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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_티머시 R.제닝스/C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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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7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11419084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분은 용서하시지만 성경에 "하나님은 용서이시니라"라는 말은 없고, 전지하시지만 "하나님은 지식이시니라"라는 말도 없고, 전능하시지만 하나님은 능력이시니라"라는 말도 없다. 다른 모든 속성은 다이아몬드의 면면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찬란한 창이다. 하지만 사랑에 관한 한 하나님은 그냥 사랑을 행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사랑의 화신이시다!
p.44
어떤 하나님 개념을 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인가? 앤드루 뉴버그 박사가 최근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실시한 뇌 연구에 따르면, 모든 형태의 명상이 뇌의 긍정적 변화와 유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최대의 뇌 기능 향상은, 참여자들이 구체적으로 사랑의 하나님을 묵상할 때 이루어졌다. 이런 묵상은 전전두피질(추론하고 판단하고 하나님 같은 사랑을 경험하는 이마 바로 뒤쪽의 뇌부위)을 발달시키고, 그에 따라 공감과 동정과 긍휼과 이타심의 역량을 높여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부분은 그다음이다. 사랑의 하나님을 예배하면 타인 중심의 사랑이 커질 뿐 아니라 예리한 사고력과 기억력까지 더 좋아진다. 다시 말해서 사랑의 하나님을 예배하면 실제로 뇌의 치유와 성장이 촉진된다.
p.50
성경이 가르치는 그대로 베푸는 것이 곧 삶이다. 하나님이 삶을 설계하실 때 그렇게 작동하도록 하셨다.
p.54
... 자아를 앞세우는 우리의 생물학적 충동은 너무도 강해서 인간은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절대로 이기심에서 헤어날 수 없다. 이기심은 두려움과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다. 사실 사랑할 자유, 자기희생을 선택하는 능력, 그리고 모든 이타심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도 모르게 마음속에 역사하는 결과하다. 하나님을 의식적으로 인정하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다를 바 없다. 그리스도의 승리와 성령의 역사 덕분에 우리 마음은 유전적 성향인 이기심을 극복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단 그것은 우리의 의지적 선택이라야 한다.
p.63-64
방종의 행위는 우리 뇌와 몸과 성품과 관계를 더 해치다가 결국 죽음을 부른다. 이것이 우리가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병적 상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두려움과 이기심으로 병들어 있다. 그것이 우리의 전 존재를 변질시켰다. 뇌는 균형을 잃었다. 두려움 회로는 과잉 발육인데 사랑회로는 발육 부진이다. 사고는 더는 하나님을 모르며, 사랑의 법대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는 한 불치병이다. 삶이란 사랑의 법과만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p.67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타인 중심의 온전한 사랑으로 살아가도록 하셨다. 사랑은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행동으로 유익을 끼친다. 아담과 하와도 사랑의 법과 온전한 조화를 이루는 한 죽지 않았다. 하지만 죄란 법을 어기는 것이다. 죄는 사랑의 법을 잘라낸다. 멱을 따면 짐승이 죽고, 스위치를 내리면 불이 꺼지고, 돈을 돌리지 않으면 경제가 마비된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법을 어기면 하나님의 개입이 없는 한 결과는 파멸과 죽음뿐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p.69
... 뇌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듯이 어떤 하나님을 예배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뇌가 달라진다. 치유는 사랑의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만 찾아온다. 거짓을 고수하면 치유 과정이 막힌다.
p.99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부하면 언제나 하나님의 방법과 멀어진다. 그래서 종교적인 사람들은 강요하고 통제하는 신을 얼마든지 예배할 수 있다. 자유가 억압되면 사랑이 파괴된다. 뇌 영상을 통해 입증된 현상이 있다. 자유를 억압하는 복수의 신을 예배하며 신의 형벌과 응보를 예상하고 있으면, 두려움 회로가 강해지고 전전두피질이 손상된다. 다시 말하지만, 전전두피질은 사랑과 공감과 이타심을 경험하는 뇌 부위다. 바울은 말세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 있을 거라고 했다. 이것은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에 대한 말이 아니다. 바울이 지금 말하는 사람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면서 그분과 그분의 속성이 사랑에 대한 진리를 부인하는 사람들이다.
p.100
하나님이 중보하시기 때문에 이제 지구에는 두 가지 우너리가 서로 대적해 싸우고 있다. 하나는 사랑의 원리이고 또 하나는 적자생존의 원리다.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는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으로 압축된다. 그것은 이런 의미다. "나는 너를 한없이 사랑하기에 너의 건강과 안녕과 유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내 목숨까지도 바쳐 너를 살릴 것이다." 반대로 이런 경건한 사랑에 맞서 싸우는 적자생존의 원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 자신을 한없이 사랑하기에 나를 보호하고 앞세우고 높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너를 죽이고라도 내가 살 것이다." 내 목숨을 바쳐 너를 사릴 것인가, 아니면 너를 죽이고라도 내가 살 것인가? 이 두 원리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서로 싸우고 있다.
p.118
나는 무서워서 최대한 빨리 달아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가 나를 꼭 붙들고 있었다. 빠져나가려고 몸을 뒤틀어 보기도 하고 울며 조르기도 했지만, 엄마는 놓아주지 않았다. 나를 한없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 일만 한 게 아니라 나에게 말도 했다. 자신이 옆에 있다는 사랑의 말, 다 잘 될 거라는 격려의 말로 나를 다독여 주었다. 엄마의 다독임으로 여섯 살 난 나의 머릿속에서 두려움이 몽땅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한결 두려움이 덜해졌다. 고통의 싸움터에서 사랑과 두려움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p.136
두려움과 불안은 내 존재 속에 아주 깊이 뿌리박혀 있다. 그래서 달아나는 게 훨씬 쉬워 보이고 정당해 보인다. 지금도 나는 엄마가 붙들어주어야만 견딜 수 있던 그 어린아이와 같을 때가 너무 많다. 일단 상처를 입으면 치유의 길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그런데 나는 고통이 싫다. 고통을 피해 달아나라고 두려움이 나를 유혹한다. 사과하거나 회개하거나 나 자신을 낮추거나 상대와 마지막으로 식사하거나 하지 말고 그냥 달아나라고 유혹한다. 나는 자아 속으로 마나의 구석으로 숨어들고 싶다. 나에게 거슬리는 진실을 내 작은 세상 속에 묻어 버리고 싶다. 하지만 계속 달아나면 결코 평안을 얻을 수 없다. 결코, 건강해질 수 없다. 오히려 대뇌변연계가 더 강해져 두려움만 가중될 뿐이다.
