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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드름 ]
뚜욱뚝
눈물만큼
커져가는
그리움
마디마디
눈물만큼
여리여리
사연들
볼록한
겨울 추억
꼬깔 가득
담았으니.
<2004.1.7>
[봄이 오는 소리]
냇물 가둔 얼음 아래로 피래미 살살거리면
몰래 봄이 온다.
솔가지 사이 서성대던 바람이 단냄새를 바퉈내면
어김없이 봄이 온다.
돌돌돌 계곡물이 개골개골 가까와지면
영락없이 봄이 온다.
개울가 버들가지 때깔좋게 물오른다 싶으면
어느새 봄이 온다.
옹기종기 시골집 텁텁한 굴뚝으로 모락모락 구수하면
뒤안 댓잎도 스스스 봄소리를 낸다.
까닭없이 마음이 따뜻하고 두근두근 설레이면
내마음도 어느새 봄이려니.
<2004.2.7>
[대설 맞은 모악산]
*수왕사에서 올라 중인리와 정상, 그리고 비단길로 갈라지는 등산로, 그 길가....
*정상으로 가는 완만한 등산로가에서 구이 저수지를 바라보다가....
*모악산 정상으로, 파란 하늘이 열리는 돌게단을 올라 오른쪽으로 비켜선 길
*그리고 벼랑아래로 펼쳐진 전주시와 구이벌판....
*거기서 뒤로 돌아 어느 바위위에 소복 쌓인 눈과 송신탑!
*송신탑 울타리, 개나리 닮은 눈꽃!
<2004.2.8>
[수선화 ]
밀려오는 봄,
이틀전 집근처 논둑길을 걷다 뛰다
살랑대는 봄바람을 진하게 느끼고 왔다.
작년, 햇살 따가왔던 어느 봄날 석양
동네 교회 앞 시멘트 틈으로 몰래 올라온
봄까치꽃을 보고 들떠했던 기억이 새롭다.
또 봄이 왔다.
그만큼 들뜨지는 않았으나
튀어오르는 봄은 마냥 새롭다.
언젠가 송아지랑 앞서거니 뒷서거니 장난하다
엎어지고 끌려가던 기억이 생생한데,
봄이란 놈이 똑같이 흉내낸다.
몰다, 끌다
꽃샘하는 봄이 놀리듯 살랑댄다.
봄, 봄.
아~ 내게 또 봄이 왔다.
야생이 아니기에 이 쪽을 택하였다.
일 주 전쯤 가족과 마트엘 갔다가 눈이 맞아 구해온 꽃이다.
그 마트 입구엔 화원이 있어 항상 눈길을 끄는 상술이 대견스러웠는데,
2월 답지 않은 봄 햇살을 물씬 느끼고 간 터라 유리진열장안에
진열된 장미며, 후리지아, 국화, 백합...등이 더더욱 싱그러웠다.
그래서였을까, 참 상큼하고 예쁘고 그렇구나하고 지나쳐서
안쪽을 도는데 노랗게 핀 수선화랑 이름모를 화초가 봄기운을 물씬 풍겨주었다.
유리병에 수경재배한 샘플이 마침 눈에 들어와
집에 있는 입이 큰 유리병이 떠올라
꽃망울이 터지려고 막 물이 오른 놈으로 두촉을 구했다.
바로 그날 밤 개화하고 말았으나 3-4일 거실을 밝혀주더니
또다른 두 촉 꽃이 활짝 웃어주었다.
내집에 들여온 2004년 첫 봄꽃이다.
<2004.2.26>
[임실군 마라톤 대회]
제 3회 임실군 마라톤 대회!
지난 해 한 번 참가했던 경험이 있지만
평지인대다 시골 봄내음이 정겹고 임실 인심이 잔뜩 배어나오는 대회여서
지난 2월 다시 참가신청을 했었다.
대회장,
경찰이 우회도로로 안내를 했고 그 안내를 따라가보니
대회장에서 500여 미터는 떨어진 양곡처리장에 주차해야했다.
주차하고 오는데 차 안에서 마침 옷을 갈아입고 있는 후배가 눈에 들어왔다.
하프(20km)에 참가한다고 했다.
지난번 전주 마라톤에 20km를 신청했다가 종아리 인대를 다쳐 참가하지 못한
아픈 기억이 있는 20km!!!!
후배님의 건투를 기원하고 대회장으로 향했다.
