듯 했다. 목판에다 새기고 청자판으로 구은 행위는 가문의 우세를 뽑내는 한편 소유권에
대한 집착이 아니겠는가.
<연혁도 중 단기이후제고국(沿革圖 中 檀箕以後諸古國)>에 나타난 삼척 옛 실직국.
조선 19세기 작. 조선 후기의 역사지리학 연구 성과를 담은 역사 지도. 단군 조선부터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통일 신라, 발해까지 모두 일곱 장으로 이루어진 <연혁도>. 요동지역부터 만주와 한반도에 세워진 여러
나라들의 위치가 고증 성과를 바탕으로 기재되어 있다. 종이에 먹과 색.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동여비고(東與備考)> 조선 숙종대인 1682년경 제작으로 추정. 이 지도집은 역사지도와 전국 지도, 주요 지역
지도 등 다양한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종이애 먹과 색. 개인 소장.
<동여비고(東與備考)> 에서 옛 삼척 부근을 확대한 지도. <척주(陟州)>라 표기한 옆에 지금 삼척[今 三陟]
이라 적었다. 삼척의 옛지명 가운데 하나인 척주였음을 알 수 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김사형(金士衡. 1341∼1407), 이무(李茂. 1355∼1409),
이회(李薈.?∼?) 조선 1402년(태종 2) 원본 15세기. 조선의 위상을 드러내는 세계지도 조선편. 중국 원나라 때
제작된 세계 지도에 조선과 일본을 덧붙여 만든 것으로 동아시아에서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
중국과 조선을 크게 그려 조선도 중국과 같은 문화대국임을 표방하려 했다.
<동람도 중 강원도 지도(東覽圖 中 江原道 地圖)>. 조선 1531년. 종이에 목판 인쇄. 조선 중종 26(1531)에
간행된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부도로 실린 <동람도(東覽圖)>. 가장 오래된
목판본 지도. 전국지도와 팔도로 아홉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도와 우산도를 우리 영토로 명기한 가장
오래된 지도.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팔도도 중 강원도 지도(八道圖 中 江原道 地圖)>. 조선조 신경준(申景濬.1712∼1781)이 1770년에 그린 지도.
종이에 먹과 색. 신경준이 그려 영조에게 바친 도별지도. 경희대학교 해경박물관 소장.
<조선팔도고금총편람도(朝鮮八道古今摠便覽圖)>. 김수홍(金壽弘. 1601∼1681)이 조선 1673년에 그린 지도.
종이에 목판 인쇄. 16세기 유행했던 지도로 각 고을의 고사, 인물, 명승에 대한 정보를 담았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조선팔도고금총편람도(朝鮮八道古今摠便覽圖)> 가운데 삼척 인근도
<해좌전도(海左全圖)>. 조선 19세기 중반. 종이 목판 인쇄 후 채색. 온양민속박물관. 울릉도와 우산국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지도 제작자 정상기와 김정호
조선은 양란[왜란과 호란] 뒤 전쟁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지도가 필요했다. 이때 행정과 국방용 지도뿐만 아니라 읍지, 휴대용 지도, 산도(山圖) 등 다양한 지도가 제작되었다. 처음으로 지도제작자들은 화가들이었다. 조선 후기 지도의 기틀을 마련한 화가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동국여지지도(東國輿地志圖)>와 <일본여도(日本與圖)>가 대표적인 지도다. 화가들은 산을 그리고 길을 내고 나무를 심는가 하면 집을 짓고 바위까지 일으켜 세웠다. 지도 제작자가 화가에서 지리학자로 넘어오자 입체적인 지도가 평면으로 가라앉고 척도(尺度)를 갖기 시작하면서 기호화되었다.
우리는 결과론적으로 지리지하면 이중환(李重煥, 1691∼1756)의 『택리지(擇里志)』를, 지도하면 당연히 김정호(金正浩, 1804∼1866)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떠올린다. 그들의 업적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조선 지도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동국지도(東國地圖)>를 그린 정상기(鄭尙驥, 1678∼1752)와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를 그려낸 신경준(申景濬,1712∼1781)의 업적도 가볍지 않다. 특히 백리척(百里尺)이라는 축척을 사용해 그린 <동국대지도>를 영조는 '내 나이 칠십에 백리척을 처음 보았다.'고 할 만큼 조선 지도제작사의 발전을 앞당겼다.
정상기가 <동국대지도>를 그리며 붙인 발문을 읽어보자.
"세상에 나온 우리나라 지도가 수없이 많았으나, 모사본이나 인쇄본을 막론하고 모두 지면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 그렸기에 산천과 거리가 바르지 못하다. 십 리 되는 가까운 곳이 간혹 수백 리나 멀리 떨어진 곳으로 표시된 경우도 있고, 수백 리나 되는 먼 곳이 어떤 때는 십 리쯤으로 가까운 경우도 있다. 동서남북의 방위에 있어서는 그 위치가 바뀌어 있다.
만약 지도를 보고 사방으로 여행을 가려고 한다면, 의지할 것이 하나도 없이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것과 디를 바 없을 것이다. 나는 이전 지도의 제작법을 병폐로 여겼기에 이 지도를 만들었다."