p.137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즉 하나님이 사랑하시듯 사랑하도록 지음을 받았다.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섬길 대상이 없이는 하나님을 닮은 충만한 사랑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담은 자신을 내주고 희생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하와는 아담의 이타적 사랑의 수혜자로 지음을 받았다. 또한, 그 사랑을 받은 뒤에는 하와도 타인 중심으로 아낌없이 베풀고 사랑하도록 지어졌다. 아담은 하와가 없이는 충만하게 살아갈 수 없었다. 하와는 아담이 사랑과 섬김으로 자신을 내줄 대상이었다. 이러한 타인 중심의 전적인 베풂을 통해 둘이 마음과 사고와 목적과 애정과 정절에서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설계였다. 영원한 사랑으로 하나의 서클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
p.146-147
... 당신의 사고를 하나님 외에 누구에게든 넘겨주는 것은 그분이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심지어 그분도 당신의 사고를 통제하시는 게 아니라 치유하실 뿐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능력을 치유하고, 양심을 정화하고, 이성을 고양하려 하십니다. 스스로 사고하도록 당신을 자유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옳고 건강하고 합리적인 길을 지혜롭게 선택하되, 그것이 옳고 건강하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선택하기를 바라십니다. 남이 시키는 대로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은 그분의 뜻에 어긋나며, 상대가 남편이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우리 배우자까지 포함해서 세상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첫 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p.150
죄의 파괴적 무게에 결국 짓눌려 괴로울 때는 많은 사람이 당장의 위안을 얻으려고 하나님을 찾는다. 힘들 때 당장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로 자신을 영원히 변화시키고 치유해 줄 하나님의 처방에는 따르지 않는다. 다시 위스키로 돌아간 제시처럼, 무수히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과 자원과 은혜를 구하되 구원이나 진정한 치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멸의 삶을 지속할 수단으로서만 구한다. 그렇게 거부하면 하나님이 결국 그들을 구워하시기 위해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그분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는가.
p.176
"네가 집중해야 할 문제가 바로 그거야. 너는 너를 치료해 줄 하나님의 값없는 치료제를 받아들인 적이 있니? 우리는 혼외 섹스 같은 불순종과 죄의 행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 하지만 그것은 죄성이라는 병의 증상에 지나지 ㅇ낳아. 고열과 기침이 우리 몸에 문제가 있어 진료를 받아야 함을 알려 주듯이, 죄의 행위도 우리 마음이 병들어 있어 하나님의 영적 치료가 필요함을 알려준단다. 죄의 행위도 모든 병의 증상과 비슷해. 치료하지 않고 오래 둘수록 병이 더 악화되고, 증상이 많을수록 몸이 더 상하는 법이지. 그래서 우리는 증상을 축소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되는 거야. 대수롭지 않은 게 아니거든. 죄의 행위는 우리 뇌를 훼손하고, 양심을 마비시키고, 이성을 비뚤어지게 하고, 성품을 망쳐 놓는단다. 또한, 죄를 지을수록 하나님께 반항하기가 갈수록 쉬워져 결국에는 구원을 영영 잃게 된단다."
p.182-183
"기도란 친구에게 하듯이 단순히 하나님과 대화하는 거란다. 그분께 마음을 열고 네 생각과 느낌과 소원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는 거지. 기도는 네 삶의 가장 깊은 비밀, 즉 네 꿈과 두려움과 기쁨과 슬픔을 하나님과 함께 나누는 거야. 뇌 연구를 통해 밝혀졌듯이, 하루에 15분씩 묵상을 하거나 사랑의 하나님과 생각 깊은 교제를 나누면 전전두피질과 특히 전두대상피질이 눈에 띄게 발달한단다. 우리가 사랑과 긍휼과 공감을 경험하는 부위가 바로 거기야 전두대상피질이 건강할수록 편도체가 안정되어 두려움과 불안이 줄어든단다. 그야말로 사랑이 모든 두려움을 내쫓는 거지! 하나님께 치유받고 싶거든 그분께 말씀드리기만 하면 돼. 그분의 임재와 용서와 은혜를 원한다면, 그분을 네 마음속에 모셔들이고 날마다 시간을 내서 그분과 생각 깊은 교제를 나누면 돼."
p.186
나는 헬렌에게 말했다. "수많은 사람의 생각과는 반대로 천국의 기록은 상세한 진료 기록입니다. 우리의 병, 제시된 치료, 우리의 반응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의사를 고소하면 진료 기록이 의사를 변호해 줍니다. 진료 기록은 환자를 고소하거나 망신시키거나 벌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렇게 이해하면 성경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즉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벌하려고 우리의 죄를 추적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이 기록을 두는 이유는 우리 각자를 구원하고 치유하고자 그분이 하실 일을 다 하셨음을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누가 구원받지 못하면 이는 자신이 치료를 거부했기 때문이지 하나님 쪽에서 뭔가 소홀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을 그 기록이 입증해 줍니다. 사랑은 악을 기록하지 않지만 그래도 천국에 우리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 '진료기록'은 각 사건의 사실관계를 입증해 주고,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엄위하신 분인지를 입증해 주고, 하나님과 그분의 요원들이 잃어버린 죄인 한 명 한 명에게 얼마나 끈질기게 간청하셨는지를 입증해 줍니다."
p.212
어떤 환자가 불치병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하자. 이 병의 치료제가 존재한다면, 환자가 병이 낫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의사를 "신뢰하고" 치료 절차에 응하는 것뿐이다. 환자는 이 치료법의 원리를 몰라도 된다. 치료법이 개발된 경위도 몰라도 된다. 그저 의사를 신뢰하고 처방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환자는 치유된다. 의사에게 치료제가 존재한다면 말이다. 마찬가지로 죄인들도 굳이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이루신 방식을 알아야만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일의 혜택을 누리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치료를 받아들여야 한다.
....
적어도 죄인의 처지에서 보자면, 속죄에 필요한 일은 신뢰의 회복뿐이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다시 신뢰하기만 하면 우리는 구원과 치유를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는지 몰라도 된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 삶 속에 적용해 주시는지 몰라도 된다. 하지만 반드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지침에 따라야 한다.
p.226-227
아담과 하와가 거짓말을 믿어 사랑과 신뢰의 서클이 깨졌다. 그 결과로 인류는 사랑의 법과 조화를 이루어 살던 존재에서 두려움과 이기심에 지배당하는 존재로 바뀌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본래대로 되돌리시기 위해 죽으셨다. 성경에서 보듯이 그분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심은 사탄과 사망과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서였다.
p.228
하나님이 행하시는 정의, 즉 옳은 일이란 그분의 설계에 어긋나게 사는 사람들을 바로잡아 주시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해주시고, 원수들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여 친구로 삼아주시는 것이다.
p.263
사랑은 우리를 치유하고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하는 유일한 힘이다. 사랑은 명령이나 강압이나 강요로 될 수 없다. 본인이 자원해 주어야만 한다. 두려움에 찌든 우리 마음은 이런 사랑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이 사랑을 하나님에게서 받아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가게 할 수 있을 뿐이다.
p.278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준다.