눈으로 보아 2000여 명 남짓 되는 듯 했다.
부산, 경기도, 안산, 군산, 익산, 천안.....전국의 마라톤 매니아들...
쭉빠진 마라톤 유니폼차림도 있는가 하면
펑퍼짐한 반바지, 집에서 입음직한 츄리닝,
한껏 멋을 부린 중년의 아줌아, 꽃샘추위도 아랑곳않고
런닝차림의 마라톤 광인듯한 훤칠한 청년들....
고민, 쫄스판반바지를 입고 뛸까, 새로 산 운동복을 입고 뛸까?
멀리 보이는 임실 군 뒷산에 허옇게 덮인 눈이나
저기 성수면 뒷산쯤에 그 보다 더 하얗게 쌓인 며칠전 내린 폭설의
뒷끝으로 보면 반바지가 왠말이랴.
주위에 눈을 씻고 찾아도 스판반바지 차림은 없었다...
출발시작 10분 전!
준비운동을 하는데 세포들이 열을 내느라 만든 물이 그새 많이 고였는지라(?)
최신식 이동식 화장실도 구경겸 일보고 와서는
과감하게 스판반바지 차림을 결정하고 물품보관소에 겉옷을 맡겼다.
출발선,
앞사람 뒷사람 안마도 하고 두드리기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열, 아홉, 여덟..............하나, 출발!
아랫도리가 생각보다 춥진 않았다.
지난 겨울동안 햇빛 구경을 못해 허옇게 탱탱한 허벅지가
꽃샘바람에 노출되었는데도.....
임실군 소재지를 통과하는데 작년처럼 농악대가 꽤갱갱 사물놀이로 반긴다.
여기저기 가도에 나와 손을 흔드는 임실 군민들,
목도리를 두르고 몸을 흔들며 특유의 시골 아줌마 몸짓으로 얼씨구 박수하는
내 어머니 또래 한 무리의 아줌마들.
임실초등학교인가를 벗어나면 황황한 벌판이다.
아 아랫도리가 춥다.
벌겋게 달아오른 종아리며 허벅지.
위에는 땀이 송글 맺혔는데 아래는 펭귄이다.
헉헉 달렸는데 고작 3km...또 달려도 목표는 쩌어만큼 끝이 없는 행렬..
가도에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주는 물 한 컵 마시고 헉헉...
요 며칠 연습을 했는데 추운 탓일까 경련이 일어나려다가 멈추는 듯 했다.
아~이런 벌써 선두주자가 돌아온다.
그 뒤로도 한 무더기 선두주자들,
오매, 무더기로 되돌아오는 나보다 앞선 주자들,
아직 난 반환점도 아니 갔는데...헉헉..걸어갈까..그래도 나랑 약속한게 있는데....
아~ 동네 야산 소나무에서 바람에 날려 흩뿌리는 얄미운 눈바람....
더 벌개진 내다리...꽁꽁 얼어가는 손가락...헉헉!!!
반환점,
파란색 리본을 나도 받았다.
작년엔 바나나도 주드구만.
그래 절반이 시작이다.
남은 절반 못뛰랴, 멀리 성수산자락 흰 눈이 안개처럼 자욱하고
돌아가는 길은 마파람이 더욱 시리게 방해한다.
이젠 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 발이 저절로 뛴다.
헉헉..임실군엔 빌라도 있구나!
아까 본 3km 푯말, 그럼 남은 거리가 3km로군!
동네 뒷산엔 눈꽃이 곱고
아까 그 할머니는 그때까지 얼씨구 박수해준다.
힘내라고 손짓하는 해병대 전역장병들...
골목서 나온듯한 차안에서 바쁜데 가도못하게 한다고
경찰과 실랑이하는 젊은 운전자.
걸어가는 주자들, 안내원차 타는 아줌마.
그래, 나도 앞질러간다.
그때까지 꽹과리, 징, 장고치는 풍물패들을 뒤로하자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5km 참가 선수들의 후미가 보인다.
골인점,
한번도 안쉬고 달렸으니 한 50분쯤 될까,
제길, 전광판도 없다.
그래 시작부터 뭔가 작년과 다른 서투름이 보이더니..
스피드 칩이 뚜우!소리를 내었다.
결승점 통과!
imedia카메라맨앞에서 포즈좀 취하렸더니
어느새 달려나온 뒷주자가 스윽 앞을 가린다.
나왔을랑가?!?!
