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문학 2023년 5월호
< 때여! 나의 때여! 동학의 세상이여! >
3부 - 민중의 바다에 뜬 동학(東學)의 달(月) - 8
(30)
1887년 1월 1일 해월(海月)은
새해를 맞아 시 한수를 낭독했네.
무극대도작심성(無極大道作心誠)
원통봉하우통통(圓通峰下又通通)
“무극대도에 마음을 작정하고 정성 드리니
원통봉 아래서 또 통하고 통하였노라.”
주석 : 무극대도(無極大道)는 수운(水雲)이 받은 동학의 원래 이름,
원통봉(587m)은 해월이 살던 전성촌의 뒷산 이름
1887년 2월 24일
둘째 부인 김 씨가 사망하자
본 부인 손 씨가 살고 있는
보은 장내리로 이거(移居)한 해월(海月)은
3월 21일 환갑상을 받은 후
서인주(徐仁周)와 손천민(孫天民)을 대동하고
정선 유시헌(劉時憲)의 집에서
수운(水雲)의 향례(享禮)를 드렸네
기도 수련할 곳을 찾던 해월(海月)에게
유시헌(劉時憲)이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에 위치한
정암사(淨巖寺=갈래사)를 추천했네
1872년 정암사의 말사 적조암(寂照庵)에서
기도한 적이 있던 해월(海月)은
정암사에서 고생한 김 씨 부인의 명복을 빌며
49일 동안 극진히 기도했네
서인주(徐仁周)와 손천민(孫天民)도 동참했네
해월(海月)은 시(詩) 한 수를 읊고
49일 기도를 마감했네.
“불의사월사월래 (不意四月四月來)
뜻하지 아니한 사월에 사월이 오니
금사옥사우옥사 (金士玉士又玉士)
금사 옥사 또 옥사로다.
금일명일우명일 (今日明日又明日)
오늘 내일 또 내일
하하지지우하지 (何何知之又何知)
무엇 무엇을 알고 또 무엇을 알리.
일거일래신일래 (日去月來新日來)
날이 가고 달이 오고 새 날이 오니
천지정신금아효 (天地精神令我曉)
천지정신이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도다.”
(31)
하산한 해월(海月)이 보은 장내로 이거한 후
그의 도(道)를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네.
보은 장내에 다시 육임소(六任所)를 설치했네
책임자들은 매월 1회씩
해월(海月)의 강도(講道)를
순차적으로 청강(聽講)하되
청강(聽講)은 도소(道所)의 허락을 득하게 함으로
육임소(六任所)의 임무를 강화시켰네
해소병과 옥살이 후유증으로
병석에 누어있던 본부인 손 씨가
해월(海月)을 보필하기 어렵게 되자
육임소의 책임자들은 해월의 혼인을 주장했네
바느질 솜씨가 좋은
손병희(孫秉熙)의 누이 손 씨(25세)는
혼인하기 전에도 해월(海月)의 옷을 지어 드렸네.
남편 상을 당해 친정에 있던 손 씨
국법은 재가녀의 혼인을 금하고 있었네
손병희(孫秉熙)가 동생에게
새 옷을 지어 입게 했네
손 씨를 교자에 태고 보은 장내리로 간
손천민(孫天民, 손병희 조카)은
이제부터 고모는
해월(海月)을 모셔야 한다고 했네
해월(海月, 62세)은 국법을 어기고
손 씨(25세)와 세 번째 혼인을 했네 (1888년 3월)
관의 지목이 심해지자
해월(海月)은 육임소를 임시 해산하고
괴산군 신양동으로 은거했네 (1889년 7월)
(32)
10월에 서인주(徐仁周 일명 서장옥 徐璋玉, 徐長玉)와
강한성 등 동학교도들이 체포되었네.
해월에 대한 포졸의 추적이 계속되었네.
해월(海月)은 김연국(金演局), 장한주를 데리고
인제군 김연호 집과 김현경의 집에 은거했으나
포위망이 좁혀오자
간성군 왕곡리 김하도 집으로 옮겼네.
1889년 11월 도피생활 중
금산군 복호동 김창준 집에서
해월(海月)은 어린이 교육에 관한 ‘내측(內側)’과
부인수도(婦人修道)에 관한 ‘내수도문(內修道文)’을 반포했네.
“과거에는 부인을 억압했으나
이제 부인이 도통하여
사람을 살리는 일이 많을 것이다.
이는 사람이 모두 어머니의 포태(胞胎)에서 나서
자라는 것과 같다.”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치는 것이다”
해월(海月)의 뜻을 받들어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천도교 3대 교주)는
1908년 여성전도회를 조직하고
여성 월간지 <부인> <신여성>을 창간했네.
손병희(孫秉熙)의 사위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은
1923년 9월부터 전국을 누비며
동화대회 등을 열어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네
1890년 7월 해월(海月)은
양구 간성을 거쳐
인제군 남면 성황거리 이명수 집에 도착했네.
뜰 안의 나무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있는 것을 보고
해월(海月)은 이렇게 강론했네
“이 역시 시천주(侍天主)의 음성이다
묘하다. 천도(天道)의 오묘함
간섭하지 않는 일이 없다.