싸움은 날마다 벌어진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거나 자아를 구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인생은 둘 중 하나의 선택이다. 두 개의 길과 두 개의 원리뿐이다. 두 갈래 길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랑은 나보다 남에게 집중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받기보다 주는 것이다. 삶의 모든 행위 속에서 이 두 원리(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것인가, 자아를 구할 것인가)가 우리 마음을 지배하려고 싸우고 있다.
p.282
... 너무도 생소하고 생전 들어 보지 못한 개념이라서 같은 본문을 여러 역본으로 다시 읽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전통에 너무 젖어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배웠던 내용에 사고가 너무 종속되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하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정말 없었다. 선입견에 막혀 진리를 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나는 성경 전체를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탐색했다. 성경 속에서 발견되는 증거로 내 결론을 삼기로 했다.
p.291
하나님에 대한 거짓이 남아있는 곳에는 사랑이 흐르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거짓이 제거되지 않는 한 우리 뇌는 치유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자신에 대한 기쁜 소식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를 기다리신다. 그제야 그분의 사랑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그분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다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벧후3:9) 그래서 그분은 우리가 바로 우리가 그분에 대한 진리를 온 세상에 전하기를 기다리신다.
p.287-288
모세의 얼굴을 해처럼 빛나게 한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신기하고 놀라운 사랑이다!
이 삼키는 불은 해로운 불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불이다. 그것을 깨닫고 기뻐하던 중에 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이 떠올랐다. 모세의 얼굴을 본 그들은 뒤로 물러나면서 그에게 수건을 쓸 것을 당부했다. 하늘의 빛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퍼뜩 깨달아졌다. 사랑의 불은 사고가 치유되지 않았을 때에만 고통스럽다. 유죄 상태의 양심과 중생하지 않은 마음은 거짓과 이기심을 선호하기 때문에 사랑과 진리의 빛을 용납할 수 없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9)
... 이 불의 목적은 두 가지다. 이 불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영화롭게 하고 보호함과 동시에 이 땅의 죄를 완전히 없애버린다. 이 신기한 불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악을 전소시켜 버린다.
....
그렇다면 거짓을 태우는 것은 무엇인가? 진리다! 이기심을 태우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이다! 그런데 성령의 진리의 영이자 사랑의 영이시다. 놀랍게도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 각 사람 위에 있는 불줄기가 모두에게 보였으나(행2:3) 아무도 타지 않았다. 건물도 타지 않았고 옷에도 불이 붙지 않았다. 그 불 곧 사랑과 진리의 불은 그들의 마음과 생각에 붙어서 그것을 정화했다. 그러자 하나님에 대한 모든 왜곡이 제거되고 시기와 불화와 이기심이 다 타버렸다. 다시 그들 안에 사랑이 불타올랐다!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들은 성령과 불로 사랑과 진리의 불로 세례를 받았다!(마3:11)
p.293-294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하나도 잃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천국의 모든 요원을 동원해 우리 안에 그분의 사랑을 회복시키려 하신다. 우리는 두려움과 이기심으로 병들어 있어 매사에 자아밖에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백성은 그분이 오실 때 그분을 맞이할 준비가 된 백성, 천국으로 곧장 들어갈 준비가 된 백성, 그분의 사랑의 불꽃 속에서 살아갈 준비가 된 백성이다.
p.297
의학과 신학이 하나가 되고,
감정과 이성이 조화를 이루는 놀라운 뇌의 신비
원호택 _ 서울 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 임상심리 전문가, 기독상담사(감독)
저자는 어느 유명한 목회 상담가보다도 순수한 성경적 상담 방식을 설파하며, 그런 방식이 뇌의 신경세포 수준에서 구조적 변화까지 일으킨다는 뇌 연구 결과를 함께 제시한다.
박상은 _ 효산의료재단 의료원장, 의료선교협회장, 대통령직속 국가 생명윤리위원장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 중 최고의 걸작품이 인간이라면 뇌는 걸작품 중의 가장 및나는 보석이라 생각된다. 이 놀라운 뇌의 신비를 이토록 명확하고 지혜롭게 풀어쓴 책을 미처 본 적이 없다.
이동원 _ 지구촌교회 원로목사, 건양대학교 치유선교학과 석좌교수
인간의 신경 세포는 쉴 새 없이 메시지를 전달받고 전달한다. 이 신비스런 물음의 한복판에 하나님 설계의 비밀인 뇌가 존재한다. 우리가 오랫동안 궁금하게 생각해온 뇌와 신앙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김경집 _ 인문학 작가, <인문학은 밥이다><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저자
이 책의 미덕은 많은 사례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읽을수록 고개가 끄덕이고 어둠 속을 더듬던 고민이 조금씩 밝은 빛 속에서 해소되는 즐거움을 가득 누리게 하는 책이다.
박은조 _ 은혜샘물교회 담임목사, 샘물 중고등학교 이사장
저자는 자신이 발견하고 경험한 과학 지식으로, 하나님을 최대한 명확히 드러내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키는지 보여준다.
송태근 _ 삼일교회 담임목사
인체의 가장 신비한 지체인 뇌를 하나님의 창조와 성도의 성숙이라는 주제와 맞물려 설명한다. 수준 높은 객관적인 자료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뇌의 사용과 신앙의 성숙 사이의 관계를 증명한다.
노상헌 _ 임상심리학 박사, 남서울 예수교회 담임목사, 뉴라이프 치유센터 대표, 전 합동신학대학교 실천신학 교수
최근 몇 년 동안 뇌 과학 서적들이 출판계에 큰 영향을 주며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데, 대부분 은근히 설득력 있게 뉴에이지 메시지를 부추겨 왔다. 기독교계에서 가뭄에 단비를 만난 느낌이다.