아~ 벌개진 내다리..부랴부랴 물품보관소에 가서 겉옷을 찾아입으려는데
또 미숙한 진행요원들..오돌오돌..10여분 뒤에야 내 물건을 돌려준다.
덜덜덜.. 옷 껴입고 칩 반납하니 우유하나, 빵하나, 고추가루 두 봉지
헛개나무 다린 물 3봉지를 준다.
그래도 구미가 당기는건 하얀 두부에 김치 한 접시!
뚝딱 먹고, 녹차 두잔 마시니 온기가 찾아든다.
행운권 추첨? 꽝!
아~ 오늘도 무사히 10km를 뛰었다, 룰루~!
오는 길 허벅지가 근질근질 후끈거렸다.
<2004.3.7>
[연 ]
봄 햇살이
간지럽다고
휘엉휘엉 푸르르
대나무밭 위로
팔랑대며
하늘로 훨훨
햇살이 눈부셔
두 손으로 가리우는
내모양이 우습쟈
구름을 만질 듯
바다를 볼 듯
멀리 멀리 올라 올라
너는 참 좋겠다
<2004.3.7>
[ 봄 봄 ]
작년 어느 일요일, 과학축제 한답시고
아이들과 버들가지 손가락 짓무르게 비틀어
질리게 피리 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모악산에 찾아온 봄,
푸릇한 줄기 그 버들강아지 솜털에
윤기가 자르르합니다.
계곡 물 맛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꿀맛같고 단맛나는
그야말로 단물이었습니다.
저만큼 높은 중턱쯤에
봄물이 잔뜩 오른 어느 나무 뿌리를 스쳐온 까닭일까,
콸콸 봄을 여는 소리가 우렁차기도 합니다.
100년만에 내린 3월 폭설이라 하더니
어느새 녹아버린 눈,
봄볕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심포항의 봄 ]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김제 나들목길을
3번 정도 지나쳤지만
심포항 이정표가 어찌 한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지평선이 보인다는 김제평야를 한참 관통하면서 지나
육지 안에 덩그란
오아시스같은 심포 항을 만났다.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곳에
갈매기도 봄이 즐거운가 보다.
저 건너편은 군산이라는데
높이 나는 갈매기가 참으로 부러웠다.
포구 저만치 쪼그리고 앉아 조개구이를 하며 킥킥대는
인간들이 얼마나 가소로왔을꼬....
때마침 물이 들어왔다.
음력 7일, 조금이라 물높이는 낮아도
포구에 정박한 커다란 배가 흔들흔들 파도에 밀린다.
어느 방 다순 아랫목에서 쉬고 있을
저 배 선장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나.
해 저문 귀가 길,
남쪽 상현달이 갸우뚱
닻 들어라 흥얼거린다.
<2004.3.28>
[금산사 화전 축제 ]
제멋대로 흐드러진
진달래가 어여쁘다
가지마다 눈꽃송이
취한 듯 화사한 벚꽃이야
대원사 앞마당에
진달래 화전이 달아오른다.
모악산에서 듣는 베르네,
벚꽃아래서 듣는 과수원길,
트럼펫 장고소리 꽹과리소리
아, 봄이 끓는다.
<2004.4.17>
[보리밭 ]
어린 시절,
동진 농수로를 따라 친구랑 걷다가
보리밭을 지났습니다.
친구가 먼저 북북 뽑기에
나도 북북 뽑았습니다.
이제 막 노릿해진 보리이삭을
한 웅큼 뽑아다가
친구네 정지 부뚜막 아궁이에
지푸라기 불피우고,
후우후우 삭삭 비벼
숯검댕이 묻는 줄 모르고
입술 까맣도록
맛나게 맛나게 구워먹었습니다.
봄비에 세수한 보리밭이
어느 발바닥에 뭉게져 있습디다.
사진만 예쁘게 찍느라
파랗게 질린 보리순의 비명도
들리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도 반기는 함평 보리밭.
어린 시절,
동진 농수로를 따라 친구랑 걷다가
보리밭을 지났습니다.
친구가 먼저 북북 뽑기에
나도 북북 뽑았습니다.
이제 막 노릿해진 보리이삭을
한 웅큼 뽑아다가
친구네 정지 부뚜막 아궁이에
지푸라기 불피우고,
후우후우 삭삭 비벼
숯검댕이 묻는 줄 모르고
입술 까맣도록
맛나게 맛나게 구워먹었습니다.