김정호보다 126년전에 태어난 정상기는 명문 정인지(鄭麟趾) 후손이고, 이익(李瀷)의 문인이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몸이 약해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만 몰두하여 저작에만 힘썼다. 직업관리가 아니기에 책임감이 아니라 사명감으로 그의 작업이 더 빛나지 않았나 짐작되기도
한다.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 조선 1755∼1767년 정상기(鄭尙驥, 1678∼1752). 비단에 채색. 영조가 보고
감탄한 정상기의 대형 전국지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1538호.
<동국대지도 초본(東國大地圖 抄本)>. 조선 1755∼1767년 정상기(鄭尙驥, 1678∼1752). 종이에 먹과 채색.
삼척 인근도.
<동국지도(東國地圖)>. 조선 정상기가 그린 지도. 종이와 먹과 색. 19세기 가장 인기를 누렸던 지도책.
동국대지도와 마찬가지로 각 지도에 최초 백리척을 표시해서 스스로 거리를 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지도가 입체에서 평면화되면서 사용한 기호들<동국대지도>에서
김정호(金正浩, 1804∼1866)의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김정호는 조선 국토를 남북으로 120리, 22층으로 나누고 각 종 지도를 1권으로 엮었는데 각권은 동서 80리
기준하여 접고펴 볼 수 있도록 제작했다. 산과 강물은 물론 행정, 국방 정보, 경제· 교통 등 다양한 정보를
수록했다. 특히 도로는 10리마다 점을 찍어 스스로 직접거리를 알 수 있도록 했다. 11,700개 지명을 기록했다.
김정호는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목판 인쇄본을 만들기도 했다. 오늘날까지 30여 질이 발견되는 걸
미루어 보면 많은 사람에게 보급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목판으로 찍어낸 <대동여지도>
김정호가 1861년에 세상에 내놓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조선 국토를 22등분으로 나눈 것을 연이어
완성한 지도다. 크기는 세로 6.7미터, 가로 약 3.8미터, 세로를 따지면 아파트 3층 높이다.
22권 가운데 11권. 표지에 수록된 도시가 적혀 있다.
대동여지도 11권에 그려진 삼척 인근도
지도 제작에 소용된 것들
주척(周尺). 거리와 토지를 측량하거나 천문기구를 만들 때 쓰는 자. 조선시대는 1척이 20∼21㎝내외다.
10진법으로 자리수가 정해져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윤도(輪圖)다. 조선 19세기 나라에서 정한 방위 측정의 표준기. 김정호가 첫 전국 지도인 <청구도>에 붙인
'청구도범례'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읍 중심지에서 10리 간격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그 동심원 위에 12 방위
를 표시하고 12간지를 기재했다. 종이에 목판으로 인쇄. 50.3 × 58.3㎝
왼쪽이 윤도[나무제질]고 오른쪽이 패철(佩鐵)이다. 패철은 나침판인데 부채의 끝에 매달아 쓰던 일종의 노리개로
선추(扇錘)라 불렀다. 24방위가 표시되어 있는데 노리개처럼 일상 애용했던 물건이었다는 걸 간접적으로보여주고 있다.
해시계와 나침판이다. 5.6 × 3.4㎝, 높이 2.0㎝인데 재질은 돌이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쓸 수 있도록 제작
되었다. 나침판에는 24방위가, 해시계에는 24절기, 13개의 계절선과 30분 간격의 시각선이 새겨져 있다.
보물 제852호.
우리나라 중요한 고지리지 및 고지도 목록
1402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권근.이회)
1454년 경성도(京城圖) (양성지.정척)
1463년 동국지도(東國地圖) (양성지.정척)
1471년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신숙주)
1477년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 (영성지)
1481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노사신.양성지)
1531년 신증동국여지승람(新東國輿地勝覽) (이행)
1540년 목판본 동국지도(東國地圖) 지도첩
1557년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地圖)
1562∼1563년 명종이 의주, 영변, 성천, 영흥 지도 8폭 제작 지시
1593년 평양지도(平壤地圖) (류성룡)
1666년 천하고금대총람도(天下古今大摠覽圖) (김수홍)
1673년 조선팔도고금총람도(朝鮮八道古今大摠覽圖) (김수홍)
1673년 함경도지도(咸鏡道地圖) (남구만)
1678년 목장지도(牧場地圖)
1684년 철옹성전도(鐵瓮城全圖)
1694년 울릉도지도(鬱陵島地圖) (장한상)
1706년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이이명)
1709년 탐라지도병서(耽羅地圖竝書) (이규성)
1710년 동국여지지도(東國輿地之圖) (윤두수)
1740년 동국지도(東國地圖) (정상기)
1750년 해동지도(海東地圖)
1770년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 (신경준)
1770년 청구관해방총도(靑丘關海防摠圖)
1834년 청구도(靑邱圖) (김정호)
1834년 지구전후도(地球前後圖) (김정호)
1850년 여지전도(輿地全圖) (김정호)
1861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김정호)
1872년 홍선대원군이 모든 고을과 군사기지의 지도 제작을 지시
1899년 대한전도(大韓全圖) (대한제국 학부)
첫댓글 귀중한 지도 자료,잘 보았습니다.
김익하 선생,고맙습니다.
자료를 많이 올리지 못해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