저자 티머시 R. 제닝스 Timothy R. Jennings
정신과 및 신경과 의사, 정신약리학자(psychopharmacologist)로 1997년부터 개개인 병원을 운영해 왔다. 경두개자기자극(TMS : Transcranial Magenetic Stimulation), 우울증에 대한 약물 치료 분야의 전문가 이다. 2008년, 2010년, 2011년에 미국 소비자 연구위원회에서 미국 최고의 정신과 의사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국제적인 강사이자 탁월한 그리스도인 정신과 의상사인 그는 영적, 의학적, 정신 의학적 분야 등 폭넓은 주제의의 세미나를 개설하고, 매주 성경 공부 클래스를 운영하고 가르치고 있다. 테네시 의과대학 겸임교, 미국 정신과협회 회원, 테네시 정신과협회 회장, 남부 정신과협회 이사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차례
Part One 하나님과 뇌 그리고 문제의 발단
001.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002. 인간의 뇌와 께어진 사랑
003. 두려움은 불법 난입자다.
004.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뇌가 변한다.
Part Two. 상충되는 하나님관의 싸움
005. 회심한 사람의 뇌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
006. 우리의 사고를 치우하기 위해 사랑은 계속 싸운다.
007. 건강한 행동 노선을 선택하라
008. 지성을 사용하여 왜곡된 하나님관을 바꾸라.
009. 진실을 받아들여야 회복이 가능하다.
010. 증상 뿐 아니라 원인을 찾아야 한다.
011. 하나님에 대한 시각을 넓히라
012. 하나님은 하늘 위의 경찰관이 아니다.
013. 예수 그리스도의 뇌
Part Three. 하나님의 선하심을 받아들이라
014. 용서는 죄를 막는 백신이다.
015. 사랑은 두려움을 이긴다.
016. 사랑과 진리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하라.
017. 부처와 예수 - 준비된 뇌로 영원을 맞이하라.
부록] 뇌를 더 건강하게 하는 비결
2018. 9.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인가? 신경학적으로 말해서 "마음"은 전두대상피질ACC 즉 이마의 양미간에서 약간 안쪽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 뇌 부위에서 공감과 긍휼과 사랑을 경험하고, 옳고 그름을 가려낸다.
배외측 전전두피질DLPFC은 추론하고 전략과 계획을 짜는 뇌 부위다.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대고 머리털이 나기 시작하는 부분까지 위로 쭉 올라가면 바로 그 안쪽이 배외측 전전두피질DLPFC의 위치다. 배외 전전두피질 밑으로 안와 바로 위쪽에 있는 것이 안와 전전두피질OFC이고, 코 위의 중심선 쪽으로 안와 전전두피질과 붙어 있는 것은 복내측 전전두피질VMPFC, (양심)이다. 현재의 뇌 과학 이론으로는 안와 전전두피질OFC과 복내측 전전두피질VMPFC이 양심의 부위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 두 부위에서 우리는 죄의 자각을 경험하고,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인식하며, 지시를 내려 부적절한 행동을 바로잡는다
판단력은 배외측 전전두피질DLPFC(이성)이 안와 전전두피질OFC 및 복내측 전전두피질VMPFC(양심)과 결합해 생겨난다. 흥미롭게도 뇌 연구에서 밝혀진 바로는 복내측 전전두피질VMPFC, 즉 양심이 활동하고 있을 때는 배외측 전전두피질DLPFC 즉, 이성의 활동이 줄어들고,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양심이 깨끗하면 그만큼 더 효율적인 추론과 사고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사랑의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는 전략과 계획을 짜는 능력을 양심이 약화시킨다. 다시 말해서 죄책감이 있으면 사고를 명료하게 할 수 없다. 판단력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려면 양심이 떳떳해야 한다. 떳떳한 양심은 우리의 삶이 사랑의 법과 조화를 이룰 때에만 가능하며, 그러려면 왜곡된 하나님 개념을 버리고 그분을 아는 참된 지식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면 전두대상피질ACC(마음)이 강해져 죄책감을 가라앉히거나 해결한다. 사랑은 정말 삶의 기초다. (p.64-65)
뇌 영상의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듯이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전두대상피질ACC:마음이 더 개발된다. 그뿐 아니라 그런 사람은 스트레스 호르몬, 혈압, 심장박동이 낮아지고 요절할 위험성도 줄어든다. 사랑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결함투성이 몸까지도 치유해낸다. 반대로 두려움을 유발하는 분노와 진노의 신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뇌 손상이 커지고 건강이 더 빠르게 쇠퇴해 결국 수이 단축된다. (p.69)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관계 속에서 그분과 교제하고 그 사랑을 묵상할 때, 우링리의 뇌가 변화된다. 전전두피질이 강해지고 그 영향력이 나머지 뇌로 확대된다. 대뇌변연계는 진정되고, 왜곡된 개념은 사라지고, 공감과 이타심과 베풂이 많아진다. 그리하여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p.246)
책의 사례들을 선별한 이유는 왜곡된 하나님관을 고수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과 하나님 개념이 바뀔 때 떻게 치유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예증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모든 환자가 하나님관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개념이 바뀐다고 해서 모든 정신건강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알츠하이머병, 조현, 조울증, 자폐증 등 뇌 자체를 공격하는 병을 앓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질환은 하나님 개념을 바꾸어도 해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이 책에서 예증될 사실이 있다. 왜곡된 하나님관은 많은 질환의 직접인 원인을 아닐질지라도 역시 건강에 해로우며, 그래도 고수하면 건강과 치유를 약화시킨다. (p.28-29)
신학자도 목사도 아닌 일반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전공에 맞게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반응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 또는 소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한 본보기를 보여준 저자에게 먼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각 챕터마다 실려있는 사례들과 그 내담자를 대하는 저자의 모습, 그리고 성경을 바로 해석하여 올바른 하나님관을 정립시켰을 시 변화되는 내담자들의 모습은 내게 많은 도전을 주었다. 옳지 않은 하나님관으로 인해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옳지 않은 방법으로 애쓰는 사례들에 안타까움이 들었고, 저자가 보여준 옳은 하나님관의 직면만으로도 새 삶을 시작하는 내담자들의 모습에 희망을 보게 된다.
특별히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아담과 하와의 창조이다.
남편에게 주께하듯 복종해야 함을 삶의 모토로 삼고 있는 한 여성이 저자를 찾아왔다. 이번 40번 째 생일에 남편이 우리 침대에 다른 여자를 데려 올 것을 명령했는데 이 여성에게 혼란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평소 남편의 말을 주님이 하신 말인양 들어주던 아내에게 이 명령은 차마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왠지 이 명령까지도 들어야 아내의 역할을 수행해 내는 것 같아 괴롭다.
내담자가 신앙이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안 저자는 아담과 하와의 창조 이야기를 내담자에게 들려준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하와를 창조하였다.