봄비에 세수한 보리밭이
어느 발바닥에 뭉게져 있습디다.
사진만 예쁘게 찍느라
파랗게 질린 보리순의 비명도
들리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도 반기는 함평 보리밭.
- 2004년 5월 9일 함평나비축제 전시장 앞 보리밭.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수업시간에 물질관에 대한 변천사를 얘기했다.
탈레스는 모든 물질은 물에서 비롯되었다 했단다.
지구상에 삼태(고체, 액체, 기체)로 함께 공존하고
주변에 있는 것이 물 천지이니 그럴 듯도 하지.
더구나, 물이 아니면
어떤 것인들 제대로 만들어지기나 했을까....
빗방울에 가려진 차창 밖,
정지된 세상이 봄 아지랭이처럼 꿈틀댄다.
따스하고, 부드럽고, 풀냄새 가득한
봄풍경을 그려간다.
비오는 날, 우산으로 비 긋고
수채화나 그려볼까....
139.밀밭 길
밀밭이 노랗게 물드는 때가
아, 6월이었구나
하교길,
뒷잔등 보리밭,밀밭 옆을 지나며
맡았던 물냄새, 밭냄새, "메웅게"냄새,
한 줄기 보릿대 쭉 뽑아서
잘근잘근 씹어 단맛을 즐기던 그 때,
아, 그 때가 6월이었구나.
- 모래재 가기전 어느 동네 앞의 밀밭 앞에서.
[새벽 비 ]
아늑하고 흔들리는
꿈결,
빗소리가 흔들어 깨웠다.
어서 일어나시게,
째작 째작
잿빛 하늘에 목욕하는 새벽이
어여 나와
좋은 아침 보시라
창문 열고
나를 흔들어 깨웠다.
호~
흡~
새벽비가,
다시 강으로 돌아갈
꿈같은 새벽비가
오늘 새벽
나를 흔들어 깨웠다.
<2004.7.2>
[비가 들려주는 소리 ]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
손등에 빗방울을 얹는다.
구름속에서 참느라
얼마나 추웠을까,
오돌오돌 무한으로 질주하던
하나, 둘, 셋, 4,5,6,7..........
또 얼마나 무서웠으랴,
또 얼마나 가슴 조였으랴,
어느 꽃밭에서 곱게 꽃피우다
포르르 기화된 방울이었을까,
어느 밤, 몰래 베갯머리에
뜨겁게 적시다 마르던 설운 방울이었을까,
초록으로 깊은 계곡
쿠르릉 안개비 뿌리던 그 방울이었을까.
짜잘짜잘 돌아와 좋다기도 하고,
흐득흐득 떨구며 슬펐다기도 하고,
먼 바다가 깊고 무서워 불을 찾았다기도 하고,
산등성이 그림자 삼아 몰래 출렁이던
빨갛고 노란 물가가 그립다기도 하고.
내리는 빗방울마다
짜르르짜르르 들려주는 소리,
하나같이
사연깊고 애절한 이야기.
<2004.7.12>
[달맞이 꽃 ]
비 갠 여름 밤 하늘,
좋은 지 별꽃도 흐드러졌다.
나비 구름, 새 구름
훠이 훠이 꽃을 쫓고,
처녀별 조차 들떠 걷는 하늘 꽃 길.
달도 없는데
달도 졌는데
하늘 보고
아까시향 진하게 뿌리는 달맞이,
와글와글
별빛에 화답하는
물소리 좋은 냇가 달맞이.
그 빛 쓰다듬는
바람도 곱지.
주> 처녀자리는 황도 12 궁 중의 6궁에 해당한다.
220광년 떨어진 1등성 스피카 별이 으뜸별.
왼손 손가락쯤에 해당할까........
<2004.7.21>
[꿈 ]
꿈속에서
꿈에
내가 꿈을 꿉니다.
꿈같은 꿈인지
꿈이 꿈인지
그 꿈마져 꿈인지
깨어도
깨었는지
그 조차 꿈인 것인지.
<2004.7.21>
[가을 여행 ]
어느새 노래진 은행잎이랑,
도로가로 시샘하듯 붉어져
곱게 그렇게 다듬어져 더 예쁜
그녀의 가녀린 손을 똑 닮은 단풍잎이랑,
쏟아질 듯 퍼렇게 높은 하늘
배째라 턱 걸린 조각구름을 보니
걷고 싶습니다.