일월(日月)의 큼과 티끌의 작음
모두 천도의 영광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산과 돌에 빈다.
복을 구하나 영험치 아니함은
천지의 영묘가
산과 돌에 있지 않은 증거이다.
화(禍)와 복(福)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은 화복의 기틀이며 천주의 권능이다.”
1890년 8월 해월(海月)은 구속 중인
서인주(徐仁周)의 보석금으로 5백량을 보낸 후
그의 생사가 확연치 않으니
식사 후 서인주(徐仁周)를 위하여 고천하는
식후고천(食後告天)의 심고(心告)를 행하게 했네.
1890년 9월 서순택의 주선으로
청주 금성동으로 이거했네
(33)
1891년 2월 공주 신평리로 이거한 해월(海月)을
손화중(孫華仲), 남계천(南啓天), 김영조(金永祚)
김낙철(金洛喆), 김낙봉, 김낙삼 등이 호남에서 찾아왔네.
해월(海月)은 호남 교도들의 불화를 경계하여
다음과 같이 권면했네
“무극지운(無極之運)이 동방에서 시작되었다.
동방은 목운(木運)이다.
나무가 서로 비비면 불이나 나무를 태운다.
민심(民心)은 화순함이 으뜸이니
비록 허수아비를 세우고도
민심이 화순하면 천도의 감응이 있을 것이다”
1891년 5월 해월(海月)은
김연국(金演局), 장한주(張漢柱)를 데리고
옥천을 거쳐서 호남지역을 순회했네.
김낙삼(태인군)과 김낙철(부안군)의 집에 이르러
육임첩(六任帖)을 발급하고
전주의 윤상오(尹相五) 집에 도착했네.
호남 우도 접주 윤상오(尹相五)와
호남 좌도 접주 남계천(南啓天=賤民출신)은
문벌(門閥)이 달라 진작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네.
남계천(南啓天)을 호남좌우도편의장에 임명했네
16포(包)의 교도 백여 명을 이끌고
찾아온 김낙삼이 남계천에게 복종할 수 없다며
해월(海月)에게 탄원했네.
해월(海月)은 이들을 이렇게 효유(曉諭)했네
“대신사(水雲)의 말씀에
우리 도(道)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이요
갱정포태지운(更定胞胎之運)이라 하였다.
선천(先天)의 썩은 문벌의 고하(高下)와
귀천(貴賤)의 등분(等分)이 무슨 관계인가
대신사는 일직이 여종 두 사람을 해방시켜서
한 사람은 양녀를 삼고
한 사람은 며느리를 삼았으니
대선사의 문벌이 자신 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은 이 말씀을 기억하고
자격에 따라 지휘에 순종하라”
(34)
1891년 10월 청주 금성동에서
해월(海月)은 수운(水雲)으로부터
5백 개의 계란을 받는 꿈을 꾸었네.
받은 계란을 부화(孵化)시키니
2개는 썩고 나머지는 병아리가 되었네.
해월(海月)은 이렇게 강론(講論)하였네
“후일 우리 도중(道中)에
성도(成道)할 사람은 이 계란과 같으리라
천운(天運)이 순환하여
후천오만년(後天五萬年)의 무극대도(無極大道)가
창명(創明)되었다.
선천(先天)의 세간악마(世間惡魔)를
이기기 위해서는
삼칠자 주문을 염염불망(念念不忘)하는데 있다.
때를 보아 나아가고
때를 보아 숨어 있고
운(運)을 타고 일어나고
도(道)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닦고 바르게 행하여야 한다.
도(道)는 성(誠). 경(敬). 신(信) 석자에 있다.
한울은 바르게 알고 바르게 섬겨야 하니
한울은 시(侍). 정(定). 지(知) 석자에 있다.
세상이 점점 쇠미(衰微)하고
운수가 막히매
도(道) 또한 희미하고 와전(訛傳)되고 있다.
도(道)를 전하는 사람의 마음이 밝지 못하고
도(道)를 닦는 사람 또한 독실하지 못하여
망령된 말로 난법난도(亂法亂道)를 감행하고 있다
말이 이에 미치매 내 마음이 불편하여
임사실천십개조(臨事實踐 十個條)를 제정하노니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성껏 지키어 어지지 말라”
* 주석 : 임사실천십개조臨事實踐 十個條
1. 윤리를 밝히라[明倫理] 2. 신의를 지키라[守信義] 3. 업무에 부지런 하라[勤業務]
4. 일에 임하여 지극 공정하라[臨事至公] 5. 빈궁한 사람을 서로 도와주라[貧窮相恤]
6. 남녀를 엄하게 분별하라[男女嚴別] 7. 예법을 중히 여기라[重禮法] 8. 연원을 바르게
하라[正淵源] 9. 진리를 익히고 연구하라[講眞理] 10. 어지럽고 복잡한 것을 금하라[禁淆雜]
충청관찰사 조병식(趙秉式)이 비밀리에
동학교도들의 체포령을 내리자
해월(海月)은 진천군 부창리로 이거했네 (1892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