왜 하와를 창조하셨을까?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안쓰러워 여성, 하와를 창조한 것인가?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즉 하나님이 사랑하시듯 사랑하도록 지음을 받았다.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좋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섬길 대상이 없이는 하나님을 닮은 충만한 사랑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담은 자신을 내주고 희생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하와는 아담의 이타적 사랑의 수혜자로 지음을 받았다. 또한 그 사랑을 받은 뒤에는 하와도 타인 중심으로 아낌없이 베풀고 사랑하도록 지어졌다. 아담은 하와가 없이는 충만하게 살아갈 수 없었다. 하와는 아담이 사랑과 섬김으로 자신을 내줄 대상이었다. 이러한 타인 중심의 전적인 베풂을 통해 둘이 마음과 사고와 목적과 애정과 정절에서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설계였다. 영원한 사랑으로 하나의 서클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 (p.146-147)
아담이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완전히 이해하고 알기 위해서 하와라는 대상이 필요한 것이구나.
몇 년 전 읽었던 [부모학교]에서 부모가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알고 믿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자신의 자녀를 부모인 나에게 맡기신 것이라는 문구가 떠오르며 아담도 마찬가지구나 라고 깨달아졌다.
이처럼 이 책 전반에는 하나님의 끝없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 사랑을 저버리고 두려움과 불안 속에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죄된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을 온전히 회복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저자의 전공인 병원 안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로 알기 쉽게 풀어져있다.
상담을 하는 의사나 목사, 임상 심리전문가 뿐 아니라 이 땅에 왜곡된 하나님관으로 인해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사랑이 풍성한 하나님을 만나 온전한 천국을 누리길 소망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1서 4:18)
왜곡과 편향없는 올바른 신앙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놀라운 책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거나 오해하는 것은 둘 다 잘 못된 태도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저의 신앙에 대한 관점이 한 단계 올라갔다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랑과 두려움이 우리의 뇌, 그리고 우리의 신앙, 그리고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근거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것은 성경의 메시지와 잘 들어 맞습니다.
사랑 vs 두려움 (믿음 vs 두려움)
기독교 신앙은 한 단어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근거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사랑으로 하는 것과 두려움으로 하는 것은 놀랍게도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전두엽(전전두피질) vs 편도체
간단히 말해서 전두엽은 이성, 편도체는 본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믿을 때 전두엽이 활성화되고 긍정적인 선순환이 이루어집니다. 반대로 두려움과 거짓을 믿을 때 우리 뇌의 편도체가 반응하여 부정적인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을 묵상하고 사랑을 실천하면 건강, 기쁨, 감사하는 인생이 됩니다.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고 발달되면 기억력과 사고력이 증가하고, 긍정, 건강, 보람된 삶을 살게 됩니다. 반면 벌주고 저주하는 신이라는 왜곡된 생각을 가질 경우 그것이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 분노 등으로 나타나며 편도체를 자극합니다. 심리장애, 스트레스, 이기심의 원인이 되며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고 감정과 본능에 치우치는 삶이 됩니다. 앞에도 설명했지만 전두엽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편도체는 사람을 짐승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이 책은 신앙에도 도움이 되고 상담에도 도움이 됩니다. 사랑보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두려움의 인생에서 사랑의 인생으로 바뀌는 놀라운 일이 생길 것입니다.
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 – lalilu
이 책은 우리가 잘 모르는 뇌에 대한 비밀을 하나씩 풀어주는 책이다. 지극히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을 하나님과 연관시킬 수 있다는 것은 저자의 신앙을 바탕으로 한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신자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덮어놓고 믿는 신앙’을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덮어놓고 믿는 것은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과학의 분야 특별히 우리의 ‘뇌’와 관련된 부분을 배움으로 우리가 어떤 작용과 어떤 과정으로 우리의 뇌를 하나님께서 작동케 하시는지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정신과 의사이다. 정신과 의사가 뇌를 통해서 하나님의 설계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경험한 하나님과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서 보았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우리의 뇌를 영적 전쟁의 영역으로 생각하며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해주고 있다.
특별히 이 책은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갖느냐에 따라서 우리 뇌의 전두엽 피질에 있는 신경세포들이 어떤 변화와 어떤 활성화를 이루게 되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잘못된 가르침을 통해서 주님을 두려워하기만 할 때 우리 뇌는 심각한 장애를 겪게 되고 그로 인해 점점 더 위축되고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된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올바르게 배우고 우리의 뇌도 올바르게 반응할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건강해지고 성경적으로 바로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풀렸던 것은 바로 ‘이단’들의 문제였다. 이 책을 보면서 왜 사람들이 이단과 같이 말도 안 되는 가르침과 교리에 빠지게 될까를 생각하다가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에 오랫동안 노출이 되었을 때 뇌가 사고의 기능을 멈추게 된다는 것을 한편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책의 부제와 같이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뇌가 변하고 삶이 변했다”는 문장은 참으로 옳은 문장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맡고 있는 가르치는 자들은 정말 신중하게 그리고 참되게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반성하게 된다.
이 책은 마지막 부록 부분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의 뇌는 물론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더 건강해질 수 있도록 17가지의 행동 실천 지침 목록들을 준다. 스스로 사고하라는 1번 지침에서부터 늘 예수님을 바라보라까지 17번까지의 지침은 프린트를 해서 벽에 붙여 놓으려고 한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의 뇌가 인식하면서 우리의 뇌가 반응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부디 이 책이 날마다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주님께 우리의 삶 전체를 맡길 수 있는 귀한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미 오래전 부터 뇌에 대한 연구와 뇌의 비밀을 푸는 연구와 자료들은 많다.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뇌의 비밀은 알면 알수록 신기하다. 우리가 최고의 천재로 생각하는 아인슈타인도 뇌의 활성도 5%이내라니 정말 그 끝은 생각하기가 힘들다.
심리학에서나 의학에서도 뇌의 작용은 폭넓고 놀라운 실화가 많다. 너무나도 대표적인 것이 플라시보 효과이다. 약이라고 믿고 먹으면 가짜약도 효과가 생기고 사람이 인식하는 것대로 모든 인체가 반응한다는
것이다. 사막에서 추워죽을수 있는 것이 바로 뇌의 작용인것이다.
이 책 처음 부분에도 이런 예가 나온다. 주술사에게 주술이 걸렸다고 생각하는 환자가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아주 단순한 구토제로 다시 몸이 회복되는 예이다.
작가는 정신과 의사이다. 신학자가 아니라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들을 상대하면서 신앙이 미치는 뇌의 작용과 마음의 변화. 그리고 그 모든것이 성경에서 비롯되어서 지금은 모든것이 영적이 전쟁이라는
것을 내제하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적인 정신의 병 마음의 병이 어디서 근본이 되었고 어떻게 흘러갔고 어떻게 되는지 기승전결로 말하고 있어서 온전하게 하나님의 계획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세상에 없다는 생각에 더 확신을 가질수
있었다.