자전거를 타고도 싶습니다.
아니 차라리 기차를 탔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아니, 사뿐사뿐 낙엽위로 날아보고 싶습니다.
노랑 코스모스,
희고 붉은 코스모스의 산들 춤사위도 흉내내고,
가을 벚꽃처럼 화사한 쑥부쟁이의
부끄런 보라색도 훔쳐 바르고,
모닥모닥 산국의 병아리같은 보드라움도 쓰다듬으며
정신없이 가을이랑
놀고만 건들고만 잪습니다.
<2004.10.24>
[내장산 단풍]
초록색 교복을 입고 숨죽이던 산들이
색깔 시위를 한다.
빨강, 노랑, 갈색, 주황색, 주홍색...
아, 셀 수도 없는 가을의 외침 !
지난 여름,
언제 숨죽이고 지냈냐는 듯
내장산에 잔치가 벌어졌다.
와, 단풍잎이 허공에 춤판을 벌였다.
걷다가 모두들 하늘을 바라다 본다.
나도 쳐다 보았다.
기가 막힌 하늘,
단풍으로 가린 하늘,
누가 먼저 바라보았는지
모두들 넋을 잃고
햐아 셔터를 눌러댄다.
나도 한 방 눌러보았다.
참말로 멋지다.
내 몸에서 단풍 냄새가 난다.
하나, 둘....마흔 두 잎....
이렇게 또 가을이 가나보다.
괘씸한 가을.
<2004.11.2>
[ 모랫재의 가을 ]
진안에서 전주로 가는 길목은 모래재 구길과 소태정 새길이 있다.
둘 모두 26번 도로인데 소태정 길은 90년대 말 개통되었을까, 잘 모르겠다.
여하튼 소태정 길은 시원하게 달릴 수 있어 좋고,
모래재 길은 향수가 배여있고 푸근함이 있어서 좋다.
나도 모래재가 좋다.
봄이면 길가 버들가지가 물오름을 자랑하고,
더 옛길 곰티재를 갈 수 있는 길이 나있으며 구불구불 모래재를 볼 수 있어 좋고,
군데 군데 붉은 토끼풀과 꽃다지, 광대풀을 볼 수 있어 좋다.
그 길가에 순창-담양 못지않은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300여 미터 장관을 이룬다.
비슷한 낙우송이 있으나 잎이 어긋나 았어 구분된다.
낙우송이나 메타세콰이어나 가을이 깊어갈 즈음 낙엽이 비처럼 쏟아지기는 마찬가지이다.
늦가을 비라도 올라치면 갈색낙엽이 비처럼 곤두박질한다.
오후 출장길, 제주도 도깨비언덕같은 분위기의 완만한 언덕을 담았다.
그 언덕위엔 서둘러 가는 가을, 뒤에 감추고 깜짝 놀래킬 듯 누군가 기다리는 것만 같다.
사진을 담는동안 승용차 몇 대와 버스 한 대가 지나쳤다.
나무만 담으려 차 가기를 기다렸다.
착한 나무들과 방정떠는 차는 썩 어울리지 않는 이유이다.
소몰이 촌부라도 흥얼거리며 지나면 모를까.....
이 길가를 조금 더 지나 모래재휴게소 근처에 작은 저수지가 있다.
용담댐을 만든 뒤로 소태정이나 모래재 언덕엔 안개도 심하고,
비라도 올라치면 억수같은 장대비가 먹구름속에서 마술을 부리듯 좍좍 부어댄다.
그나마 맑은 아침, 이 저수지의 물안개는 지가 마치 더운물인 양 한다.
혼불의 첨암부인이 저만치 서있을 듯한 듬직한 산골 저수지이다.
그 옆에 붉은 단풍도 퍽 어여뻤는데 놀라운 색조에 카메라가 놀랐는지
부시시 금방 눈뜬양 하여 올리지 않았다.
모래가 많아서 모래재였을까,
먼 옛날 지질시대쯤, 진안군은 호수였다 한다.
그 호수 밑에 퇴적되었던 모래가 많은 지역이 융기된 곳,
그래서 치욕스럽던 옛날 신작로 만들시절 먼지풀풀 날리던 모래재였을까
그 아래 쯤 노랗고 붉은 단풍이 놀랍도록 멋지다.
모래재의 끝에 닿은 도로가엔
단풍나무 군락이 한창이다.
가을이어서 단풍 꽃대궐......
<20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