책은 성경의 구절과 뇌의 각 기능을 맡은 구조들을 설명하고 있었고 인간이 느끼는 희노애락이 어떤 감정에서 오는지 사실적인 뇌의 구조학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신앙적이 배경과 결과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고 어떤 영향을 받아서 모든 죄책감과 공포 두려움이 생기는지 그 원천까지 설명하고 있어서 나는 성경의 약간은 사실적이지 않은 부분들이 사실로 다가오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책속에는 작가가 직접 진료를 했던 환자들을 익명으로 해서 나와 있는데 그들이 느끼는 상태를 설명하고
그 상태의 감정은 어떻게 오고 그것이 주는 뇌의 작용들과 성경에서 말하는 그 작용들은 어떤것이 있는지
상세히 설명되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받아들이고 진실로 나의 죄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회개하는 모든 과정에서 회복이 가능함을 그리고 타인에게 베푸는 마음이 어떤 작용을 하고 용서를 하는 마음이 나를 다시 죄성으로 이끌지 않는 약의 작용을 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나는 그 감정들을 누구보다도 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존재에게 두려움으로 이끌려 가던 시절이 있었던 나로서는 그 두려움과 공포가 무엇이었으며 내가 주님을 영접하고 같게된 기쁨이 무엇이고 그 두감정이 내 생활에 미친 영향과 그것들이 만들어낸 모든 시간이 얼마나 천지차이인지 직접 느낀 나로서는
이책이 너무나도 가슴으로 와 닿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그리고 우리들도 늘 무너지고 다시 일어섬을 무한 반복한다.
하지만 알고 가는 길은 모르고 가는 길보다 편하고 안정적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성경과 말씀 그리고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의 익숙함에 푹 빠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이책을 읽고 나서 내가 느낀 또 하나의 다짐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세상을 설계하시며 설레이셨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다스리게 하시고자 만물을 지으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을 담아 만드셨다. 다른 만물보다는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므로 생령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질서와 계획속에 만물은 존재한다. 이를 하나님과 함께 사역하도록 사람을 귀하게 만드셨고, 매우 흡족해 하셨다.
특히,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심에 신묘막측한 놀라운 능력을 사람들에게 주셨다. 그중에 하나님을 믿는 마음과 심정을 주셨다. 마음은 다양한 변화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헌신을 갖도록 하셨다. 그런데 가장 존귀한 존재가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다. 사탄의 유혹에 하나님을 멀리하는 어리석은 존재가 된 것이다.
이 책은 하나님을 알고 믿고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해 준다.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셨다. 로봇처럼 조정되어진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지만 책임을 지는 존재로 하나님은 만드셨다. 창조주이시지만 사람을 마음대로 움직이고자 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철저한 개인의 선택과 결단을 존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만을 행하는 악순환을 갖는다.
이 책은 이러한 사람들의 삶을 임상적 결과를 토대로 저술하였다.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중에 뇌의 영향에 따른 믿음의 모습을 살피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수많은 생각속에 잠겨 살아간다. 창의적 사고보다는 부정적 사고가 지배적인 생각이 하루를 지배하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러나 생각을 이끌어가는 뇌의 구조는 다양한 반응을 갖는다.
이 책은 하나님을 알고 믿는 과정속에 뇌의 반응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신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한 심층분석을 하고 있다. 사람은 문제만을 두각시키지만 문제를 야기하게 된 사람들의 뇌 상태를 염두해 두지 않는다. 과학의 발달과 생리학의 발달은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뇌, 심리적 현상과 작용을 유추하게 한다.
사람의 뇌는 하나님의 설계도 가장 중심을 갖는 소중한 부분이다. 뇌의 건강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 또한, 뇌의 건강은 하나님을 아는 지적 능력도 함양하게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뇌의 신비함과 삶의 영향을 주는 뇌의 작용에 대해서 깊이 있게 볼 수 있다. 특히, 하나님을 아는 부분에서 뇌의 작용이 놀라울 정도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뇌는 그렇지 않은 사람의 뇌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기도의 능력이 가진 일면을 보여주는 주장이었지만 그렇게 크게 관심을 가지고 깊은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하나님이 만드신 우리 몸,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위인 뇌에 관한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깊이 다가온 것은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뇌가 변하고 삶이 변한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의학박사이자 이 책의 저자인 티머시 R. 제닝스가 실제 환자들의 여러 사례들을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에 저자의 주장은 실증적인 면에서 상당한 과학적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다. 단순하게 사랑의 하나님이면서도 때로는 너무나 두렵고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존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아마 아버지가 주는 이미지와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모습 때문에 그런 관념이 굳어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모습을 조금 더 깊이 알게 되었고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따라는 사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식이고, 사랑하고 베풀며 사는 삶이 뇌의 신경회로를 변화시켜 우리의 몸과 마음이 변하고, 삶이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세밀하신 계획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제 사랑하라는 말은 성경 속에 담긴 말이 아니다. 매일매일 살아가는 일상의 삶에서 언제나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크나큰 선물이다.
하나님을 변호함 –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존의 생각에 쪄들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충격을 주는 내용으로 가득 차있다.
<예수님을 제시하는 우리의 방식 때문에 아이들이 그분 곁에 오거나 그분을 알려는 마음이 없어진다면, 그 분은 기뻐하실까?>(21쪽)
이 말에 충격을 우선 받았다. 이런 말을 다른 곳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맞다. 교리적인 것에 매몰된 교회에서 어린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천국과 지옥’이야기, 그게 엄격하게 생각한다면 겁을 먹게 만드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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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라는 아이의 머릿속에 하나님은 무서운 분으로 인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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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생각, 못해본지라, 이 책의 도입부터 충격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란 성도, 자연스럽게 하나님은 무서운 분으로, 혹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경우, 벼락이라도 맞을까 두려운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믿음생활하는 신도,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당신은 하나님이 무섭게 느껴져 힘들었던 적이 있는가?> (41쪽)
그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 그런 대답을 하기 위한 생각, 하게 해주는 책이라 일단 가치가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 변화
그래서 이런 진술이 마음에 와 닿는다.
<우리의 하나님관이 시대의 사회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25쪽)
<건강한 균형을 유지하려면 성경고가 과학과 우리의 경험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하나님관을 구분할 수 있고, 각각의 관점이 우리의 정신과 신체와 관계의 건강에 초래하는 확연한 차이를 예증할 수 있다.> (25쪽)
흔히들, 천사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우리가 짓는 모든 죄를 천국에 꼼꼼히 적는다고 배운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의 죄를 따진다는 것이다. (204쪽)
그게 기존의 교회에서 말하는 교리적 차원의 발언이다.
그렇게 왜곡된 하나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전거 경주 선수들이 생각난다. 경주 내내 자동차 한 대씩이 각 팀을 따라 다닌다. 혹시 누가 넘어지면 팀원들이 재빨리 거들어 상처를 싸매주고 고장난 자전거를 고쳐 그를 경주에 복귀시킨다.>(206쪽)
그러니 하나님은 기존의 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뒤를 따라다니며 짓는 죄를 적는 감시자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보호자로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어서 말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요원들도 평생 우리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목적이 무엇인가? 항상 우리의 상처를 싸매주고 고장난 삶을 고쳐 우리를 영생의 길로 복귀시키는 것이다.>(206쪽)
그래서 실제 생활에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싸움을 한다고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나 그 ‘영적 싸움’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개는 뜬 구름을 잡는 생각을 한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마귀 사탄과의 싸움을 생각하지, 실제 생활에서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하는지를 생각지 못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성경은 우리가 지금 전투중이라고 한다. ..... 그리스도와 사탄의 싸움이 벌어지는 전쟁터는 우리의 생각 속이다.> (26쪽)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셨고, 각자에게 두뇌를 주셨으며, 각자 안에 영으로 거하신다.> (27쪽)
그러니,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만드는 것이 바로 그런 영적 전투인 것이다.
예를 들어 본다면,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하는 이유가 무엇안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기 보다는 자기를 앞세우는데 그런 염려과 걱정이 생긴다. 따라서 ‘말씀 따로 생활 따로’의 기독교인이 양산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를 저자는 단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염려와 두려움의 가장 큰 원인중 하나는 삶을 내 뜻대로 풀리게 하려는데 있다.> (87쪽)
로마서 12장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책의 장점
저자는 이러한 내용들을 그저 주장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정신과 의사로써 상담했던 많은 사례들을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성경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성경의 행간에 숨어있는 내용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그런 저자의 주장과 근거를 이 책을 통하여 차분히 읽어본다면, 지금껏 알아온 하나님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의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 주어진 삶의 결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p.28 성경 용어로 마음은 자아의 응어리, 심연의 내밀한 자아를 가리킨다. 개성의 핵심 요소인 각 사람의 찰 갈망과 애정과 동경과 신념과 정체가 너무는 곳이다. 마음은 이 모든 요소로 이루어져 나를 나 되게 하는 성품이다.
p.29 하나님이 게획하신 구원은 마음을 치유하고 성품을 새롭게 한다. 존재의 심연 속에 그 분의 온전하심을 회복한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변화인 중생은 마음 속에 이루어진다.
p.30 뇌가 곧 마음과 성품은 아니지만 뇌는 마음(성품)이 작동하는 터전이다. 마음과 성품은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와 비슷해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생각은 마음에 이르는 관문이고, 심연의 존재로 들어가는 통로이며, 내밀한 자아를 표현하는 길이다. 그래서 우리가 품는 생각에는 위력이 있다. 생각의 내용이 신체적, 심리적, 관계적, 영적으로 우리를 변화시킨다.
p.31 참여자 자신이 무엇을 마신다고 믿느냐에 결과가 달라졌다. 마음의 문제였다. 음료의 내용을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대로 믿었을 때 변화가 나타났다. 사고의 위력은 우리의 신념, 즉 내밀한 자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그 신념은 다시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마음(성품, 깊은 신념, 핵심 자의식)은 실제로 우리 뇌를 바꾸어 놓는 위력이 있다.
p.33 사고는 마음보다 넓고 포괄적이다. 다시 말해서 마음은 사고의 일부이고, 소프트웨어의 일부다. 모든 소프트웨어를 합한게 사고라면, 마음은 우리의 핵심 정체(성품)을 형성하는 부분에서만 해당한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러를 바꾸어 놓는다.
p.34 무엇을 믿기로 선택할지는 각자의 자유지만 모든 신념이 똑같이 건강한 건 아니다.
p.36 결정을 내리는 건 뇌가 아니라 사고다. 뇌는 이미 설게된 대로만 반응한다. 사고는 뇌에서 전달되는 정보에 의존한다.
p.39 인간의 정신이라는 컵퓨터가 효율적이라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손상되지 않는 하드웨어(뇌),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소프트웨어(사고, 건강한 마음) 확실한 에너지원(건강한 몸의 혈액 공급)이다. 셋 중 둘만 있으면 컴퓨터가 기능을 다 하지 못한다. 세가지가 다 있어야 운영체계가 이루어진다. 이것을 알면 영적 전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영적 전투란 핵심 운영체계인 마음을 지배하려는 싸움이다.
p.40 소프트웨어 바이러스는 개념, 사상, 사고방식이다. 그게 사고를 오염시키고, 두려움과 의심과 이기심을 조장해 마음을 병들게 하고, 기능을 저해한다.
p.45 우리의 마음은 영적으로 병들어 있어 사랑을 하나님의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다. 이대로는 잘 사랑하기가 힘들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p.47 자연법(사랑의 법)인 하나님의 법이 이제 인간이 만든 법과 사실상 전혀 다르지 않게 이해되었다. 형벌을 위협해 강제로 시행하는 실정법으로 둔갑한 것이다. 역사에서 확증되듯이 자연법이 실정법으로 대체되면 참담한 결과가 초래된다. 기독교는 본래 공동체로 살다가 순교자로 죽은 온유한 신자들이었으나 이제 폭력적인 사람들로 변했다. 그들은 십자가 문장의 옷차림으로 십자군 형렬에 나섰고, 사제의 지시로 종교재판을 시행했고,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화형에 처했다. 이 모두가 예수의 이름으로 자행된 일이다.
p.60 도덕적 결정의 7단계
1) 상벌 : 옳은 일인지 그른 인지를 가르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는 내가 돌아올 게 상이냐 벌이냐
2) 교환가치 : 답례식의 옳고 그름이다. 내 쪽에서 뭔가를 해 주면 합당한 합의된 대가를 돌려받는다. 거래의 사고방식이다.
3) 사회적 동조 : 공동체의 합의로 결정된다. 남들도 다 그런다는 것이다.
4) 법과 질서 : 성문법, 공정한 판사, 규정된 형벌에 있다.
5) 타인을 향한 사랑 : 의를 결정짓는 요인이 남에게 가장 유익한 행동임을 안다. 불의란 객관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이다.
6) 순리에 따르는 삶 : 자연법대로 작용하도록 짜여 있음을 알고 지혜롭게 거기에 조화되는 생활을 선택한다.
7)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 : 하나님과 남을 사랑하고 그 분이 설계하신 삶의 순리를 이해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지헤롭게 그 목적에 협력하여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p.67 사랑은 하나님이 설계하신 삶의 원리다. 삶은 타인 중심으로 베푸는 그 원리 위에 지어졌다. 모세오경에 시시콜콜한 지시사항까지 다 나오는 이유는 4단계 이하의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5단게 이상의 사람들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바로 이것이다.
p.72 노력해야 힘이 생긴다. 이게 하나님의 설계다. 삶은 그렇게 작용하도록 지어졌다. 이를 일컬어 뇌의 신경가소성이라 한다. 뇌는 자주 쓸수록 자체 구조를 바꾸는 능력이 있다. 이렇듯 재능을 쓰지 않으면 결국 잃는다.
p.80 4단계 이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법이 아직 마음에 새겨지지 않고 성품 속에 녹아들지 않았다. 반면에 5단계 이상의 사람은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도 이기적 성향에서 이타적 성향으로 옮겨갔다. 그들이 보는 옳고 그름은 더는 강제 시행에 동조해야 하는 규칙 목록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삶의 기준으로 삶은 내적 가치와 행동원리이다.
p.85 많은 그리스도인이 유아와 아기로 남아 있음은 성장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거짓된 신념이라는 걸림돌이 그들의 성장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 신념에 속아 그들은 굳이 자신에게 있는 능력을 구사하지 않는다.
p.106 4단계 이하는 초점이 자아에 있고 동기는 두려움이다. 벌 받고 거부당하고 혼날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1-4단계는 옳고 그름ㅇ르 이해하는 기준이 자기 중심이다. 반면에 5단계 이상은 두려움과 자기 방어에서 벗어나 타인을 향한 사랑, 고차원의 목적을 위한 삶으로 옮겨간다. 바로 이게 성숙하게 장성해가는 과정이다. 하나님도 우리 안에 바로 그 모습을 이루시고자 일하신다.
p.107 도덕 발달의 7단계를 이 두 법(하나님의 법 대 실정법)의 렌즈로 보면 미성숙한 사람과 성숙한 사람의 구분선이 보인다. 4단계 이하는 실정법에 기초해 있으며 이 때의 형벌은 외부에서 가해진다. 5단계 이상은 자연법에 기초해 있으며 이 때의 형벌은 삶의 순리를 벗어난데 대한 필연적 결과다.
p.132 자연법의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자연법은 위반 자체가 위반자를 파멸로 이끈다고 인식한다. 그러므로 법을 어긴 사람에게 취할 수 있는 옳거나 정의로운 대책은 그를 구하고 건져내 치유하고 회복시키려는 노력이다. 이게 성경적 정의다. 성경적 정의의 기초는 하나님이 설계하신 사랑의 법에 있으며, 관건은 압제자를 벌하는 게 아니라 압제당하는 자를 건져내고 치유하고 회복시키는데 있다.
p.134 진노의 문제는 십자가로 해결되었으며 십자가는 회복의 행위다. 즉 인류를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회복시킨디ㅏ.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회복의 정의라는 방식을 통해 인과응보의 문제를 치유하신다. 사랑은 정의와 충돌하지 않는다. 사랑은 정의가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신약이 말하는 정의의 관건은 결국 형벌이 아니라 일을 도로 바로잡는데 있기 때문이다.
p.140 인간의 정의는 인간의 실정법에 기초해 있다. 그 동기는 이기심이며 정의라는 핑계로 복수를 꾀한다. 이기적인 마음에 물씬 배어든 정의감은 사실 복수와 다를 바 없으며, 이는 쉽게 드러난다. 자기나 자기와 연관된 사람에게 해당되지 않을 때만 정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p.168 율법주의자는 하나님의 법을 최고로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법을 최고로 높이는 사람이다.
p.176 인간 조직은 항상 실정법과 강압적 수단으로 운영된다. 그 동기는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p.181 중요한 건 교리의 바른 정의나 의식의 바른 시행이 아니라 사랑이다. 남을 바로 대하는게 중요하다! 하나님의 법은 사랑이며, 사랑은 실제로 작용하는 삶의 원리다.
p.213 은유와 직유와 비유와 예화가 의미 있으려면 그것이 가리켜 보이는 우주적 실재가 있어야 한다. 배후의 실재가 없는 예화는 은유나 비유가 아니라 망상이다.
p.222 인류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었으나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그 분의 성품인 사랑을 회복시켜 인류를 다시 자신과 연합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하신다. 자연법의 렌즈로 보고 하나님을 창조주로 알면 그런 관점에서 귀결된다. 그런데 기독교가 실정법의 전염병에 오염된 이후로 많은 이들이 성막의 드라마를 법적인 형벌을 치러 그 분을 달래는 제대로 잘못 알고 있다.
p.242 연극 전체의 무대 공연에서 소통되는 메시지는 하나다. 인류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었으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치료법을 공급하셨고, 자원하는 사람을 치유하고 회복시켜 다시 자신과 온전히 연합하게 하시려고 역사하신다. 이게 실재다! 하나님과 연합하고 죄를 치유하고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으로 회복되는 일은 은유가 아니라 목표다. 우리가 구하는 상이다.
p.249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대의를 이루려면 세상 정부의 강압적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따를 때 가능하다.
p.276 죄의 결과이지만, 그 자체가 죄는 아니다.
p.302 성경에서 실정법 준수와 자연 법 사이에 대결이 벌어질 때마다 하나님은 자연법의 편에 서셨다.
p.324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요소는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그 분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다.
p.344 하나님의 자연법
1) 사랑의 법 : 베풂의 원리이다. 멈추면 죽음이 임한다. 이게 죄의 사망의 법칙이다.
2) 자유의 법칙 : 해방의 원리이다. 사랑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만 존재한다.
3) 예배의 법칙 : 우리는 바라보는대로 변화된다.
4) 노력의 법칙 : 연습해야 힘이 생겨난다.
5) 파종과 수확의 법칙 : 심은대로 거둔다.
6) 물리법칙 : 물리적 우주는 일정한 법칙대로 작용한다.
7) 건강법칙 : 생물계도 분별의 요건대로 작용하도록 설계되었다.
8) 유전법칙 : 나를 통해 태어나는 존재는 나의 형상과 특성과 강점과 약점을 물려받는다.
9) 수학법칙 : 수학도 불변의 원리대로 작용한다.
p.350 영감의 산물은 성경의 구체적 어휘가 아니라 성경 속에 담긴 개념과 사상과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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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Uu0_H2b-PY
출처: https://dreamingpastor.pe.kr/5863 [꿈꾸는 꼬목사's BLOG]